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의 이중성 / 전창우
인생의 반려는 사람뿐이었다. 결혼을 함으로써 평생의 반려자가 생긴다. 같은 편이 되어주고 진실한 마음으로 생을 함께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모든 것이 바뀌어 가듯이 이제 반려는 인간을 넘어 동물, 식물, 무생물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반려란 짝이 되는 친구를 뜻한다. 동물은 이미 한 가정의 가족이 된 지 오래다. 가까운 사람끼리의 관계처럼 동물에게도 정서가 흐르고 있다.
결혼식에서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살라고 하는 주례사의 멘트는 지금 세대에게는 먼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린 듯하다. 주례 없는 결혼식은 이제 흔한 풍경이다. 부모의 덕담과 신랑, 신부의 이벤트성 행사가 대세가 되다보니 그 의미마저 가벼워진 느낌이다. 순수하고 신성해야 하는 결혼식마저 시대에 따라 변화되어 가고 있음이 씁쓸하다. 요즘은 황혼이혼도 늘고 있다. 반려자와 평생을 함께 사는 일은 자꾸 줄어드는 것만 같다. 외로운 독거노인들이 늘어난다. 우리 사회의 일상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결혼을 하지 않거나 했어도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애완동물의 수준이 아니고 사람과 더불어 같이 살아가는 존재이다. 즐거움을 나누고 지친 마음까지도 위로 받는 가족의 개념이라는 말이 옳다. 강아지나 고양이 외에도 새, 햄스터, 금붕어 등과 파충류 같은 새로운 동물을 선호하는 반려자도 있다.
사람을 만나지 마세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거리두기로 대면을 못하니 반려를 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진 것 같다. 반려견에 빠져 회사를 그만 둔 사례도 있다고 한다. 반려는 사람이 주체다. 동물, 식물, 무생물도 인간이 존재해야만 함께 갈 수 있다. 서로 좋아하면 닮아 간다고 했다. 사랑해야 한다. 한 생명을 책임지고 키운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마음을 주고받고 소중하게 대해야 한다. 반려는 새로운 인생의 동반이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데는 당연히 책임도 따라야한다. 밝음이 있으면 그늘이 있기 마련이다. 좋을 때는 뭘 해도 예쁘게 보이지만 조금만 틀어지면 모든 것이 싫고 나쁘게만 여겨지는 것은 동물에게도 적용된다. 사람의 입장과 위치에서 판단하지 말고 동물의 내면을 들여다봐야 서로의 관계가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말은 통하지 않고 소리나 표정과 행동으로 알아차려야 하니 어렵다. 관심을 가지고 항상 관찰하고 애정을 듬뿍 쏟아 주어야 끝까지 함께 갈 수 있다. 서로 교감을 주고받아야 반려자가 되는 것이지 방치하면 동물학대자가 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개의 경우, 반려견 호텔 장례식장등 무한한 사랑을 받을 수도 있지만 정반대로 하루하루 근근이 생명을 이어가는 개들도 많다. 식용 개로 팔려 나와 철창 속에 갇혀있는 개도 있고 그냥 버려지는 유기견도 늘어나고 있다. 명절과 휴가철에 많이 버려진다고 하니 슬픈 일이 더는 생기지 않아야 한다. 어릴 때는 귀여워서 키우다가 자라고 나면 책임감 결여로 길거리에 장난감 버리듯 유기를 하는 것이다. 개 물림 사고가 빈번히 일어나는데 떠돌이 개는 더욱 위협적으로 사람의 생명까지도 앗아 갈 수 있다. 어떤 개도 궁지에 몰리면 돌변하여 물 수 있다.
키울 자신이 없으면 처음부터 키우지 말아야 한다. 본인이 애지중지하게 키우던 것을 늙고 병들었다고 학대하고 버린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는 겉과 속이 다르면 안 된다.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반려동물은 즐거움도 주지만 고민 또한 안겨준다는 것을 마음속에 깊이 새겨 두어야 한다.
반려의 그늘은 어느 곳이든 존재한다. 중국에서는 반려인이 코로나에 확진되면서 격리 조치되자 당국에서 반려견을 인간에게 해가 없도록 처분했다고 한다. 동물이 사람에게 전파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없앴다고 하니 팬데믹이 불러온 참담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또 다른 피해는 반려동물에게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잘 먹지 못하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거리를 떠돌고 있다고 전해진다. 참화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동물들의 고통을 멈추기 위해서는 빨리 전쟁이 끝나야 한다.
반려의 시대가 기쁨을 동반하지만 사람과의 공감도 필요하다. 내게 소중한 것이라고 모두에게 맞추어지거나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만큼 키우지 않는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야 된다. 인간과 동물이 서로 도우고 어루만져 주면서 만족감을 느끼며 곁에 두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 소유자가 의무를 다하는 성숙한 문화가 이뤄져야겠다. 반려로 인해 사람끼리의 관계가 싫어지고 멀어지는 시대가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미래도 사람이 먼저이지 않겠는가.
반려동물이 사회적 문제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책임지지 못할 사랑은 처음부터 접어야하는 것이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가 아닐까. 개와 고양이를 오랫동안 키워 보았기 때문에 주인을 잃고 거리를 배회하는 동물을 보면 너무 슬프다. 말 못 하는 동물의 상처와 분노와 그리움을 생각하면 더욱 아프고 슬프다. 나도 누군가로부터 버림받을 수도 있다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상상이라도 해보았으면 좋겠다. 슬픔이 없는 사회를 꿈꾸는 일이 결코 허무맹랑한 나만의 유토피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