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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올리는 글은 일종의 에필로그 형식으로 K-디비전시스템의 과거와 현재를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이번 연재는 여기에서 마무리 짓게 될 것 같네요
혹시라도 처음 보시는 분들은 가급적 제가 이전에 올렸던 편들을 먼저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통합 축구협회 출범의 의미(https://cafe.daum.net/rocksoccer/ADs2/378485?anchor=commentDiv-378485)
일본 축구의 성장과 발전(https://cafe.daum.net/rocksoccer/ADs2/379062?anchor=commentDiv-379062)
일본 축구의 명(明)과 암(暗)-1(https://cafe.daum.net/rocksoccer/ADs2/379515)
일본 축구의 명(明)과 암(暗)-2(https://cafe.daum.net/rocksoccer/ADs2/380242?anchor=commentDiv-380242)
K-디비전 시스템의 과거와 현재
축구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모두들 자기만의 스토리가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저 역시 국대 경기나 K리그 경기 보다 한국 축구 전반의 시스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계기가 있었습니다
90년대 중반 한국 축구 협회의 예산이 50억 정도였을 거예요 당시 일본 축구 협회의 예산이 한화로 1000억원을 가뿐히 넘었을 때였죠
아예 비교 자체가 성립되질 않았습니다
02월드컵을 앞두고 한국 유소년 시스템의 실태를 조사하던 기자가 방문했던 유소년 사무실에 연세 많으신 어르신 한 분이 켜켜이 쌓여 있는 낡은 자료철을 돋보기를 들고 쳐다보며 이게 한국 유소년 시스템의 현실이라고 한탄하는 모습을 지켜 보며 뭔지 모를 복잡한 감정이 생기더군요
반면 J-빌리지 건립을 눈앞에 두고 각지의 축구 교실에서 초록색 잔디 구장 위에서 볼을 차는 일본 유소년들의 비교 영상을 보며 첫 번째 든 생각은 왜 저런데도 한국이 일본보다 볼을 더 잘 찰까? 였습니다 그리고 든 두 번째 생각은 어떻게 하면 저런 시스템을 한국이 가질 수 있을까 였죠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죠
단순히 차범근-최순호-황선홍-박지성-박주영-기성용-손흥민과 같은 불세출의 천재들만으로 한국이 볼을 더 잘 찬다는 건 캡틴 츠바사에나 나오는 스토리 일뿐, 축구는 기본적으로 필드 위의 11명뿐만 아니라 벤치 멤버, 코칭 스탶이 함께 하는 스포츠입니다 또한 한 나라의 축구 대표팀이 가지는 경기력은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축구 총량에 비례한다는 원칙을 봤을 때 분명 우리가 모르는 한국 축구의 경쟁력이 어디엔가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6-70년대에는 이란과 호주라는 압도적인 피지컬 깡패들을 상대로도 아시아의 정상 자리에 있었고 80년대 오일 달러먹은 심판들의 승부 조작이 극성을 부렸음에도 역시 아시아의 정상에 있었으며 90년대 재팬 머니, 2000년대 황사 머니가 AFC에 농간을 부렸을 때도 항상 한국은 아시아의 정상에 있었습니다
이건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거였죠
돈 한 푼없이, 변변한 잔디 구장 하나 없이, 제대로 된 축구관련 전술 서적 하나 없이, 오로지 사람만 가지고 아시아의 정상을 유지하며 결국엔 월드컵에 10회 연속 진출한 것이 한국 축구입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이 부분에 대해 한국 축구인들은 분명히 박수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해요 짝짝짝!!!
1. 조기 축구와 K7리그
우스개 소리로 한국 축구의 저력은 조기 축구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02월드컵 당시 내한한 클린스만이 도저히 한국 축구가 잘 하는 이유를 못 찾겠다며 돌아다니다 한강변에서 공을 차는 조기 축구 팀을 보고 저 팀은 몇 부리그 소속이냐 라고 물었다는 에피소드나 FIFA에서 나온 실사관들이 한국의 월드컵 연속 진출에 대한 원동력을 찾겠다고 내한했다가 도저히 못 찾겠다는 리포트를 쓰고 공항에 가다 우연히 보게 된 조기 축구팀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는 에피소드도 있었죠
생활 체육 축구를 관장했던 전국 생활 체육회(이하 생체)는 조기 축구를 즐기는 사람이 전국에 100만 명, 팀 수는 5000팀이라는 말을 하며 대한 체육회에 나가서 어깨를 으쓱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진실과 과장이 몇 %의 비율로 뒤섞여 있긴 하겠지만 근거없는 낭설은 아닐 겁니다
조기 축구팀 경기를 지켜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한국 조기 축구 팀 수준은 상당히 높습니다
K-디비전 시스템의 밑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K7리그가 아마도 조기 축구 팀과 가장 유사한 경기력을 가지고 있을텐데 KFTV의 중계를 보다 보면 골키퍼의 수준은 어쩔 수 없다손치더라도 그 밖의 필드 플레이어의 수준들은 상당히 높다는 걸 알 수 있죠
이러한 조기 축구의 연원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어요
관련된 논문이 나와 있는 것도 아니고 조기 축구에 대해 관심을 가진 축구 팬들도 사실 찾아 보긴 힘드니까요
다만 일제 강점기 당시에도 경평전을 비롯한 아마추어 축구가 전국에 성행했던 걸 보면 조기 축구의 연원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건 앞에서 언급했던 불세출의 한국 축구 영웅들 가운데 어렸을 때 조기 축구 나가서 볼 한 번 안 차 본 선수가 없을 정도로 한국 축구에서 조기 축구가 차지하는 지위는 마치 공기처럼 ‘당연한 문화’라는 점이죠
한국과 일본의 축구를 비교하는 일부 한국 축구팬들 가운데 일본 축구의 인프라를 부러워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정작 일본 축구인들 가운데는 한국의 조기 축구 문화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일본엔 이런 자발적인 풀뿌리 축구 문화가 아예 없다는 겁니다
우리들에게 이 문화는 당연한 듯 느껴질 수 있지만 아시아 각 국을 여행하다 보면 한국처럼 아침에 나와서 축구하는 문화가 일상인 나라는 찾아 보기가 어려워요 그 만큼 한국인들의 축구 사랑은 유별납니다 마치 DNA 속에 축구 문화가 새겨진 것처럼 삶의 일부분으로 자리매김 하고 해 왔고 자연스레 국대 축구에 대한 관심의 원동력으로 이어졌다는 걸 쉽게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전국에 활동하는 조기 축구 회원들이 100만명이라는 생체의 주장에 어느 정도의 과장이 포함돼 있다 치더라도 절반 정도인 5-6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는 실제 문건이 나와 있을 정도로 생체의 잠재력이 거대함을 의심할 필요는 없었죠 이들을 어떻게든 시스템 속으로 끌어 들이지 못하면 K-디비전 시스템이란 애초에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건 축구 협회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축구협회는 통합 축구 협회 출범의 첫 번째 대상으로 생체를 선택했고 이 선택은 한국 축구 신의 한수가 됩니다
17년에 출범한 K7리그는 당시 852개 팀에서 22년 현재 1288개 팀으로 무려 400개 팀 이상이 증가하였는데 이는 코로나 시국에 이루어진 현상입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해당 기간 팀 해체나 등록 인원의 감소를 겪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대단한 성장이라 할 수 있죠
18년에는 K6리그가 출범되었고 19년에는 K5리그가 출범하며 K5,6,7부 리그 사이에 완벽한 승강제가 실시되고 있습니다
2022년 현재까지 K5리그는 전국 13개 지역에 총 83팀, K6리그는 32개 지역에 196팀, K7리그는 194개 지역에서 1,288팀이 등록돼 있어서 총 1550개 팀 정도가 등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수치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걸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현재는 K5리그의 전국 단일 리그 전환이 논의되고 있는 걸로 알려져 있고 2025까지는 K4리그와 승강제를 실시한다는 것이 축구 협회의 방침입니다
2. 내셔널 리그의 해체와 K3리그
앞에서 통합 축구협회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때 이런 의문이 드셨을 수 있습니다
엘리트 축구를 담당하는 축구 협회와 생활 체육을 담당하는 생체의 통합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근데 몇 팀 되지도 않는 내셔널 리그를 거기에 끼워 넣는 건 너무 비약이 아닐까?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셔널 리그의 전신이 1964년 창설된 전국 실업 축구 연맹전이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 연원이 1939년 경성실업축구연맹이며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20년대 경평대항실업 축구전(통칭 경평전)과 맞다아 있다는 걸 아시게 된다면 한국 축구사에서 이 리그가 차지하는 상징성은 그리 가볍게 볼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한국 축구사 최초의 승격팀이 2013년 K리그2 우승팀 상무의 승격이 아니라 1983년 코리안 리그 우승팀인 한일 은행의 슈퍼리그(현재의 K리그)로의 승격이라는 사실을 아는 축구팬들도 그리 많지 않죠
이처럼 내셔널리그(구 전국 실업 축구 연맹전)는 K리그가 등장하기 전에는 한국 축구의 허리로써, K리그가 등장한 이후에는 그 버팀목으로서 프로로 가지 못 한 수많은 선수들을 받아들이고 성장시키며 한국 축구의 발전에 묵묵히 기여해 온 리그였습니다
2013년 K리그2가 만들어져 승강제가 본격적으로 실시가 된 후에도 프로로 가지 못 한 선수들에게 갱생의 기회를 주는 등 많은 역할을 해 왔죠
사실 내셔널 리그와 축구 협회의 갈등은 상당히 오래된 스토리입니다
올드 팬 분들이라면 왜 80년대 슈퍼리그(K리그)가 유랑 리그로 전락하게 되었는지, 90년대 중반 서포터스 운동이 일어나는 K리그 중흥기 전까지 한국 축구 전체가 암흑기에 들어가게 된 이유가 당시 무리하게 슈퍼 리그를 밀어 붙였던 최순영 축협과 코리안 리그(실업 축구 리그) 사이의 갈등으로 인한 축구계 내분이 원인이었다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내용입니다 요즘에도 가끔씩 나오는 근거없는 친축협, 반축협이라는 단어의 근원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들죠
또한 2006년에 있었던 K2리그(현재의 K리그2가 아닌 내셔널리그의 직전 명칭) 고양 국민은행의 승격 포기 사태가 축구협회의 무리한 K리그와의 승강제 추진으로 인해 빚어졌다는 것 또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이후 K리그는 승승장구하며 2013년에 K리그1과 K리그2 사이에 승강제를 실시할 정도로 성장했고 K2리그에서 이름을 바꾼 내셔널리그는 작아 질대로 작아진 채 결국엔 2020년 협회가 운영하던 기존의 K3리그에 합류하는 형태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통합까지 무려 40년이란 시간이 걸렸네요
한국 축구 통합 과정의 요소 요소에 등장하는 각 주체들의 스토리를 보면 웬만한 무협지보다도 재미있습니다
처음부터 한 국가의 스포츠를 담당하는 시스템이 세 갈래로 쪼개져 있었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인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니 지금처럼 하나의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싶어요
통합 축구협회를 구성하는 세 구성원 중, 생체는 한국 축구의 뿌리를, 내셔널리그는 한국 축구의 뼈대를, 그리고 기존의 축구협회는 한국 축구의 브레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K4리그
K3리그는 2007년에 창단되었는데 위에서 언급했던 당시 K2리그(내셔널리그)와 축구 협회와의 갈등으로 비롯된 승격 거부 사태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축구 협회 역시 K-디비전 시스템 구축만이 한국 축구 발전의 본질적 해답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이런 저런 많은 시도를 해 봅니다
그 과정에 말도 안 되는 무리수도 있었고 때로는 제도의 한계도 있었으며 때로는 자본의 한계도 있었죠
제도 문제를 이야기하니 떠오르는 일화가 있네요
02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끝마치고 나서 한국 축협 내에서도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요
당시 축구팬들의 관심도 많아지고 월드컵 이후 스폰서도 많아지면서 돈도 생겼거든요
그래서 여러 가지 개혁을 시도하게 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4강 특기생 제도 폐지였습니다
요즘 젊은 축구팬 분들은 저게 뭐야? 라고 하실 수도 있는데 4강 특기생 제도가 유소년 축구에 주는 폐해가 대단히 컸어요
예를 들면 대학 진학시 특정 선수를 중심으로 한 패키지 딜, 그 사이에 벌어지는 고등학교와 대학 사이의 어두운 뒷거래, 대회 4강을 위한 특정 선수 혹사 논란과 선수 생명 단축, 즐기는 축구보다는 이기기 위한 수비 축구 등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횡행하던 시절이었죠
축구 협회가 주관하던 공청회에 가면 항상 나오는 이야기가 4강 제도 폐지였습니다
근데 협회 담당자 분이 이런 하소연을 하더군요
자신이 이걸 폐지하려고 대한 체육회에 문의했더니 자기 소관이 아니니 상급 기관으로 가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문화체육부에 갔더니 거기선 다시 교육부 소관이니 교육부로 가라고 하더랍니다 다시 교육부로 갔더니 이번엔 국회 입법 사항이니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한다고 하더랍니다 협회 인원은 한정돼 있는데 무슨 수로 국회의원 서명을 일일이 받아서 법 통과를 시키겠냐고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하더군요
여기에 의기투합한 열혈 축구팬들과 협회 직원들이 뭉쳐서 의원회관 가서 국회의원 서명받고 한바탕 난리 법석이 났었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엔 법이 통과되고 4강 제도가 폐지되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즐거운 추억인데 당시엔 넘어야 할 벽들이 너무나 많았어요
제도 하나 바꿀 때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해야 했으니까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그렇게 탄생한 것이 K3리그 였습니다
덕분에 2013년 K리그 승강제 전까지 최상위 리그인 K리그, 그 아래 리그인 K2리그(내셔널리그), 그리고 K3리그까지 총 3개의 리그를 형식적으로 보유할 수 있었죠 물론 각 리그 별 승강제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 당시 K3리그에 참가한 팀들은 참 다양한 스토리를 가졌습니다
병역 복무를 위해 만들어진 팀도 있었고 조기 축구팀을 갓 벗어난 수준의 팀도 있었으며 내셔널리그 팀들 못지 않은 경기력을 가진 팀도 있었죠
나중에 K3리그는 22개 팀까지 늘어나며 10년이 지난 2017년, K리그 어드밴스와 베이직으로 나뉠 정도로 규모가 커집니다 그리고 2020년 여기에 내셔널리그의 8팀과 기존 K3 어드밴스에서 재정이 좋은 팀 8팀을 묶어 16팀으로 K3리그를 구성하고 나머지 팀들은 K4로 내려 보내며 현재의 K-디비전 시스템의 허리를 이루고 있는 K3와 K4리그가 완성됩니다
2022년에 김포, 2023년에 천안, 청주를 K리그2로 올려 보냈음에도 K3리그의 팀 수는 줄지 않았습니다 K4리그에서 그만큼의 팀들이 올라 왔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2023년 기준 K4리그에 가입된 팀은 17팀(충주FC가 참여할 경우)으로 이전과 변화가 없습니다 K4에 들어오려는 팀들이 꾸준히 존재하고 있다는 뜻이죠
또한 K4리그의 성장은 현재 유소년 시스템 성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초중고 리그가 처음 시작되었던 2009년 초중고 576개 팀+대학 10개 팀이었던 것이 2022년 현재 초등학교 361개 팀, 중학교 260개 팀, 고등학교 191개 팀+대학 87개 팀으로 총 900개 팀, 2만 5천명이 될 정도로 그 숫자가 늘었습니다
(이 숫자는 일본과 같은 동아리 수준의 축구부가 아니라 실제 직업 선수를 지향하는 엘리트 축구팀과 축구 선수 숫자입니다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죠 이 정도 규모의 엘리트 선수 숫자면 축구 산업이 발달한 유럽의 웬만한 중소 규모 국가의 엘리트 축구 선수들 보다 많은 숫자입니다)
뿐만 아니라 요즘엔 K리그 팀들의 유스 시스템이 체계를 잡으면서 대부분 자신들의 유스 선수를 콜업하는 경우가 많아 졌죠
프로로 가는 문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는데 이들을 수용할 리그 내 축구팀 숫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러다 보니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팀 창단에 대한 목소리가 각 지역 사회 별로 높아지고 있고 해당 지자체들 입장에서는 이러한 여론을 무시하기가 어려운 것도 현실입니다
조금만 인터넷에 검색해 보시면 ‘00시 K4리그 참가 검토’라는 기사를 쉽게 찾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축구 협회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봐도 각 지자체들 가운데 K4리그 참가 의사를 밝히며 팀 창단을 타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협회가 추진하고 있는 K5리그의 전국 리그화와 K4와의 승강제는 K4리그에게 지금보다 훨씬 더 안정적인 리그 운용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됩니다
앞에서 언급했듯 유럽의 디비전 시스템 구축에서 4부리그가 하고 있는 역할이 한국에서도 가능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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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좀 별개의 이야기이긴 한데, 일제시대 초~중반까지 강원도 지역에서 축구로 더비가 활발했고 경성vs강원도 더비도 치열했다고 하더군요
근데 워낙 축구라는 스포츠가 으쌰으쌰 하고 결집하고 대항(?) 하는 성격이 커서 결국 당시 일본이 한국 축구 분위기를 많이 죽여놨다고;;
(당시 야구도 시작은 달랐으나 마무리는 축구와 비슷하게... ㅜ.ㅜ)
이 글을 읽고 최대한 간략하게 제 의견을 써보자면
1.
한국 축구의 뿌리인 조기축구의 모든것은 대단하다. 하지만 효율적으로 프로축구와 연결되지는 않는것 같다
(오래전부터 꾸준히 나왔던 말... '축구'를 즐기는 사람은 많지만 'k리그'를 즐기는 사람은 축구를 즐기는 사람 대비 매우 적다)
2.
하부로 내려갈수록 금전적(?)인 부담이 덜하기에 협회에서 관리하기도 쉽고 팀의 생성&운영이 쉽다 하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투자되는 돈의 차원이 달라져서 힘들다
뿌리와 몸통은 자랄만큼 자랐는데 열매는 품질은 좋지만 숫자가 아쉬운;;
결국 어렵더라도 1부, 2부의 팀 수를 늘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뭐든 투자를 많이 받아야...
3.
사람으로 치면 사춘기 2차 성장기는 잘 지난것 같음 이제 성인이 되서 영양제 먹고 헬스해서 근육을 얼만큼 키우
느냐의 단계로 넘어온것 같은데 최근 코로나 시국과 이후 경제 침체, 그리고 최근 갑자기 논란되기 시작한 성남fc 문제...
하부든 상위든 결국 운영하는 돈은 외부에서 끌어와야 하는, 결국 돈이 최선의 해결책이 된 상황에서 우리 기준 악재가 너무 많다;
이 악재 속에서 현재 폼을 유지하는 것만 해도 대단하면 대단하겠지만 모든게 흐름과 타이밍이라고 월드컵 좋게 끝난 이 시점을 제대로 활용해야 하는데 이번 흐름을 잘 탈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그래도 다행인건 뿌리와 몸통은 오히려 더 단단해지고 있는 상황이라 이 혹독한 환경을 견딜수는 있겠지요
(하긴 뭐 8~90년대, 2000년대 초반도 잘 넘겼는데...)
예전엔 고등학교/대학교 졸업해서 k리그(당시엔 1부만 있었던...) 못간 선수들 어떻하냐... 라는 걱정할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 걱정도 상당히 줄어들었구요
누가 그러더라구요 제이미 바디 같은 선수를 원하기 전에 제이미 바디처럼 꾸준히 차근차근 밟고 올라올 수 있는 리그를 만들자...
근데 이런 환경이 조성되야 어린데 실력 좋은 선수들 또한 혜택을 받는거고...
@심재원 송종국 통합 축구 협회가 출범한 지 아직 5년밖에 안 되었고 내셔널리그가 k3에 합류한 지 2년밖에 안 되었죠
현 시점으로도 k리그1, 2의 자본력과 경쟁할 수 있는 프로 산업은 프로 야구밖에 없습니다
짧으면 5년 길면 10년 안에 k1에서 k3리그까지 프로화될 가능성이 높은데 그렇게 될 경우 k리그의 자본력은 현재의 2배 정도가 될 것 같네요
그때쯤 되면 국내 프로 산업 가운데 k리그와 경쟁할 수 있는 스포츠는 아마도 없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