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을 아시나요?
지난 주 금요일이 발렌타인 데이(St. Valentine''s Day)였습니다. 여성 분들은 누구에게 초콜릿을 주셨나요. 발렌타인 데이에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풍습은 아마도 초콜릿 회사의 상술일 것 같다는 것은 누구나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어떤 연유로 발렌타인 데이가 초콜릿 판매 상술에 동원되었는 지는 저도 정확하게 잘 몰랐습니다.
이번에 발렌타인 데이와 관련된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발렌타인 데이의 유래에 대한 여러가지 설 중 다음 설이 가장 그럴 듯해 보입니다. 3세기 말 당시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는 원정에 징집된 병사들이 출병 직전 결혼을 하면 사기가 떨어질 것을 염려해 결혼을 금지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조치가 있으면 늘 반대하는 비운의 커플이 있기 마련입니다. 사랑에 빠진 그 커플을 안타까워 한 발렌타인 신부는 그들의 결혼식 주례를 서게 되었고, 이 사실이 알려져 그 신부는 처형 당하게 됩니다. 그날이 바로 AD 269년 2월 14일, 바로 발렌타인 데이가 된 것입니다. 그는 그 당시 간수의 딸에게 " love from Valentine"이라는 편지를 남겼고, 발렌타인 데이에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풍습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발렌타인 데이와 초콜릿을 연결 시킨 최초의 인물은 영국의 초콜릿 제조업체 캐드버리 창업자의 아들 리처드 캐드버리(Richard Cadbury)입니다. 그는 1868년 발렌타인 데이에 ‘초콜릿 박스’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상술이 일본에 들어와 몇 가지 과정을 거쳐 오늘의 전통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발렌타인 데이 초콜릿의 원조라고 주장하는 일본 제과 회사가 몇 개 있습니다.
고베의 모로조프 제과가 자신들을 원조라고 주장합니다. 1936년 모로조프 제과는 “고마운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발렌타인 쵸콜릿을 전합시다”라는 이벤트를 발렌타인 데이에 맞춰서 시행하였습니다. 그러나 큰 호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도 남아있는 그 광고를 근거로 자신들이 원조라고 주장하는 모양입니다.
공식적으로 원조로 인정받는 회사는 메리 초코입니다. 1958년에 도쿄 아오야마에 있던 ‘메리 초코’라는 양과자점에서 ‘메리의 발렌타인 초코’라는 상품을 만들었으나 단 3개만 팔렸다고 합니다. 이에 메리 초코에서는 “남녀가 서로 선물을 주고 받는다고 하면 솔직히 선물 받고 좋아하는 건 여자고, 돈 내는 건 남자잖아. 이걸 역발상으로 마케팅해 보면 어떨까?”라는 관점에서 “발렌타인 데이에는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을 선물해요”라는 캠페인을 실시합니다. 이 캠페인은 약간의 성공을 거두지만, 역시 사회적인 붐을 형성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발렌타인 데이 초콜릿 대부분이 메리 초콜릿의 판촉 행사를 본뜬 것이기 때문에 현대적인 의미의 원조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2013년1월24일 일본 기념일협회에서는 메리초코를 발렌타인 데이 문화 공로자로 인정하여 상을 주었습니다. 발렌타인 데이 초콜릿이 1958년 태어났으니 저와 같은 세대입니다.
1986년 1월초 저와 아내는 결혼식 날짜를 언제로 잡을 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많은 경우 점 보는 집에서 날을 받기도 하였지만 양가가 다 독실한 크리스찬이라 그냥 편한 날을 잡으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예식장 예약이 되는 날을 주로 잡기도 하였지요.
그런데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결혼을 하고 나면 두 가지 기념일을 잘 까먹어 부부 싸움의 원인을 제공한다는 데, 그 첫 번째가 아내 생일이고 두 번째가 결혼기념일이다. 그런데 아내 생일은 바꿀 수 없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으나 결혼 기념일은 잘 정하면 까먹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고민 끝에 저는 전략적으로 결혼기념일을 2월14일 발렌타인 데이로 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저의 깊은 의도를 모르는 아내는 그저 발렌타인 데이가 연인을 위한 아름다운 날이라는 사실에 동의를 하였고 1986년2월14일 저희 부부는 결혼을 하였습니다.
저는 결혼기념일을 절대로 까먹을 수 없습니다. 모든 백화점이 저에게 결혼기념일이 다가왔음을 상기시켜 주니까요. 그런데 결혼기념일이 발렌타인 데이라 한 가지 더 좋은 점이 있습니다. 이날은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입니다. 그러니 저는 아내에게 결혼기념일 선물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실제로 저는 결혼기념일 선물을 한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반대로 아내가 저에게 선물을 하지만 그것도 초콜릿이면 충분하니 저희 부부는 결혼기념일을 두고 선물 고민을 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이처럼 발렌타인 데이 초콜릿은 메리 초코의 상술 덕분에 태어났고 저는 그 상술 덕분에 평생 결혼기념일을 까먹을 염려가 없습니다. 이러면 저는 메리 초코에 감사하여야 하나요?
예년과 달리 금년 결혼기념일에는 아내가 기분을 내자며 쿠폰이 있던 호텔 투숙권을 이용하여 2월13일 호텔을 예약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날 제가 고문 변호사로 있는 어느 공기업의 고문 변호사 모임이 있어 저녁도 먹고 술도 취해 호텔에 늦게 가는 바람에 정말 호텔 투숙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딸과 아들로부터 아무런 축하 메세지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다지 이런 것을 강조하지 않는 편이나 은근히 애들을 골탕 먹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족 밴드를 이용해 아이들에게 메세지를 보냈습니다.
‘윤아(딸), 정민(아들), 어제가 엄마 아빠 결혼한 지 28주년 되는 날이 었단다. 아마도 이 날이 없었으면 너희들도 이 세상에 없었겠지. 그런 의미에서 이 날은 엄마 아빠에게도 중요하지만 너희들에게 매우 소중한 날이란다. 그런데 너희들이 아마도 잘 모르고 지나간 것 같더구나. 축하 메세지가 없었던 것을 보면. 어떤 날을 기념하고 그날을 축하하는 것 매우 소중한 행사지. 어제 너희들이 축하해 주었더라면 더욱 이날이 즐거웠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윤아는 누구에게 초콜릿을 주었니. 누구에게 주었으면 좋겠구나. 이제 너도 누군가를 사랑할 나이가 이미 넘었으니. 정민은 누구로부터 초콜릿을 받았니. 아빠가 가족 모두에게 초콜릿 상자를 선물로 보낼 께.’ 긴 메세지를 보내고 이모티콘으로 선물 상자도 함께 보냈습니다. 반응이 언제 있으려나 하였는데 역시 딸아이로부터 바로 문자가 왔습니다.
‘절대 까먹지 않았죠. . 엄마 아빠가 함께 좋은 시간 보내고 오시면 엄마 아빠 얼굴 보고 축하해 드리려고 했는데. 제 안일한 생각이 아빠를 서운하게 했나 봐요. 전화라도 할 걸이라는 후회가 드네요. 죄송해요. 저도 어제 이 결혼기념일이 없었다면 저와 정민이가 이 세상에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는데 생각만 하고 정작 마음을 전하지 못했네요. 늦게라도 축하 드려요. 그리고 감사드려요.’
저는 이 메세지를 받고 곧 바로 가족 밴드에 답장을 올렸습니다. ‘고마워. 너희들이 잘 커줘 고맙지. 그런데 완전히 옆구리 찔러 절 받았네. 또 옆구리 찔린 사람이 있을텐 데. 어디 계시나?’ 그러나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아들 녀석은 감감 무소식 이었습니다. 결국 아내가 이날 늦게 전화를 하여 억지로 축하 인사를 받아 냈습니다.
저는 이처럼 결혼기념일을 가지고 아이들과 실랑이 하며 재미난 한 때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저희 부부의 결혼기념일을 잊어버렸다고 쫑코를 주면서 저는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을 알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쓴 문자 메세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날이 없었으면 너희들도 이 세상에 없었겠지. 그런 의미에서 이 날은 엄마 아빠에게도 중요하지만 너희들에게 매우 소중한 날이란다.’ 똑같이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은 저에게도 매우 소중한 날이지만 저는 기억을 못하고 살았습니다. 부모님들이 그날을 특별히 챙기시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그리 살았으니까요. 저는 아이들이 저희 부부의 결혼기념일을 챙기지 않았다고 탓할 자격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을 아시나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4.2.17. 조근호 드림
(방송 안내)
작년 4월15일부터 매주 월요일 10시부터 11시까지 방송되는 극동방송(AM 1188 또는 FM 106.9) ‘사랑의 뜰안’ 프로그램에 조근호 변호사의 월요편지 코너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월요편지 중에서 일부를 골라 청취자 분들에게 제 육성으로 전달해 드리고 있습니다. 시간은 대략 10:20경입니다. 시간이 나시면 들어 주세요. 새로운 감흥이 있으실 것입니다. 라디오 듣기가 불편하신 분은 스마트 폰에 극동방송 앱을 다운 받으시면 그 시간에 들으실 수 있습니다.
첫댓글 우리 시누이 부부도 61년전, 발렌타인 데이에 결혼을 했는데, 그날을 까 먹지 않고 시누이 남편이 아내에게 꼭 장미꽃을 선물하는 정성을 지금도 하고 있는것이 보기 좋습니다.이곳 독일에는 그날 꽃값이 배가 됩니다. 초코릿 보다는 꽃을 더 많이 선물하는 풍습이 있기 때문이랍니다. 우리집 옆지기 하는 말은, 그날은 꽃값이 너무 비싸서 못 사주니 그날 지나고 사 준다고 약속은 잘 하는데, 그날 지나고 나면 서로가 또 잊어버리기 때문에 여태껏 꽃을 받은적이 손가락으로 셀 정도이니....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