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산지가 국토의 70%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 많은 산지에서 그나마 이름을 부여받은 산은 1할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 학계의 추정이다. 2007년 12월, 산림청에서는 전국(남한)의 산이 모두 4,440개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산 이름은 ‘봉화산’으로 전국에 47개가 있다고 한다. 이렇게 동일한 이름을 가진 산이 많은 반면 아직도 이름 없는 산이 부지기수다.
▲ 쌍두1봉으로 오르는 암릉은 아찔하고 오금저리는 스릴감을 맛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경북 청도군과 울산광역시 울주군의 경계에 위치한 상운산(上雲山)은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할까? 영남알프스의 맹주봉인 가지산 북동릉 상에 위치한 이 산은 지형도에는 표기가 없지만 최근에는 어엿한 이름을 달고 한자리를 잡은 셈이다.
산세로 본다면야 가지산 줄기에 자리한 위성봉 내지는 전위봉에 속할 뿐이다. 가지산 귀바위 옆에 솟은 이 봉우리는 지역 산악회인 상운산악회에서 모산(母山)으로 정하고 상운산이란 이름을 붙여 정상 표지목을 세운 것이다. 이는 부산의 운봉산악회가 명명한 운봉산(2010년 3월호)과 같은 내력을 안고 있다.
어찌되었건 최근 이 산은 북릉의 쌍두봉을 연계한 등산코스가 주목을 받고 있다. 등로는 삼계리 천문사를 들머리로 북릉을 따라 황등산~쌍두봉을 거쳐 상운산에 올랐다가 가지산 북쪽의 학심이골~큰골~운문사로 해서 운문사 버스정류장까지다. 한여름 산행치고는 다소 빡빡하지만 능선 산행에서 흘린 땀을 깊은 계곡에서 탁족으로 식히고, 고찰인 운문사 절집에 들러 마음을 정리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 싶다.
삼계리 버스정류장에 하차, ‘천문사’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향한다. 천문사까지는 계류를 따라 5분 정도면 닿는데 왼편 산릉에 낙타 등처럼 헌걸차게 솟은 쌍두봉이 눈앞에 펼쳐진다. 천문사 오른편 담장을 따라가다가 다리를 건너지 말고 숲길로 직진한다. 식수원 경고판 지나 갈림길에서 왼편 능선 길로 접어든다. 직진 길은 배너미재로 연결되는 길. 초입부터 제법 올려치게 되지만 숲속으로 잇는 등로라 나무들이 가려주는 그늘로 인해 더위를 느끼기에는 이르다. 곧이어 돌탑이 있는 쉼터를 만난다. 오른편으로 약간 떨어진 바위는 서쪽의 지룡산을 훤하게 볼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한다. 왼편 배너미재 주변과 지룡산 사면을 파고 흘러내린 골짜기에 걸린 나선폭포도 눈앞에 잡힌다.
돌탑에서 15분이면 김해 김씨 묘지가 자리한 황등산(669m)이다. 계속 오르막의 연속이던 능선 길은 황등산을 지나면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을 정도로 완만하다. 이후 암릉 길로 서서히 바뀌면서 다시 30분여 지나면 쌍두2봉(864m)에 이른다. 정면에 노적가리처럼 생긴 쌍두1봉이 눈앞에 턱하니 버티고, 발 아래로 신원천을 비롯한 삼계리 일대가 시원하다.
쌍두1봉으로 오르는 암릉은 아찔하고 오금저리는 스릴감을 맛볼 수 있다. 로프도 걸려 있고 우회로도 있어 각자가 선택할 일이지만, 어느 곳으로 오르든 그다지 위험해 보이지는 않다. 약 20m의 로프를 붙들고 올라서면 ‘쌍두봉 910m’라 새긴 조그만 대리석으로 된 표석이 앙증맞게 서 있다. 두 개의 바위봉우리가 쌍을 이룬 이 산은 삼계리 주민들이 산의 생김새에 따라 예부터 불러온 이름이다.
▲ 아직도 자연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학소대(鶴巢臺)폭포.
쌍두1봉에 올라서면 상운산이 막아 선 남쪽을 제외하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부챗살처럼 펼쳐지는 산과 골짜기들이 거침이 없다. 서쪽에는 운문산 범봉 억산으로 뻗어가는 영남알프스의 준봉들과 멀리 화악산 남산까지, 오른편으로 눈을 돌리면 지척에는 지룡산, 그 너머로 선의산 대왕산 학일산이 뚜렷하다. 운문호의 푸른 물결 뒤편으로 발백산 구룡산 장륙산, 멀리 경주의 단석산과 거기서 굽이치는 낙동정맥의 봉우리들은 백운산을 거쳐 고헌산으로 이어간다. 문복산 옹강산은 손을 뻗으면 잡힐 것처럼 가깝다.
길을 재촉해 운무에 휩싸인 1,038m봉까지는 20분이면 닿는다. 헬기장인 이곳에서 오른편 샛길은 배너미재로 내려서는 길이다. 정면 능선 따라 완만한 산길로 오르면 곧 두 번째 헬기장을 지나 잠시 내려서면 다시 갈림길이고, 왼편은 운문산자연휴양림이 있는 생금비리로 빠지는 샛길이다. 다시 세 번째 헬기장을 지나 곧장 능선을 따라 올라서면 상운산 정상이다. 산정에는 상운산악회서 세운 정상 표지목이 서있다. 모진 비바람과 세월의 흐름에도 아랑곳없이 페인트만 약간 벗겨졌을 뿐 말목은 아직도 정상을 지키고 서있다. 옆에는 2004년 삼성정밀화학산악회에서 세운 깔끔한 대리석의 정상석도 보인다.
▲ 천연기념물 180호인 처진 소나무와 금당 앞 석등을 비롯한 보물 7점을 소장하고 있는 운문사는 고찰다운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산정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사방 막힘이 없다. 영남알프스의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은 물론이고, 그 산봉우리들을 이어주는 굴곡진 산등성이와 계곡들이 현란하게 다가온다. 가지산, 운문산, 능동산, 천황산,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은 말할 것도 없고, 영남알프스 주변의 청도, 경주, 양산, 밀양 일대의 산을 꿰뚫어 볼 수 있다. 참으로 천봉만학을 거느린 산세에 감탄만 할 뿐이다.
상운산에서 하산 길은 학심이골로 잇는다. 올라왔던 길로 되돌아 30m쯤의 운문사와 쌀바위를 알리는 이정표에서 왼편 방향으로 틀어 내려서면 널찍한 헬기장과 임도를 만난다. 최근에는 전망데크까지 설치해 주변 조망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임도를 따라 오른편 가지산 방향으로 10분 정도, 산허리를 돌아드는 위치에 이르면 정면에 쌀바위가 모습을 나타내고 오른편 길가에 돌무더기가 있다. 나뭇가지에 리본도 달려 있는 이곳이 학심이골로 내려서는 초입이다.
학심이골은 영남알프스의 수많은 골짜기 중에서도 골이 깊기로는 단연 으뜸이다. ‘학이 노닐던 깊은 골짜기’란 의미의 이 계곡은 예로부터 산세가 수려하고 청정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도 자연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학소대(鶴巢臺)폭포를 비롯해 크고 작은 폭포는 물론 아담한 소(沼)와 담(潭)이 서로 어우러져 비경을 연출한다.
학심이골로 내려서는 하산로는 경사도가 심하다. 또 너덜 길에 계류를 몇 차례 건너야 하기에 비가 내려 계곡물이 불어날 때에는 출입을 않는 것이 좋다. 더군다나 운문사까지는 빠른 걸음이라도 2시간 30분 이상 걸어야 한다.
▲ 짙푸르게 우거진 활엽수 숲길은 한여름 산행의 더위를 말끔하게 식혀 준다.
임도에서 학심이골 상류로 접어들면 산죽이 무성한 숲길이다. 내려갈수록 경사는 가파르다. 15분쯤이면 계곡이 가까워지면서 물소리가 들려오고 한동안 너덜겅을 지나게 된다. 다시 15분쯤이면 너덜 길을 벗어나면서 첫 번째 만나는 계류를 건너 ‘119 가지산 04’ 지점에 닿는다. 잠시 계곡을 왼편에 끼고 내려가다가 계곡을 건너 5분이면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왼편 길은 학소대 폭포로 가는 길이다. 폭포까지는 15분이면 다녀올 수 있다. 갈림길에서 내려서면 학심이골 아래쪽의 큰골 일대가 조망되는 전망바위를 만난다.
급격한 바위지대를 내려서다보면 오른편 골짜기의 층층으로 이뤄진 바위를 타고 흘러내리는 폭포를 볼 수 있고 곧바로 계곡에 이른다.
계곡에서 오른편의 급경사로 오르면 산허리를 따라가는 확실한 산길을 만나고 이후 한 차례 더 계곡을 건너면 제법 널찍한 산판길이다. 낙엽이 짙푸르게 우거진 활엽수 숲길은 한여름 산행의 더위를 말끔하게 식혀준다.
숲길이 끝날 즈음이면 다시 갈림길이다. 운문사는 계속 직진해 큰골의 계류를 끼고 뚜렷한 산길로 잇는다. 배너미재 갈림길에서 5분이면 운문산 아랫재로 오르는 심심골 갈림길. 다시 직진해 10분이면 사리암 주차장이다. 운문사까지는 콘크리트 포장도로로 30분 정도 더 걸어야 한다. 운문사 지나 울창한 송림 사이로 운치 있게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20분이면 운문사버스정류장에 닿는다.
교통 상운산 산행의 들머리인 운문령이나 삼계리 쪽의 대중교통편은 다소 불편하다. 먼저 시외버스를 이용해 언양을 경유하거나, 기차를 이용해 청도에 내려 청도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동곡(054-372-3881)까지 간 다음 삼계리행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산행 들머리인 삼계리를 경유하는 버스는 하루 5회 왕복 운행하는 언양↔대구 남부정류장(경산, 동곡 경유) 간 경산버스(053-743-4219)가 있다. 시간이 여의치 않다면 언양에서 택시(052-263-6000)를 이용할 수도 있다.
산행 날머리인 운문사 버스정류장에서는 대구 또는 청도행 시외버스가 19시까지 있다.
서울→언양 남부터미널(02-521-8550ARS)에서 1일 4회(08:30, 11:00, 16:00, 18:00)운행. 부산→언양 노포동 종합버스터미널(051-508-9966)에서 20분 간격(06:30~21:00)운행. 언양→운문령, 삼계리, 동곡, 경산 경유 대구 언양 시외버스터미널(052-262-1007)에서 1일 5회(09:00, 10:30, 13:00, 15:40, 18:50)운행. 대구→경산, 동곡, 삼계리, 운문령 경유 언양 남부 시외버스정류장(053-743-4464)에서 1일 5회(06:20, 07:25, 10:00, 13:10, 16:00)운행.
숙식(지역번호 052) 숙식은 언양이나 청도에서 해결하는 것이 좋다. 언양읍에 하이트모텔(262-0182~5), 동일장여관(263-0789), 에쿠스모텔(263-0173~4) 등이 있고, 운문령을 넘으면 운문산자연휴양림(054-371-1323)이 있다. 주말에 휴양림을 이용하려면 예약을 서둘러야 된다.
언양 시외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언양 돼지국밥(262-6260)이 있고, ‘소떡불고기’와 ‘돈육떡갈비’로 전국 처음 특허를 받은 집으로 언양 1번가 불고기(263-2031)도 언양읍내에서 찾아볼 만한 별미집이다. 언양할매곰탕(262-5752)은 부담 없는 먹거리 집이다. 석남사와 운문령으로 갈라지는 궁근정에는 용마루(264-5665)라는 민물고기 매운탕집이 있다. 민물장어구이나 메기매운탕도 먹을 만하지만 중태기 매운탕은 담백하고 얼큰한 맛이 일품이다. 삼계리에도 숙식이 가능하지만 여름철에는 바가지가 심해 기분을 상할 우려가 있다.
청도는 소읍에 불과하지만 숙식에 큰 어려움은 없다. 읍내의 숙박시설로는 꿈의 궁전모텔(054-371-3197), 르네상스모텔(054-371-0310) 등이 있다. 청도는 예로부터 추어탕이 유명하다. 청도역 부근에 밀집해 있는 추어탕 전문식당 중 원조할매 추어탕(054-371-2349),역전 추어탕(054-371-2367), 청도 추어탕(054-371-5510), 의성식당(054-371-2349) 등이 유명하다. 운문사 버스정류장 부근에는 부산집(054-372-8375)을 비롯한 먹거리집이 많아 산행 후 출출함을 달래기에 안성맞춤이다.
운문사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비구니 전문교육 사찰이다. 서기 560년(신라 진흥왕 21년) 한 신승(神僧)에 의해 창건되어 원광국사, 보양국사, 원응국사 등에 의한 중창과 비구니 대학장인 명성스님의 중창불사로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경내에 천연기념물 180호인 처진 소나무와 금당 앞 석등을 비롯한 보물 7점을 소장하고 있는 유서 깊은 절집은 고찰다운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특히 이곳은 신라 삼국통일의 원동력인 세속오계를 전한 원광국사와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선사가 오랫동안 머물렀던 도량이다. 지금은 260여 명의 비구니 학승들이 4년간 경학을 공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