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1 장 ------ 運命을 건 勝負
대청.
말을 하기 좋아 대청이라고는 하지만 썩어빠진 널판지만이 보기
흉한 모습으로 늘어져 있는 대청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삭막했다.
그러나 대청은 이미 누군가의 손에 의해 깨끗이 정돈이 되어 있
어 사람이 앉아 있는데에는 별로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
금천풍호는 난향군주와 암천오제에게 자리를 권하며 입을 열었
다.
"초청을 하지 않은 손님이니 자리 탓은 하지 마시오."
실로 안하무인격인 말.
순간 암천오제 중 성질이 급하기로 소문이 난 혈제의 얼굴이 울
그락불그락 변했다.
변하기는 시제와 야제도 마찬가지.
그러나 그들은 난향군주의 얼굴만을 한번 힐끗 응시하고는 아무
런 기색도 없이 침묵을 지켰다.
난향군주의 얼굴에 기이한 미소가 서렸다.
"그럼 앞으로 정식으로 초청을 하시면 되잖아요."
난향군주.
서하국의 부흥을 꾀하고 있는 이 여인의 특성이라면 어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대가 아무리 모욕적으로 나오더라도 그것이 자신에게 득이 될
수 있다면 참아낼 수 있는 여인.
금천풍호의 눈빛에 순간적으로 감탄의 빛이 서렸다.
(실로 무서운 여인이군. 스스로 감정을 죽일수 있다는 그 하나만
으로도 이 여인의 무서움은 입증이 된 것이다. 사실 가장 힘든 싸
움이 자신의 감정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기색을 겉으로 드러낼 금천풍호는 아니다.
"후후후. 나는 문득 군주를 보면서 악어라는 동물을 생각했었
소."
악어라니......
이렇게 아름다운 악어도 있었던가?
남향군주의 얼굴에 재미있다는 식의 미소가 떠올랐다.
"하필이면 왜 악어인가요?"
"사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악어라는 동물은 잔인하다고만 믿지
만 그렇지만은 않소. 악어는 하나의 먹이를 마련하기 까지 자신의
체면 따위는 돌보지 않고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낫게 기어가는 동
물이오."
"그래서요?"
"그런 면에서 강함만을 자랑하는 호랑이나 빠름만을 믿는 표범에
비해서 악어는 강함을 과신하지 않고 목적을 위해서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 영활한 동물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오."
"그럼 제가 공자님의 눈에는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
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인단 말씀이신가요?"
금천풍호는 빙그레 웃었다.
어둠 속의 후광처럼 보는 사람들에게 상큼한 역동을 주는 그 미
소는 그래서 더욱 눈부신 마력을 풍겼을 게다.
"최소한 저의 눈에는 군주가 그렇게 보였소."
난향군주를 비롯한 암천오제의 얼굴이 약간 굳어졌다.
그것은 금천풍호란 인물이 서하국의 지고한 신분을 지니고 있는
난향군주를 악어라고 비유해서만은 아니다.
금천풍호의 당당함.
어떠한 상황에서건 자신의 의사는 명확히 피력할 수 있는 사람.
그들은 지금까지 난향군주 앞에서 이렇듯 자신의 느낌을 거짓과
꾸밈없이 이야기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었다.
(이 사람... 큰 인물이다!)
난향군주의 눈에 번뜩 큰 이채가 서렸다.
아무리 난향군주가 서하국의 부흥을 위해 대권을 지니고 있는 사
람이라고는 하지만 남자를 보는 여인의 눈은 한가지다.
그래서였을까?
난향군주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떠오르며 엉뚱한 말이 흘러나
오는 것은?
"이제야 음월이 그토록 공자님의 곁에 머물기를 바랬는지 알수
있을 것 같아요."
"......!"
음월을 비롯한 암천오제의 얼굴에 각기 기이한 반응이 떠올랐다.
음월은 얼굴을 약간 붉힌채 고개를 푹 숙였으며, 혈제와 시제는
음월과 금천풍호를 번갈아 응시하였으며, 귀제 낭천의 암울한 눈가
에는 보일듯 말듯한 미소가 떠올랐으며, 야우의 고독한 얼굴에는
이 순간 한 가닥 서글픈 정의 찌꺼기가 묻어났다.
사랑했던 여인이다.
어둡고 지친 육신을 사랑의 오라기에 매달아가며... 그러나 자신
이 사랑했던 여인은 지금 가까이 있으면서도 너무 멀리 서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그때 문득 난향군주는 이미를 종 잡을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뜻
밖의 제의를 금천풍호에게 던져왔다.
"공자님. 저와 도박을 한번 해보시지 않겠어요?"
"도박을......?"
"그래요."
"도박이라는 것은 어떤 목적을 위해서 즐기는 것으로 알고 있소.
가령 황금을 목적으로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오."
"그래요."
"......!"
"그러나 공자님과 저는 황금같은 것을 목적으로 도박을 하기에는
너무 무의미해요. 그래서 저는 재미있는 방법을 생각해 봤어요."
금천풍호는 난향군주의 얼굴만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비록 은은한 미소를 떠올리고 있는 난향군주의 얼굴이었으나 방
심해서는 안된다.
저 흘러가는 듯한 한가닥의 미소에도... 유혹을 하듯 들려오는
한마디 속삭임에도 결코 방심할수 없는 여인이 바로 난향군주라는
여인이다.
"도박에 거는 것은 무엇이오?"
난향군주는 너무도 태연하게 말을 했다.
"우리들의 운명이예요."
"운명?"
금천풍호의 얼굴이 약간 굳어졌다.
다른 것이라면 도박을 못할 것도 없지만, 도박에 걸린 물건이 자
신들의 운명이라면 문제는 심각해도 한참 심각한 것이다.
그렇다고 거절을 할수만이 없는 것이 금천푸우호의 입장이다.
"어떤 식의 운명이오?"
"지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의 한가지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예요."
"후후후! 군주께서는 아예 이 금천풍호를 군주의 종으로 만들고
싶으신 모양이구려."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구요."
"이것은 실로 대단한 유혹이구려."
"......!"
"잘만하면 아름다운 여인을 얻을 수도 있고 서하국의 모든 것도
손아귀에 넣을 수가 있으니 말이오."
"그 말씀... 승낙하신 걸로 믿겠어요."
금천풍호는 암천오제와 난향군주를 바라보며 나직히 웃었다.
그리고 던지는 말.
"한가지 물어봐도 되겠소?"
"얼마든지요."
"이것은 어디까지나 물어보는 것이오만 그 운명이라는 것에는 본
인이 원하는 모든 것을 군주에게 요구할 수도 있소."
"무슨 말씀을 하고 싶은 것이오?"
"후후후. 요즘에는 부쩍 밤이 외롭다는 것을 느끼고 있소. 나이
탓이라고도 생각을 해보았지만 그런 것만은 아닌것 같소. 신이 밤
을 만들었을 때는......"
금천풍호의 말은 길게 이어지지를 않았다.
암천오제 중 혈제가 그의 말허리를 잘라왔기 때문이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리는 게냐? 네 놈의
혓바닥을 뽑아 얼마나 질긴지......"
막 손을 뻗어 금천풍호의 목을 옳아매가던 혈제.
허나 그의 말과 행동은 난향군주의 한마디에 뚝 멈춰 섰다.
"암천오제는 이번 일에 끼어들지 마라."
암천오제는 똑같이 몸을 떨며 이내 침묵으로 돌아섰다.
이번에는 난향군주의 시선이 금천풍호를 향했다.
"물론이예요. 이겼을 경우에는 가능한 일이예요."
"후훗. 좋은 말이오. 잘만하면 요즘처럼 이부자리가 허전한 것은
간단하게 면할수 있겠구료."
성숙한 여인의 앞에서 쉽사리 내뱉을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저속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는 금천풍호였으나 그 모습
이 추하거나 저질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아니 오히려 격식이라던가 상황을 가리지 않는 그의 모습이 더
고결해 보인다면 어불성설이라고 욕할는지......
그래서인지... 난향군주는 품 안에서 하나의 금갑을 꺼내며 금천
풍호를 향해 예의 화사한 미소를 떠올렸다.
"저도 사실은 요즘 부쩍 밤이 길게 느껴졌어요."
말을 하면서 그녀는 금갑의 뚜껑을 열었다.
미리 완벽한 준비를 해온 듯......
금갑 속에는 도합 열개의 주사위가 들려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강하기로 소문난 곤오산의 곤오취옥으로 만든 주사위였다.
"도박의 도구로는 주사위를 가져왔는데 마음에 드세요?"
"후후... 좋소."
"그리고 한 가지 이번 도박에는 어떠한 편법을 써도 괜찮다는 거
예요."
"편법?"
"그래요."
"......!"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열두개의 주사위를 던져 가장 적은
점수가 나오는 사람이 이기는 거예요."
"꺼림직한 마음은 있으나 역시 마음에 들었소."
난향군주는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럼 제가 먼저......"
난향군주는 주사위를 자신의 앞으로 가져갔다.
이어 금갑을 요란하게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따르르르르르... 따르륵......
난향군주는 현란하게 손을 움직이며 내심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금천풍호... 너는 애초에 도박에 응하지를 않았어야 했다. 최소
한 이 난향군주가 어떤 여자라는 것을 알았다면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돌렸을까?
금천풍호를 제외한 암천오제의 얼굴에는 각기 알수 없는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특히 음월의 얼굴은 안타까울 정도로 굳어져 있었다.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자신의 정신적인 지주처럼 믿고 있는 금천
풍호가 만약 이 시합에서 진다면 자신의 운명이라는 것은 어찌 되
는 것인가?
그것은 물어볼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때 난향군주는 주사위통을 한차례 길게 돌리더니 탁자위에 탁
뒤집었다.
뒤이어 모든 시선이 쏠리는 가운데 주사위통이 열렸다.
순간 혈재를 비롯한 암천오제 중 시제와 귀제의 얼굴에 득이한
미소가 떠올랐으며 반대로 음월의 얼굴에는 아득한 절망감이 서렸
다.
(저... 저럴 수가?)
대체 난향군주의 점수가 어떤 것이기에 음월이 저토록 아득한 절
망감에 휩싸이는 것인가?
보라.
<일(一).>
열두개의 주사위 점수는 그 총합계가 단 일점에 불과했다.
일점이라니......
무슨 얼토당토하지 않은 말이냐고 반문을 할지는 몰라도... 분명
히 난향군주의 주사위 점수는 단 일점인 것을 어찌하란 말인가?
왜냐하면 말이다.
열두 개의 주사위, 그것이 지금 벽돌을 쌓아 올리듯 차곡차곡 쌓
여진 채 맨 위에 드러난 점수는 단 일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편법을 사용해도 된다는 말은 바로 이런 것이었을 게다.
음월은 어이가 없었다.
(이... 이런 일이 있을 수가......?)
많이 살아온 인생은 아니라고 하나, 그러나 그녀는 살아온 이날
까지 열두 개의 주사위를 던져 단 일점의 점수가 나왔다는 말은 들
어본 적이 없었다.
"이제 공자님 차례예요."
난향군주는 여유있는 미소를 지으며 주사위통을 금천풍호의 앞으
로 내밀었다.
하기야 이런 상황이라면 승리를 장담해도 무방하리라.
왜냐하면 주사위에서 일점보다 낮은 점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천풍호는 의미심장가 미소를 던지며 주사위통을 살며시
움켜잡았다.
뒤이어,
스윽......
금천풍호는 주사위통을 흔드는 둥 마는 둥 하더니 힘없이 주사위
통을 탁자 위에 뒤엎는 것이 아닌가?
이어 그는 주사위통에서 슬그머니 손을 뺀 후 은은한 미소를 지
어보였다.
의아한 것은 난향군주와 암천오제였다.
"아예 포기한 것인가요?"
금천풍호는 난향군주를 향해 실낱같은 미소를 보내며 고개를 저
었다.
"그럴 리가 있겠소. 본인의 운명이 걸려있는 도박인데."
"그럼?"
금천풍호는 조용히 주사위통을 응시하며 또다시 그 의미를 종잡
을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점수가 궁금하시거든 군주께서 직접 뚜껑을 열어보시는 것도 괜
찮을 것이오."
너무도 여유만만한 금천풍호의 태도에 그의 뒤에 서서 안타까운
모습을 하고 있는 음월은 심장이 바싹바싹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대체 저 사람은 뭘 믿고... 일점보다 아래 점수는 없다. 그렇다
면 저 사람이 이길 수 있는 점수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잘해야
비기는 것뿐이다.)
그러나 음월의 이러한 불안은 난향군주의 손이 주사위를 여는 순
간에 부질없는 걱정꺼리였다는 것을 알았다.
<무(無).>
오......!
이럴 수가?
놀랍게도 금천풍호의 주사위 점수는 단 일점도 나와 있지를 않았
다.
그도 그럴 것이... 열두 개의 주사위는 이 순간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잘디 잔 가루로 변해있는 것이 아닌가?
주사위가 아예 형체도 없이 가루로 변해버린 판국에 어디 점수라
는 것이 있겠는가?
(이... 이런......!)
난향군주는 뒷머리를 호되게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설마 그녀는 금천풍호가 이런 방법을 쓰리라고는 계산을 못한 것
이다.
그러나 그런 것에 놀란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가루로 변해버린 주사위에 있었다.
분명히 보아왔지만 금천풍호는 주사위를 한번 만지작거렸을 뿐이
다.
그럼에도 주사위는 모두 가루로 변해 있었으니......
생각해보라.
웬만한 고수들이 어디 흉내라도 낼 수 있는 무학인가?
더구나 주사위를 만든 재질이 단단하기로 소문이 난 곤옥산의 곤
옥취옥임에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체 그 짧은 순간에 금천풍호는 어떤 방법으로 주사위를 아무런
음향도 없이 가루로 만들어 버린단 말인가?
그때에야 난향군주를 비롯한 암천오제는 금천풍호의 무학이 자신
의 상상을 넘어서는 것이라는 걸 느꼈다.
시선!
난향군주를 응시하는 금천풍호의 시선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패한 것을 시인하겠소?"
난향군주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시인하겠어요. 편법을 제의한 것은 저였으니까요."
"그럼 본인이 군주에게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소?"
난향군주는 씁쓰레한 미소를 머금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신의가 없는 여자라고 흉을 보겠죠."
"그런 일은 없기를 바라오."
"좋아요. 말씀해보세요."
난향군주의 승락에 금천풍호의 시선이 그의 뒤에 있는 음월에게
향했다.
이어 난향군주에게 시선을 돌려 금천풍호는 조용하나 힘 있는 음
성으로 말했다.
"본인이 부탁을 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여인에게 더 이상의
구속을 말아달라는 것이오."
"부탁하고 싶은 것이 그것뿐인가요?"
금천풍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
"저는 한 인간의 인생이 어떠한 야망의 재물이나 구속으로 얽매
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하오. 사실 본인은 그동안 음월의 고통을
많이 보아왔소. 나 하나만의 도취와 행복도 중요하지만은 남의 불
행도 중요하다고 느껴왔었소."
"......!"
난향군주와 암천오제는 마치 넋 나간 사람들처럼 금천풍호의 얼굴
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웃고 떠들 때는 몰랐더니... 저렇듯 타인의 고통을 알아줄 때는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포용할수 있을 듯 고절한 기풍이 풍긴다.
난향군주는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그리고 말.
"공자님의 부탁을 받아들이겠어요."
순간 난향군주의 폭탄선언을 듣고 있던 음월의 눈에는 갑자기 물
기가 서리며 눈가에는 경련이 일어났다.
오! 그 얼마의 세월이었던가?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잔인한 지옥수련을 거쳐야
했고 여인만의 가장 소중한 평범한 행복마저도 뒷전으로 밀어둔 채
보내야만 했던 수많은 세월들......
그래서 죽음을 각오하고 사문을 배신했더니... 죽음의 능선을 넘
고넘어 오늘에 이르렀더니... 급기야 그녀의 운명을 옭아매고 있는
질기디 질긴 사슬은 이렇게 찢어지는구나.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는 음월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금천
풍호는 난향군주와 암천오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오늘은 즐거웠소."
"......!"
"그리고 오늘은 이 여인을 위해 축배를 마련해야 할 것 같소. 군
주와 다른 분들은 다음에 적당한 기회를 빌어 초대를 하겠소. 그럼
오늘은 이만 실례를......"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금천풍호는 아직도 파르르 떨고 있는
음월을 데리고 대청의 문쪽으로 신형을 옮기고 있었다.
난향군주.
서하국의 차디찬 야망을 갈무리하고 있는 이 여인은 금천풍호와
음월의 모습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일까?
수더분하게 번져오는 이 허전함은?
(금천풍호... 다음에 만날 때는 이렇게 주저앉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나는 이미 너라는 인간을 지목했다.)
난향군주의 눈.
무지의 심연처럼 깊어만 가는 그 눈은 마치 큰 일을 저지를 사람
의 눈처럼 현요로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상심한 여인의 마음처럼, 아니 모질고 사나운 집착력을 지닌 그
런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