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월악산 산적두목.
킨케이드님 내 구역 지나간다기에 통행세 삥뜯으려고 길을 나섰다.
원래는 애들을 푸는데 상대가 워낙 거물이라 예의가 아닌 거 같아 두목이 몸소 영접을 했다.
아침 호수가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거린다.
호숫가 언덕에 육중하게 앉은 카페에서 오랜만에 인사를 드린다.
1차 방랑 때의 헙수룩한 모습보다 지금의 깔끔한 용모가 훨씬 좋다.
그간의 근황과 길에 대한 이야기로 회포를 풀다.
킨케이드.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남주인공 로버트 킨케이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특유의 망망한 눈빛이 오버랩되는 분위기와
방랑벽도 닮은 사내를 마주하고 있으니 기분 업된다.
나도 어느 한때는 배낭을 지고 달팽이 생활을 한 전력이 있거니와 그때는 기껏해야 두 달 남짓이었고 보통은 한 달 가량 돌아다니다 돌아오곤 했다.
킨케이드님은 어느덧 달수로 다섯 달째다.
나는 이제 저만한 정열이 쇠락해졌다.
킨케이드님의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보며 아주 잠깐 예전의 치열했던 방랑벽이 가슴 한켠으로 차오르는 느낌이 일었다.
그러나 아주 잠깐이었다.
뜨겁게 포도를 달구는 한낮의 뙤약볕에 그만 다시 수그러졌다.
곧 무자비하게 닥쳐올 열기를 도저히 참아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나는 못하더라도 킨케이드님의 장도에서 대리만족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짧은 만남 후 킨케이드님은 어느 곳을 향해 햇빛 속으로 들어갔고,
나는 돌아오는 길에 신륵사에 들러 잠깐의 불멍을 한다.
신륵사 도량에서 올려다보는 월악산의 헌걸찬 자태가 묵지근하게 가슴을 뛰게 한다.
저길 오르고 싶다. 깊은 계곡과 숲으로 들어가 단 하루만이라도 누웠다 나오고 싶다.
여름이 바투 다가와 있었다.
점심 먹은 식당 주인 내외는 연신 킨케이드님의 행적을 신기해하고 감탄한다.
우리 둘에게 특별히 주는 거라며 마스코트를 내어 준다.
나는 차에, 킨케이드님은 수레에 걸었다.
이 행운의 마스코트와 식당 내외의 응원을 더 얹어 킨케이드님의 앞길에 무운을 빌며.
Good Luck, 로버트 킨케이드.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중에서 : Doe Eyes
첫댓글 ㅋㅋ 설리님
삥뜯으려고 가 아니고
삥뜯낀것 같은데 ᆢ
섭이앤생각 ^^
아, 그 영화에서의 킨케이드...(별 걸 다 기억하시는 설리님!)
음악이 너무 좋네요.
그리고,꽃잎이 세 개밖에 없는 것 같은 저 이쁜 꽃의 이름은 뭐에요?
으름덩굴 꽃이예요...
그 영화처럼
누가 뿅하고
넘어가면 좋겠다
오늘 계탄날
멋지요
두사람 다~~
ㅋㅋ~~ 충주 원빈님이 궁금했는데 법화산길에서 뵐줄이야
감동였습니다^^
저를 보셨으니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길 겁니다^^
그날 얼음처럼 차가운 칡즙 한 팩에 온몸이 힐링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동ㆍ서ㆍ남ㆍ북으로
방랑자 설리님이 거물이라 칭하는
킨케이드님이 그 킨케이드인줄
이제 앎.
나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작가인 ' 로버트 제임스 월러 '를
좋아해요
자신의 이름을 따서 로버트를 주인공으로 쓴 자전적 소설같은 ...
재미있네요
여행, 방랑 무엇이라 이름해도
서로 코드가 맞는 사람들의 만남은 이야기거리가 풍성할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를 2번이상 보고도 주인공 이름은 기억에 없는걸보면 아직 전 방랑이 아닌 걸로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