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세요! 북(北)알프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미 아시는 대로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산악회원 가운데 피플러버(남인복) 고문, 희망과용기(이희용) 회장, 산바람(강만석), 꿈푸리(이용진), 가상이(이순기) 5명으로 원정대를 꾸려 6월 20~25일 일본 북알프스 원정을 다녀왔습니다. 정기산행은 아니지만 기록을 남기는 차원에서, 함께 못한 회원들(특히 와병 중인 알자지라 대장과 감자바우)의 대리만족을 위해, 두고두고 추억으로 삼고자 원정기를 정리해보겠습니다.
우리 동문 가운데 82학번 최인한이라고 있습니다. 한국경제 도쿄특파원으로 재직할 때 일본 명산을 두루 다녔고, 귀국 뒤에도 등산을 즐겨 다니는 친구죠. 한국경제를 퇴직하고 시사일본어학원의 시사일본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는데, 부대사업으로 운영하는 시사일본여행클럽(SJTC)도 맡고 있습니다.
SJTC의 주요 프로그램은 야쿠시마 자연 탐방, 메이지유신 역사 탐방, 일본 한 달 살기 등 역사와 자연 중심의 소규모 고품격 테마 일본 여행입니다. 꿈푸리는 메이지 유신 역사 탐방에 참여해 부산에서 부관(釜關)페리를 타고 시모노세키(下關)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저희도 SJTC의 북알프스 걷기에 동참해 다녀온 거죠.
북알프스 트레킹 얘기가 본격적으로 나온 것은 올해 초였습니다. 꿈푸리가 제안하고 산바람이 덥석 물었는데, 아톰은 4월 네팔 원정 계획이 있다며 사양했습니다. 저는 북알프스 트레킹에 대해서는 막연한 로망과 약간의 두려움을 품고 있었죠. 살짝 주저하다가 "두세 시간 걷고 산 아래로 내려와 고급 숙소에서 온천 목욕하는 일정"이라고 해서 동참하기로 했습니다.
참가 비용은 예약금 40만 원 빼고 23만 엔(약 200만 원)으로 일반 패키지 여행보다는 다소 비싼 편이었습니다. 인천공항에서 일본 나고야(名古屋)의 주부(中部)공항까지 왕복 비행기삯은 별도고요. 항공료는 인당 27만 원 안팎입니다. 참가 인원은 최대 15명인데 10명을 넘으면 22만 엔으로 할인해준다고 하더군요.
혹시라도 예약자가 밀려들까 걱정스러워 일찌감치 예약금을 내고 기다렸습니다. 2월 21일 최인한 소장과 산바람, 꿈푸리 네 명이 참여하는 단톡방도 만들었고요. 하루 뒤 가상이도 합류했습니다. 가상이는 2007년 7월 초 북알프스 등정하다가 산비탈 아래로 데굴데굴 굴렀던 악몽이 채 가시지 않았으면서도 그때 야리가다케(槍ケ岳) 산정에서 바라본 절경을 잊지 못해 따라나서기로 한 거죠. 물론 그때처럼 위험한 코스로는 절대 가지 않는다는 다짐을 받았답니다.
3월 6일, 출발일이 석 달 하고도 보름이나 남았는데도 산바람이 예비 모임을 제안합니다. 제가 "아직 한참 남았는데..."라고 하자 "한 달에 한 번씩 최소 세 번은 만나야지"라고 답합니다. 그 핑계로 술 마시자는 속셈입니다. 3월 25일 강남 봉은사 앞에서 최 소장과 꿈푸리에 가상이까지 5명이 만나 절 경내 둘러본 뒤 선정릉 앞 매운탕집에서 최 소장한테 브리핑을 받고 경험자 가상이한테 코치도 받았습니다. 근데 뭐 술을 3차까지 하느라 그때 들은 사전지식은 전혀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산바람의 방송진흥원(방송개발원 후신이자 콘텐츠진흥원 전신) 동료이자 동갑내기 친구인 한동준 동아방송대 교수도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피플러버 선배는 5월 3일 평산회(평일 산에 가는 번외 모임) 뒤풀이에 참석했다가 최 소장 설명 듣고 며칠 뒤 동행하겠다는 뜻을 밝혔죠.
피 선배는 지난해 2월 제주 시산제 산행에 함께했던 고교 동창 이봉지 배재대 교수, 커뮤니케이션북스의 정경환 전 이사까지 끌어들이는 놀라운 수완을 발휘했습니다. 그 덕에 최 소장 프로그램에 꼬박꼬박 참여한다는 김도환 교수 부부까지 합쳐 10명이 됐습니다. 22만 엔으로 참가비가 줄어들었죠. 참고로 정 이사는 59년생 여성입니다. 81학번 동문 정경환과는 동명이인이죠.
인천공항에서 함께 떠나는 일행은 프로그램 운영자인 최 소장, 피 선배, 이봉지 교수(이 교수), 정경환 이사(정 이사), 희망과용기, 산바람, 한동준 교수(한 교수), 꿈푸리, 가상이, 그리고 김 교수와 부인 김 여사까지 11명이었습니다. 현지에서는 가이드이자 산행대장으로 박혁신 일본 여행 블로거(박 대표)가 합류했죠. 박 대표와 최 소장을 제외한 여행객은 남녀 5명씩이었습니다.
항공편은 인천공항에서 오전 7시 30분에 출발하는 진에어입니다. 인천공항까지 쉽게 갈 수 있는 공덕역 바로 앞에 사는데도 6시 전에 도착하려면 방법이 마땅치 않네요. 공항철도는 5시 24분이 첫차고 공덕오거리를 지나가는 공항버스도 첫차가 5시 30분이네요. 할 수 없이 아내가 태워주는 승용차로 삼각지에 가서 공항리무진 4시 41분 차를 탔습니다.
제2터미널에 도착하니 한산할 줄 알았는데 북적북적합니다. 저는 모바일 보딩패스를 받아놓았고 캐리어도 들고 탈 생각이어서 그래도 큰 걱정 없이 탑승구 앞에 도착했습니다. 사람 별로 없을 줄 알고 공덕에서 첫차를 타고 왔더라면 시간에 쫓겨 낭패 볼 뻔했습니다.
하나둘씩 일행이 나타납니다. 아는 사람과는 반갑게, 처음 보는 사람과는 쑥스럽게 인사를 나눕니다. 꿈푸리는 아이젠을 들고 타는 가방에 넣었는데 검색대에 걸려 확인하느라 늦었답니다. 아차! 그러고 보니 아이젠 필요하다고 했는데, 까먹었네요. 산바람은 "아이젠 필요 없을지도 몰라"라며 위로합니다(이는 큰 오산이었죠). 현지에서 구입해야 하나, 현지 가이드한테 빌릴 수 있는 곳을 알아봐 달라고 해야 하나, 그냥 무모하게 도전해볼까 이런저런 고민에 휩싸여 있는데, 가상이가 "혹시 몰라서 아이젠을 두 개 갖고 왔으니 빌려주겠다"고 말합니다. 휴! 다행이다. 만일 다른 사람이 그런 실수를 했다면 저는 "최 소장이 몇 번이나 공지했는데 그걸 까먹다니..." 하고 핀잔을 줬을 겁니다. 역시 매사에 큰소리치거나 장담하면 안됩니다.
일본에서의 첫 식사 장소인 미사카
마침내 탑승입니다. 저는 2017년 도호쿠(東北) 지방 트레킹 이후 모처럼 만의 일본 여행입니다. 비행 시간은 1시간 50분. 아무리 저비용항공사(LCC)라고 하지만 그래도 국제선인데 물 한 잔, 땅콩 한 봉지 안 주다니 너무 야박합니다. 그래도 설레는 마음에 지루하지 않게 시간이 훌쩍 갑니다.
나고야 공항에 내렸습니다. 박 대표가 명함을 건넵니다. 밝은 인상에 건장한 체격이어서 호감과 믿음이 갑니다. 날씨는 다행히 쾌청합니다. 박대표가 20인승 미니버스의 운전대를 직접 잡습니다.
나고야시를 벗어나 기후 (岐阜)현을 거쳐 나가노(長野)현으로 가는 도중 미사카(神坂)라고 쓰인 휴게소에 들렀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치고는 간판이 고풍스럽습니다. 각자 구미에 따라 음식을 주문했는데 저는 라멘정식을 시켰습니다. 돼지고기 육수 라멘에 밥과 닭튀김까지 곁들인 세트 메뉴였죠. 일본에 올 때마다 양이 적어 불만이었는데 여긴 다르네요. 첫 식사가 흡족하니 이후 끼니에 대한 기대가 넘칩니다.
점심을 먹고 난 뒤 20여 분 걸어서 인근 마고메주쿠(馬籠宿)를 답사했습니다. 우리가 생각보다 공항에서 일찍 나와 시간이 남다 보니 박 대표가 급히 추가한 일정입니다.
일본 에도(江戶) 시대에는 전국을 잇는 5개의 중심 도로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도쿄(東京)와 교토(京都) 사이의 나카센도(中山道)라고 합니다. 바쿠후(幕府)의 쇼군(將軍)이 있는 도쿄(東京)와 일왕(천황)이 사는 교토(京都)를 잇는 길이니 옛날의 1번국도인 셈이죠. 총길이 534km에 중간중간 검문소 겸 숙소인 역참이 있었죠. 우리로 따지면 조치원이나 장호원이죠. 마고메주쿠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도로를 따라 한참 걸으니 인사동 같은 거리가 나옵니다. 숙소, 찻집, 식당, 토산품점 등이 즐비하고 맨 위에는 전망대가 있습니다. 일본의 대문호 시마자키 도손(島崎藤村)의 생가도 기념관으로 꾸며놓았더군요. 1892년 대화재가 나서 온 마을이 다 타버렸지만 이후 정교하게 복원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을 자아냅니다.
전망대에서 작은 흙길로 도쿄까지 이어지는 길도 보이는데, 이 교수를 비롯한 일행 몇 명은 한번 걸어보고 싶다고 말합니다. 저도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안 가본 곳, 못 걸어본 길이 너무 많아 여기를 우선순위로 삼을 일은 아닌 듯합니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