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밤 취침전 법학교수 출신 이정훈목사의 사도행전 강해를 듣던중 늘 마음 한구석에 응어리져있던 숙제가 풀리는 실마리를 얻게 되었다. 목회에 한창 올인하고 있던 91년도 우연한 기회로 미국 서부지역에 있는 빈야드교회 한국집회를 참석하고 많은 도전을 받았다. 빈야드스타일이 한국목회자에게 인상을 남긴 이유는 두가지인데, 첫째는 나타나는 외양때문이었다. 한국교회의 전통적인 스타일의 찬양과는 쟝르가 다른 찬양과 은사집회 때문이었다. 그들은 기도받을 사람을 앞으로 나오게 한후 안수기도를 하면 대다수가 뒤로 넘어짐을 체험하였다.
바로 이것이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해주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종교업자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기도로 신자들이 성령을 체험하는 모습을 보며 돈을 주고 자기에게도 그런 능력이 임하게 해달라고 했던 것과 똑같다. 어떻게든 저러한 능력을 받으면 자신도 교회를 부흥시킬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
하지만 나의 관점은 그들과는 전혀 달랐다. 전통적인 한국교회와 빈야드의 차이점은 한국교회가 그 때까지만해도 전통적인 일방통행인데 비하여 빈야드는 쌍방통행이란 점이 눈에 띄었다.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빈야드에 대하여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였다. 그래서 한때는 가장 빈야드에 대한 정보에 정통하다는 인정도 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남가주 오랜지카운티 지역에 있는 빈야드교회 한국부 담당목사가 오로지 은사집회에만 집중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 반야드교회는 셀교회였다. 셀교회가 지향하는 성장프로그램에 새신자를 중심으로하는 영성집회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한국교회에 소개된 영성집회 였다. 그러다보니 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 미국 빈야야드회는 오로지 은사집회에만 집중하는 교회로 착각하게 만든 것이다.
반야드교회는 대체적으로 3-4개월 주기로 영성집회를 개최하는데 그때마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을 모집해 집회에 참석시키는 바람이 불었었다. 집회참석을 주선하는 담당자는 엄청난 재정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한동안 미국교회 목회자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집회를 개최했지만 단 한번도 빈야드교회의 정신에 대해서는 강의한바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슷한 시기에 토론토공항 근처의 에어포트교회가 반야드라는 명칭은 사용을 했지만 오로지 나타나는 현상에만 집중하였고 그러한 현상으로 전세계교회의 집중을 받다보니 자체징계를 통해 교단에서 자진 탈퇴하는 것으로 정리가 된 경우도 있다.
만일 처음 빈야드교회를 한국에 소개할 때 은사중심의 교회가 아닌 교회의 본질인 셀교회운동을 주력으로 소개했더라면 한국교회로 부터 이단소리를 듣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세계적으로 샐교회 운동을 하는 교회는 목회과정이 비슷하다. 먼저 새신자를 모집하고 그들을 교육하면서 소정의 과정을 마치기전 3박4일간의 영성수련회를 참여시켜 성령체험를 하도록 이끌고 있다.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된 소개였다. 지금와 생각해보면 철저한 사탄의 방해라 생각한다.
반야드교회의 설립자인 잔윔버목사는 본래 음악가였다. 히피족출신인 이들이 전도받고 척스미스목사의 갈보리교회의 신자가 되었지만 기존교인들과의 거리감 때문에 서로의 필요에 의해 죤윔버목사를 중심으로 반야드교회가 설립되었다. 음악성이 탁월한 구성원들이 많다보니 빈야드찬양은 유명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정훈목사는 자신이 본래 승려출신이다보니 한국의 전통종교와 무속신앙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였고 그러한 영향으로 빈야드교회가 집회때 안수기도를 통해 사람을 뒤로 넘어지게 하는 행동은 무속신앙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빈야드운동이 한국에서 이단으로 정죄된 핵심원인이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나는 어제서야 알았으니 만시지탄인 셈이다. 그런데 아쉬운점도 있다. 빈야드교회는 한국교회가 아닌 미국교회라는 점과 미국에서도 그러한 무속행위가 있는지에 대한, 즉 문화의 차이에 대해 연구했느냐의 반론이다. 만일 미국에서도 전통적으로 그러한 무속행위가 있었다면 한국교회가 빈야드를 이단으로 정죄한 결정은 타당하다고 인정받을 수 있다.
빈야드교회에 대한 결론 한국사회의 전래종교에 입신이라는 무속행위가 있음을 몰랐기 때문에 여과없이 한국교회에 소개한 민병길목사의 과오이다. 오로지 샐교회운동에만 집중을 했어야 한다. 그런데 만일 민목사가 빈야드교회의 강점인 셀교회 운동을 한국교회에 소개할만한 필요성을 느꼈을까 하는 의문이다. 소위 흥행가치이다. 결코 흥행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기에 그는 그 교회의 사역중의 일부인 성령운동에 대해서만 마치 그것이 빈야드사역의 전부인양 부풀려 소개하는 범죄를 저지른 셈이다.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