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의 사찰 기행
저자 조용헌은 1961년 전남 순천 태생이다. 원광대 동양학 대학원 초빙교수로 불교 미술학 전공이다.
옛말에 강아지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변소간으로 간다고, 따라가려면 산신령을 따라가야지 하며, 그는 예식장에 초대를 거부한다. 그리고 이 생명 다하기 전에 이 산도 가고, 저 산도 가고, 그 산도 가고, 삼천리 금수강산의 명산들을 다 밟아 보기를 소망한단다. 산 좋아하는 팔자니, 부귀영화 누리고 살기는 애초에 틀린 팔자로 오늘날까지 남들 다 가지고 있는 운전 면허증도 없는 남의 차에 얹혀 다니는 무 차 거사다. 1주일에 한 번 산에 간다면 10년 개근하면 ‘마운틴 오르가슴’을 맛볼 수 있단다. 산꾼은 산의 척추를 타고 흐르는 지기의 짜릿함 한 기운을 못 잊어 산으로 간단다. 이런 지기가 강한 산들은 경락이 열리지 않은 보통 사람들이 장기간 거주하기는 부적합하다. 강력한 에너지가 사람을 때리기 때문이다.
산에는 사람이 있다. 산 사람들이다. 산 사람은 세상이 시시해 세상을 버리고 온 사람, 세간에서 한몫 챙겨 가지고 들어온 사람, 뱀 잡는 땅꾼, 불치병 고치려고 백일 기도하려고 온 사람, 고시 공부를 하다 낙방하여 들어온 사람, 산수가 좋아 사업을 정리하고 자청해 온 사람, 각기 사연을 지니고 있고, 나름의 이야기들이 있다. 외국에서 양식을 먹다 김치찌개를 먹으면 몸이 풀리듯이 장작을 피운 구들장에서 하루를 자면 몸이 개운한 것처럼 돌아갈 고향이 있어야 삶이 건강하다. 다른 것은 없어져도 절은 산에 있다. 절이라는 하드웨어가 남이 있는 조직이 바로 불교인 것이란다. 절은 번뇌를 없애는 장소이다. 거기에는 불교 사상이 있다. 절에서 종교적 영험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의 절에는 영험이 서려 있다. 어떤 절에서 병을 고쳤는가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절에는 풍수가 깔려 있다. 절에는 공부를 할 수 있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담론을 산과 절에서 배울 수 있다. 제도권 안에서는 대접받지 못하고 있지만, 산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효한 담론들이다. 남들이 멸시 천대한다고 나까지 덩달아 멸시 천대할 수는 없다. 조상들의 생각을 시대가 바뀌었다고 쉽게 버릴 수 없는 것이다. 미국에는 시카고학파가, 독일에는 프랑크푸르트학파가 있다면 한국에는 지리산 학파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하는 염원을 저자는 주장한다.
기도발로 유명한 곳이 선암사 도솔암이다. 도솔암은 묵은 영가를 떼는 데 특효가 있단다. 영가란 죽은 지 백 년도 넘는 귀신들이다. 승려의 도력이란 정신의 집중력을 의미한다. 집착이 강한 귀신은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 법이다. 살아 있는 인간도 말을 잘 듣지 않는데, 죽은 귀신은 더욱 그렇다는 것이 정신세계의 법칙이다. 말 안 듣는 귀신을 보내기 위해서는 우선 좋은 말로 달랜다. 그래도 떠나지 않으면 회초리를 때려서 가르쳐야 한다. 회초리를 때리는 것은 승려의 집중력이다. 정신을 집중해서 영가의 극락왕생을 기원해야만 한다. 한민족은 배고픈 역사를 안고 온 민족이라서, 여러 가지 恨 중에서도 배고픔에 대한 한이 크게 뭉쳐있단다. 이 한을 풀어주는 것이 천도재의 본래 의도 아니겠는가.
도솔암 마애불은 절벽에 15m 높이의 조각이다. 우리나라 마애불 중 가장 큰 불상이다. 이 마애불은 1500년 전의 ‘검단 선사’의 진상이란다. 이 마애불의 배꼽에는 신비스러운 비결이 숨겨져 있는데 그 비결이 세상에 알려지면 조선은 망한다는 것이다. 그 비결을 꺼내면 누구든지 벼락을 맞아 죽는다고 했다. 조선말 고종 때 ‘이 서구’가 전라감사로 와 감영의 선화당에서 천지 기운을 살피니 상서로운 기운이 하늘로 올라가는지라 말을 몰아 그곳으로 가니 도솔암 마애불 배꼽에서 시발한 것이었다. 그래서 배꼽을 쪼아 책을 꺼내려다 뇌성벽력에 놀라 다시 책을 밀어 넣고 백회를 발라 봉했다. 동학 난에 ‘손화중’이 이 비결을 꺼내기 위해 접주들과 회의를 한다. 1893년 지긋지긋한 세상 끝내고 개벽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청죽 수백 개와 새끼 수십 타래로 가교를 만들고 승려들을 결박해 놓고 비결을 꺼냈으나 내용은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동학의 삼례집회를 열고 전주 감영으로 몰려갔다.
전주 태생인 정여립이 서울에서 벼슬하다 낙향하여 금산사 아래 김제 금구에 살았다. 정여립 28세의 1589년 정여립 사건이 발생한다. 이 정치적 좌절의 후유증이 사람들의 관심을 종교적 신앙으로 이끌었고 중심은 진묵대사다. 정치적 좌절이 종교적 천재를 낳았다. 민초들은 임금에게서도 사또에게서도 위안을 얻지 못했다. 오로지 진묵이란 승려에게서 상처의 치유를 받았다. 한국 승려들 사이에 전하는 말이 있다. 경상도는 정치인이 많이 나고, 전라도는 도인이 많이 나온다. 이런 인물이 많이 나는 좌향이 있단다. 좌향은 좌를 놓아서 남향이고 마당은 빗물이 흐르는데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야 한다. 서출 동류가 교과서적인 명당이다. 자 좌에 서출 동류 형국은 우리나라 궁궐, 사찰, 가옥의 가장 이상적인 터다. (경복궁 앞의 청계천이 남향 자 좌에 서출 동류이고, 내가 살던 고향 터가 청주에서 몇 동네 안되는 남향의 서출 동류의 동네 터다)
오행으로 보면 서쪽은 금의 방향이고, 동쪽은 목의 방향이며, 물은 수의 방향에 해당한다. 고로 물이 서쪽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흐른다는 것은 금과 목사이에 물이 있다는 말이다. 금에서 수로, 수에서 목으로 흐른다, 金生水 水生木의 관계가 성립된다. (서출 동류에 북에서 남으로 하천이나 강이 흐른다면 더 큰 대길의 대지로 인물이 많이 난다.) 서울은 내사산과 외사산으로 쌓인 천하의 명당이다. 내사산은 북악산, 낙산, 인왕산, 남산에 쌓인 500만 평의 도성이다. 외사산은 북한산, 관악산, 용마산, 덕양산이다. 이 외사산을 연결한 면적은 627평 방 제곱킬로미터다. 북한산의 사찰은 수십 개지만 북쪽은 승가사, 동쪽은 불암사, 서쪽은 진관사, 남쪽은 삼막사를 꼽는다.
이 중 승가사는 비구니들의 사찰이다. 사찰을 포함 지구상의 영지는 잠을 자봐야 한다. 잠을 자는 데 특혜는 꿈이다. 영지에는 선몽이 있다. 영몽을 꾸는 곳은 자기와 인연이 있다고 판단되는 곳이다. 승가사의 맥이 뭉친 곳은 대웅전, 108계단을 올라간 절벽의 마애불, 산신각, 약사전 자리다. 마애불은 고려시대 초기 작품으로 추측되는 이 마애불은 상호도 위엄도 있고, 머리 위의 화개도 잘 보전되어 있어서 보기가 좋다. 마애불 자리는 지맥이 뭉친 자리다. 사찰경내에 이처럼 거대한 바위가 서 있는 것 차체가 영험을 상징한다. 입석 자체가 기도발을 잘 받기 때문에 우리나라 곳곳에 선바위, 입석리 등의 지명이 산재한다. 입석에 새긴 부처는 쳐다보기 좋고 신앙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승가사는 비구 스님은 터에 맞지 않는다는 전설이 있다. 승가사 왼쪽의 좌청룡 형상이 옷을 벗은 여자가 비스듬히 누워있는 모습의 ‘裸婦半臥形’이라 전해진다. 그래서 남자 스님들이 들어오면 오래 있지 못하고 나간단다. 남자 승려는 나부만와형의 산 기운을 받아 정신이 혼미하고 정진 기도가 흐려져 결국 파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구니의 사찰이 된 모양이다. 이 말을 듣고 보현봉을 여인의 머리로 하여 젖가슴, 배꼽, 넓적다리, 무릎, 유두까지 이루어진 모습이 보인다. 흡사 배부른 여인이 누워있는 모습이다. 수도에서 중요한 부분은 신심이고 신심은 부처의 영험한 가피를 통해서 두터워진다. 신심은 논리가 아니란다. 구기동에서 불과 4~50분 올라오면 이처럼 별천지를 다다른다. 서울은 대단한 도시다. 어느 시인의 말대로 불과 수 십 분이면 유목의 경계를 넘어 은둔으로 진입할 수 있는 도시는 서울이다.
2022.05.31.
조용헌의 사찰 기행-1
이가서 발간
<사찰기행>(03) : 조용헌, 이가서
1999년 출간되었던 <나는 산으로 간다>의 개정증보판. 불교학자 조용헌이 지난 18년 동안 다녔던 산과 사찰 중에서 22곳을 선정하여, 그 산을 찾으며 보고 듣고 체험한 산의 천문, 지리, 인사를 기록한 책이다.
천년이 넘게 이 땅에서 절을 다니던 우리 조상들의 시각으로 각각의 사찰을 돌아보며 그 안에 담긴 역사, 사상, 종교적 영험함, 풍수, 민속 신앙, 고승들의 행적 등을 생생하게 풀어냈다. 산과 사찰을 돌아다니며 만난 선사들의 가르침과 그 속에서 느낀 것들을 소박하고 맛깔스럽게 이야기한다.
<저자소개> : 조용헌
강호동양학자, 사주명리학 연구가, 칼럼니스트.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감지하는 혜안을 지닌 이 시대의 이야기꾼.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원광대학교 대학원에서 불교민속학을 전공하여 불교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저서로는 『조용헌의 동양학 강의1 ·2』 『조용헌의 사찰기행』 『조용헌의 소설 1·2』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 『방외지사』 『조용헌의 고수기행』 『조용헌 살롱』 『그림과 함께 보는 조용헌의 담화』 『조용헌의 명문가』 『동양학을 읽는 월요일』 『통도유사』 등이 있다. 현재 「조선일보」 칼럼 ‘조용헌 살롱’을 지난 2015년 7월 27일자에 1,000회를 돌파하며 연재중이다.
<내용목차>
뜰 하나, 민중과 함께 흘린 눈물
1. 선운산 선운사
2. 변산 불사의 방
3. 모악산 금산사
4. 두승산 유선사
5. 서방산 봉서사
뜰 둘, 명당 혹은 하늘이 내린 고독
1. 금강산 건봉사
2. 북한산 승가사
3. 불령산 청암사
4. 연암산 천장사
뜰 셋, 토착 불교 혹은 상생과 조화
1. 익산 미륵사
2. 미륵산 사자사
3. 두승산 유선사
4. 대둔산 안심사
뜰 넷, 이유있는 전설
1. 승가산 흥복사
2. 소요산 연기사
3. 지리산 칠불사
뜰 다섯, 바다와 절
1. 서해 망해사
2. 임랑 묘관음사
3. 동리산 태안사
뜰 여섯, 머리 깎고 스님이 되다
1. 오대산 상원사
2. 영구산 구암사
3. 도봉산 망월사
4. 수봉산 홍련암
*****한국사공부, 역사답사, 현장답사, 역량강화, 동선개발, 학력고사, 한국사능력검정에 꼭 필요한 책(03)********
첫댓글 잘 읽고 감니다 ^^
조용헌 님의 사주명리학 이야기 책을 사서 읽은 적이 있지요.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