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발명품 워크맨은 일본인이 아니라 독일 출신 남성이 만든 것... '
26일 국내 언론들은 미국 잡지 PC 월드가 지난 50년간 발명된 휴대용 전자 기기 중에서 워크맨을 가장 위대한 제품으로 꼽았다고 보도했다. 휴대용 소형 녹음기인 워크맨은 소니가 1979년 출시한 이후 2억 개 이상 팔린 상품으로 세계 젊은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꿨다고 평가받는다.
오랫동안 워크맨의 발명가는 소니의 공동 창업자인 모리타 아키오(1999년 사망)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특허권을 주장하며 공룡 소니와 25년 동안 지루한 싸움을 벌여왔던 사람이 있다.
뉴욕타임스가 17일자 기사에서 워크맨의 발명가로 인정받게 되었다고 소개해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은 안드레아스 파벨(59세). 그는 독일에서 태어나 6세에 브라질로 이주한 후 이탈리아 등지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가 휴대용 녹음기를 착안한 것은 1972년. 스위스에서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던 중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활동하는 것이 대단히 재미있는 경험이라고 깨달은 것이다. 이후 몇 년 동안 구룬딕 필립스 야마하 ITT 등 굴지의 회사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아이디어를 제안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거절 혹은 조롱뿐이었다.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들을 만큼 열성적인 음악 매니아들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것이 당시 전자 제품 회사들의 판단이었다.
결국 파벨은 자신의 발명품을 1977년에 '스테레오 벨트'라는 명칭으로 특허 등록했다.
2년 후 소니가 워크맨을 출시하자 이 때부터 파벨은 소니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1980년부터 협상은 시작되었고 1986년에는 독일 지역의 로열티 제공을 약속 받는 등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1989년 영국에서 새롭게 법정 다툼을 벌이면서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된다. 소송 비용 때문에 신용 카드도 쓸 수 없는 가난에 봉착했으며 소니가 고용한 사설 탐정의 미행을 받는 고통도 겪었다고. 1996년 패소했을 때 그는 변호사 비용으로만 3백만 달러 빚을 지게 되었었다.
2003년 파벨은 모든 국가에서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경고하자 소니는 화해를 요청했다. 그가 25년 동안 거대 공룡과 특허 분쟁을 벌인 끝에 합의금을 얼마나 받았는지는 비밀이다. 그러나 천만달러 단위의 거액과 로열티를 받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한편 파벨의 주위 사람들은 MP3 플레이어 제작사를 상대로도 소송해야 한다고 부추겼다고. MP3 플레이어가 워크맨의 변형이라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그는 고민 끝에 소송을 포기했다. 더 이상 길고 긴 법정 다툼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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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주변에 있는 놈들이 웃기는 놈들이로구만.. "휴대용 음향기기"라는 애매하고도 포괄적인 특허를 주는 것이 아님.. "MP3 플레이어는 워크맨의 변형?????" 미친 놈 .... 소송해봐야 쪽박찬다.. 아니 소송꺼리도 안되고 기각됨..
대단~ 근데 주위사람들!!! 그런식이면....라디오 만든 사람(후손)이 저 사람에게 소송을 걸어도 되겠네~
누가 누가를 떠나서 국제적인 망신을 만천하에 똑똑히 그것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회지도층들의 모습으로 하고 잇는듯 하다. 난 이렇게 생각했다. 그럴 만한 권력과 영향력으로 그런것이나 하고 있는 그것이 모자른 것이고 그럴만한 힘을 가지고 그런 것을 짓이나 하는 그것이 등신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도 이익만 목적만 달성하면 그만이라고 ? 생각할런지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이나 하는 모자른 두뇌에게는 힘과 권력이 주어져서는 안될듯 하다. 세상이 괴롭고 나라가 더러워지고 지구촌이 지저분해지고 희생자들이 늘어날 뿐인다.
부산 영화제를 하는가 보다. 알건 다알지만 이야기 하지 않았던 현실을 올해에는 이야기를 했었다. 방송에서 생방송 안해조던 현실에 생 방송가지 때리고 난리인것 같더군. 그 기간동안 영화제 기간동안 난 오늘 처럼 피눈물을 흘린다. 올해도 그렇게 지내고 있지만 지난 10년의 세월 매년 그 가긴 이런식으로 보냈었던 것 같다. 그런 피눈물 속에 이루어지는 축제의 열매가 달디 달겠을까 라는 생각이 스친다. 그런대도 스텝이나 참여니 그런 것들때문에 매년 버려지는 나를 발견하고 또 그런 일년 이년 ......... 나의 피눈물과 누구 연애 결혼 아이 뭐그런것들을 향해 매진하는 그런 부산영화제 였을까?
여권과 여권에 동조하는 지역 세력 정치입지의 존재들은 부산에서 이루어지는 그 행사 때문에 참으로 뭐 같은 일을 하고 난 그것을 겪고 한나라당을 위시한 등등의 세력은 피눈물로 이루어지는 그런 것들 효과보겠다라고 자작극을 벌이고 참 나라의 현실이 그렇다. 난 생각해 본다. 내가 외친 조국과 내가 살아온 조국을 ............. 나를 떠나 나의 아이들과 나의 후손들이 살아가야할 조국의 모습을 말이다.
또 , 생각해 본다. 난 그런 존재들이 필요하지 않은듯 하다. 언제나 아군의 얼굴을 하고 피눈물을 흐리게 하는 그들을 . 난 말할수 있다. 언제고 계절의 꽃이 피는날 그런 이들과는 절대 그 계절을 나누지 않겠다고 그런 그들과 그들의 얼굴이 없더라도 그 계절의 꽃은 필것이고 그 피어나는 계절의 꽃만으로도 난 행복하다라고 . 하지만 그 계절을 그들과 나누는 일따위는 절대 없을것이라고 그들의 뒷배가 되어 숨어있는 그들까지도 ............ 난 말할수 있고 말한다고,,,,,,,,,,,,,
가증고양이분 왜이러셔요? 상황에 맞는 댓글을 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