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문예대학 출신 작가 작품>
그래, 생불이네
이홍선
경칩이 지났다. 한강근린공원의 수양버들 실가지에 연둣빛 기운이 돈다. 개나리는 노릇노릇 봉오리를 맺고 목련도 하얀 꽃망울을 틔웠다. 따스한 봄바람에 만물이 소생하고 있다.
카톡이 울린다. 파란 수술 보에 싸인 손자 사진과 함께 “11시 15분이에요.” 아들이 보내온 문자다. 연이어 두 개의 동영상이 떴다. 갓 태어난 아이는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우렁차게 울어대고 간호사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탯줄을 묶은 다음 자르고 있다. 또 하나의 동영상을 열었다. 간호사가 수술 장갑을 낀 손으로 아이의 발가락과 손가락을 일일이 펴가며 설명하고 팔찌에 쓰인 글자도 하나하나 읽더니 손목에 채운다. 그 옆에 긴장된 표정으로 서서 꼼꼼하게 확인하고 있는 아들이 대견하면서도 애틋하다.
목 빼 기다리던 아들의 전화다.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아기도 정상이고 산모도 건강하단다. 몸무게를 물으니 3.3㎏이라고 한다. 예정일 보다 열흘 앞선 택일 날의 제왕절개 출산에 걱정한 터이다. 며느리가 수술실에 들어가면서 울었다는 말을 들으니 가슴이 먹먹하다. 내 눈엔 아들 내외는 아직도 어린아이인데 애탔을 모습이 아들 낳을 때 나를 보는 듯 눈에 선하다.
휴대전화 앨범에 아기의 태명인 오름이 방을 만들었다. 아들 내외가 보내온 사진을 날짜순으로 갈무리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맨 먼저 사진부터 보고, 자다가도 한 번 더 보고, 심지어 밥 먹다가도 본다. 보고 또 보아도 물리지 않는 신기한 요술 방망이다.
자기가 겪어봐야 다른 사람 심정을 안다는 말이 딱 맞다. 손자 사진을 불쑥불쑥 코 밑에 들이대며 자랑하는 할머니를 볼 때마다 나는 절대 주책을 부리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있었지만 간곳없다. “다른 사람 눈에는 그렇게 예쁘게 보이지 않아요.”라는 아들의 말도 개의치 않고 손자 자랑에 나섰다. 서예 공모전 출품 글씨 쓰기에 몰입해 있는 회원들에게 다가가서 옆구리를 쿡쿡 찔러가며 손자 사진을 내밀고는 반응을 살폈다. “이마가 잘생겼다.” “밉상이다.” “남자답게 생겼다.”는 넉넉한 덕담에 어깨가 으쓱해진다.
손자가 태어난 지 이십 여일 만에 산후조리원에서 돌아왔다. 며느리가 손자를 내 품에 조심스레 안겨 준다. 편안하게 잠든 모습이 하늘에서 금방 내려온 천사처럼 예쁘다. 넓은 이마와 오뚝한 코, 자그마한 입술과 도톰한 귓밥, 어느 한 곳도 빠진 데 없이 잘생긴 얼굴이다. 여느 할머니들과 다를 바 없이 눈에 콩깍지가 씌었는지 손자 바보가 되어 간다.
병원에서 산후조리원으로 가는 길에 며느리는 감싸 안은 포대기를 열어 잠든 아이의 얼굴만 잠시 보여 주고 급히 떠났다. 아무리 보고 싶어도 코로나로 병원도, 산후조리원도 갈 수가 없다. 아빠조차도 면회가 되지 않는 조리원은 휴대전화 영상통화로 오전, 오후 20분씩 아이를 보여 준다. 그런 처사에 감질이 났다. 자는 모습만 볼 때도 있고 영상 기계가 고장 나기도 하고 더구나 아이가 울기라도 하면 간호사가 안고 가서 보지 못할 때도 있었다.
품에 안은 손자가 울기 시작하니 정신이 없다. 점점 커지던 울음소리는 며느리가 젖병을 물리자 이내 조용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울지 않는 아이를 안아 주는 일뿐이다. 분유는 분유 타는 기계가 하고 젖병 소독은 소독기가 한다. 아이 옷 세탁하는 세탁기가 따로 있고 건조기가 말려 준다. 포대기 속에서 옴지락옴지락하는 신생아를 목욕시키는 일도 버겁고 우유를 먹이는 일도 땀이 난다.
문득 친정엄마 얼굴이 떠오른다. 출산 예정일에 맞춰 한 달의 휴가를 받았지만 보름이 지나도 기다리던 아이는 머뭇거리며 애만 태웠다. 유도 분만으로 아이를 낳고 2주 만에 출근하니 일이 산더미 같이 밀려 있었다. 배꼽도 떨어지지 않은 아이를 엄마에게 맡기고 늦은 밤에 퇴근하면서도 당신의 고충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엄마는 당황스럽고 힘든 일을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다. 외손자 둘을 애지중지 키우고 먼 길 떠나신 엄마가 오늘따라 그립다.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거룩하고도 존귀한 일이다. 고려 때 대선사 보조 스님은 맹구우목盲龜遇木 섬개투침纖芥投鍼이라 했다. 100년마다 한 번씩 바다 위로 떠올라 숨을 쉬고 다시 내려가야 하는 눈먼 거북이가, 숨을 쉬려 물 위로 올라왔다가 목을 내민 곳이 우연히 물 위에 떠 있던 나무판자의 구멍이었다. 그 구멍에 고개를 끼워서 숨을 쉬는 것이니 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또한 바늘을 던져 그 작은 겨자씨에 꽂히는 것과 같은 어려운 일이 있겠는가. 육도윤회 중에 이만큼이나 어렵게 사람의 몸을 받아 태어난다는 것이다.
《열반경》에서 일체중생개유불성一切衆生皆有佛性을 설하셨다. 모든 중생이 다 부처 성품, 불성佛性이 있다는 것이다. 길가의 풀 한 포기, 돌 하나도 부처 아닌 것이 없을진대 하물며 사람은 얼마나 더 특별한 존재이겠는가
결혼한 지 다섯 해가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다. 둘의 눈치만 보며 말도 못 꺼낸 걱정이 무시로 일었다. 수만 겁 인연의 불성을 받아오느라 그리 긴 시간을 기다렸나 보다. 그래, 내게 온 생불이네. 세상 모든 이에게 크고 넉넉하게 이로움을 주는 사람이 되라 손 모은다
(《수필문예》 제21집, 2022. 수필문예회)
-------------------
지은이 프로필
《수필과비평》 등단
수필문예회, 대구수필과비평작가회의 회원.
2019, 2021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장려상
대구수필문예대학 22기 수료.
csomos387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