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축제 · 기념일 백과 - 캘거리 스탬피드[ Calgary Stampede ]
hanjy9713
2023.11.16. 19:29조회 9
캘거리 스탬피드
[ Calgary Stampede ]
요약 매년 7월 초 캐나다 캘거리에서 개최되는 세계 최대의 로데오 축제이자 서부 캐나다 문화 축제
1. 축제 정의
캘거리 스탬피드(Calgary Stampede)는 매년 7월 첫째 주 금요일부터 다음 주 일요일까지 열흘 간 개최되는 캐나다 서부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 축제다. 1912년 카우보이 대회로 출발해 로데오 대회, 취사 마차인 척웨건(Chuckwagon) 경주 등 서부 캐나다의 문화 유산을 바탕으로 한 대형 축제로 성장했으며, 오늘날에는 국제 오토 & 트럭 쇼, 바이크 쇼, 각종 콘서트 등 현대적인 행사가 결합된 볼거리가 가득한 종합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캘거리(Calgary)는 캐나다 초원 지대에 속한 앨버타 주 남부에 있는 고원 도시로, 로키 산맥으로 통하는 관문이자 198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는 캐나다 전체에서 인구가 다섯 번째로 많은 도시이자 토론토의 뒤를 잇는 상업 도시이지만 1860년에 최초의 정착자가 나타나기 전까지 캘거리는 북아메리카 원주민 블랙풋(Blackfoot)의 땅이었다. 1886년 캘거리의 지역 협회는 캐나다 동부의 농업과 목축업 인구를 서부로 끌어들이기 위해 박람회를 개최하기 시작했고 이때 로데오(Rodeo)는 박람회 행사의 일부였다.
1912년 캐나다 서부 지역의 문화를 축제로 만들고자 한 카우보이 가이 위딕(Guy Weadick)의 주도로 스탬피드 축제가 출범했고, 1923년에 박람회와 스탬피드 축제가 통합돼 오늘날에 이르렀다. 이렇듯 캘거리 스탬피드는 19세기 중후반에 개척된 도시와 함께 성장해온 축제인 셈이다. 축제를 운영하는 지역사회조직 캘거리 스탬피드는 캐나다 서부 지역의 문화 유산과 공동체 의식을 보존하고 기념하는 것을 목표로 매년 7월 로데오 대회, 퍼레이드, 전시회, 공연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는 축제를 열고 있으며, 매년 1백만 명 이상이 축제를 즐기고 있다.
캘거리 스탬피드
캐나다 앨버타 주의 캘거리에서 개최되는 캘거리 스탬피드는 로데오, 취사 마차 척웨건 경주 등 서부 캐나다의 문화를 보존하는 것은 물론 현대적인 볼거리를 제공하는 종합 문화 축제다.
2. 축제 어원
캐나다의 캘거리(Calgary)는 스코틀랜드 멀(Mull) 지역의 지명에서 따온 이름이다. 캘거리(Calgary)는 ‘목초지의 해변’(Beach of the meadow)이라는 의미의 스코틀랜드게일어 ‘칼라 게아라이드’(Cala ghearraidh)에서 유래된 명칭이라고 한다. 이때 칼라 게아라이드는 고대 노르드어 ‘칼드’(Kald, 차갑다)와 ‘가르트’(Gart, 뜰)가 결합된 것으로 ‘맑은 물이 이르는 만(灣)의 농장’이라고 풀이되기도 한다. 로키 산맥 기슭의 초원 지대, 보(Bow) 강과 엘보(Elbow) 강이 만나는 곳에 자리한 캘거리에 알맞은 이름이다.
한편 스탬피드(stampede)는 본래 동물들이 우르르 도망가는 모양을 뜻하는 단어로, 그 자체가 로데오 축제를 의미하게 되었다. 이렇듯 캘거리가 축제가 열리는 지역을 나타낸다면 스탬피드는 축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3. 축제 유래와 역사
캘거리는 1884년 11월 7일에 지역 조례에 따라 정식 도시로 인정받을 당시 주민 506명으로 이루어진 작은 마을이었다. 이들은 ‘캘거리 & 지역 농업 협회’(Calgary & District Agricultural Society)를 만들고 2년 뒤인 1884년부터 캐나다 동부의 농부와 목축업자들을 불러들이는 것을 목적으로 농업 박람회를 열기 시작했다. 1888년에는 엘보 강변에 땅을 구입해 경주로와 박람회 건물, 축사를 지어 박람회 장소로 이용했고 이듬해인 1889년에는 향후 캘거리 스탬피드의 주요 무대가 된 빅토리아 공원(Victoria Park)을 만들었다. 이 무렵 작황이 좋지 않아 1895년 이후 활동을 중단했던 협회는 1899년 ‘서태평양 간 박람회 회사’(Inter-Western Pacific Exhibition Company)를 설립해 캘거리 시로 넘어간 빅토리아 공원을 임대해 농공(農工) 박람회를 열었다.
캘거리의 박람회는 나날이 규모를 더해갔고, 1908년에는 캐나다 정부의 ‘영연방 자치령 박람회’(Dominion Exhibition) 개최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영연방 자치령 박람회는 캐나다 정부가 1879년부터 1913년까지 매년 규모가 큰 지역 박람회를 지원해준 사업이다. 캘거리 시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새로운 전시관과 경주로를 지어 로데오와 경마, 올가미 밧줄로 여러 모양을 내는 트릭 로핑(Trick roping) 행사 등을 개최했다. 7일 동안 개최된 박람회는 매우 성공적이어서 당시 도시 인구의 네 배에 달하는 10만 명의 방문객을 끌어왔다.
1912년 9월에는 미국 와이오밍 주에서 온 카우보이 가이 위딕(Guy Weadick)의 주도로 캘거리 스탬피드의 전신 ‘프론티어 데이스 & 카우보이 챔피언십 콘테스트’(Frontier Days & Cowboy Championship Contest)가 열렸다. 캘거리에서 개최한 영연방 자치령 박람회에 참여하며 캘거리와 첫 인연을 맺은 가이 위딕은 ‘올드 웨스트’(Old West) 또는 ‘와일드 웨스트’(Wild West)라고 불리는 북아메리카 대륙의 서부 개척 시대 문화를 단순한 행사가 아닌 축제의 형태로 펼치고자 하는 이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캘거리를 그의 이상을 실현할 무대로 삼고 당시 미국의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와이오밍 등지에서 열리던 로데오 행사 ‘프론티어 데이스’(Frontier Days)와 카우보이 콘테스트를 기획했다. 그러나 캘거리 시의 지도자들과 박람회 측은 가이 위딕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때 가축 중개상 H. C. 맥멀런(H. C. McMullen)의 설득으로 후에 ‘빅 포’(Big Four)라고 불리는 목장주 네 명이 행사를 후원하기로 했다. 캘거리 시가 2만 달러의 상금을 내건 행사를 개최하자 서부 캐나다, 미국, 멕시코 등에서 수백 명의 카우보이가 참가했다. ‘프론티어 데이스 & 카우보이 챔피언십 콘테스트’는 12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캘거리 스탬피드 출범
1912년 카우보이 가이 위딕의 기획과 빅 포의 후원으로 열린 캘거리 스탬피드의 전신 ‘프론티어 데이스 & 카우보이 챔피언십 콘테스트’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위딕은 이듬해인 1913년에 또 다시 스탬피드를 개최하려 했으나 빅 포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북아메리카를 횡단하며 행사를 홍보했고 캐나다 중남부 위니펙(Winnipeg) 시의 사업가와 두 번째 스탬피드를 열었다. 하지만 행사는 이익을 얻는 데 실패했고, 1916년 뉴욕에서 열린 세 번째 행사도 마찬가지였다. 위딕은 1919년에 다시 캘거리로 돌아와 캘거리 산업 박람회의 단장이던 E. L. 리처드슨(E. L. Richardson)과 함께 빅 포를 포함한 캘거리의 주요 인사를 설득했다.
마침내 제1차 세계대전에서 귀환한 캐나다 군인들을 맞이하는 의미에서 ‘그레이트 빅토리 스탬피드’(Great Victory Stampede)가 개최됐다. 리처드슨은 스탬피드를 연례 행사로 정착시키면 엄청난 이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 캘거리 산업 박람회의 위원회를 설득했지만 당시에는 거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갈수록 방문객이 줄고 재정이 바닥나자 박람회 측은 이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마침내 1923년, 박람회와 스탬피드가 결합된 ‘캘거리 박람회 & 스탬피드’(Calgary Exhibition & Stampede)가 6일간 개최됐다. 이때부터 캘거리 시가 스탬피드를 지원하기 시작해 위딕은 시장의 인가를 받아 매일 아침 거리에서 서부식 복장과 건물 장식을 독려하는 행진을 벌였다.
1923년의 거리 행진
1923년에 박람회와 스탬피드 축제가 합쳐진 ‘캘거리 박람회 & 스탬피드’가 개최됐다. 가이 위딕은 서부식으로 거리를 꾸미고 서부식 복장을 입는 것을 독려하며 거리 행진을 벌였다.
가이 위딕이 고안한 마차 경주 등이 즉각적인 인기를 끌면서 관람객은 매년 늘어났다. 1925년에는 로데오 장면 등이 담긴 무성 영화 <캘거리 스탬피드>(The Calgary Stampede)가 개봉해 북아메리카에 캘거리 박람회와 스탬피드가 널리 알려졌고 1928년에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 최다 관람객인 25만 8천 명을 기록했다. 그러나 곧이어 닥쳐온 대공황으로 인해 1930년과 1931년에 연속으로 적자가 나자 박람회 측은 위딕과 팽팽하게 대립했다. 결국 위딕은 1932년에 해임된 이후 1952년 캘거리 스탬피드의 주빈이자 퍼레이드의 지휘관으로 초대되기 전까지 20년 동안 위원회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캘거리와 캘거리 스탬피드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황금기를 맞았다. 1946년에 근방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캘거리는 농업을 근간으로 한 소도시에서 캐나다 석유와 가스 산업의 중심지로 변모했고, 도시 인구는 1949년에서 1956년 사이에 두 배로 증가했다. 캘거리 스탬피드의 관람객 역시 1950년대에 20만 명 가까이 늘었다. 1950년에는 박람회와 스탬피드를 찾아온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당시 서부 캐나다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실내 경기장이던 스탬피드 코랄(Stampede Corral)을 건설하고 경기장을 보수했으며, 1959년에는 스탬피드를 최초로 후원했던 빅 포(Big Four)의 이름을 딴 건물을 지어 박람회장으로 활용했다.
이 시기에 미국의 가수이자 배우인 빙 크로즈비(Bing Crosby)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코미디언으로 꼽히는 밥 호프(Bob Hope) 같은 유명 인사들이 캘거리 스탬피드 퍼레이드를 이끌었다. 1959년에는 캐나다를 방문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와 필립 공이 행사에 참관했으며 엘리자베스 2세는 1973년에 캘거리 스탬피드의 개막을 맡기도 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도 방문객이 계속 늘어 1962년에는 50만 명, 1966년에는 65만 명에 달했다. 축제 측은 1967년에 축제 기간을 6일에서 9일로 확대했고 다음 해에는 10일로 늘렸다. 1976년, 캘거리 박람회와 스탬피드는 방문객 1백만 명 시대를 맞이했다. 1990년에 주최 측은 박람회와 스탬피드 행사를 시민들의 삶 속에 녹여낼 10개년 확대 방안 ‘호라이즌 2000’(Horizon 2000)을 발표했다. 이것은 스탬피드 코랄, 빅 포 빌딩, 박람회 시설 등이 자리한 스탬피드 파크(Stampede Park)를 캘거리 주민들이 언제나 찾을 수 있는 휴식처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2004년에는 2014년 완성을 목표로 계획을 갱신했고, 2016년 현재 스탬피드 파크에서는 해마다 1천 개의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한편 2007년에는 1923년 이후 80년 이상 유지해온 ‘캘거리 박람회와 스탬피드’라는 행사명에서 ‘박람회’를 빼고 공식 명칭을 ‘캘거리 스탬피드’로 변경했다. 2000년 이후 방문객은 120만 명을 넘어섰으며 2012년 1백 주년 축제에는 140만 명이 방문했다.
4. 축제 주요 행사
캘거리 스탬피드는 2007년 이후 공식 명칭에서 ‘박람회’를 제외했지만 지금도 대표 행사인 퍼레이드와 로데오 대회, 마차 경주 외에 다양한 전시회와 박람회를 개최하고 있다. 주최 측은 서부 개척 시대의 전통을 보존하는 한편 바이크 쇼와 국제 오토 & 트럭 쇼, 세계적으로 유명한 뮤지션들이 참여하는 콘서트 등 현대적인 행사를 접목해 캘거리 스탬피드를 더욱 다채로운 축제로 만들어가고 있다.
1) 축제 장소
스탬피드 축제가 열리는 스탬피드 공원(Stampede Park)은 캘거리 시내중심부에 위치해 있으며 넓이는 약 4만 제곱미터에 이르고 캘거리 스탬피드 운영위원회가 캘거리 시에게서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로데오 경기장을 비롯해 실내 경기장, 극장, 카지노, 어린이 공원, 박람회장 등 다양한 시설이 들어서 있어 캘거리 스탬피드 기간 외에도 여러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2) 개막 퍼레이드
캘거리 스탬피드는 전통적으로 7월 첫 번째 금요일 아침에 캘거리 시내에서 개최되는 퍼레이드와 함께 막을 올린다. 1912년에 진행된 최초의 퍼레이드에는 당시 도시 인구를 훨씬 웃도는 7만 5천 명이 모여들어 성황을 이뤘다는 기록이 전한다. 매년 다른 인물이 퍼레이드 진행을 맡으며 카우보이, 캐나다 기마 경찰대, 원주민 무용단은 물론 1백여 개 팀이 장식 마차 수십 대와 전 세계에서 모인 말 수백 마리, 악단 10여 팀을 이끌고 긴 행렬을 구성한다. 이들은 19세기 말의 서부 개척 시대와 현대를 넘나드는 의상으로 꾸민 채 거리를 가로지르고 퍼레이드가 끝나면 종합 우승팀, 서부 개척 시대의 분위기를 가장 잘 되살려낸 팀, 가장 창의적인 팀, 가장 훌륭한 악단, 가장 훌륭한 말 등을 가려 시상식을 진행한다.
개막 퍼레이드
캘거리 스탬피드는 7월 첫 번째 금요일 캘거리 시내를 가로지르는 개막 퍼레이드와 함께 시작된다.
3) 캘거리 스탬피드 이브닝 쇼
축제가 진행되는 동안 매일 저녁 8시경에 마차 경주 ‘레인지랜드 더비’(Rangeland Derby)와 ‘그랜드스탠드 쇼’(Grandstand Show)로 구성되는 캘거리 스탬피드 이브닝 쇼(Calgary Stampede Evening Show)가 열린다. 마차 경주가 끝나면 야외 경기장에 미리 조립해둔 대형 무대를 끌어다 놓고 음악과 춤, 노래가 어우러지는 화려한 쇼가 펼쳐진다. 쇼가 끝나면 불꽃놀이로 피날레를 알린다.
캘거리 스탬피드 이브닝 쇼
마차 경주와 화려한 공연으로 구성되는 캘거리 스탬피드 이브닝 쇼(Calgary Stampede Evening Show)는 축제의 대표적인 행사다. 마차 경주가 벌어졌던 그랜드스탠드에 무대를 설치하고 다채로운 공연을 선보인다.
4) 마차 경주 레인지랜드 더비
지금은 캘거리 스탬피드 이브닝 쇼에 통합됐지만 축제 초기부터 행해온 ‘레인지랜드 더비’(Rangeland Derby)는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방목장 경주’라는 뜻으로, 과거 캘거리 내의 방목장들끼리 마차 경주로 우승을 겨룬 데서 나온 이름이다. 취사용 마차인 척웨건(Chuckwagon)을 이용하는 것이 특징이며 스탬피드 행사를 처음 기획한 가이 위딕이 만든 경기라고 한다. 그가 자란 곳에서 즉흥적으로 펼쳐지던 마차 경주와 1922년에 앨버타 주의 작은 마을 글리션(Gleichen)에서 열린 스탬피드 행사에서 영감을 받아 고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옥의 반 마일’(Half-mile of hell, 반 마일은 약 0.8킬로미터)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 경기는 매우 인기가 높아 축제에서 가장 많은 관심이 쏠리는 경기다. 1923년에는 6팀만이 출전했으나 오늘날에는 총 30여 개의 팀이 1백만 달러의 상금을 놓고 치열한 대결을 벌인다. 마차 경주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1941년부터 마차에 광고가 부착되기 시작했고 1956년의 우승자가 마지막으로 스폰서 없이 챔피언이 된 참가자다. 1979년에는 경매를 통해 광고주에게 광고할 권리를 팔기 시작했으며 2012년에는 최고가 4백만 달러를 기록했다.
5) 로데오 경기
캘거리 스탬피드의 상징 로데오 경기는 매일 오후 1시에 펼쳐지며 공식 경기 6종목과 초보자 경기 4종목으로 이루어진다. 공식 경기는 점수나 시간으로 순위를 가리며 각각 황소 타기(Bull Riding), 안장 놓고 야생마 타기(Saddle Bronco Riding), 안장 없이 야생마 타기(Bareback Riding), 송아지 다리 묶기(Calf Roping), 원통 돌기(Barrel Racing), 수송아지 뿔 잡고 쓰러뜨리기(Steer Wrestling)다. 원통 돌기는 주로 여성을 위한 경기로 말에 탄 채 원통 주변을 돌며 클로버 잎 모양을 그리는 것이며, 수송아지 뿔 잡고 쓰러뜨리기는 말에 타고 있던 참가자가 말에서 뛰어내리며 수송아지의 뿔을 잡고 송아지를 바닥에 쓰러뜨리는 경기다.
공식 경기 참가자는 종목별로 2회 출전하고 합산 점수가 가장 높은 10명이 쇼트 고(Short Go)라 불리는 다음 라운드에 출전한다. 이렇게 총 세 번의 성적을 합산해 우승자를 결정한다. 열흘째 되는 축제 마지막 날에는 단판 결승(Sudden Death)이 펼쳐지는데, 종목별 최상위 선수 7명과 작년 챔피언, 월드 챔피언, 로열 챔피언 등 종목당 10명의 선수가 참가해 상금을 놓고 경쟁한다.
초보자 경기는 초보자 수송아지 뿔 잡고 쓰러뜨리기, 초보자 안장 없이 야생마 타기, 초보자 안장 놓고 야생마 타기, 야생마 경주가 있다.
로데오 경기
서부 캐나다의 문화를 보존하고 알리고자 하는 캘거리 스탬피드에서는 서부 문화의 대표적인 상징, 로데오 경기가 펼쳐진다.
6) 팬케이크
축제 기간 동안 아침마다 시내 곳곳에서 팬케이크를 무료로 제공한다. 이 전통은 1923년 스탬피드 축제 첫날에 척웨건 경주 참가자인 일명 ‘야생마 잭’(Wildhorse Jack)이 그의 마차를 세워놓고 시민들에게 팬케이크와 베이컨을 나눠준 것에서 비롯되었다. 캘거리 지역 신문에서 팬케이크를 제공하는 장소와 시간을 실어서 홍보한다.
참고문헌
[네이버 지식백과] 캘거리 스탬피드 [Calgary Stampede] (세계의 축제 · 기념일 백과, 류정아, 오애리, 김홍희)
블로그/카페 공유수0
클린봇이 악성 댓글을 감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