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에 대한 상대성이론 / 박종익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비껴간 빵은 더는 식욕의 포로가 아니라 탐욕이다 참치김밥 한 뼘이 삼천 원일 때 삼천 원의 분량을 크기로 풀어보면 식빵의 깊이와 폭이 가장 넓다 하루 남은 유통기한에 목숨이 저당 잡혀 있는 옥수수빵 봉지를 뜯으며 싱그러운 딸기밭을 걸어간다 먹어도 먹어도 식욕은 당기는데 나는 배고픈 돼지가 아니어야 한다고 혼자 묻고 혼자 대답하는 순간 빵을 떠난, 부스러기가 비바체 속도로 비둘기 발등에 날아든다 식욕 앞에서 비둘기가 나와 빵부스러기 사이를 두리번거리며 빵이 걸어온 이력과 함수관계를 의심한다 거대한 시조새 부리에 묻은 하얀 빵가루에 탐을 내는 야만의 개미도 하늘을 향해 검은 입을 벌린다 붉은 발가락이 잘려 나간 비둘기, 휘어진 시공 사이로 사르르 함박눈이 이스트 가루로 내려앉는다 더는 빵이 아닌 빵가루의 경적에 중력의 올가미를 통과한 비밀의 문이 열린다 식빵의 근원을 생각해 본 적 없는 개미가 빵가루의 신비에 대해 새로운 가설을 세우며 식빵의 행적을 은밀하게 누옥에 가둔다
◆ 2023년 5월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