When you come to Bali
발리에서 생길 수 있는 일
우리나라에서 허니문 시장의 최대 수혜지를 꼽으라면 단연 발리다.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의 인기와 더불어 급성장한 발리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 발리에 열광하는 걸까? 비록 비극으로 결론 내려지긴 했지만 드라마에 등장했던 절경 속에서 이루어졌던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기 때문인듯했다. 환상의 섬 발리에서 진짜로 생길 수 있는 일을 알아보자.
느닷없이 이어지고 있는 친구들의 결혼 소식에 ‘축하한다’는 인사말은 자연스럽게 “신혼 여행 어디로 가니?” 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결혼한 지인들의 신혼 여행지는 거의 발리 쪽으로 모아졌다. 꼭 신혼여행이 아니더라도 가족 여행지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 걸 보면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이 방영된 지 벌써 9년이 됐는데도 당시의 감동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나 보다. 사실 바라보는 것만으로 미소 짓게 하는 조인성과 소지섭의 연기가 뭇 여성들의 가슴을 흔들었으니 드라마 속 배경에 대한 환상을 무너뜨리기에는 세월도 무색하다. 발리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하늘을 나는 약 7시간 동안, 발리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에 부푼다.
하루 종일 즐기는 워터 스포츠, 비치클럽 크루즈
열대 지방으로 떠난 여행에서, 특히 바다 있는 곳에서 놓칠 수 없는 즐거움 워터 스포츠. 다른 지역에 비해 물빛에 대한 기대감이 적었던 발리였지만 그래도 그 즐거움을 포기할 수는 없다. 하루 종일 물놀이를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누사두아에서 30분여를 달려 발리에서 가장 큰 항구인 버노아항에 도착했다. 커다란 배들이 정박한 그곳에는 배를 타기 위해 꽤 많은 여행객들이 북적였다. 역시 발리 여행객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는 호주 사람들과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들이 종종 눈에 띈다. 오션 래프팅, 돌핀 크루즈 등 다양한 프로그램 중에서 비치클럽 패키지를 이용할 수 있는 발리 하이 Ⅱ호(Bali Hai Ⅱ)에 올랐다.
크루즈 밴드의 환영 노래와 모닝 커피, 그리고 푸른 발리의 바다를 즐기며 1시간 정도를 달리자 크루즈를 묶어둘 폰툰(Pontoon)이 보인다. 폰툰에 내려서니 크루즈 안에서 발리의 햇살과 바닷바람을 즐기던 사람들이 쏟아져 내린다. 바나나보트, 스노클링, 워터슬라이딩 잠수함 투어 등 거의 모든 액티비티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스쿠버 다이빙과 패러세일링은 약간의 추가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평소 접하기 힘든 짜릿한 액티비티를 즐기기 위해 아낌없이 지갑이 열리기도 한다. 사실 굳이 바다 속에 뛰어들지 않더라도 근육질 훈남과 섹시한 자태로 눈을 휘둥그레지게 하는 금발의 여인들이 열대의 더위를 식혀준다.
발리 남부의 동해안에서 약 30킬로미터 떨어진 렘봉안 베이 비치에서 바비큐 런치 뷔페를 이용할 수 있는 비치클럽 패키지를 선택했다면 폰툰에서 다시 한번 작은 보트를 타고 비치클럽으로 가야 한다. 렘봉안 섬(Nusa Lembongan)에 도착해 보니 리조트 시설이 부럽지 않은 비치클럽이 나타난다. 골든 샌즈가 펼쳐진 비치 클럽에서 스쿠버 다이빙, 스노클링, 낚시, 카약 등 해양 레저를 마음껏 즐길 수 있어 일일 투어를 즐기고자 하는 관광객들이 많다. 바다에 몸을 맡기거나 스위밍 풀에서 수영을 하고, 일광욕을 즐기는 등 발리에서 이렇게 활기 넘치는 모습은 처음본다. 마음껏 놀다가 조금 피곤하다 싶으면 야자수가 만들어주는 그늘에서 따가운 햇살을 피하고,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늘어지게 낮잠을 잘 수도 있었다. 이토록 여유로운 시간이 발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니, 단 하루였지만 단꿈 같은 행복이었다.
서퍼스 파라다이스 꾸따
발리 하이 Ⅱ호가 렘봉안 섬을 출발한 게 오후 4시경의 일이니 아침 일찍부터 하루 종일 움직인 셈이다. 그런데도 뭔가 아쉬워 서퍼들의 천국이라는 꾸따 비치로 향했다. 꾸따가 작은 어촌 마을에서 서핑의 메카로 탈바꿈하게 된 건 인도양 아래로 떨어지는 아름다운 석양과 비교적 높은 파도 덕분이다. 호주의 서퍼들이 이곳을 서핑 장소로 개발하면서 현재는 발리 여행의 필수 코스로 자리잡았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숍과 레스토랑이 하나 둘 오픈하더니 대형 쇼핑센터까지 들어선 상태다. 낮에는 해변에서 서핑을 즐기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밤에는 화려한 나이트 라이프를 즐길 수 있다.
서핑을 하지 않더라도 마사지를 받거나 헤어 브레이딩, 매니큐어 등 즐길거리가 꽤 많다. 하지만 그들의 실력이 모두 믿을만하지 않으므로 실력을 검증해보는 것이 좋다. 꾸따 비치는 파도가 높아 서핑을 즐기기엔 적당하지만 수영을 하기에는 좋지 않다. 끈질긴 잡상인들도 많으므로 살 생각이 없다면 쳐다보지도, 만지지도 말아야 한다. 북적거리는 비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쇼핑을 즐기다가 일몰 시간에 맞춰 카페에 자리를 잡는 것이 가장 현명한 꾸따 즐기기가 되겠다.
원숭이를 조심하세요
발리는 ‘신들의 섬’이라 불릴 만큼 수많은 신이 존재하지만 신의 수만큼 원숭이도 많이 산다. 대표적인 곳이 몽키 포레스트와 절벽사원인 울루와투(Pura Luhur Uluwatu). 우붓 지역의 가장 대표적인 관광지인 몽키 포레스트는 숲이 우거진 계곡에 사는 원숭이 자연보호구역이다. 천천히 둘러봐도 한 시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는데, 원시림 속에서 삼림욕 하듯 산책하면서 원숭이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200마리 정도의 원숭이들이 보호되고 있는데, 바나나를 들고 가는 관광객에게서 바나나를 얻어 먹기 위해 입구에서부터 자리를 잡고 있는 녀석들도 있다.
그런데 몽키 포레스트에 사는 먹이 봉지를 따라다니는 영악한 원숭이는 얌전한 축이었다. 울루와투 원숭이의 만행을 확인하고 나면 그 느낌은 더욱 명확해진다. 가이드부터 이곳의 원숭이들은 난폭하다고 주의를 듣기는 했지만 관광객의 가방 위에 훌쩍 뛰어 올라 손에 든 카메라를 빼앗으려 들거나 안경을 덥석 잡아채고 안경다리를 서슴없이 부러뜨리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다리를 부여잡는 작은 원숭이에게 “저리 가!”라며 큰소리 치기는 했지만 사실은 원숭이가 달려들까봐 조금 떨렸다. 울루와투에 갈 계획이 있거든 선글라스, 카메라 등 고가의 물건들은 원숭이들의 눈에 띄지 않게 보관하기를 권하는 바이다.
원숭이들이 모여 있는 곳을 벗어나니 이제야 절벽 사원의 절경이 눈에 보인다. 사원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면 천길 낭떠러지다. 힌두 사원 울루와투는 11세기에 세워진 ‘돌 위의 사원’으로 바다의 여신을 모시는 곳이다. 절벽 아래서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니 땡볕 아래 절벽을 오르면서 느끼던 더위와 피로도 싹 가신다.
선과 악의 대립, 바롱댄스
발리의 덴파사 국제공항에 처음 내렸을 때부터 들려오는 가믈란 음악 소리는 발리에 머무는 내내 최면에 걸릴 듯 귓가에 맴돌았다. 어쩌면 이 중독성 강한 음악이 발리의 오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발리에서는 어디를 가나 사원과 신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돌조각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신들의 섬’이라는 의미를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다. 신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는 것은 그들의 정통 무용극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발리의 전통 무용극 중 하나인 바롱 댄스가 그것. 크지 않은 야외 극장에 들어서니 사자를 닮은 바롱이 등장해 가믈란 음악에 맞춰 공연을 펼치고 있다. 호주, 유럽에서 온 관광객뿐 아니라 현지인들도 익살스런 표정의 무희들에게 푹 빠져 있다. 원래는 1년에 한두 차례 큰 축제 때에만 상연하던 바롱 댄스는 발리의 관광업이 발달하면서 거의 매일 상연된다.
선과 악의 대립이 스토리의 기본 구조인데 본래는 심각한 분위기의 무용극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발리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1시간의 무용극으로 재편성했다. 희극적인 요소도 가미하고, 때로는 재미있는 영어 단어를 구사해 관객의 웃음을 유도한다. 신나게 웃으면서 본 바롱 댄스의 내용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선과 악이 대립하고, 균형을 이루는 세계 속에서 상반되는 성질들은 끝없이 부딪치게 된다는 발리인의 세계관이 잘 나타나 있으니 한번쯤은 볼만하다.
단순히 풀 빌라 리조트에서 즐기는 여유로운 휴가 정도로만 생각했던 발리 여행.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의 주인공처럼 절벽 사원의 계단을 거닐어 보기도 하고 발리의 숨겨진 파라다이스에서 신나게 수상 액티비티도 즐겼다. 발리를 누비고 다니는 동안 아쉽게도 드라마 같은 일은 생기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즐거웠던 하루하루의 기억이 드라마 못지 않게 드라마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