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한․일 연합 이단사이비대책 세미나
2009 日․韓 連合 異端似而非対策セミナー
일 시 : 2009. 4. 30(목) - 5. 1(금)
장 소 : 부산진교회 釜山鎮(プサンジン)教会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 인 사 말 씀 ◆
제93회기 한․일연합 이단사이비대책세미나를 일본교회대표들과 함께 부산에서 개최할 수 있도록 섭리하여 주신 전능하신 사랑의 하나님께 먼저 영광을 드립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 을 확신하며 우리 모두 여기 모였습니다.
이번 세미나는 해마다 일본과 한국이 교류하는 장의 일환으로 일본대표들과 총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 노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장들이 함께 모이게 되었습니다. 이 모임이 서로의 정보를 수집하고 각 교단의 이단사이비 대처 방안을 논의하는 중요한 자리가 되리라 믿습니다.
이를 통하여 양국의 이단대처에 더욱 진일보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며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복음 선교에 함께 진력해야 할 시대적 사명을 함께 지니고 있는 일본 교회에도 큰 유익이 되는 이번 세미나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이번 세미나를 위해 수고하시는 총회 이단사이비 대책위원회 위원들과 부산지역 관계하시는 모든 분들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2009. 4. 30.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장 최 영 환 목사
◆ 목 차 ◆
세 미 나 일 정 ………………………………………… 5
개 회 예 배 ………………………………………… 7
제 1 강 의 ……………………………………………… 8
강사 : 탁 지 일 교수(부산장신대 교수, 이단사이비대책위 전문위원)
〈해방 후 주요 이단들의 요람, 부산〉
제 2 강 의 ………………………………………………… 33
강사 : 통일교신자 피해자 가족(일본기독교단)
〈한국으로 간 어떤 신자의 실상〉
제 3 강 의 ………………………………………………… 51
강사 : 구춘서 교수(한일장신대 교수, 이단사이비대책위 전문위원)
〈최근 한국의 이단의 발생과 동향〉
질의응답 및 토론 ………………………………………… 77
※ 총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조직 및 일본참석자 명단
◆ 세미나 일정 ◆
4월30일(목)
13:30-14:00 - 등 록
14:00-14:30 - 개회예배
14:30-15:00 - 일본측 소개, 한국측 소개
15:00-16:00 - 제1강의: 탁지일 교수 (전문위원, 부산장신대)
“해방 후 주요 이단들의 요람, 부산”
16:00-16:15 - 휴식
16:15-17:15 - 제2강의: 통일교신자 피해자 가족(일본기독교단)
“한국으로 간 어떤 신자의 실상”
17:15-17:30 - 휴식
17:30-18:30 - 제3강의: 구춘서 교수(상담소장, 한일장신대)
“최근 국내 이단사이비 현황”
18:30-19:00 - 질의응답 및 토론
19:00-20:00 - 저녁식사
5월1일(금)
09:00-14:00 - 부산지역 이단사이비 현장답사 (통일교 범냇골 성지 등)
◆ セミナー 日 程 ◆
4月30日(木)
13:30-14:00 ― 登 録
14:00-14:30 ― 開会礼拝
14:30-15:00 ― 紹介
15:00-16:00 ― 第1講:卓志一(タクジイル)教授(専門委員、釜山長神大(プサンチャンシンデ))
“解放(日本敗戦)後の主要な諸異端の要覧、釜山”
16:00-16:15 ― 休 憩
16:15-17:15 ― 第2講:(日本基督教団)
“ある渡韓信者の実情”
17:15-17:30 ― 休 憩
17:30-18:30 ― 第3講:具椿書(グチュンソ)教授(相談所長、韓一(ハニル)長神大(チャンシンデ))
“国内における最近の異端・而似非宗教の現況”
18:30-19:00 ― 質疑応答ならびに討論
19:00-20:00 ― 夕 食
5月1日(金)
09:00-14:00 ― 釜山地域における異端而似非宗教の現場探訪
(統一協会ボムネッコル聖地等)
◆ 개 회 예 배 ◆
인도 : 유 영 돈목사
(총회이단사이비대책위서기)
묵 도 -------------------------------- 다 같 이
찬 송 ---------- 3 5 7 장 ------------- 다 같 이
기 도 -------------------------------- 원 태 희 장로
(총회이단사이비대책위회계)
말 씀 -------------------------------- 최 영 환 목사
(총회이단사이비대책위원장)
기 도 -------------------------------- 설 교 자
광 고 --------------------------------- 유 영 돈 목사
(총회이단사이비대책위서기)
축 도 -------------------------------- 설 교 자
357장(주 믿는 사람 일어나)
1. 주믿는 사람 일어나 다 힘을 합하여 이 세상 모든 마귀를 다 쳐서 멸하세
저 앞에 오는 적군을 다 싸워 이겨라 주 예수 믿는 힘으로 온 세상 이기네
2. 온 인류 마귀 궤휼로 큰 죄에 빠지니 진리로 띠를 띠고서 늘 기도 드리세
참 믿고 의지하면서 겁없이 나갈 때 주 예수 믿는 힘으로 온 세상이기네
3. 끝까지 이긴 자에게 흰 옷을 입히고 또 영생 복을 주시니 참 기쁜 일일세
이 어둔 세상 지나서 저 천성 가도록 주 예수 믿는 힘으로 온 세상이기네
[후렴]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 이기네
♧ 제1강의 ♧
해방 후 주요 이단들의 요람, 부산
탁 지 일 교수
(부산장신대 교수, 이단사이비대책위 전문위원)
1. 부산, 한국복음화와 대부흥운동의 숨겨진 성지(聖地)
부산은 한국복음화와 1907년 대부흥운동의 숨겨진 성지다. 그 이유는 첫째로 복음전파를 위해 한국을 찾아온 선교사들이 제일 먼저 그 첫발을 내 디딘 땅이 부산이기 때문이다. 알렌, 언더우드, 아펜젤러를 포함한 대부분의 초기 선교사들이 가장 처음 접한 조선의 산하가 바로 부산이었으며, 그렇기에 한국복음화를 위한 그 첫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도 부산이다. 하지만 서울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온 기존의 한국교회사 서술에서 부산은 제물포와 서울의 그늘아래 숨겨진 성지가 되어왔다.
둘째로 부산은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숨겨진 성지이다. 그 이유는 부산에서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불씨가 처음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부산지역에 온 가족이 가장 처음 거주한 선교사는 캐나다 출신의 하디(Robert Hardie)였다. 하디는 토론토대학교 학생들의 경제적 지원으로 한국에 왔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늘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었다. 부산에 정착하게 된 이유도 당시 부산에 설치되어 있던 해관(海關)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을 위한 의사의 신분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하디에게 부산은 가장(家長)으로서 그리고 선교사로서 좌절과 고난의 땅이었다. 온 가족이 부산 영도의 한 작은 콜레라병원에서 거주해야 했으며, 그나마 호주와 미국에서 온 선교사들이 임시로 하디의 집에 머물렀기에 하디의 가족 모두에게는 사생활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어려운 나날들이었다. 게다가 의사의 신분으로 한국복음화의 꿈을 갖고 온 하디에게는 경제적인 것을 충족하기 위해 세상적인 의료 활동에 집중해야만 했던 좌절의 땅이었다.
그는 결국 부산을 떠나 강원도에서 복음선교사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선교사역도 역시 그의 기대와는 달리 쉽지는 않았다. 이러한 와중에서 하디는 원산의 한 성경공부를 인도하게 된다. 이곳에서 하디는 부산과 강원도에서의 선교사역의 실패의 궁극적인 이유가 남이 아닌 그 자신에게 있음을 발견한 후 동료선교사들과 한국기독교인들 앞에서 통렬한 회개를 하게 된다. 이 회개는 그 자신이 한국에서 경험한 개인적인 좌절과 고난에 대한 치유의 경험이었으며 복음선교사로서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이러한 하디의 회개로 촉발된 대부흥운동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재(災)대신 주신 화관(花冠)이었다. 부산에서의 하디의 경험은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작은 불씨였다. 이러한 점에서 부산은 한국복음화와 대부흥운동의 숨겨진 성지라고 할 수 있다.
2. 부산, 한국이단운동의 요람(搖籃)
하지만 부산은 이렇듯 숨겨진 성지로서의 자긍심과 함께 한국교회가 현재 씨름하고 있는 대표적인 이단운동들이 발흥한 곳이라는 아픔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아래의 예들처럼 해방 후 한국전쟁을 전후로 하여 부산은 한국교회 이단운동의 요람이 되어오고 있다.
2-1. 부산, 외국계 이단들의 전래지
먼저 부산은 외국계 이단들의 주요한 전래지이다. 예를 들면 가장 대표적인 미국계 이단인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세칭 몰몬교)가 처음 포교되기 시작한 곳도 부산이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한국을 찾아온 미국군인들 중에 몰몬교인들이 있었고, 이들의 포교로 인해 부산에서 몰몬교의 첫 모임이 시작되게 되었다. 2005년에는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몰몬교의 최고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몰몬교 한국전래 50주년 행사가 성대하게 열렸다.
한국전쟁 시기에 포교를 시작하여 그 교세가 지속적으로 성장해오고 있는 몰몬교는 가장 미국적인인 종교로 인식되고 있다. 그 이유인지는 몰라도 몰몬교는 미국의 보수적인 지역을 중심으로 지난 200여 년 동안 꾸준히 성장해왔고, 또한 미국의 정치․문화적 영향을 받는 나라들(독일, 일본, 필리핀, 한국 등)과 백인우월주의 경향이 있는 나라들(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성공적으로 포교가 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유창한 한국말과 함께 검은색 명찰을 달고 두 사람이 짝을 이루어 다니며 영어공부를 통해 우리 젊은이들에게 접근하고 있는 몰몬교의 젊은 자비량 선교사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2-2. 부산, 국내산 이단들의 요람
부산은 많은 국내산 이단들의 요람이다. 가장 대표적인 한국산 이단운동인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세칭 통일교)이 시작된 곳도 부산이다. 서북지역에서 피난 온 문선명이 통일교의 경전인 『원리강론』의 틀을 잡은 곳도 그리고 통일교회(당시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설립을 준비한 곳이 바로 부산이었다. 그렇기에 전 세계적으로 많은 부동산(성지)을 소유하고 있는 통일교는 부산 범내동의 통일교거점을 “본성지(本聖地)”라고 부르며 성역화하였고, 문선명이 한국전쟁기간동안 머물렀던 부산의 범냇골은 모든 통일교인들에게 손꼽히는 순례지가 되어오고 있다. 이곳에는 통일회관건물, 통일교가정교회, 범냇골기념관 등과 함께 문선명이 그 당시 살면서 활동했던 장소들을 성역화해 놓았다. 예를 들면, “눈물의 바위”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문선명이 피난지 부산을 내려다보며 눈물로 기도했다는 장소를 기념하여 조성되었다. 범냇골 산 정상에는 태극기와 통일교 깃발이 함께 휘날리고 있고, 세계 각지의 통일교신도들이 성지순례를 위해 이곳 본성지를 찾아오고 있다.
2-3. 부산, 2세대 이단들의 발흥지
현재 한국교회가 씨름하는 많은 2세대 이단운동들이 이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대표적으로는 안식교 계열의 이단운동으로 최근 급성장하며 주목받고 있는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세칭 안상홍증인회)가 있다. 이 단체의 설립자이며 선지자, 재림예수, 하나님으로 여겨지는 안상홍은 1964년 부산 해운대에서 포교를 시작하였다.
하나님의교회는 우리 교회의 주기도문과 비슷한 하나님의 교회 기도문을 가지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안상홍님, 아버지께서 강림하실 날은 임박하였사오나 우리들은 아무 준비도 없사오니 아버지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아버지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아버지 강림하실 날에 부족함이 없이 영접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안상홍님의 이름으로 간구하옵나이다.” 우리의 실소를 자아내는 이러한 종교생활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대단한 교세를 자랑하고 있고, 한국사회는 안상홍증인회의 존재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의 활발한 사회봉사활동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오히려 중앙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과 국무총리표장 등을 받아오고 있다.
불교인구가 반을 넘는 부산지역에서 정통과 이단의 구분은 무의미해 보인다. 비기독교인들에게 정통과 이단의 구분은 개신교내의 세력다툼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 이를 알고 있는 이단들은 더 이상 교회의 교리적 인정을 받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의 공신력을 얻고 교세를 확장시켜 나아가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교회 신학원 교과과정에는 이단관련 과목이 있는데, 총 이수해야할 학점이 40학점이며, 그 중 20학점이 개신교에 관한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개신교가 이단인 것이다. 또한 안상홍증인회는 부설 샛별선교원을 운영하면 아이들에게 교리교육을 시키고 있는데, 그들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찬송에서는 “우리교회보다 더 좋은 교회 있으면 나와보세요... 십자가 세우지 마세요 일요일도 거짓말예요 우리는 이세상 교회 없는 어머니도 있죠 우리의 구원자 안상홍님도 계시답니다. 안!상!홍!님! 믿어야 하늘나라 가죠.”라는 믿기 어려운 안상홍에 대한 신격화의 내용들이 담겨있다. 주5일제 근무를 목전에 둔 지금 교회교육 차원에서의 대안 마련이 시급한 형편이다. 더 많은 경제력과 조직력을 가진 이단사이비 단체들에게 우리의 자녀들이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2-4. 기타
이 밖에도 1954년 계정열이 산성기도원을 시작한 곳도 부산시 동래구 온천동이었으며, 1958년 여호와새일교단의 이유성이 신비체험을 통해 포교를 시작한 곳도 부산 영도였다. 1970년 한국예수교전도관부흥협회(세칭 전도관, 현 천부교)의 박태선이 그 세력을 새롭게 재정비한 곳도 부산(경남 양산군 기장면 죽성리)이었으며, 최근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류광수의 다락방운동도 부산 영도가 출발지였다. 게다가 일본계 신흥종교인 천리교의 본부도 부산 영도에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부산의 초기 선교사들의 거점도 부산 영도의 하디선교사의 거처였다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부산경남지역선교의 거점과 이단의 발흥지가 동일한 장소였던 것이다.
3. 부산, 한국이단운동 발흥의 옥토(沃土)
왜 이처럼 부산은 한국이단운동이 발흥하는 옥토가 되었을까? 그 원인에 대한 구체적인 선행연구가 진행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발흥의 원인이 부산지역의 다양한 사회문화적배경과 관련이 되어있다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주변연구들을 통해 그 원인을 분석해볼 수 있다. 과연 한국의 부산이 한국이단운동의 발흥에 있어서 비옥한 땅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3-1. 부산, 불교의 땅
부산지역이 대대로 불교가 강성한 ‘불교의 땅’이었다는 점이 그 한 원인으로 고려될 수 있다. 즉 유럽의 다양한 인종과 문화에 기초한 교파주의가 미국에 정착한 후, 그 어떤 교파나 종파도 상대적우월성을 갖기 어려웠던 개척시기가 다양한 기독교계 신흥종교운동들의 발흥에 있어서 옥토가 되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불교가 강성한 ‘불교의 땅’이었던 부산에서 한국전쟁으로 인해 부산을 찾아온 다양한 기독교 교파들은 발흥하는 기독교이단운동들에 대해 교리적인 정통성을 주장하거나 그들의 활동을 이단으로 규정하여 제한할만한 영향력이나 공신력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대구경북지역을 유교의 땅이라고 한다면 부산경남지역은 불교의 땅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불국사, 해인사, 통도사, 범어사 등의 크고 작은 불교사찰들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고, 1999년 현재 통계청자료에 따르면 부산의 불교인구는 41.9%(전국 26.3%, 2005년 22.8%)로 개신교의 12.1%(전국18.6%, 2005년 18.3%)와 천주교 4.5%(전국7.0%, 2005년 10.9%)에 비해 교세에 있어서 압도적인 상대적 우위를 보여주고 있다.지금도 곳곳에 스며들어있는 불교문화, 승복을 입고 거리를 오가는 승려와 독실한 불교신자들, 그리고 사찰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사회복지단체들의 활발한 활동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곳이 이곳부산경남지역이다.
반면 부산경남지역의 기독교 교세는 다른 지역에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열악한 편이다. 부산지역 2000년 현재 총인구수가 3,655,437명이 점을 가만할 때, 기독교인의 수는 약 225,994명으로 부산 전체 인구의 약 6%를 차지하고 있으며, 경남지역 2000년 총인구수가 2,970,929명인 점을 가만할 때는, 기독교인의 수가 약 136,259명으로 경남 전체 인구의 약 5%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995년 현재 전체 인구 44,553,710명 중에서 기독교인의 비율이 약 19.6%인 것을 감안하면, 부산경남지역의 기독교인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것을 알 수 있다.
불교의 압도적인 강세를 보여주는 부산경남지역에서 교회와 이단은 모두 소수자들일 뿐이다. 기독교의 영향력 강한 지역에서는 기독교계의 새로운 종교운동들이 발흥하기 어려운 점이 있지만, 이곳 ‘불교의 땅’에서는 교회이든 이단이든 소수의 새로운 종교운동들뿐인 것이다. 나아가 ‘불교의 땅’에서 교회성장과 교파주의에 주된 관심을 갖고 있는 기독교의 교리적인 정통성은 이해받기 어려운 반면에, 기독교이단들은 ‘불교의 땅’에서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위한 사회봉사활동을 통해 그들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아갈 수 있었다. 최근 이단단체들의 특징이 사회봉사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불교의 땅’에서는 정통과 이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더 ‘불교의 땅’에서 사회적인 순기능을 하느냐가 관심이기 때문이다.
3-2. 부산, 교류의 땅
다음으로 부산지역이 오래전부터 외국과의 교류가 활발한 ‘교류의 땅’이었다는 사실이 고려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자발적인 무역과 문화교류가 추진되기도 하였지만, 때로는 외세의 침략을 통한 강제적인 교류가 이루어졌던 지역이었다. 이로 인해 새로운 문물과 사상이 자의반타의반으로 활발히 교류되던 지역이었고, 지역민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에 대한 망설임이나 거부감이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종교에 대한 선택이 보다 수월했다는 것이 이 지역을 이단 발흥의 옥토로 만들게 되었다.
부산은 오래전부터 외국 특히 일본과의 자발적이거나 강제적인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졌던 지역이었다. 지리적으로 일본에 근접해 있었기 때문에 고려 말부터 부산에는 왜구들이 노략질을 일삼았다. 국력이 강화되었던 조선시대에는 왜구들이 더 이상의 노략질이 어렵게 되자, 평화적인 무역을 요구해왔고 조선정부도 이를 받아들여 1407년에 부산포를 개항하기도 하였다. 이후 한때 중단되기도 하였으나 1425년 세종 5년에 다시 부산포를 열어 무역을 허가하였다. 이로 인해 중종 때에는 거주하는 일본인의 수가 300여 명에 이르러 조선관원들과 잦은 마찰을 받기도 하였다. 이는 연산군 시기에 더욱 심해졌으며 1506년 중종이 즉위한 후 이들을 엄격히 통제하자 충돌은 더욱 잦아지게 되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일인들이 1510년 4월 대마도에서 온 일인 4,000명과 합세하여 난을 일으켜 부산 첨사를 살해하고 동래성을 포위 공격하여 민가들을 약탈한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다시 교류가 단절되었으나 중종 7년 1512년 8월에 임신약조를 체결하여 다시 교류를 재개하게 되었다. 중종 36년 1541년에 왜관이 부산포에 설치되었으며 이후로 부산포는 일본과의 외교와 교역의 중심이 되게 되었다.무엇보다도 1592년 4월 13일 발발한 임진왜란으로 인해 부산은 일본의 조선침략의 교두보가 되었고 7년 동안의 일본군의 주둔으로 인해 많은 피해와 영향을 받게 된다.
조선시대에 지방에서 활동하는 상인들 중에서 개성상인(송상), 의주상인(만상), 그리고 부산의 동래상인(내상)이 으뜸이었으며, 특히 동래상인은 국내무역과 함께 왜관(倭館)을 거점으로 활발한 대일무역을 펼치며 상권을 장악했다. 또한 임진왜란 후에는 왕실에서 사용하는 활을 만드는 재료인 무소뿔이 동래상인들에 의해 동남아시아로부터 일본을 거쳐 수입되기도 하였다.그리고 부산은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중계무역지의 역할도 수행한 곳이었다. 오늘날도 이러한 역할에는 변함이 없다.
1876년 개항을 통해 본격적인 교류가 시작되었으며, 부산은 일본의 나가사키를 거쳐 들어오는 외국인들과의 활발한 교류의 땅이 되었다. 부산의 초량왜관은 일본인들의 거류지가 되었고, 곧 이 지역 정치, 경제, 교통,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된다. 이곳은 새로운 문화문물이 첫 발을 들여놓는 곳이었으며, 한국 근대화의 시발점이었다.
이처럼 부산은 역사적으로 새로운 문물과 사상이 활발히 교류되던 지역이었다. 이러한 역사의 영향으로 지역민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 따라서 새로운 종교운동에 대한 선택이나 수용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월했으며, 이러한 조건이 이 지역을 이단 발흥의 옥토로 만들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3-3. 부산, 피난의 땅
부산지역은 한국전쟁의 유일하고 절박한 피난처였다는 이유가 고려될 수 있다. 한국전쟁 당시 삶의 절박함, 가치관의 혼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실존적인 불안감이 이 지역 기독교의 뿌리를 내리게 한 중요한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복적인 기독교이단 발흥의 중요한 밑거름이 된 것을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선교초기로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 한국기독교의 중심은 평양을 중심으로 한 서북지역이었으며,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리었다. 그렇기에 대부흥운동 백주년을 기념하는 우리들이 돌아갈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저곳 북녘하늘 아래에 있다. 1938년에는 한국교회 교인 50만 명중 35만 명이 장로교인이었고, 그 중의 5분의 4가 평양남도에 거주한 사실은, 평안북도와 황해도의 교인수를 참작한다면, 당시 한국기독교의 중심이 서북지역이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1948년 북한정권의 수립과 기독교에 대한 탄압으로 인해 서북지역 기독교가 삼팔선을 넘어 남하하게 됨으로써, 서북지역과 서울지역 교회는 공존을 모색하게 되었으며, 또한, 한국전쟁으로 인해, 기독교인들이 마지막 피난처였던 부산지역으로 모이게 됨으로써, 한국전쟁기간 동안 부산지역은 서북교회와 비서북교회의 공존이 시도되는 한 실험장이 되게 된다. 이로 인해 지금도 부산의 오래된 교회에는 어김없이 서북지역 출신자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지역적 차이도 한국전쟁이라는 전 민족적인 고난의 현장에서 그 차이점들을 일시적으로 상실하게 되고, 서로가 애통함 가운데 나라와 교회의 회복을 소망하는 하나의 신앙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의심할 여지없이, 한국전쟁은 부산지역교회사에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부산지역의 사회적배경은 기독교이단 발흥의 좋은 조건이 된 동시에 사회정치적 혼란기에 생성소멸을 반복해오는 기독교이단들의 정치적 성향에 깊은 영향을 주게 되었다.
첫째, 한국전쟁 시기의 절박한 피난처였던 부산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삶의 절박함, 가치관의 혼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실존적인 불안감이 팽배해있었다. 이곳의 피난민들은 기존의 질서를 뛰어넘는 새로운 질서를 소망했으며, 고통스러운 현재와는 다른 구체적인 세상을 소망하고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성서의 약속에 새로운 약속, 즉 한국에 메시아가 강림하고 영원한 지상천국이 건설된다는 약속이, 당시의 기독교이단운동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회적 혼란과 불안감이 기복적인 기독교이단 발흥의 중요한 밑거름이 된 것이다.
둘째, 한국전쟁으로 인해 한국포교를 시작한 몰몬교가 강한 반공사상을 견지해오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서북출신의 문선명이 세운 통일교의 경우에도 이러한 반공사상이 체계적으로 교리화 되어있다. 피난지에서의 반공산주의는 이단들의 운명적인 선택이었으며,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신념이 될 수 있었다.
부산에서 그 틀이 잡혀진 통일교의 경전 『원리강론』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동방의 나라는 바로 한국이며, 한국은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일선”인 동시에 “사탄이 가장 미워하는 일선”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한국전쟁은 국토분단에 기인한 단순한 동족상쟁이 아니라 “민주와 공산 두 세계 간의 대결”인 동시에 “하나님과 사탄과의 대결”이었고, 따라서 북한은 “가인의 후예”이며 “사탄의 세력”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교리에 근거한 통일교의 반공(反共)이론은 1960년대 베트남전쟁시기의 미국과 1970년대 군사정권하의 한국에서 효과적으로 이용된다. 통일교는 반전(反戰)운동의 중심이었던 미국 버클리대학교에서의 과감한 찬전(贊戰)운동을 통해 미국사회의 주목을 받으며 성장한 후, 이러한 경험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한다. 즉 반공을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이용하던 군사정권하에서 통일교는 반공을 넘어선 승공(勝共)운동을 전개하게 되고, 이에 대한 대가로 군사정권은 통일교의 경제적, 정치적 배려를 하게 되는데, 이 시기에 통일교는 군수산업 등의 참여를 통해 자신들의 경제적 토대를 마련한다.
하지만 통일교의 북한에 대한 적대적(敵對的) 입장은 1991년 문선명과 김일성의 만남을 계기로 급변하게 되고, 현재까지 통일교는 북한에 적극적인 진출을 해오고 있다. 문선명의 80세 생일에는 북한 김정일이 박보희를 통해 생일선물을 전달하는 등 미묘한 ‘적과의 동침’은 점점 깊어만 가고 있다. 현재의 남북경제협력 수준을 고려할 때, 이미 통일교는 북한에서 그 규모와 내용면에 있어서 남한의 그 어떤 단체들보다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평안남도 남포시에는 평화자동차총회사 종합공장이 세워져 이탈리아 피아트사 제품의 자동차들이 생산되고 있고, 문선명의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에는 정주평화공원이 세워져 전 세계 통일교도들의 성지순례가 이어지고 있으며, 평양에는 통일교의 평양가정교회가 세워져 있다. 통일교의 북한진출 현황과 비교해 볼 때, 한국교회의 북한선교 노력은 다소 ‘낭만적’이며 ‘고비용 저효율’ 단계에 머물러있으며, 향후 폭넓은 남북교류가 진행될수록 한국교회가 겪어야할 통일교관련 문제는 점점 복잡해질 전망이다.
이처럼 불교의 땅, 교류의 땅, 피난의 땅 부산은 기독교이단들이 쉽게 발흥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을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4. 부산, 새로운 소망의 성시(聖市)
“눈을 들어 하늘 보라”라는 찬송의 마지막은 “눈을 들어 하늘 보라 다시 사실 그리스도 만백성을 사랑하사 오래 참고 기다리셔 인애하신 우리 구주 의의 심판 하시는 날 곧 가까이 임하는데 믿는 자여 어이할고”라는 종말론적 소망을 노래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1952년 한국전쟁의 피난처 부산에서 울려 퍼졌던 이 애통의 찬송과 기도에 대해, 하나님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은혜의 씨앗을 뿌려 주셨다. 지금도 한없이 미약한 형편이나, 한국전쟁을 통해 부산경남지역교회가 성장할 수 있는 기초를 놓아주신 것이었다.
이 시기는 한국교회가 고신, 기장, 예장으로 나누어지는 아픔을 겪었고, 사회적으로는 전국적으로 가뭄과 홍수나 태풍이 만연하고 전염성 질병이 창궐하고 빈곤을 운명적으로 받아드릴 수밖에 없었던 시련의 시간이었지만, 한편 부산지역의 교회는 그 성장을 위한 영적 힘을 바로 이 비극적인 전쟁을 통해서 제공받게 된다. 이 시기에 많은 교회들이 부산지역에 세워지게 되면서 피난민들로 인한 교세의 양적 성장을 또한 이루게 된다. 따라서 한국전쟁 휴전의 희년은 부산지역 기독교의 희년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은혜의 땅 부산은 다양한 기독교이단들이 발흥한 영적전쟁터이기도 하다. 오랜 역사를 통해 그리고 1876년 개항 이후부터는 더욱 활발하게 일본과 서양의 교류가 이루어졌으며, 이로 인해 국외의 이단들이 처음으로 유입되어 포교되기 시작한 곳이 되었고, 한국전쟁 시기에는 통일교와 같은 한국의 대표적인 기독교이단들의 발흥지가 된 곳이기도 하다. 또한 현재 한국교회를 어지럽히는 많은 2세대 이단단체들 중 여럿이 부산에서 시작되었는데, 이러한 점에서 부산을 국내외 이단들의 요람이고 발흥지라고 불러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부산은 한국에 복음의 씨앗을 들고 온 초기선교사들이 첫 발을 내딛은 땅이고, 1907년 대부흥운동의 작은 불씨가 일어난 땅이다. 반면 부산은 한국에서 활동하는 국내외 이단운동의 요람이며 발흥지이기도 하다. 복음 선포가 처음 이루어진 이곳 부산으로부터 다시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 부산과 이 나라를 거룩하게 만들고, 그리고 이를 통해 교회안팎의 이단들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응답하는 새로운 소망이 부산에서 자라나야 한다.
解放の後、主要異端の発祥地, 釜山
タクジーイル(釜山長老会神学大学校)
1. 釜山, 韓国福音化と大復興運動の隠された聖地
釜山は韓国福音化と1907年の大復興運動の隠された聖地だ。その理由は第一に福音宣教のために韓国を尋ねて来た宣教師たちが一番、先にその第一歩を踏み出した地が釜山だからだ。アルレン, アンダーウッド、アペンゼラーを含んだ大部分の初期宣教師たちが最初に接した朝鮮の傘下がすぐ釜山だったし、だから韓国福音化のためのその最初の話が始まる所も釜山だ。しかし、ソウルの大切さが強調されて来た既存の韓国教会史で、釜山は済物浦とソウルの陰の下に隠された聖地になって来た。
二番目で釜山は1907年の平壌大復興運動の隠された聖地だ。その理由は、釜山で1907年平壌大復興運動の火種が初めて立ち上ったからだ。釜山地域へ来た家族が一番初めて居住した宣教師はカナダ出身のハーディ(Robert Hardie)だった。ハーディはtoronto大学校の学生たちの経済的な支援で韓国へ来たから、経済的に常に厳しい環境に置かれていた。釜山に定着するようになった理由も当時、釜山に設置されていた海関で働く外国人たちのための医者の身分で来るようになったのだった。ハーディにとって釜山は家長として、宣教師として挫折と苦難の地だった。全家族が釜山の影島のある小さなコレラ病院で居住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し、それさえもオーストラリアとアメリカから来た宣教師たちがかりにハーディの家に泊まったから、ハーディの家族皆には私生活が全然保障されない難しい日々だった。それに医者の身分で韓国福音化の夢を持って来たハーディには、経済的なことを満たすために、世俗的な医療活動に集中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挫折の地だった。
彼は結局釜山を離れて、江原道で福音宣教師の新しい人生を始めることになる。しかし、その所での宣教の働きもやっぱり彼の期待とは違い易しくはなかった。このようなところで、ハーディは原産のある聖書勉強を導くようになる。こちらでハーディは釜山と江原道での宣教使役の失敗の窮極的な理由が他人ではなく、自分自信にあることを見つけた後、仲間宣教師たちと韓国クリスチャンたちの前で痛烈な悔い改めをするようになる。この 悔い改めは彼自身の韓国で経験した個人的な挫折と苦難に対する治癒の経験だったし、福音宣教師としての重要なターニングポイントになる。このようなハーディの悔い改めに触発された大復興運動は神様が彼に災の代わりに与えてくださった花冠だった。釜山でのハーディの経験は1907年平壌大復興運動の小さな火種だった。このような点で釜山は韓国福音化と大復興運動の隠された聖地と言える。
2.釜山, 韓国異端運動の発祥地
しかし、釜山はこのように隠された聖地としての自負心とともに韓国教会が現在取り組んでいる代表的な異端運動が勃興した所という痛みも同時に持っている。下の例のように解放の後、朝鮮戦争を前後にして釜山は韓国教会異端運動の発祥地になって来ている。
2-1. 釜山, 外国係異端たちの伝来地
先に、釜山は外国係異端たちの主な伝来地だ。例えば一番代表的なアメリカ係異端であるジーザスクライスト後期聖徒教会(いわゆるモルモンギョ)が初めて布教され始めた所も釜山だった。 朝鮮戦争によって韓国を尋ねて来たアメリカ軍たちの中に、モルモン教徒もいたし、これらの布教によって釜山でモルモン教徒の初の集まりが始まるようになった。2005年にはこれを記念するためにモルモン教の最高リーダーたちが参加した中に、モルモン教の韓国伝来50周年行事が盛大に開かれた。
朝鮮戦争時期に布教を始めてその教勢が持続的に成長して来ているモルモン教は一番アメリカ的なである宗教に認識されている。その理由かは分からなくても、モルモン教はアメリカの保守的な地域を中心に、去る200余の間に徐々に成長して来たし, またアメリカの政治文化的影響を受ける国々(ドイツ, 日本, フィリピン, 韓国など)と白人優越主義の傾向がある国々(オーストラリア, ニュージーランド, 南アフリカ共和国)で成功的に布教になっている。私たちの周辺で上手な韓国語とともに黒い色名札をつけて、二人がペアーになって英語勉強を通じて若者達に近付いているモルモン教の若い宣教師たちの姿をよく見られる。
2-2. 釜山, 国産異端たちの搖籃
釜山は多くの国内産異端たちの搖りかごだ。一番代表的な韓国産の異端運動である世界平和統一家庭連合(いわゆる統一校)が始まった所も釜山だ。西北地域から避難して来た文鮮明が統一教の経典である 『原理講論』の枠を取った所も、そして統一教会(当時世界キリスト統一信霊協会) 設立を準備した所がすぐ釜山だった。そうだから全世界的に多くの不動産(聖地)を所有している統一教は釜山ボムネ洞の統一教拠点を “本聖地”と呼んで聖域化したし、文鮮明が朝鮮戦争期間中、留まった釜山のボムネッゴ−ルはすべての統一教の人たちに有名な巡礼地になって来ている。こちらには統一会館建物、統一教家庭教会、ボムネッゴ−ル記念館などとともに文鮮明がその頃暮しながら活動した場所たちを聖域化しておいた。例えば、“涙の岩”という所があるのに、こちらは文鮮明が避難地である釜山を見下ろして涙で祈ったという場所を記念して造成された。ボムネッゴ−ルの山頂には国旗と統一校の旗が一緒に飜っているし、世界各地の統一教信徒たちが聖地巡礼のために、こちらの本聖地を尋ねて来ている。
2-3. 釜山, 2世代異端たちの勃興地
現在、韓国教会がシルム(相撲)する多くの 2世代異端運動たちがこの地域で始まった。代表的には安息教系列の異端運動に最近急成長しながら注目されている神様の教会世界福音宣教協会(いわゆるアンサンホン証人会)が行っている。この団体の設立者であり予言者、再臨キリスト、神様で思われるアンサンホンは1964年釜山海雲台で布教を始めた。
神様の教会は私たちの教会の主の祈りと似ている神様の教会の祈祷文を持っている。その内容は次のようだ。“天におられるお父さんアンサンホン様、お父さんが天から降る日は近づいてきましたが、私たちはどんな準備もないです。お父さん! 私たちを憐れんでくださりお父さんの聖霊によって、私たちを生まれかわるようにお父さん天から降る日に不足なしにお迎えできるようにしてください。お父さん、アンサングホング様の名前で切にお祈りします” 私たちの失笑を催すこのような宗教生活にもかかわらず、これらはすごい教勢を誇っているし、韓国社会はアンサングホング証人会の存在に対する問題の申し立てをしない。それは彼らの活発な社会奉仕活動があるからだ。これらはむしろ中央政府から大統領表彰と国務総理表装などを受けて来ている。
仏教人口が半分を超える釜山地域で正統と異端の見分けは無意味に見える。非キリスト人たちに正統と異端の見分けはプロテスタン内の勢力争いで照らされることができる。これを分かっている異端たちはこれ以上教会の教理的認定を受けようと労力しない。むしろ社会の公信力を得て教勢を拡張させて進むのがずっと效率的というのをよく分かっているからだ。
神様の教会の神学院教科課程には異端関連科目があるのに、総履修しなければならない単位が40単位であり、そのうち20単位が改新教に関するのだ。彼らの目には改新教が異端であることだ。また、アンサングホング証人会は付属新星宣教院を運営すれば、子供達に教理教育をさせているのに、彼らが教える“神様の恩恵”という賛美では“私たち教会よりもっと良い教会あれば出て見てください...十字架を立てないでください、日曜日もうそですね、私たちはこの世の中、教会ないお母さんもいます。私たちの救援者アンサングホング様もいらっしゃいます。アンサングホング様、信じると天国に行きます”という信じがたいアンサングホングに対する神格化の内容が盛られている. 主5日制の勤務を目前に残した今、教会教育の次元での代案用意が至急な都合だ。もっと多い経済力と組織力を持った異端サイビ団体たちに私たちのお子さんたちが無防備で露出しているからだ。
2-4. その他
この以外にも、1954年にギェジョンヨルが山城祈祷院を始めた所も釜山市東莱区温泉洞だったし、1958年エホバセイル教団のイユソンが神秘体験を通じて、布教を始めた所も釜山影島だった。1970年韓国イエス伝道館の復興協会(いわゆる伝道館、現在、天夫教)の朴太線がその勢力を新しく整備した所も釜山(慶南梁山郡記章面竹性理)であって、最近論乱の対象になっているリュグァンスのタラッパン(屋根裏部屋運動)も釜山の影島が出発地だった。それに日系新興宗教である千理教の本部も釜山影島にあった。このような点で釜山の初期宣教師たちの拠点も釜山影島のハーディ宣教師の居所だったという点は歴史のアイロニーと言える。代表的な釜山慶南地域宣教の拠点と異端の勃興地が同じ場所だったことだ。
3. 釜山, 韓国異端運動勃興の肥えた土壌
どうしてこのように釜山は韓国異端運動が勃興する沃土になっただろうか。その原因に対する具体的な先行研究が進行されなかった。しかし、このような勃興の原因が釜山地域の多様な社会文化的背景と関連になっているという可能性をうかがうことができる周辺研究などを通じて、その原因を分析して見ることができる。果して韓国の釜山が韓国異端運動の勃興において肥えた地になることができた理由は何だろう。
3-1. 釜山, 仏教の地
釜山地域が代々仏教が強かった‘仏教の地’だったという点がそのひとつの原因であると考慮することができる。すなわち、ヨーロッパの多様な人種と文化に基礎した教派注意がアメリカに定着した後、どんな教派や宗派も相対的な優越性を持ちにくかった開拓時期が多様なキリスト系の新興宗教運動たちの勃興において沃土になった。このように歴史的に仏教が強かった‘仏教の地’だった釜山で朝鮮戦争によって釜山を尋ねて来た多様なキリスト教の教派たちは勃興するキリスト教の異端運動などに対して教理的な伝統性を主張するとか彼らの活動を異端で規定して制限するに値する影響力や公信力を持つことができなかったのだ。
大邱慶北地域を儒教の地だと言ったら、釜山慶南地域は仏教の地だと言っても過言ではない。 仏国寺、海印寺、通度寺、梵魚寺などの多様な仏教寺院などが密集されている地域で、1999年の現在、統計庁資料によると釜山の仏教人口は 41.9%(全国 26.3%, 2005年 22.8%)で改新教の12.1%(全国18.6%, 2005年 18.3%)とカトリック 4.5%(全国7.0%, 2005年 10.9%)に比べて教勢において圧倒的な相対的優位を見せてくれている。今もあちこちに染みこんでいる仏教文化、僧服を着て距離(通り)を行き交う僧侶と熱心な仏教信者、そしてお寺で運営する多様な社会福祉団体たちの活発な活動を簡単に捜してみることができる所がこちら釜山慶南地域だ。
一方、釜山慶南地域のキリスト教の教勢は他の地域に比べて相対的に劣悪な方だ。釜山地域 2000年現在、総人口が3,655,437人である点を考慮する時、キリスチャンの数は約 225,994人で釜山全体人口の約 6%を占めているし、慶南地域 2000年、総人口が2,970,929名であることを考慮する時、クリスチャンの数が約136,259人で、慶南全体人口の約 5%を占めていることを見られる。1995年現在、全体人口の44,553,710人の中でキリスチャンの割合が約19.6%であるのを勘案すれば, 釜山慶南地域のキリスチャンの割合が相対的に非常に低いことが分かる。
仏教の圧倒的な強さを見せてくれる釜山慶南地域で教会と異端は皆少数者たちであるだけだ。 キリスト教の影響力強い地域ではキリスト界の新しい宗教運動などが勃興しにくい点があるが、こちら ‘仏教の地’では教会でも異端でも少数の新しい宗教運動などだけであることだ。その上、‘仏教の地’で教会成長と教派注意に主な関心を持っているキリスト教の教理的な伝統性は理解されにくい一方で、キリスト教の異端たちは ‘仏教の地’での自由な宗教活動のための社会奉仕活動を通じて、彼らの影響力を拡大して進むことができた。最近、異端団体たちの特徴が社会奉仕である理由がそれであるのだ。‘仏教の地’では正統と異端が重要ではなく、誰がもっと‘仏教の地’で社会的な順機能をするのかが関心事だからだ。
3-2. 釜山, 交流の地
次に、釜山地域がずいぶん前から外国との交流が活発な‘交流の地’だったという事実が考慮される。歴史的に自発的な貿易と文化交流が推進されたが、時には外勢の侵略による強制的な交流が成り立った地域だ。このために新しい文物と思想が互いに活発に交流された地域だったし、地域民は新しい試みに対する迷いや拒否感が他の地域に比べて相対的に少なかったと見られる。これと同じく、新しい宗教に対する選択がより容易だったということがこの地域を異端勃興の肥えた土壌にした。
釜山はずいぶん前から外国、特に日本との自発的、強制的な交流が活発に成り立った地域だ。地理的に日本に近接していたから、高麗の末から釜山には倭寇の略奪が頻繁だった。国力が強化された朝鮮時代に倭寇たちはこれ以上の盗みが難しくなると、平和的な貿易を要求して来たし、朝鮮政府もこれを受け入れて1407年に釜山浦を開港もした。以後、ひととき中断されたりしたが、1425年世宗5年にまた釜山浦を開いて貿易を許可した。このために、中宗の時には居住する日本人の数が300余人に至って、朝鮮官員たちとひんぱんな摩擦を起こしたりした。これは燕山君の時にもっとひどくなり1506年中宗が即位した後、これらを厳格に統制すると衝突はもっとだんだん多くなった。ここに不満を抱く日本人たちが1510年の4月対馬島から来た日本人4,000人と力を合わせて乱を起こして、釜山の将軍を殺害して東莱性を包囲攻撃して、民家などを掠奪した事件が起こった。この故にまた交流が断絶されたが、中宗 7年 1512年 8月に姙娠約條を締結してまた交流を再開するようになった。中宗 36年 1541年に倭館が釜山浦に設置されたし、以後、釜山浦は日本との外交と交易の中心になった。なによりも 1592年 4月 13日勃発した壬辰の乱によって釜山は日本の朝鮮侵略の足場になったし、7年間の日本軍の駐屯によって多くの被害と影響を受けることになる。
朝鮮時代に地方で活動する商人たちの中で開城商人(宋商)、義州商人(万商)、そして釜山の東莱商人(内商)が最高であり、特に東莱商人は国内貿易とともに倭館を拠点として活発な対日貿易を広げて商圏を掌握した。また、壬辰の乱の後には王室で使う弓を作る材料であるサイの角が東莱商人たちによって東南アジアから日本を通して輸入されたりした。そして、釜山は中国と日本を連結する中継貿易地の役目も遂行した所だった。今日もこのような役目には変わりがない。
1876年開港を通じて本格的な交流が始まり、釜山は日本の長崎を経って入って来る外国人たちとの活発な交流の地になった。釜山の初凉倭館は日本人たちの居留地になって、すぐこの地域の政治, 経済, 交通, 文化の中心地になる。こちらは新しい文化文物が最初に入ってくる所だったし、韓国近代化の始発点だった。
このように釜山は歴史的に新しい文物と思想が活発に交流された地域だった。このような歴史の影響で地域民たちは新しいことに対する拒否感が他の地域に比べて相対的に少なかった。したがって、新しい宗教運動に対する選択や受容が他の地域に比べて相対的に容易だったし、このような条件がこの地域を異端勃興の肥えた土壌にしたと見られる。
3-3. 釜山, 避難の地
釜山地域は朝鮮戦争の唯一で切迫した避難所だという理由が考慮される。朝鮮戦争の当時、生活のひっ迫、価値観の混乱、現在と未来に対する実存的な不安感がこの地域にキリスト教が根付く重要な原因になったが、その一方ではご利益宗教的なキリスト教の異端勃興の重要な要因になったことをまた否認することができない。
宣教初期から解放に至るまで韓国キリスト教の中心は平壌を中心にした西北地域だったし、平壌は “東方のエルサレム”と呼ばれた。だから大復興運動の100周年を記念する私たちの帰るべきエルサレムはパレスチナではなく、あの北の空の下にある。1938年には韓国教会信者の50万名の中で、35万人が長老教人だったし、その中の5分の4が平壌南道に居住した事実は, 平安北道と黄海道の信者を考えれば、当時韓国キリスト教の中心が西北地域だったことを疑う余地がない。
しかし、1948年北朝鮮政権の樹立とキリスト教に対する弾圧によって西北地域キリスト教が三八線を越して南下するようになることで、西北地域とソウル地域教会は共存を模索するようになり、また朝鮮戦争によってクリスチャンたちが最後の避難所だった釜山の地域に集まるようになることで、韓国戦争期間の間、釜山の地域は西北教会と非西北教会の共存が試みられるある実験場になる。これによって、今も釜山の古い教会には間違いなく西北地域の出身者たちが信仰生活をしていると思われる。しかし、このような地域的な差も朝鮮戦争という全民族的な苦難の現場で、その差を一時的に喪失し、お互いに悲しみと痛みの中、国と教会の回復を願う一つの信仰共同体を成すようになる。疑う余地がなく朝鮮戦争は釜山地域教会史において一つの重要なターニングポイントだった。
しかし、その一方ではこのような釜山地域の社会的背景はキリスト教の異端勃興の良い条件になった同時に、社会政治的な混乱期に生成消滅を繰り返して来るキリスト教異端たちの政治的な性向に深い影響を与えるようになった。
第一, 朝鮮戦争のとき、切迫した避難所だった釜山は, この上で言及したように, 生活のひっ迫, 価値観の混乱, 現在と未来に対する実存的な不安感が広まっていた。こちらの避難民たちは既存の秩序を飛び越える新しい秩序を願ったし、苦しい現在とは違う具体的な世の中を願っていた。 このような点で聖書の約束に新しい約束, すなわち韓国にメシアが天から降って永遠の地上天国が建設されるという約束が, 当時のキリスト教の異端運動などで共通的に現われているのを易しく理解することができる。社会的な混乱と不安感がご利益宗教的なキリスト教の異端勃興の重要な要因になったのだ。
第二, 朝鮮戦争によって韓国布教を始めたモルモン教が強い反共思想を堅持していることはもちろんで, 西北出身の文鮮明が立てた統一教の場合にもこのような反共思想が体系的に教理化されている。避難地での反共産主義は異端などの運命的な選択だったし、その誰も拒否することができない信念になった。
釜山でその枠が作られた統一教の経典 『原理講論』はイエスが再臨される東方の国はまさに韓国であり, 韓国は “神様が一番愛する最前線”と同時に “サタンが一番憎む最前線”と主張する。また、朝鮮戦争は国土分断に起因した単純な同族相争ではなく“民主と共産二つの世界の間の対決”と同時に “神様とサタンとの対決”だったし, したがって、北朝鮮は “カインの後裔”であり “サタンの勢力”と解釈している。
このような教理に根拠した統一教の反共理論は 1960年代ベトナム戦争時期のアメリカと 1970年代の軍事政権下の韓国で效果的に利用される。統一教は反戦運動の中心だったアメリカのバークリー大学での果敢な賛戦運動を通じてアメリカ社会の注目を引きながら成長した後、このような経験を韓国にそのまま適用する。すなわち反共を政権維持の手段として利用した軍事政権下で統一教は反共を越えた勝共運動を展開するようになって、これに対する対価として軍事政権は統一教に経済的, 政治的な配慮をするようになり、この時期に統一教も軍需産業への介入を通じて自分たちの経済的な土台を用意する。
しかし、統一教の北朝鮮に対する敵対的な立場は1991年文鮮明と金日成の出会いをきっかけに急変し、以後現在まで統一教は北朝鮮に積極的な進出をして来ている。文鮮明の 80歳の誕生日には北朝鮮の金正日がパクポヒを通じて誕生日のプレゼントを送るなど、微妙な‘敵との同衾’はますます深まって行っている。現在の南北経済協力の水準を考慮する時, いまや統一教は北朝鮮でその規模と内容面において韓国のどんな団体よりも有利な位置を占拠することが分かる。平安南道南浦市には平和自動車総会社の総合工場が建てられて、イタリアのフィアット社製品の自動車などが生産されているし, 文鮮明の故郷である平安北道の井州には井州平和公園が建てられて全世界統一教徒たちの聖地巡礼がつづいているし、平壌には統一教の平壌家庭教会が建てられている。統一教の北朝鮮進出の現況と比べて見る時、韓国教会の北朝鮮宣教の努力は多少 ‘ロマンチック’であり ‘高費用低效率’ 段階にとどまっているし、今後の幅広い南北交流が進行されるほど韓国教会が経験しなければならない統一教関連問題はますます複雑になる見込みだ。
このように仏教の地, 交流の地, 避難の地である釜山はキリスト教異端が勃興しやすい肥えた土壌を提供することができたのだ。
4. 釜山, 新しい所望の聖市
“目をあげて空を見なさい”という賛美の終わりは “目をあげて空を見なさい、復活されるキリスト、万民を愛して長く耐えて待ち、仁愛なる私たちの求い主、義の審判がなされ、もうすぐ臨むのに信じる者よ、どうするか”という終末論的な望みを歌うことで終わっている。1952年朝鮮戦争の避難所である釜山に響いたこの哀痛の賛美と祈りに対して, 神様はその誰も予想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恵みの種を蒔いてくださった。今も限りなく小さい状況だが、朝鮮戦争を通じて釜山慶南地域教会が成長することができる基礎を整えてくださった。
この時期は韓国教会が高神(大韓イエス教長老会高神総会), キ長(大韓キリスト教長老会), エ長(大韓イエス教長老会)で分けられる痛みを経験したし, 社会的には全国的に干ばつと洪水や台風、伝染性の疾病が蔓延して貧困を運命的に受け入れるしかなかった試練の時間だったが, 一方、釜山地域の教会はその成長のための霊的な力をまさにこの悲劇的な戦争を通じて提供されることになる。この時期に多くの教会が釜山地域に建てられ、避難民たちによって教勢も量的に成長した。したがって、朝鮮戦争休戦の喜びは釜山地域キリスト教の喜びでもあったのだ。
しかし、このような恵みの地である釜山は多様なキリスト教異端などが勃興した霊的な戦争の場でもある。長年の歴史を通じて、そして1876年の開港以後はさらに活発に日本と西洋の交流が成り立ち, これによって国外の異端などが初めて流入し布教され始めた所になったし, 朝鮮戦争の時期には統一教のような韓国の代表的なキリスト教異端などの勃興地になった所でもある。また、現在韓国教会を混乱させている多くの2世代異端団体の中で、いくつかは釜山で始まったが, このような点で釜山を国内外の異端の発祥地で勃興地と呼んでも過言ではないだろう。
釜山は韓国に福音の種を持って来た初期宣教師たちが最初の一歩を踏み出した地で, 1907年大復興運動の小さな火種が起きた地だ。一方、釜山は韓国で活動する国内外の異端運動の発祥地で勃興地でもある。福音宣布が初めて成り立ったここ釜山からまた復興の炎が起きて, 釜山とこの国がきよめられ、そしてこれを通じて教会内外の異端たちの挑戦に效果的に回答する新しい望みが釜山で育たなければならない。
この文は韓国教会史学研究員(2007.2.8)で “釜山慶南地域基督教界の新興宗教運動の勃興と原因"という題目に発表されて, 「釜山長身論叢」 第7集(2007)に載せられた論文を要約整理したのだ。
♧ 제2강의 ♧
한국으로 간 어떤 신자의 실상
통일교신자 피해자 가족
(경과)
X년 1월: 수련회, 각종 물품 구입, 헌금, 보석전, 방문판매 등의 활동
X+1년2월: 행방불명①
한국으로: 합동결혼식(X년+10.3 판명)
X+4년 2월: 일시 귀가 후 실종, 행방불명②
4월: 한국으로, 결혼식과 입적
X+5년: 호적상의 주거(발견되지 않기 위한 가짜 주거지: 일본에서의 주거와 같은 방법)에 방문, 이사한 곳에서 UC감시아래, 본인에게 면회.
(장녀 탄생)
한국 시집의 가장으로부터, 「왜, 결혼식에 오지 않았나?」라는 질문을 받음.
대답: 통지 없음. 4년 반, 행방불명.
통일교의 지부장으로부터, 생활 원조의 요청이 옴. 귀향의 허가 없음.
일 년에 1-2회 거주지를 방문.
조부의 장례식에도 귀국하지 않음.
3명의 아이: 생활이 궁핍한 것 같고 아이 1명밖에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는다.
(교육시키지 않음)
(상세)
그것은 X년+1년 2월 11일, 연휴의 첫날의 딸로부터의 전화가 와서 시작되었다. 「회사에서 휴대 전화를 잃어 버렸기 때문에 전화를 걸어도 통화할 수 없어요.」3시간 정도면, 집으로 올 수 있는 곳에서 하숙하고 있었으므로, 연휴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상한 전화다. 무엇인가 이상하다. 이러한 전화는 한 번도 없었다. 놀랍고 어이없어서 「어떻게 하면 연락할 수 있을까」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딸이 행방불명이 되어, 「생이별과 지옥의 괴로움」이 시작되었다. ( 1년 전부터 이미 딸에게의 공격은 시작되어 있던 것 같다. 조금 이상하다고 느끼고는 있었지만, 이러한 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조금도 눈치 채지 못했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고, 딸의 하숙집으로 아내가 향했다. 하숙집에는 아무도 없다. 예쁘게 정리된 방, 누군가가 생활하고 있다고 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쓰레기통에 1개의 수첩이 버려져 있었다. 수첩에는 통일교의 신자가 되는 연수회의 일정이나 「물건팔기」의 체험 상황 등 단편적인 것이 기록되어 있었다.
부족한 지식이나 이러한 상황으로 「딸과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라는 불안함이 엄습했다. 즉시, 나도 하숙집으로 향했다. 상황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어디에 상담하면 좋은가. 누구에게 상담하면 좋은가. 서점에 가서 조사했지만 참고가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터넷을 조사하는 것까지는 생각도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통일교가 딸을 하숙집으로 보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무지한 우리들은 「딸이 하숙집으로 되돌아올지도 모른다고 하는 희망을 갖고, 난방도 안 되는 하숙집에서 추위에 떨며 하룻밤을 지새웠다.」 「딸은 이쪽의 행동에는 눈치 채지 못할 것이다. 연휴가 끝나고 회사에 출근할지도 모른다.」아내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회사에 들렸다. 피로에 지친 아내는 딸을 찾아내어 곧바로 택시에 태워 집으로 데리고 왔다. 아내는 딸의 곁에서 전화했기 때문에, 상황은 이야기하지 못하고 「집에 도착한 것, 택시 요금이 없는 것」만 나에게 말하였다. 나도 집으로 향했다. 우선 딸은 자택에 들어가는 것을 거절하고 도망치려고 했다. 무엇이 일어났는지에 물어도 거의 대답하지 않는다. 「자신은 초보자이기 때문에 잘 모른다.」라는 것만 대답한다. 모두가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일뿐이었다. 한겨울의 추운 그날 밤, 그저 30초간 정도 딸이 혼자가 되었을 때 얇은 옷 한 벌만 걸치고 사라졌다. 불러도 보고, 외쳐도 보고, 찾아다녔으나 어둠속에서 행방불명이 되어 버렸다. 남겨진 휴대 전화에서 아벨의 것처럼 보이는 번호를 찾아냈다. 부모의 슬픔과 괴로움도 모르고 딸을 위해 여러 가지 해 주었다는 뻔뻔한 아벨의 소리만이 남았다. 어쨌든 나 자신의 힘으로는 행방불명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고 생각된다. 경찰에게 상담해도 어떤 대응도 해 주지 않는다. 단지 행방불명자의 명부에 적을 뿐이었다. 시청도 소장 업무가 아니라고 하며 대응하지 않았다. 2번째의 행방불명 시에는 외무성에 상담했지만, 본인의 승낙 없이는 대응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었다. (딸의 행동 등을 결정하고 있는 아벨이 말하는 것은 절대적이므로, 승낙을 얻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하숙집에는 짐이 남아 있었으므로 딸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희미한 소망을 가지고 방문했지만, 이미 사라지고 장롱 안에 1장의 메모뿐이었다. 메모에는 대리인에게 옮겨달라는 물품의 리스트가 쓰여 있다. 대리인은 본인이 오면 부모님을 만날 가능성이 있으므로, 대면시키지 않기 위한 통일교의 상투수단 같았다. 거짓 주소를 시청에 신고할 때에도 대리인에게 부탁한다. 사정을 이야기해, 그러한 경우 알려 주도록 시청에 부탁하지만, 업무가 아니라고 하여 거절당했다.
X+3년 후반 무렵, 통일교주최의 성지 여행을 요구받아 딸을 만날 수 있는 것을 전제로 참가. 24시간 감시가 따라다님. 굉장히 마른 딸과 감시인은 3인분 정도 먹고 있었다. 책임자의 강연으로는, A씨 사건에 언급해 「자신이 있으면 어떤 수단을 써도 일본에 돌려주지 않았다」라고하며 나를 노려보면서 역설했다. 감시인은, 「지령이 있으면 어떤 일이라도 한다.」며 노골적으로 협박을 하며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 후 여러 가지의 관문이 있어, 3년 후에 만날 수 있었다. 그 때 알게된 것은 「X+1년 1월 무렵 아벨(절대적 상사)로부터 「출가가 발각된 후 사탄이 부모님을 속여, 무서운 일이 차례차례로 일어난다.」라고 반복하여 듣고 그것으로부터 피하는 방법의 특별훈련을 받았다.」라는 것이었다. 통일교대책에 관 한 책을 보낸 것은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딸을 다시 만났을 때 딸이 이야기하였다.
통일교는 자식이 갑자기 행방불명이 되면, 부모는 자식을 어떻게든 찾고 싶고 구하고 싶다고 하는 기분이 들게 되고, 보통의 정신 상태로 있을 수 없게 되어, 어떠한 행동을 하는지를 숙지하고 있다. 그래서 우선 부모의 예상행동에 대해서 자식에게 알려준다. 그리고 그 부모님의 행동을 사탄의 꾐의 결과처럼 믿게 한다. 통일교로부터 들은 부모의 예상행동과 실제의 부모의 행동을 보면 통일교에 대한 신앙은 더욱 깊어지게 된다. 개미지옥이 따로 없다. 발버둥 치면 발버둥 칠수록 깊은 곳에 떨어지도록 짜여 있는 것이다. 사실, 중간의 간부들은 구체적인 예를 많이 모으고 있고, 신자에게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에 예상행동에 대해 이야기해, 공포심을 부추겨 마인드 컨트롤이 풀리는 정보를 듣지못하도록 특별훈련을 하는 동시에, 통일교의 신앙이 깊어지도록 하는 구조인 것 같다.
행방불명 중의 일에 대해 조금 더 말하고자 한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간단한 편지나 엽서가 올 뿐이다. 잠시 후 전화가 가끔 걸려와서 살아 있다는 것은 안다. 당연히 이쪽으로부터 연락할 수 없다. 직장에서 회의 중에도 눈물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자동차의 사고나 교통위반도 생긴다. 마음이 평안할 때가 없다. 벚꽃을 봐도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다. 전화로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묻을 경우에는 화를 내며 「다시는 전화를 안 한다」라고 위협해 온다. 어디선가 사고가 생기면 「딸이 타지 않았을까?」라고 걱정이 된다.
가족에게 일어난 이변: 소화계의 이상과 정신 불안정으로 인해 정신과와 내과 진찰. 난치병으로 입원·수술. 교통위반·사고 다수.
딸: 한국에 간 후 구멍 난 구두. 부패 음식에 의한 설사 등. 과호흡 증후군. 몽유병 상태(3명의 아이를 돌보기 위해 24시간 수면부족으로 몽롱해지고 있다. 100엔 정도의 돈도 가지고 있지 않다.)
(호소하고 싶은 것·희망)
*사람 마음의 중요한 부분(통일교 이외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스스로 생각해 판단하는 것)을 파괴해, 신자에게 악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게 하는 점. 또한 파괴된 마음을 회복하는 길을 닫는 점으로 보아 통일교는 용서할 수 없는 사탄이다. 이것은 혼자서 직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한일 관계자가 협력해 지혜를 서로 모아 해결의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1. 수천 쌍의 부모와 자식 분단 상태: 인질 상태이므로 어찌할 도리가 없다. (북한의 납치사건과 같다) 보통 가정에서 행해지고 있는 「귀향」, 가족의 대화를 통일교의 관리 외에서 실시한다. 본인이 스스로 판단할 기회를 만든다. (하나님은 스스로 판단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것인가.)
2. 신교의 자유가 속박 되고 있다. (다른 것에 접할 기회를 없애고 있다.)
영감 상법의 범죄. 마음의 파괴. 실질적으로는 납치와 같다.
3. 범죄 집단으로부터 이탈시키고 싶지만, 죄를 죄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든 대화를 하여 사고 정지상태로부터 개방하고 싶다.
4. 정말로 한일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면 방식을 생각해야 한다.
현재 상태에서는 역효과. 교주의 노예가 되어 부정한 방법으로 사람 자신이나 재산을 빼앗아 헌상하는 것을 한국의 사람은 기뻐하는지, 바라고 있는 것인가. 신자 및 가족 및 다른 일본인의 인권을 침범해, 괴로워하게 하는 것으로 전쟁의 속죄가 되는 것인가.
5. 아벨 이외의 사람의 의견은 사탄의 말이라고 생각해, 말을 들어서는 안 되게 되어 있는 것 같다.
귀를 막고 사경, 기도를 해 타인의 정보를 배제하라. (사고 정지)
6. 일본의 습관의 하나인 「귀향」으로 느긋하게 쉴 기회를 가지길 바란다.
(보충)
「마음의 이정표 A」로 부터
제1장 마음의 원리
제 1절 처리 대상의 무한성: 인간의 정보처리를 둘러싸는 환경.
우선은 스스로를 둘러싸는 기본적 환경을 알자.
인간의 일생은 길다고 해도 약 80년( 약 24억 초)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시간이, 처리해야 할 대상이 많음에 비해 긴가 짧은가가 문제인 것이다. 정보처리를 담당하는 중심은 뇌이다. 뇌에 있는 신경세포의 수는, 인간의 특색을 결정하는 대뇌 신피질로 약 140억 개, 전체에서는 약수 백억 개라고 한다. 문제는 정보처리 기기인 뇌세포의 수나 처리 속도가 처리해야 할 대상의 수나 내용에 비해 많은가 적은가 이다. 실은 우리에게 준비된 시간과 도구(뇌)에 비해 대상 세계는 항상 무한하다. 예를 들면, 10분간에 1개의 사건을 기억할 수 있었다고 하면 일생 동안에 기억할 수 있는 수는 400만 건이다. 일본인 1억 명이 일생동안 다 기억할 수 있는 대용품은 아니다. 처리해야 할 대상이 많음이나 곤란함에 비교해 주어진 시간은 지극히 짧다. 일반적으로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다. (적으면서 실은 꽤 많은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있는 일도 사실이다.) 140억 개(140억 비트라고 가정)의 뇌세포로, 어느 정도의 화상(영상)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일까. 많은 이미지 영상을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100만 화소로 30매/초의 영상이라면 겨우 20초이다. 망막의 센서의 개수는 약 1억이며, 센서의 분해가능(휘도의 분해가능)도 12비트 이상이며, 시간 분해가능도 120매/초 이상이라고 하므로, 0.05초 정도 밖에 기억할 수 없게 된다. 물론, 뇌세포 1개가 1비트이다고 하는 가정은 조금 과장된 것이지만, 상황은 거의 변하지 않다. 약 30년 정도 전에 우편번호 등의 문자 읽기 장치의 개발이 국가 프로젝트의 하나로서 행해졌던 적이 있다. 그 때, 모든 화상의 대답을 기억해 두면 컴퓨터는 고속 처리이므로 즉시 정답을 낼 것이라고 하는 연구자가 있었다. 이론적으로는 정답률100%의 단순한 인식 기계이지만, 실은 정답을 내는데 무한에 가까운 시간으로 기억 매체가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흰색과 흑으로부터 되는 단순한 100만 화소의 도형의 개수를 예에 취해 보자.
화상의 수는 즉시 계산이 된다. 21000x1000=(2.5x10108)*4x10299892=(우주 전체가 원자로 가득 차고 있으면 가정했을 때의 원자의 개수) *4x10299892이다. 우주 전체에 배치된 원자의 개수조차 도저히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을 만큼의 양이다. 우리는 아주 간단하게 화상 인식을 실시하고 있는 것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예를 들것도 없고, 「개」의 특징의 수가 무한하다(와타나베 케이의 「백조의 법칙」보다 )는 것과 같이 대부분의 우리의 처리 대상에는 무한이 붙게 된다.
원리 1: 뇌의 처리 대상은, 항상 무한하다.
원리 2: 뇌는 유한하고, 불완전하다.
여러 가지의 궁리에 의해서 효율적으로 입력, 처리, 기억, 출력이라고 하는 정보처리( 제3장 참조)를 실시하고 있지만, 처리 대상이 많음이나 복잡함 등과 비교하면 지극히 미력이다.
원리 2-1:뇌에의 입력 정보는 불완전하다.(정보 부족)
원리2-2:뇌로 기억할 수 있는 정보는 불완전하다.
원리2-3:뇌의 정보처리는 불완전하다.(부실 처리)
원리2-4:뇌의 출력은 불완전하다.
원리 3: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나 공간은 한정되고 있다.
자동차가 눈앞에 나타나면 충돌 전으로 이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충돌의 후에는 늦다. 되돌릴 수 없다. 단 한 번 . 결정적 실패는 용서되지 않는다(죽음).
제2장
마음의 법칙: 속이는 방정식
법칙 1. 시비의 양면성(도둑에도 삼분의 리)
법칙 2. 외부 기억의 이용
법칙 3. 부분에 의한 전체 부정과 전체 긍정
법칙 4. 1개의 가능성·특성에 의한 유론
법칙 5. 의식하게 되는 각 시각 1개
법칙 6. 정보 부족:디폴트 처리
법칙 7. 반사·자율 신경계·무의식 동작(호흡, 고동)
법칙 8. 변화하지 않는 것은 뇌에는 입력되지 않는
법칙 9. 창작: 소수의 실마리로부터 앞뒤가 맞도록 재구성하는
법칙 10. 뇌의 판단 활동으로 사용 가능한 에너지는 일정한(머피의 법칙 포함)
법칙 11. 기억의 변용: 목격 정보, 인지 지도, 가족적 유사도, 기호와 연합한 도형의 변용(스립핑 현상, 한자의 붕괴, 정지 망막상, 프라임)
법칙 12. 다수자의 판단·행동의 효과
법칙 13. 확신적 언동·행동의 효과
법칙 14. 권위성의 법칙
법칙 15. 코미트먼트(commitment)(약속)에 대한 일관성의 법칙
법칙 16. 반보성의 법칙: 부채, 칭찬하는 듯 비판하는
법칙 17. 호의성의 법칙
법칙 18. 희소성의 법칙
법칙 19. 선택사항의 한정(유도)
법칙 20. 정보 조작·관리·제어
법칙 21. 감정 조작·관리·제어
법칙 22. 행동 조작·관리·제어(신체·외적 환경 조작·관리·제어를 포함한다)
법칙 23. 일반화(반화, 범화) 패턴 인식, 클래스 나누기
법칙 24. 고차 무한 계단
제4장 대책
금방 실시해야 할 것은, 다음의 3개이다.
1. 문제의 소재를 전 국민에 알리는 것.
차례차례로 발생하는 문제는 수시로 알려 그것들을 축적하는 것. 구체적으로는, 학 교·시청 등의 행정·자치회·직장 등을 경유해 전한다. 다만 알고 있어도 걸리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케어도 필요하다.
2. 항상, 시청 등에 상담 창구를 개설해 두어, 시민을 위하는 것.
3. 국민의 안전 생활을 지키기 위한 법률의 정비나 공안·경찰 등에 의한 도움. 범죄자나 가해자를 지키는 것보다도 피해자나 선량한 시민을 지키는 것을 기대하고 싶다. 본래 재판받아야 할 사람이,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 잘 난체 하는 일이 없게 바라다. 계속되고 조금 시간은 걸리지만, 향후 바람직하는 것을 몇 점 지적해 두고 싶다.
4. 인간의 마음의 구조를 아는 것(연구)을 알리는 것.
5. 마음의 상담자, 심리 카운슬러나 임상 심리사 등의 보강과 일할 수 있는 장소의 확 보를 늘린다. (이런 종류의 사람이 지위를 갖거나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일본에서는 거의 없다)
6. 인간 교육(마음의 교육)을 초등학교 등 어렸을 때부터 실시하는 것.
ある渡韓信者の実情
(経過)
X年1月 修練会、各種物品購入、献金、宝石展、訪問販売などの活動
X+1年2月 行方不明①
渡韓:合同結婚式(X年+10.3判明)
X+4年2月 一時帰宅後失踪、行方不明②
4月 渡韓、結婚式と入籍
X+5年 戸籍上の住居(見つからないようにするための仮の住居:日本における住居と同じ方法)に訪問、
転居先にてUC監視の下、本人に面会
(長女誕生)
韓国の嫁ぎ先の家長より、「なぜ、結婚式に来なかったか」と詰問される。
返答:知らせ無し。4年半、行方不明。
UCの支部長より、生活援助の要請あり。帰郷の許可なし。
1-2回/年、居住先を訪問。祖父の葬式にも帰国せず。
3人の子供:生活に困窮しているようで1名しか子供を保育園に入れられない。(教育できない)
(詳細)
それは、X年+1年2月11日、連休の初日の娘からの電話から始まった。「会社に携帯電話を忘れてきたので、電話をかけても通じないよ。」3時間もすれば、自宅に帰れる距離に下宿していたので、連休は自宅に帰ってくるものと思っていた。おかしな電話だなあ、何かおかしい。このような電話は、一度もなかった。あっけに取られ、「どうすれば連絡できるか」という問いに思い至らなかった。娘が行方不明になり、「生き別れ・地獄の苦しみ」の始まりであった。(これより1年前から既に娘への攻撃は始まっていたようだ。少々おかしいなと感じてはいたが、このような重大事が進行しているとは、迂闊(うかつ)にも気づかなかった。)
胸騒ぎがして、娘の下宿に妻が向かった。下宿には、誰も居ない。きれいに片付いた部屋、誰かが生活しているという感じがしない。ゴミ箱に1つの手帳が、捨てられていた。手帳には、UCの信者になる研修会の日程や「物売り」の体験状況など断片的なものが記されていた。
乏しい知識やこのような状況から「娘には2度と会えないかもしれない。」という不安がよぎった。直ちに、小生も下宿に向かった。状況をみて真っ青になった。何処に相談したらよいか。誰に相談したらよいか。書店に行って調べたが参考になるものはなにもない。インターネットを調べることには思い至らなかった。今から考えるとUCが娘を下宿に行かせることはありえないことだが、無知なわれらは「娘が下宿に立ち返るかもしれないという望みをいだき、エアコンを使わず下宿で寒い1夜を明かした。」「娘はこちらの行動には気づいていないはず。連休明けには会社に出勤するかもしれない。」妻は、それを確かめるためたらそっと帰宅する予定で会社に出向いた。疲労困ばいであった妻は、本人を見つけるなり、タクシーで自宅に連れてきてしまった。妻は、本人のそばで電話したため、状況は話せず「自宅につくこと、タクシー代がないことのみ」小生に述べたのみである。小生も自宅に向かった。まず、娘は、自宅に入ることを拒み、逃げようとした。何が起こったか、尋ねるもほとんど答えない。「自分は、初心者でよくわからない。」というだけであった。遭遇したことのない想像外のことばかりでした。その日の真冬の寒い夜、ほんの30秒間程度娘を1人にしたとき薄着のまま闇夜に消えた。呼べども、叫べども、探し回れども闇の中、行方不明になってしまった。残された携帯電話の中にアベルのものとおぼしきいくつかの番号を見つけた。親の悲しみ・苦しみなんのその、「してやったり」といった涼しいアベルの声のみが残った。いずれにせよ、小生らの力では、行方不明になることを防ぐことはできなかったと思われる。警察に相談しても何の対応もしてくれない。ただ行方不明者の名簿に載せるだけであった。市役所も所掌業務でないとして対応しなかった。2回目の行方不明時に外務省に相談したが、本人の承諾なしには、対応しないということであった。(娘の行動などを決めているアベルのいうことは絶対であるので、承諾を得るのは至難の業である。)。
下宿には、荷物が残っていたので、娘が来るかもしれないと思い、かすかな望みを持って訪ねたが、とき既におそしであり、押入れの中に、1枚のメモが残されていた。
メモには、代理人に運んでもらう物品のリストが示されていた。代理人は、本人が来ると両親に会う可能性があるので、会わせないためのUCの常套手段のようだ。嘘の住所の市役所への届けにも代理人を使う。事情を話し、そのような場合知らせてもらうよう市役所に頼むが、業務外として断られた。
X+3年後半ころ、UC主催の聖地旅行を要求され、娘に会えることを前提に参加。24時間監視付き。激痩せの娘と監視人は、3人前ほど食べていた。責任者の講演では、Aさん事件に言及し、「自分がいたらどんな手を使っても日本に返さなかった」と小生をにらみながら力説した。監視人は、「指令があればどんなことでもやる」と脅し文句を得意げに小生にいっていた。その後種々の関門があり、3年後に会うことができた。そのとき分ったことは「X+1年1月ころアベル(絶対的上司)から「出家がばれた後サタンが両親をたぶらかし、恐ろしいことが次々と起こる」と繰り返し告げられ、それから逃れる方法の特訓を受けた。」ということであった。対策本を送ったのは、それを知らせるためだと再会時、娘が明かした。
UCは、子供が突然行方不明になったら、親は子供を何とか捜して、救いたいという気持ちから、普通の精神状態に居られなくなり、どのような行動をするかを熟知しており、まず、親の行動を子供に予見してみせる。そして、その両親の行動を、サタンのそそのかしの結果であると思い込ませるのである。UCの予見に近い行動をみて、UCへの信仰を強める。蟻地獄である。もがけばもがくほど深みに落ちるように仕組まれているのである。事実、中間の幹部たちは具体例をたくさん集めており、信者に出来事の直前に予見的に話し、恐怖心を煽ってマインドコントロールが解ける情報を耳に入れさせない特訓をするとともに、UCの信仰が深まるように仕組んでいるようだ。
行方不明中のことを少々述べる。月に一度程度簡単な手紙・はがきが来るのみ。しばらくして電話が時々かかるようになり、生きていることを知る。当然こちらから連絡することはできない。仕事場における会議中にも涙が自然に出てくる。自動車の事故・違反も生じる。心の安寧なときはない。桜の花を見ても美しさを感じない。電話で少しでも気に入らないことを尋ねると怒って「電話することを止める」と脅してくる。どこかで事故が生じると「娘が乗っていなかったか」と心配になる。
家族に起こった異変:消化器系の不調や精神不安定から精神科や内科受診。難病で入院・手術。交通違反・事故多数。
娘:渡韓後:穴の開いた靴。腐敗食物による下痢など。過呼吸症候群。夢遊病状態(3人の子供の世話などのため24時間睡眠不足で朦朧としている。100円程度のお金も持たない。)
(訴えたいこと・希望)
* 人の心の重要な所(UC以外の意見に耳を傾け、自分で考え判断すること)を破壊し、信者に悪事を平気で行わせる点、また、破壊された心を回復させる道を閉ざす点で、UCは、許すことのできないサタンである。これは、独りで立ち向かえるような問題ではない。日韓の関係者が協力し知恵を出し合い解決の道を探るべきである。
1.数千組の親子分断状態:人質状態なので手も足も出ない。(北朝鮮の拉致事件と同じ)普通の家庭で行われている「里帰り」、家族の話し合いをUCの管理外で行う。
本人が自分で判断する機会を作る。(神は、自分で判断することを禁じているのか。)
2.信教の自由が束縛されている。(他のものに接する機会をなくしている。)
霊感商法の犯罪。心の破壊。実質的には拉致と同じ。
3.犯罪集団から離脱させたいが、罪を罪と思っていないので、何とか話し合いをして
思考停止状態から開放したい。
4.本当に日韓の架け橋になりたいと希望するならやり方を考えるべき。
現在の状態では逆効果。教祖の奴隷となり不正な方法でヒト自身や財産を奪って貢ぐことを韓国の人は喜ぶのか、望んでいるのか。信者および家族および他の日本人の人権を侵し、苦しませることで戦争の罪滅ぼしになるのか。
5.アベル以外の人の意見はサタンの言葉と考え、聞いてはならないことになっている
ようだ。耳を塞げ、写経・祈祷をして他人の情報を排除せよ。(思考停止)
6.日本の習慣の1つ「里帰り」でゆっくり休む機会を与えてやりたい。
(補足)「心の道しるべA」より
第1章 心の原理
第1節 処理対象の無限性:人間の情報処理を取り巻く環境
まずは自分たちを取り巻く基本的環境を知ろう。
人間の一生は、長いといっても約80年(約24億秒)である。我々に与えられたこの時間が、処理すべき対象の多さに比べて長いか短いかが問題なのである。
情報処理を担う中心は、脳である。脳に用意された神経細胞の数は、人間を特長つけている大脳新皮質で約140億個、全体では約数百億個であるといわれている。問題は、情報処理機器である脳細胞の数や処理速度が処理すべき対象の数や内容に比べて多いか少ないかである。
実は、我々に用意された時間と道具(脳)に比べて対象世界は常に無限なのである。
例えば、10分間に1つの出来事を記憶できたとすると一生のうちに記憶できる数は400万件である。日本人1億人は、一生かかっても覚えきれる代物ではない。処理すべき対象の多さや困難さにくらべ、与えられた時間は極めて短い。一般に、十分に考慮できるような時間はほとんどない。(少ないながら、実はかなり多くのことを効率よく処理していることも事実である。)140億個(140億ビットと仮定)の脳細胞で、どのくらいの画像(映像)が記憶できるのであろうか。沢山のイメージ映像を記憶していると思っているが、100万画素で30枚/秒の映像ならせいぜい20秒である。網膜のセンサーの個数は約1億であり、センサーの分解能(輝度の分解能)も12ビット以上であり、時間分解能も120枚/秒以上であるといわれているので、0.05秒程度しか記憶できないことになる。もちろん、脳細胞1個が1ビットであるという仮定は少々乱暴なものであるが、状況はほとんど変わらない。約30年ほど前に郵便番号などの文字読み取り装置の開発が国家プロジェクトの1つとして行われたことがある。そのとき、すべての画像の答えを記憶しておけばコンピュータは高速処理であるのでたちどころに正解を出すはずだという研究者がいた。理論的には正解率100%の単純な認識機械であるが、実は、正解を出すのに無限に近い時間と記憶媒体が必要になるのである。白と黒からなる単純な100万画素の図形の個数を例に取ってみよう。画像の数は直ちに計算でき21000x1000=(2.5x10108)*4x10299892=(宇宙全体が原子で埋め尽くされていると仮定したときの原子の個数)*4x10299892である。宇宙全体に配置された原子の個数すらとてもとても比較対象になりえないほどの多さである。我々は、いとも簡単に画像認識を行っていることは皆様よくご存知のことである。このような例を出すまでも無く、「犬」の特徴の数が無限である(渡辺慧の「白鳥の法則」より)ようにほとんどの我々の処理対象には無限がついてまわる。
原理1:脳の処理対象は、常に無限である。
原理2.脳は有限であり、不完全である。
種々の工夫によって効率よく入力、処理、記憶、出力といった情報処理(第3章参照)を行っているが、処理対象の多さや複雑さなどと比較すれば極めて微力である。
原理2-1:脳への入力情報は不完全である。(情報不足)
原理2-2:脳で記憶できる情報は、不完全である。
原理2-3:脳の情報処理は不完全である。(手抜き処理)
原理2-4:脳の出力は不完全である。
原理3:我々に許された時間や空間は限定されている。
自動車が目の前に現れたら衝突前に移動しなければならない。衝突の後では遅い。
不可逆。一度きり。決定的失敗は許されない(死)
第2章 心の法則:だましの方程式
法則1.是非の両面性(盗人にも三分の理)
法則2. 外部記憶の利用
法則3.部分による全体否定と全体肯定
法則4.1つの可能性・特性のみによる推論
法則5.意識にのぼるものは各時刻1つ
法則6.情報不足:デフォルト処理
法則7.反射・自律神経系・無意識動作(呼吸、鼓動)
法則8.変化しないものは脳には入力されない
法則9.創作:少数の手掛かりから辻褄の合うように再構成する
法則10.脳の判断活動で使用可能なエネルギーは一定である(含マーフィーの法則)
法則11.記憶の変容:
目撃情報、認知地図、家族的類似度、記号と連合した図形の変容
(スリッピング現象、漢字の崩壊、静止網膜像、プライミング)
法則12.多数者の判断・行動の効果
法則13.確信的言動・行動の効果
法則14.権威性の法則
法則15.コミットメント(約束)にたいする一貫性の法則
法則16.返報性の法則:負債、誉め殺しなど
法則17.好意性の法則
法則18.希少性の法則
法則19.選択肢の限定(誘導)
法則20.情報操作・管理・制御
法則21.感情操作・管理・制御
法則22.行動操作・管理・制御(身体・外的環境操作・管理・制御を含む)
法則23.一般化(般化、汎化)パターン認識、クラス分け
法則24.高次無限階段
第4章 対策
今すぐ行うべきことは、つぎの3つである。
1.問題の所在を全国民に知らせること。
次々に発生する問題は随時知らせ、それらを蓄積すること。具体的には、学校・市役所などの行政・自治会・職場などを経由して伝える。ただし、知っていても引っかかる場合も多いので、以下のケアも必要である。
2.常に、市役所などに相談窓口を開設しておき、市民のために尽くすこと。
3.国民の安全生活を守るための法律の整備や公安・警察などによる手助け。
犯罪者や加害者を守るよりも被害者や善良な市民を守るようなものを期待したい。本来裁かれるべき人が、被害者の立場になって威張るようなことの無いように願いたい。
つづいて、少々時間はかかるが、今後望まれることを数点指摘しておきたい。
4.人間の心の仕組みを知ること(研究)知らせること。
5.心の相談者、心理カウンセラーや臨床心理士などの増強と働ける場所の確保を増強。
(この種の人の日本におけるステイタスや職場がほとんどない)
6.人間教育(心の教育)を小学校など小さい頃より行うこと。
♧ 제3강의 ♧
최근 한국의 이단의 발생과 동향
구 춘 서 교수
(한일장신대 교수, 이단사이비대책위 전문위원)
I. 들어가는 말
대전에 있는 S 교회를 살펴보자. 이 교회는 우리 교단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대학교의 총장이 장로로 시무하고 있는 교회이다. 목사님이 목회를 하신지 약 14년 정도 되었는데 목사님과 장로님들 사이에 목회에 대한 이견이 있어 서로 다툼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런데 목사님은 목사님대로 세력을 형성하고 장로들은 이런 목사님에 대항하기 위해 똘똘 뭉치고 세력을 규합하기 시작했다. 서로 자기편으로 교인들을 많이 끌어 들이기 위해 부지런히 교인들과 접촉하고 새로운 교인이 들어오면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장로님들 편의 교인들이었는데 목회자를 반대하는 이 들 중 상당수가 신천지라는 이단의 추종자들인 소위 추수꾼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목회자를 축출하고 그 교회를 자신들의 소유로 만들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성공적으로 당회원들을 포섭하였고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이 교회가 통째로 신천지 이단으로 넘어갈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교회의 당회원들은 전혀 당회장에게 협력하지 않으므로 당회가 정상적으로 모여 어떤 결의를 할 수 없게 되었다. 형편이 이러하니 노회도 전혀 이 교회의 형편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지경이다. 또한 당회장이나 일부 교인도 개인적으로 노회를 거치지 않고 총회로 문제를 제기할 수가 없기 때문에 총회도 개입할 방법이 없는 딱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오늘 날 교회 내에 분란이 있게 되면 이단들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이 교회를 자기들의 세력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목회자의 리더십이 약하거나 개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교회 등이 이단들의 새로운 공격 목표로 정해지고 있다. 이렇게 이단들은 단순히 교인들을 미혹하여 빼 나가는 것을 넘어서 아예 교회 자체를 송두리째 삼키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그 뿐 아니라 개척교회를 하고 있는 목회자들의 교회 성장에의 열망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추종자들을 마치 전도되는 것처럼 가장하여 개척교회에 침투시켜 목회자에게 어려움을 주고 몰아 낸 후 자신들의 것으로 삼는 식으로 세력을 확장시키고 있다. 심지어 자신들의 추종자들을 신학교에 입학시켜 정식으로 신학을 공부하게 하고 교단에서 안수를 받게 한 다음 자신들의 교리를 설파하도록 하는 전략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따라서 각 신학교에서는 이들 이단들의 추종자들이 입학하고 있느냐를 가리기 위해 전전 긍긍하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다. 이단들은 각종 국제 선교 대회라고 해서 문화적인 활동들을 대단히 강조한다. 어떤 이단 단체는 전국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어웅변대회를 전국적으로 벌이기도 한다. 이 단체는 해외 포교도 열심히 하여 각국의 젊은이들과 국내 젊은이들이 영어를 배우며 우정을 나누도록 하는 활동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영어를 배우게 하려는 학부모들의 욕망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자신들의 포교를 하고 있는 셈이다. 젊은 대학생들이 방학기간에 이들이 주최하는 해외 연수 프로그램에 많이 참가하고 있어서 사태는 매우 심학한 편이다. 각 대학의 동아리들이나 학생회 간부진에 이런 이단의 추종자들이 적극 포진하여 운영비를 제공하고, 각종 행사를 유치하기도 한다.
또한 리틀 엔젤스라든가 유니버설 발레단과 같은 문화활동을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이미지를 개선하는가 하면 선문대학교 학교를 세워 자신들의 포교 활동을 전개하기도 한다. 이렇게 이단들은 자신들의 포교를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더 나아가서 이들은 사회봉사 운동을 통해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든가 또는 사업체를 앞세워 그들의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이단은 종합 운동장을 빌려 대대적인 체육행사를 벌이고 이를 적극적으로 언론에 홍보하여 자신들의 교세를 과시하기도 한다. 최근 문선명은 자신 소유의 출판사가 아닌 김영사라는 유명 출판사를 통해 자신의 자서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란 책을 출판하여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자신들의 출판을 담당하는 출판사가 아닌 유력 출판사를 선택함으로 책의 신뢰도를 높이고 일반인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데 상당한 효과를 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처럼 오늘 이단들은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포교 활동을 강화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각종 문화 활동, 체육대회, 해외연수 프포그램, 사회봉사운동, 각종 수익 사업, 각종 출판 사업을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다. 대학의 동아리들은 그리고 대학생들을 위한 많은 프로그램들은 이들이 점령한 지 이미 오래이다. 운동권 세력이 퇴조한 대학을 이들 이단들이 지도력을 확보하여 자신들의 포교활동에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때문에 기존의 그리스도교 단체 동아리들은 도리어 소수가 되고 학생들이 외면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물론 이들은 이런 활동에 자신들의 단체명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이런 활동을 통해 간접적으로 자신들의 영향력을 적극적으로 높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II. 이단은 왜 생겨나는가?
이들이 물론 이처럼 대외적으로 이미지를 제고시키는 좋은 활동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JMS 이단 교주 정명석은 실형을 선고받고 현재 감옥이 갇혀 있으며, 영생교 교주 조희성도 살인 교사 혐의로 형을 살다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다. 또 오대양 집단 자살사건과 같은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키는 충격적인 사건을 일으키는 이단들도 생겨난다. 이처럼 사회적인 물의를 많이 일으키고 기성 교회에서 이단과 사이비로 지목받고 심지어 언론에서도 가정을 파괴하고 물의를 일으키는 집단으로 매도당하는데도 이들이 날로 번성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도대체 이단들은 왜 많이 생겨나고 이들은 그 세력을 넓혀가는 것일까? 이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1. 교주의 카리스마
이들 이단의 교주들을 보면 대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정규 교육을 별로 받지 못한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남이 자신을 따르도록 하는 독특한 능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대단히 열정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그들은 정상적인 사람들의 건전한 상식으로 보면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을 버젓이 열정을 가지고 선포하고 자신들의 추종자들이 믿도록 하고 있다. 가령 영생교 교주 조희성은 영생교도들에게 하는 집회에서 “영생교도들에게 무조건 자가용 제트 비행기를 한 대씩 갖게 해 줄 것”을 약속하고 추종자들은 “아멘"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이 지상파 방송으로 보도되었다.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들은 이러한 주장이 갖고 있는 황당함을 곧 바로 볼 수 있지만, 그의 추종자들은 열광적으로 교주를 추종하고 있다. 이는 이들이 그에게 설득당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카리스마적인 면이 갖고 태어나는지(art) 또는 배울 수 있는 것인지(science)는 논란이 많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이 이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추종자를 철저히 교육시키며 세뇌시켜서 자신을 따르도록 만드는 놀라운 재능을 갖고 있다. 이는 추종자들의 종교적인 성향이 어우러져 더욱 강력한 것으로 만든다.
2. 교주들의 불행한 삶의 궤적.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이단의 교주들은 대부분 부유하거나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에서 출생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은 일반적으로 고난에 찬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들은 과거 자신들의 가난하고 불행했던 삶을 추종자들에게 일체화 시켜 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가장하여 전달한다. 이들 추종자들은 자신의 불행한 삶의 처지가 언젠가는 저 교주처럼 변하게 될 것이라는 환상에 빠지게 된다. 한편 이단 교주들은 두 가지 방면에서 자신들의 불행했던 삶의 궤적에 대한 보상을 받고자 한다.
첫째, 이들은 자신을 신격화시킨다. 모든 행사나 교리의 중심에 자신들이 있고자 한다. 재림 주, 메시야, 보혜사, 어머니 하나님, 등등 이들이 사용하는 명칭이나 지위는 자신이 신 그 자체라고 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주장 뒤에는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를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있는 것이다.
둘째, 이들은 자신의 추종자들을 철저하게 지배하고 복종시키는 것으로 자신의 불행하고 어려웠던 삶의 고통을 보상받으려고 한다. 이들의 의상은 하나같이 화려하고 금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들은 즐겨 왕관을 쓴다든지 화려한 망토를 걸친다든지 백마를 탄다든지 흰 양복을 입는다든지 하여 추종자들에게 위엄을 갖춘 모습으로 보이게 하며 그들과 자신을 구한다. 이를 통해 추종자들에게 경외감과 복종심을 고취시킴과 동시에 자신 스스로도 자신이 대단한 존재인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행위 뒤에는 자신의 과거의 불행했던 삶에 대한 보상 심리가 작동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한편, 이들의 설교의 대부분은 물질적인 성공이나 출세를 보장하거나 종말을 강조하거나 무조건적인 죄 사함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이들은 자신의 치유의 능력을 강조하거나 종말이 임한 후의 변화된 신분을 강조한다. 이들의 이러한 황당한 주장 뒤에도 자신들의 과거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동하는 것은 물론이다.
3. 기성교회에 대한 비판
이단의 교주들은 하나같이 기성교회에 대해 비판적이다. 이를 통해 자신들의 단체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고 또 기성교회 교인들을 추종자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단히 기성교회의 약점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며 이를 공격한다. 재정의 투명성이나, 성경 해석, 전도에의 무능, 방언이나 치유와 같은 성령의 능력 부재, 종말론의 실종, 귀신론의 실종 등이 이들이 주로 공격하는 내용들이다. 이들이 기성교회를 비판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첫째, 기성교회와 자신들과 차별화가 가능하다. 자신들은 전도를 잘하는 데 기성교회는 전도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기성교회는 구원의 확신이나 죄 사함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한다, 자신들은 안식일을 지키고 유월절을 지키는 등 성서대로 생활하는데 기성교회는 안식일도 지키지 않고 또한 성탄절 등 성경에 없는 절기를 지킨다고 공격한다. 따라서 자신들이 성경을 따르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주장을 한다. 이들의 공격에 기성교회는 무능력하고 종교적 열의도 없으며 교권 싸움이나 하는 종교 단체로 전락하는 것처럼 비쳐진다.
둘째, 기성교회를 비판하여 반사적인 이득을 얻는다. 이들이 기성 교회를 비판하는 것은 기성교회 교인들을 빼앗아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이들의 가장 중요한 포교 대상은 기성교회 교인들이다. 무료로 성경을 가르친다고 한다거나 치유 집회에 참석하자고 꼬드긴다. 처음에는 기성교회와 아무런 차별을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자신들의 본색을 드러낸다. 이들 가르침에는 은연 중 기성교회에 대한 비판과 함께 자신들의 교리를 주입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성교회에 대해 반감을 일으키고 자신들에게 호감을 느끼게 하는 일석 이조의 효과가 있다. 이렇게 이단들은 기성 교회를 비판하여 기성교회 교인들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을 벌인다.
셋째, 기성교회를 비판하는 것으로 이들은 자신들의 집단의 결속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들은 아직 기성교회와는 달리 자신들의 생존 자체가 중요한 가치가 된다. 따라서 이들은 서로 결속하고 서로 서로 떨어지지 않도록 대단히 유의하여 자신들의 추종자들을 관리한다. 이들에게 포교의 강조가 극심한 것도 바로 자신들이 생존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이들은 갖은 방법을 다해 자신들의 세력 확대에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이들의 열심을 기성교회가 따라가기 어렵다. 이들의 생존에의 욕구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단들은 자신들의 추종자들을 결속시키고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기성교회를 맹렬히 비난한다.
4. 기성교인들의 미혹.
이단들이 발호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기성교회 교인들이 이단으로 미혹되어 가기 때문이다. 이단의 가르침에 심취하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가 기성교회 교인들이 이들에게 미혹되기 때문이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이단들은 기성교회 교인들에게 접근하여 “구원 받았느냐?” “성경대로 안식일을 지키느냐?” “성경대로 교회에서 여자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느냐?” “성경대로 방언이나 치유 현상을 경험하느냐?” “성경 구절의 의미를 해석하느냐?” 는 등의 질문을 통해 이들을 관심을 유도하고 기성교회를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교리를 주입한다. 이처럼 이들은 기성교회가 잘못하고 있는 틈새를 적극 공략한다.
기성교회가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를 강조하지만 성경 해석의 원리라든가 신학적인 사고를 가르치지 않고 목회자의 권위에 의존하여 신앙생활을 하도록 강제한 측면도 이들 교인들이 이단으로 빠져드는 구실이 되기도 한다. 기성교회 교인들이 자신들의 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는 만족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결코 이단에 빠지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기성교회의 권위적이고 제도적인 면에 만족하지 못하는 교인들은 이단들의 유혹에 노출되기 싶다. 따라서 기성교회도 교인들을 신학적으로 훈련하게 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은사를 발휘하고, 보람 있고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도록 지도하고 도와주어야 한다.
5. 사회적 불안
한국의 이단들은 일제의 강점기를 거쳐 한국 전쟁을 지나는 동안 많이 생겨났다. 사회의 큰 격변기에 불안한 마음을 교묘한 가르침으로 이단들이 발호한 것이다. 또한 60년대 70년대 권위주의적인 정권을 거치면서 급격한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농촌 교향을 떠난 도시의 거주자들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소외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들은 새로 살게된 환경에 적응하는데 상당한 곤란을 겪었으며 이 세상에 대해 별로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게 된다. 또 최근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치면서 구조조정이 일상화되고 빈익빈 부익부의 경제 제도가 움직일 수 없는 사회의 규범으로 자리 잡게 되자 이들에게 이 세상에서의 성공의 보장이나 치유는 큰 매력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이단들이 종말이 이루어진 후 저 세상에서의 높은 지위는 이들에게 대단한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따라서 이런 사회적 불안 요소나 사회적 변동은 이단들이 발호할 수 있는 좋은 사회적 토양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사회적인 불안 요인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이단들이 발호할 수 있는 토양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III. 어떻게 이단에 대처해야 하는가?
앞에서 본 대로 이단들은 대단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또한 맹렬한 열정으로 자신들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기성교회에 만족하지 못하는 교인들이나 이 사회에서 희망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퍼뜨리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을 신학적인 사고로 분석해 보면 저들 주장의 황당함을 바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단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교인들에게 신학적인 사고를 훈련시켜야 하고 또한 교회 생활에 적극 참여하는 길을 열어 두어야 한다. 이제 이단에 대처하는 방안을 살펴보기로 한다.
1. 신학적인 사고를 교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신학이란 우리가 믿는 신앙의 내용을 일관성 있고 체계적으로 진술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신학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할 것인가와 무엇을 믿지 말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을 분명하게 하는 데 있다. 따라서 신학은 이단들의 가르침에 대처할 뿐 아니라 이렇게 믿어야 한다는 교회의 가르침의 필요에 따라 태어난 것이다. 이런 신학이 생겨난 배경을 잘 알아야 한다.
신학적인 사고를 전개하기 위한 자료는 대체적으로 성서, 전통, 이성, 그리고 경험 등에 대해 대체적인 동의가 있어 왔다. 따라서 첫째, 일차적으로 교회에서는 성서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교육을 시켜야 한다. 성서에 대해 무지하게 되면 이들의 주장에 쉽게 현혹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단들도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성서를 사용한다. 그런데 그들은 성서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성서만으로 그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데는 일정한 한 둘째, 그러므로 이들에게 교회의 전통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의 전통이라면 쉽고 단순하게 말하면 교회가 성서를 어떻게 해석하고 인정해 왔는가를 말한다. 교회의 전통은 사도로부터 이어져 온 신앙의 규칙(regula fidei)였다. 교부들은 정경화의 과정에서 신앙의 규칙에 의존하여 전통에 따라 성서의 정경화 작업을 완성하였다. 따라서 전통과 성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되어 있다. 이단들은 물론 교회의 전통을 무시한다.
셋째, 이단들의 주장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우리의 건전한 상식을 통한 신학적 사고를 활용해야 한다. 이단들의 주장을 앞뒤로 엄격하게 따져보면 얼토당토하지 않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앞에서 말한대로 텔레비전에 방영된 한 이단의 집회에서 이단 교주가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모두 자가용 비행기를 사 준다고 한다면, 얼마나 많은 활주로가 필요로 하게 될 것인가 또는 그 많은 비행기를 어떻게 운행할 것인가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조금만 사고하면 이들 주장의 황당함을 당장 밝혀낼 수 있다.
넷째, 신학적 사고를 위해 필요한 것은 경험이다. 우리는 이단에 빠져 불행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알고 있다. 신학적 사고는 우리의 경험과 맥락을 살펴보도록 요구한다. 이단의 가르침에 빠진 사람들은 일시적으로는 만족스런 삶을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결국 그들의 삶은 파탄에 이르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경험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이단들의 유혹을 이겨내야 할 것이다.
물론 신학자들은 교회를 섬기는 학문으로서의 신학을 전개한다고 하면서도 지나치게 어려운 전문용어를 사용하면서 일반인들이 알기 어려운 논문을 작성하고 있다. 또 신학교 교실에서는 일선 교회와 별로 관계가 없는 주제를 강의하고 있기에 일반 교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면이 없지 않다. 교실과 강단과의 거리가 너무 먼 것이 사실이기도 하지만 일반 목회자들이 신학적 사고를 하며 자신들의 양 무리에게 훈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목회자들도 끊임없이 계속 교육을 받아야 한다.
2. 교인들을 교회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피조물, 등 다양하게 정리할 수 있으나 무엇보다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이다. 사람의 공동체인 교회는 다른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사회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교회는 개인에게 가르치거나 지도력을 발휘하거나 노래를 하게 하거나 예술적인 능력을 발휘할 장을 제공하고, 사회적인 존경받은 지위도 부여한다. 교인들의 친교의 장이기도 하고, 자녀뿐 아니라 자신들도 교육을 받을 기회도 제공 받는다. 교회는 도덕적으로 사람들을 통제하기도 하고, 또한 자신들의 종교적인 욕구를 만족시켜 주기도 한다. 따라서 교회에 적극적인 활동을 하게 될 때 이단에 빠질 유혹이 없어지게 된다.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은 이런 다양한 교회의 활동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가능성이 높다. 교회에서 알아주지 않고, 교회 안에서 중요한 직책에 들지도 못한다. 또한 강력한 종교적인 욕구를 갖고 있으나 현재 다니는 교회는 너무 냉냉하고 차가워 불만인 경우도 있다. 또 교회가 지나치게 현 사회나 세상을 용인하고 있어서 새로운 희망의 대안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이들은 급격한 종말을 강조하는 이단이나 새롭게 성서를 공부하며 자신들을 중요한 인물로 인정해 주는 이단들의 유혹에 쉽게 이끌릴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교회는 교회 내에서 소외되고 어려운 양무리를 잘 돌보고 행복하게 교회 생활할 수 있다록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
3.목회자들도 교인을 놓고 이단들과 경쟁하는 시대에 돌입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오늘날 목회자들에게는 무수한 경쟁자들이 많다. 경제적인 성장이 가져온 여가에의 욕구가 목회자들에게 중요한 경쟁자로 등장했다. 토요일이 공휴일로 되면서 교회 출석률이 20% 이상 감소한다는 보고는 바로 이를 증명한다. 스포츠도 목회자들의 경쟁자이다. 월드컵 축구 경기가 열리는 시간에 교인들의 교회 출석률이 얼마나 감소하는 지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단들도 교인들을 놓고 기성교회 목회자들과 경쟁하는 경쟁자로 등장하였다. 피터 버거는 『이단의 시대』(The Heretical Imperative)란 책에서 현대사회가 되면서 모든 것이 선택의 대상이 되었고 종교도 이제는 하나의 선택이 가능한 시대로 되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불교에 대한 지식이 대량으로 보급되고, 이슬람이나 다른 종교는 말할 것도 없고 이단들의 가르침도 인터넷이나 기타 매체를 통해 손쉽게 접근이 가능하게 되었다. 현대인들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을 하나 더 갖게 된 것이다.
나이키의 경쟁자가 닌텐도라는 것이 이해되는가? 현대 사회는 이처럼 서로 상관이 없어 보이는 것들이 서로 경쟁하는 시대가 되었다. 미국에서는 9.11 테러 이후 밖에 나가서 운동하는 것보다 가족이 함께 모여 닌텐도 게임을 하는 경향이 부쩍 늘어났다고 한다. 당연히 밖에 나가 운동하면서 신는 나이키 운동화는 적게 팔릴 수 밖에 없다. 이제 닌텐도는 어린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 부모가 자녀와 함께 하는 게임을 개발하여 더욱 매출을 올리게 된다. 마찬가지로 이단들도 자신들의 고유한 영역을 가지고 경쟁체제를 만든다. 국제적인 대회를 통해 젊은이들을 미혹하기도 하고, 예술단을 운영하기도 하며, 체육관을 빌려 대규모의 집회를 개최하기도 하여 세를 과시한다. 기성교회는 이런 면에서 이들에게 밀리는 느낌을 갖게 된다. 젊은 대학생들은 이들이나 기성교회나 종교 단체라고하는 동일한 인식을 갖고 있게 된다. 기성교회의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4. 기성교회는 교인들이 갖고 있는 건전한 종교적인 욕구를 만족시켜 주어야 한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초월하고자 하는 욕구,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고픈 욕구가 있다. 마음껏 소리 높여 노래하고 싶기도 하고, 기도하고 싶어 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황홀한 경험을 하는 것을 소망하기도 한다. 또 절실한 문제 앞에 기적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으며, 어쩔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위로받고 해결받기를 원한다. 이는 인간이 갖는 자연스런 본능이 아닐 수 없다. 기성교회는 이를 억누르고 위험시하며 배척하는 경향이 강하다.
기성교회의 예배는 너무 형식이 딱딱하고 그 가르침은 자신들의 생활과 거리가 먼 것으로 느껴지면 교인들은 다른 목자들을 찾는다. 치유에의 강한 욕구가 있는데 자신의 교회 목회자보다는 카리스마적인 은사가 있는 기도원을 찾거나 심지어 이단이라고 해도 아름 아름 듣고 찾아간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런 어려운 문제를 갖고 있는 교인들, 종교적인 요구를 채워질 방식을 교회에서는 적절하게 해소시킬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이들이 이단의 소굴로 스스로 들어가도록 방치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IV. 나가는 말
이상에서 이단이 어떻게 교회에 침투하고 또 사회적인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는 지 살펴 보았다. 이들은 분란이 있는 교회에 적극 개입하고 또 다양한 문화 활동이나 국제적인 집회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포교하고 있는 것을 살펴보았다. 나아가 대학 동아리 활동을 지원하고 학생회를 장악하여 포교하고 있다는 사실도 살펴보았다. 이런 영역은 기성교회가 별로 관심하지 않는 영역이어서 이단들이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것도 지적하였다.
이단들은 카리스마를 가진 교주가 자신들의 불행하고 어려웠던 삶을 보상받기 위한 욕구를 기성교회를 비판하는 것으로 보상받으려고 하면서 생겨나는 것을 지적하였다. 이들은 대단한 열정으로 기성교회를 비판하고 반사적으로 기성교회에 불만을 가진 교인들을 중점적으로 포섭하는 것도 살펴보았다. 이들은 또 사회적 불안이나 질병, 정리해고, 경제적인 고통 등 교인들의 약한 면에 대해 방언, 치유, 급격한 종말의 강조 등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하는 메시지로 추종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도 살펴보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들은 기성교회를 비판하여 기성교인들을 포섭하는 기회로 삼고, 자신들과 기성교회를 차별화를 시도하며 자신들의 추종자들을 단결시키는 효과를 낳는 것도 살펴보았다.
이들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인들에게 신학적인 사고를 강조하며 훈련시켜야 하며, 이들이 만족하고 행복한 교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와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나아가 이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하고 무엇보다 이들이 갖고 있는 종교적인 욕구를 만족시켜 줄 방안을 합리적으로 찾아야 한다는 사실도 지적하였다. 또한 목회자들은 이단들이 자신들의 중요한 경쟁자로 떠올랐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자신들의 목회적인 경쟁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며 계속 교육과 훈련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모든 영을 다 믿지 말고 그 영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인지 시험하라는 사도 요한의 경고는 오늘 날 우리에게 경종을 울려 주는 말씀이 아닐 수 없다. 각종 이단들이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기업, 문화행사, 국제 행사, 장학금 지원, 다양한 사회봉사 등을 통해 자신들의 이미지를 좋게 포장하고 호시탐탐 기성교회 교인들을 미혹하는 이 시기에 우리 목회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깨어 이들의 침투를 적극 막고 교인들을 보호하고 인도하는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하겠다.
最近韓国の異端の発生と動向
クチュンソ(釜山長老会神学大学校)
1. 序論
大田にある S 教会を見てみよう。この教会は私たちの教団と密接な関係を結んでいる大学の総長が長老として出席している教会だ。主任牧師が牧会をされて14年くらいになるが主任牧師と長老たちの間に牧会に対する異見があってお互いに争いが起きるようになった。ところで、主任牧師は主任牧師なりの勢力を形成して長老たちはこんな主任牧師に対抗するために、固く団結して勢力を集め始めた。お互いに多くの聖徒たちを味方にするために、手まめに聖徒たちと接触して新しい聖徒が入って来れば味方にしようとした。ところで、問題は長老たちのほうの聖徒たちだったが、主任牧師を反対する人たちの中のかなりの人が新天地という異端の追従者たちであるということだ。いわゆる秋収師(刈り手)たちであることで現われた。これらは主任牧師を追い出してその教会を自分たちの所有としようとしているのだ。
これらは成功的に長老たちを抱きこみ、しばらくしないうちにこの教会が丸ごと新天地の異端に移る運命に処するようになった。ところで、この教会の長老たちは全く主任牧師に協力しせずに当会が正常に集まって決意ができなくなった。都合がこのようだから老会(地域別の教会の集まり)も全然この教会の都合を把握することができない具合だ。また、主任牧師や一部聖徒も個人的に老会を経らないで総会で問題を申し立てることができないから、総会も介入する方法がないといういたわしい状況が続いている。
このように今日、教会内に紛乱があるようになると、異端は積極的に介入して、この教会を自分たちの勢力にしようとしている。牧師のリーダーシップが弱いとか開拓してから間もない教会などが異端の新しい攻撃目標で決まっている。こんなに異端は単純に聖徒たちを惑わすことを越えて、初めから教会自体を根こそぎのみこもうと虎視耽耽と狙っている。それだけではなく教会を開拓している牧師たちの教会成長への熱望を利用して、自分たちに従う者たちをまるで伝道されるように装って、開拓教会に浸透させて牧師に困難を与えて追い出した後、自分たちの物にする方法で勢力を拡張させている。甚だしくは自分たちに従う者たちを神学校に入学させて正式に神学を勉強させ、教団で按手を受けさせた後、自分たちの教理を伝えるようにする戦略も使っていることが把握された。したがって、各神学校ではこれら異端に従う者たちが入学しているのかどうかを選り分けるために輾転している実情だ。
それだけではない。異端は各種国際宣教大会として文化的な活動などをすごく強調する。ある異端団体は全国中高等学校学生たちを対象で英語雄弁大会を全国的にしたりする。この団体は海外布教も熱心にして各国の若者たちと国内の若者たちが英語を学んで友情を分かちあうようにする活動をおおやけにしている。英語を学ぶようにしようとする親たちの欲望を巧みに利用して自分たちの布教をしているわけだ。若い大学生たちが夏、冬の休み期間に彼らが主催する海外研修プログラムにたくさん参加していて事態は非常に深刻だ。各大学のサークルや学生会の幹事たちにこんな異端の追従者たちが積極的に布陣して、運営費を提供していろんな行事を誘致したりする。
また、リトルエンジェルスとかユニバーサルバレー団のような文化活動を通じて積極的に自分たちのイメージを改善することもあるし、鮮文大学校を建てて自分たちの布教活動を展開したりする。このように異端は自分たちの布教のために手段と方法を選り分けない。一歩進んでこれらは社会奉仕運動を通じてマスコミの注目を引くとか、または事業を先に立たせて彼らの影響力を発揮したりする。甚だしくはある異端は総合運動場を借りておおやけに体育行事をして、これを積極的にマスコミに広報して自分たちの教勢を誇示したりする。最近、文鮮明は自分所有の出版社ではないギムヨンサという有名な出版社を通じて自分の自敍伝である『平和を愛する世界人へ』と言う本を出版して物議をかもしている。自分たちの出版を担当する出版社ではない有力出版社を選択することで本の信頼度を高めて一般人たちの関心を集中させるのに、相当な效果を見たことが把握されている。
このように今日、異端は積極的に自分たちの布教活動を強化しているし、このためにいろんな文化活動、体育大会、海外研修プログラム、社会奉仕運動、いろんな収益事業、いろんな出版事業を積極的にしている。大学のサークルは大学生たちのための多くのプログラムなどに占領してからもう長い。学生運動の勢力が退潮した大学をこれら異端がリーダーシップを確保して自分たちの布教活動に積極的に活用しているのだ。そのため、既存のキリスト教団体サークルは返って少数になって、学生たちがそっぽを向く状態になってしまった。もちろん、これらはこのような活動に自分たちの団体名を明かしていないが、こんな活動を通じて間接的に自分たちの影響力を積極的に高めていることが把握されている。
2.異端はどうしてできるか
これらがもちろんこのように対外的にイメージを向上させる良い活動だけをするのではない。JMS異端の教主である鄭明石は実刑宣告を受けて、現在刑務所にいるし, 永生教の教主であるチョヒソンも殺人教師疑いで刑務所で死んだ。また、五大洋集団自殺事件のような社会に大きな物議をかもす衝撃的な事件を起こす異端たちもできる。このように社会的な物議をたくさん起こして既存の教会で異端とサイビだと指摘され、甚だしくはマスコミでも家庭を破壊して物議をかもす集団に罵倒されても、この人々がますます盛んなのはなぜだろう。 一体異端はどうしてたくさん生じ、これらはその勢力を広げて行くのだろう。これに対して簡単に見ようとする。
2-1. 教主のカリスマ
これらの異端の教主たちを見ると、たいてい貧しい家庭で生まれて正規の教育をあまり受け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という特徴を持っている。しかし、彼らは他人が自分に従うようにする独特の能力を持っているだけではなく、すごく熱情的な性格を持っている。彼らは正常な人々の健全な常識で見れば言葉にもならない主張を堂々と熱情を持って語り、自分たちに従う者たちが信じるようにしている。たとえば永生教の教主であるチョヒソンは永生教徒たちの集会で “永生教徒たちに無条件に自家用ジェット機を1台ずつ持つようにしてくれること”を約束し、従う者たちは“アーメン"と受け入れる姿が地上派放送で報道された。健全な常識を持った人々はこのような主張が持っている荒唐さをすぐ直視することができるが, 彼の追従者たちは熱狂的に教主に従っている。これは人々が彼に説得させられたからだ。
このようなカリスマ的な面を持って生まれるのか(art)または、学ぶことができることなのか(science)は論難が多いが, 明らかなことは彼らがこれを持っているという点だ。彼らは自分たちの追従者を徹底的に教育させて洗脳させて自分に付くようにする驚くべきな才能を持っている。 これは追従者たちの宗教的な性向が一団となってさらに力強くさせる。
2-2. 教主たちの不幸な生の軌跡
前でも指摘したが、異端の教主たちはほとんど裕福で幸せな家庭で生まれなかった。それで、彼らは一般的に苦難な幼い時代を過ごしたのが大部分だ。ところで、彼らは過去に自分たちの貧しくて不幸だった生活を追従者たちに一体化させて、彼らに希望のメッセージを装って伝達する。彼らの追従者たちは自分の不幸な人生の境遇が、いつかはあの教主のように変わるようになるはずだという幻想にはまるようになる。一方、異端教主たちは二つの方面で自分たちの不幸だった人生の軌跡に対する補償を受けようとする。
第一、これらは自分を神格化させる。すべての行事や教理の中心に自分たちがいようとする。再臨主、メシヤ、聖霊、母なる神等々、彼らが使う名称や地位は自分が神そのものと言うことを見せる。このような非常識な主張の背後には自分の不幸だった過去を補償させようとする心理があるのだ。
第二、彼らは自分の追従者たちを徹底的に支配して服従させることで、自分の不幸で貧しかった人生の苦痛を補償させようと思う。彼らの衣装は一様に派手で金で飾られている。これらは楽しんで王冠をかぶるとか、派手なマントを着けるとか、白馬に乗ると、白い洋服を着るとかして、追従者たちに威厳を取り揃えた姿に見えるようにして彼らと自分を求める。これを通じて追従者たちに境外感と服従心を鼓吹させることと同時に、自分自らも自分がすごい存在であることで満足するのだ。 もちろん、このような行いの背後には自分の過去の不幸だった人生に対する補償心理が作動することは言うまでもない。
一方、彼らの説教の大部分は物質的な成功や出世を保障するとか終末を強調するとか無条件的な罪の赦しにあることを見ることができる。また、彼らは自分の治癒の能力を強調するとか終末が臨んだ後の変化された身分を強調する。彼らのこのような荒唐な主張の後にも自分たちの過去に対する補償心理が作動するのは当然だ。
2-3. 既存教会に対する批判
異端の教主たちは一様に既存教会に対して批判的だ。これを通じて自分たちの団体に対する正当性を確保してまた既存教会の聖徒たちを追従者に変えることができるからだ。これらはすごく既存教会の弱点に対して正確に把握しながらこれを攻撃する。財政の透明性や聖書解釈、伝道への無能、 異言や治癒のような聖霊の能力不在、終末論の失踪、鬼神論の失踪などがこれらが主に攻撃する内容だ。これらが既存教会を批判することは次のような理由がある。
第一、既存教会と自分たちとの差別化が可能だ。自分たちは伝道が上手なのに既存教会は伝道することができないと批判する。既存教会は救いの確信や罪の赦しに対する確信を与えることができない。自分たちは安息日を守って過越の祭りを守るなど、聖書どおり生活するのに既存教会は安息日も守らないで、またクリスマスなど聖書にない節期を守ると攻撃する。したがって、自分たちが聖書に従う真のキリスト者だと主張する。彼らの攻撃に既存教会は無能力で宗教的な熱意もないし、教権争いもする宗教団体と転落することのように映る。
第二、既存教会を批判して反射的な利得を得る。彼らが既存教会を批判するのは既存教会の聖徒たちを奪って来ることができるからだ。前でも指摘したように人々の一番重要な布教対象は既存教会の聖徒たちだ。無料で聖書を教えるとか、癒しの集会に参加しようとそそのかす。初めは既存教会と何ら差を見せない場合もあるが、時間が経つほど徐々に自分たちの本根を現わす。彼らの教えには陰の中で既存教会に対する批判とともに自分たちの教理を入れ込むことで成り立っている。既存教会に対して反感を起こして自分たちに好感を感じさせる一石二鳥の效果がある。こんなに異端は既存教会を批判して既存教会の聖徒たちを対象で布教活動をする。
第三、既存教会を批判することで彼らは自分たちの集団の結束力を確保することができる。 彼らはまだ既存教会とは違い自分たちの生存自体の重要な価値になる。したがって、彼らは互いに結束してお互いに離れないように非常に注意して自分たちの追従者たちを管理する。彼らにとって布教の強調が極甚なことも、まさに自分たちが生存するためだからだ。こんなにこれらはいろいろな方法をつくして自分たちの勢力拡大に最善の努力をつくす。彼らの熱心を既存教会が付いて行きにくい。彼らの生存への欲求がもっと強いからだ。こんなに異端は自分たちの追従者たちを結束させて離脱を防止するために既存教会を猛烈に責める。
2-4. 既存教会人たちの惑い
異端が跋扈するもう一つの理由は既存教会の聖徒たちが異端に惑わされていくからだ。 異端の教えに凝る主な理由の中の一つが、既存教会の聖徒たちがこれらに惑わされるからだ。前で指摘したとおり異端は既存教会の聖徒たちに近付いて “救わされているか” “聖書どおり安息日を守るのか” “聖書どおり教会で女性たちが頭にベールをかぶるか” “聖書どおり異言やいやしの現象を経験しているのか” “聖書の意味を解釈しているのか”と言うなどの質問を通し、彼らの関心を誘導して既存教会を批判しながら自分たちの教理を入れ込む。このように彼らは既存教会が間違っている隙間を積極的に攻める。
既存教会が聖書の絶対的な権威を強調するが、聖書解釈の原理や神学的な思考を教えずに牧師の権威に寄り掛かって信仰生活をするように強制した側面も、これらの聖徒たちが異端にはまる言い訳となる。既存教会の聖徒たちが自分たちの教会で信仰生活する満足度が高ければ高いほど決して異端にはまらないことが分かる。しかし、既存教会の権威的で制度的な面に満足することができない聖徒たちは、異端の誘惑に誘われたい。したがって、既存教会も聖徒たちを神学的に訓練するようにするだけではなく、積極的に自分たちのタラントー賜物を発揮して, やりがいのある幸せな信仰生活をするように導き助けなければならない。
2-5. 社会的な不安
韓国の異端は日本の強点期を経って韓国戦争を経つ間にたくさん生じた。社会の大きい激変期に不安な心を巧みな教えで異端が跋扈したのだ。また、60年代 70年代の権威主義的な政権を通して急激な都市化が成り立ちながら、農村の故郷を去った都市の住民たちは経済的、社会的、文化的、政治的な疎外感を感じるようになった。彼らは新たに住むようになった環境に適応するのに相当な困難を経ったし、この世の中に対してあまり希望を見つけることができなくなる。 また、最近経済的な困難が近づきながら構造調整が日常化されて、貧しいものがますます貧しくなり、金持ちはますます金持ちになるという経済制度が動くことができない社会の規範で据えるようになると、彼らにとって、この世の中での成功の保障やいやしは大きな魅力に違いなかった。また、異端が終末が成り立った後、来世での高い地位は彼らにすごい関心の対象に間違いなかった。したがって、このような社会的な不安の要素や社会的な変動は異端が跋扈することができる良い社会的な土壌を提供したように見える。したがって、社会的な不安要因があるところには、いつも異端が跋扈し得る土壌があることと見える。
3. どのように異端に対処しなければならないか
前で見た通り、異端はすごいカリスマを持ってまた猛烈な熱情で自分たちのとんでもない主張を、既存教会に満足することができない聖徒たちやこの社会で希望を見られない人々にまき散らしている。ところで、これらの主張を神学的な思考に分析して見ると、彼らの主張の荒唐さを直視することができる。したがって、異端に対処するためには聖徒たちに神学的な思考を訓練させなければならないし、また教会生活に積極的に参加する道を開いておかなければならない。これから異端に対処する方案を見ることにする。
3-1. 神学的な思考を聖徒たちに教えなければならない
神学と言うのは、私たちが信じる信仰の内容を一貫性を持ち、体系的に述べることだと言うならば、神学の重要な機能の中の一つは、私たちが何を信じるべきか、また何を信じてはいけないかについて明らかにさせることにある。したがって、神学は異端の教えに対処するだけでなく、このように信じるべきだという教会の教えの必要によって生まれたのだ。このような神学ができた背景をよく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
神学的な思考を展開するための資料は大抵、聖書、伝統、理性、そして経験などに対して大低な同意があって来た。したがって、第一、一次的に教会では聖書に対する十分な理解と教育をさせなければならない。聖書に対して無知になればこれらの主張に易しく目が眩み得るからだ。しかし、異端も自分たちの主張を広げるために聖書を使う。ところで、彼らは聖書を字意的に解釈するので聖書だけで彼らの主張を広げるにはある程度限界をもつ。第二にだから、彼らに教会の伝統を教えることが重要だ。教会の伝統とは簡単に単純に言えば教会が聖書をどのように解釈して認めて来たのかを言う。教会の伝統は使徒からつながって来た信仰の規則(regula fidei)だった。教父たちは正経化の過程で信仰の規則に寄り掛かって伝統によって聖書の正経化の作業を完成した。したがって、伝統と聖書は互いに依存されている。異端はもちろん教会の伝統を無視する。
第三に, 異端の主張を退けるためには私たちの健全な常識を通じる神学的な思考を活用しなければならない。異端の主張を先後で厳格に計算して見れば、理解できないことがすぐ分かる。先に述べた通りにテレビに放映されたある異端の集会で異端の教主が自分の追従者たちに皆自家用の飛行機を買ってあげると言ったら、どれだけ多くの滑走路が必要だろうか、またはその多くの飛行機をどのように運行するかに対した対策がなければならないのに、これに対する説明は全然くないのだ。理性的に少しだけ考えればこれらの主張の荒唐さをすぐ明かすことができる。
第四、神学的な思考のために必要なことは経験だ。私たちは異端にはまって不幸な人生に導かれていく多くの人々を知っている。神学的な思考は私たちの経験と脈絡をよく見るように要求する。異端の教えにはまった人々は一時的には満足な人生を過ごして行くように見えるが、結局彼らの人生は破綻に至ることが分かる。私たちの経験で社会的な物議をかもしだす異端の誘惑に勝ち抜かなければならないだろう。
もちろん、神学者たちは教会に仕える学問としての神学を展開すると言いながらも、度の過ぎた難しい専門用語を使いながら一般人たちが分かりにくい論文を作成している。また、神学校教室では現場の教会とあまり関係がない主題を講義しているから、一般の聖徒たちが近付きにくい面がある。教室と講壇との距離がとても遠いことが事実でもあるが、一般の牧師たちが神学的な思考をして自分たちの羊たちに訓練させることが重要だ。このために牧師たちも絶えずにずっと教育をし続けなければならない。
3-2. 聖徒たちを教会生活に積極的に参加するよう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
教会は神の民、キリストのからだ、聖霊の被造物など多様に定義することができるが、何より人々が集まった共同体だ。人の共同体である教会は他の共同体と同じくさまざまな社会的な機能を行う。教会は個人に教えるとかリーダーシップを発揮するとか歌を歌うとか芸術的な能力を発揮する場を提供して、社会的な尊敬を受ける地位も付与する。聖徒たちの交わりの場でもあって、子供だけではなく、自分たちも教育を受ける機会も提供される。教会は道徳的に人々を統制したり、また自分たちの宗教的な欲求を満足させてくれたりする。したがって、教会に積極的な活動をするようになる時、異端にはまる誘惑が消えるようになる。
異端にはまる人々はこのような多様な教会の活動から疏外された人々の可能性が高い。教会から認められず、教会の中で重要な職責に入ることもできない。また、力強い宗教的な欲求を持っているが現在通う教会はあまりにも冷たいという不満を持つ場合もある。また、教会があまりにも現在の社会や世の中を容認していて、新しい希望の代案になることができないことで把握する。彼らは急激な終末を強調する異端や新たに聖書を勉強して自分たちを重要な人物として認めてくれる異端の誘惑にたやすく導かれるようになる。したがって、教会は教会の内で疏外されて困難な洋たちの世話をし、幸せな教会生活ができるように細心に気配りしなければならない。
3-3. 牧師たちも聖徒をおいて異端と競争する時代に突入したということを認識しなければならない
今日、牧師たちには限りない競争者たちが多い。経済的な成長がもたらした余暇への欲求が牧師たちに重要な競争者として登場した。土曜日が祝日になりながら教会の出席率が20%以上減少するという報告はまさにこれを証明する。スポーツも牧師たちの競争者だ。ワールドカップサッカーゲームが開かれる時間に信者たちの教会の出席率が減少するのを見れば分かる。このような状況で異端たちも聖徒をおいて既存教会の牧師たちと競争する競争者として登場した。ピーターバーガーは 『異端の時代』(The Heretical Imperative)と言う本で現代社会に到りながら、すべてのものが選択の対象になり、宗教もこれからはもう一つの選択が可能な時代になったということを指摘している。仏教に対する知識が大量に普及されて, イスラムや他の宗教は言うまでもなくて異端の教えもインターネットやその他の媒体を通じて手軽に接近が可能になった。現代人たちは選択するものをもう一つ持つようになったのだ。
ナイキの競争者が任天堂ということを理解できるか。現代社会はこのように互いに関係がなさそうなものなどが互いに競争する時代になった。アメリカでは 9.11 テロ以後、外に出て運動するより家族が一緒に集まって任天堂ゲームをする傾向が非常に増えたと言う。当然、外に出て運動しながらはくナイキの運動靴はあまり売れなくなる。いまや任天堂は子供だけではなく大人たち、親が子供と共にするゲームを開発してもっと売上げをあげるようになる。同じく異端たちも自分たちの固有した領域を持って競争体制を作る。国際的な大会を通じて若者たちを惑わしたり, 芸術団を運営したりして, 体育館を借りて大規模な集会を開催したりして勢力を誇示する。既存教会はこのような面でこれらに押される感じを持つようになる。若い大学生たちはこれらや既存教会や宗教団体という等しい認識を持つようになる。既存教会の思考の転換が必要だ。
3-4. 既存教会は信者たちが持っている健全な宗教的な欲求を満足させてあげなくてはならない
人間は誰も自分を超越しようとする欲求、自分の限界を脱したい欲求がある。思いきり大声で歌ったり、祈りたがったりする。これを通じて慌惚な経験をすることを願ったりする。また、切実な問題の前に奇蹟を望む切実な心があり、どうしようもない問題に対して慰められたり解決されることを願う。これは人間が持つ自然な本能に違いない。既存教会はこれを押えつけて危険視しながら排斥する傾向が強い。
既存教会の礼拜はあまり形式が硬くて、その教えは自分たちの生活と距離が遠いと感じると、聖徒たちは他の牧者たちを捜す。いやしへの強い欲求があるので自分の教会牧師よりはカリスマ的な賜物がある祈祷院を捜すとか、甚だしくは異端だと言っても堂々と聞いて尋ねる。先に述べた通り、こんなに難しい問題を持っている聖徒たち、宗教的な要求を満たされる方法を教会では適切に解消してあげる方案を講じなければならないだろう。彼らが異端の巣窟に自ら入って行くようにしてはいけない。
4. 終わりに
以上、異端がどんなに教会に侵透し、また社会的な影響力を拡大して行くのかよく見た。 彼らは紛乱がある教会に積極的に介入してまた多様な文化活動や国際的な集会を通じて若者たちに布教していることをよく見た。ひいては大学サークルの活動を支援して学生会を掌握して布教しているという事実もよく見た。こんな領域は既存教会があまり関心しない領域なので、異端たちがそれなりに競争力を持っているということも指摘した。
異端たちはカリスマを持った教主が自分たちの不幸で困難な人生を補償するための欲求を、既存教会を批判することで、補償されると思いながらできることを指摘した。彼らはすごい熱情で既存教会を批判して反射的に既存教会に不満を持った聖徒たちを重点的に抱きこむこともよく見た。彼らはまた社会的な不安や疾病、整理解雇、経済的な苦痛など、聖徒たちの弱い面に対して異言、いやし、急激な終末の強調など、それなりに代案を提示するメッセージで追従者たちを捕らえていることもよく見た。こんな過程を通じてこれらは既存教会を批判して既存聖徒たちを抱きこむ機会にして、 自分たちと既存教会の差別化を試みて自分たちの追従者たちを団結させる效果を生むこともよく見た。
これらに対抗するためには何より聖徒たちに神学的な思考を強調して訓練させなければならず、彼らが満足して幸せな教会生活ができるように細心な思いやりと関心が必要だということを指摘した。ひいては彼らが疏外されないようにし、何より彼らが持っている宗教的な欲求を満足させる方案を合理的に捜さ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事実も指摘した。また、牧師たちは異端が自分たちの重要な競争者に浮び上がったという事実を認識して、自分たちの牧会的な競争力を強化させるために努力して継続的な教育と訓練が重要だという事実を指摘した。
すべての霊をみな信じずに、その霊が神様から出たか試しなさいという使徒ヨハネの警告は、今日の私たちに警鐘を鳴らしてくれる話に違いない。いろんな異端たちが莫大な資金力を土台にして、企業、文化行事、国際行事、奨学金支援、多様な社会奉仕などを通じて自分たちのイメージで好きに包装して虎視耽耽と既存教会の聖徒たちを惑わすこの時期に、牧師たちと教会のリーダーたちが目覚め、彼らの浸透を積極的に阻み、聖徒たちを保護して導く使命をよく果たさなければならない。
♧ 질의응답 및 토론 ♧
사 회 : 구 춘 서 목사(총회이단사이비문제상담소장)
총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역대 조직
회기 |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 이단사이비문제상담소 | ||
위원장 | 서 기 | 회 계 | 소 장 | |
74 | 박종순 | 정행업 | ||
75 | 정행업 | 이상운 | ||
76 | 정행업 | 이상운 | ||
77 | 이상운 | 진희성 | 최삼경 | |
78 | 김태동 | 박종순 | 박명근 | |
79 | 김태동 | 손영호 | 이상재 | |
80 | 손영호 | 김창영 | 오재익 | |
81 | 강동수 | 이수영 | 오재익 | |
82 | 김창영 | 이정환 | 오재익 | |
83 | 강성두 | 김규병 | 정승준 | |
84 | 지원재 | 송인섭 | 박상철 | 김창영 |
85 | 박영철 | 최갑도 | 김우영 | |
86 | 임신영 | 이정환 | 김우영 | |
87 | 이수영 | 엄태근 | 박태규 | 정행업 |
88 | 이승영 | 김항안 | 양운국 | |
89 | 김항안 | 조특모 | 양운국 | |
90 | 황승룡 | 허승부 | 양운국 | 이형기 |
91 | 강신원 | 전덕열 | 김종우 | |
92 | 전덕열 | 한철완 | 원태희 | |
93 | 최영환 | 유영돈 | 원태희 | 구춘서 |
◈ 제 93회기 조직
위 원 장 : 최영환 목사 서 기 : 유영돈 목사 회 계 : 원태희 장로
위 원 : 한철완 김병복 류종상 박병식 변정식 김재영 김광재 윤동석
유한귀 이락원 김한식 최재국
전문위원 : 허호익 탁지일 최삼경
상담소장 : 구춘서
한글(이름) | 영문 | 소속단체 | 직함 |
1. 아이자와 토요시게 | AIZAWA TOYOSHIGE | 일본기독교단 총무간사 | 목사 |
2. 이와사키 타카시 | IWASAKI TAKASHI | 일본기독교단 무츠가와교회 | 목사 |
3. 코이데 노조미 | KOIDE NOZOMI | 일본기독교단 시즈오카쿠사부카교회 | 목사 교단선교위원장 |
4. 코카이 모토이 | KOKAI MOTOI | 일본기독교단 오기쿠보교회 | 목사 |
5. 시미즈 요시오 | SHIMIZU YOSHIO | 일본기독교단 교우다교회 | 목사 |
6. 스가 세이지 | SUGA SEIJI | 일본기독교단 토쿄아이린교회 | 목사 |
7. 타케사토 이타루 | TAKESAKO ITARU | 일본기독교단 시라카와교회 | 목사 |
8. 히사시 리츠오 | HISASHI RITUO | 가톨릭중앙협의회 홍보담당부장 | 신부 |
9. 이시카와 하루코 | ISHIKAWA HARUKO | 가톨릭중앙협의회 사회복지추진부장 | 수녀 |
10. 탁 지웅 | TAHK JIH WOONG | 일본성공회동경교구 네리마성가브리엘교회 | 부제 |
11. 이와사키 카즈히로 | IWASAKI KAZUHIRO | 일본뱁티스트연맹 에다미츠기독교회 | 목사 |
12. 키토우 마사키 | KITOU MASAKI | 링크 종합법률사무소 | 변호사 |
13. 와타나베 히로시 | WATANABE HIROSHI | 타무라쵸우 종합법률사무소 | 변호사 |
14. 이 춘희 | LEE CHUN HUI | 타무라쵸우 종합법률사무소 | 변호사 |
15. | 피해자 가족의 모임 | ||
16. 요시다 요시사토 | YOSHIDA YOSHISATO | 일본기독교단 신마츠도코우야교회 | 목사 |
17. 타케우치 타카토시 | TAKEUTI TAKATOSHI | 피해자 가족의 모임 | 일본기독교단 나고야히가시교회신자 |
◆ 일본기독교단 참석자 명단 ◆
名 前 | 団 体 名 | 名 称 | |
1. 愛澤豊重 | AIZAWA TOYOSHIGE | 日本基督教団総務幹事 | 牧師 |
2. 岩崎 隆 | IWASAKI TAKASHI | 日本基督教団六ツ川教会 | 牧師 |
3. 小出 望 | KOIDE NOZOMI | 日本基督教団静岡草深教会 | 牧師 教団宣教委員長 |
4. 小海 基 | KOKAI MOTOI | 日本基督教団荻窪教会 | 牧師 |
5. 清水与志雄 | SHIMIZU YOSHIO | 日本基督教団行田教会 | 牧師 |
6. 須賀誠二 | SUGA SEIJI | 日本基督教団東京愛隣教会 | 牧師 |
7. 竹迫 之 | TAKESAKO ITARU | 日本基督教団白河教会 | 牧師 |
8. 久志利津男 | HISASHI RITUO | カトリック中央協議会広報担当部長 | 神父 |
9. 石川治子 | ISHIKAWA HARUKO | カトリック中央協議会社会福祉推進部長 | シスタ- |
10. 卓 志雄 | TAHK JIH WOONG | 日本聖公会東京教区練馬聖ガブリエル教会 | 執事(副祭) |
11. 岩崎一宏 | IWASAKI KAZUHIRO | 日本バプテスト連盟枝光キリスト教会 | 牧師 |
12. 紀藤正樹 | KITOU MASAKI | リンク総合法律事務所 | 弁護士 |
13. 渡辺 博 | WATANABE HIROSHI | 田村町総合法律事務所 | 弁護士 |
14. 李 春煕 | LEE CHUN HUI | 田村町総合法律事務所 | 弁護士 |
15. | 被害者家族の会 | ||
16. 吉田吉里 | YOSHIDA YOSHISATO | 日本基督教団新松戸幸谷教会 | 牧師 |
17. 竹内俊隆 | TAKEUTI TAKATOSHI | 被害者家族の会 | 日本基督教団名古屋 東教会信徒 |
♧ MEMO ♧
A |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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