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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인
시시한 걸 좋아해요
이곳에서 나온 이야기는 이곳에만 머물러요
별일 없이 지냈습니다
옆집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났다
옆집 사람은 화장실에서
낮잠이 든 모습이었다
경찰과 구급대원이 신속히
현장을 정리했다
꿈을 오래 꾸었다 하루 새 머리카락이 다 셌다 흰 개가 검은 개를 쫓았다
형은 기계 인간이 되고 싶어 했다 네가 떠나면 너무 외로울 거야 점심때면 새가 창틀에 앉았다 갔다
죽음은 썩지도 않고
자고 일어났는데 베개가 피로 다 젖어 있었다
뺨이 붉었다
해변이 시작하고 끝나는 곳
구불구불 산길을 넘어왔지 사랑해 몸에 꼭 맞는 가죽 소파 갈색 졸음이 몰려온다 파도가 부서진다 네가 유리 조각을 주워 유리병에 담는다 머리칼이 바람에 날리고
스위티
전쟁에는 찬성할 수 없어
그 마을은 한날에 제사를 지내지
육신은 무너져요 그런데 진리가 견고합니까 나는 기도하고 있어요 두려움을 고백하며
햇빛이 도로를 가로질러 사람들을 비춥니다
국경을 오가는 사람들
나의 사랑아
헤아릴 수 없는 슬픔아
방을 얻을 수 있을까요?
어서 오세요 여기 머물던 사람은 몇 주 전에 떠났어요
의미는 뒤에 옵니다
인간이 제멋대로 정하는 거죠
나의 욕망 나의 모순 나의 기질 나의 전통은 죽은 자에게서 왔습니다 그들의 어조와 형식과 리듬을 비틀어 파괴된 땅에 심습니다
밤과 안개
어떤 사랑은 뒤늦게 밀려옵니다
옆 반 애가 죽었대
네가 자면서 발가락을 꼬물거렸다
이상한 열매
그 애 사촌이 자꾸 시비를 걸었다. 그 애가 울음을 터트렸다. 그 애 남자친구는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취해 있었다. 그만, 그만 하세요. 그 애 사촌과 나는 비상계단 바닥에 뒤엉켰다. 입술이 터졌고 셔츠 단추가 뜯겼다.
맨 처음 그 애는 내가 좋다며 울었지. 나는 예배 중에 나와 전화기를 붙잡고 안 되는 이유를 늘어놓았다. 영원에 관한 이야기들. 어느새 헌금함이 예배당을 돌고 있었다.
골목 귀퉁이에 숨어 담배를 태웠지. 길고양이가 다리 사이를 오가며 뺨과 이마를 비볐다. 꽃과 초콜릿을 사 왔어. 그 애가 비틀거리며 번화가를 걸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사랑 같은 건 몰랐을 때였다.
중개인이 손님을 데리고 집에 왔다. 이제 떠나야 했다. 너는 몇 번이나 몸을 씻었다. 네가 씻는 동안 나는 식탁에 앉아 식은 피자를 먹었다. 다음 날 짐을 챙겨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네가 빌려 간 잠바는 결국 받지 못했다.
창가에 앉아 다 타버린 생각들을 뒤적였다. 짝사랑하던 선배의 애인은 영화감독이었다. 선배는 시사회 사진을 보여주며 손끝으로 그를 가리켰다. 열차가 강을 건넜다. 나랑 사귈래? 위험한 것에 맞서는 부르튼 입술들.
뒷주머니에 넣은 머리핀 장식이 깨졌다. 편지를 몇 통 받았지만 이사하면서 버렸다.
왜 너는 너에 대해 말하지 않는 거지?
음악을 크게 틀고 춤을 춘다. 배낭에서 쏟아진 책과 잡동사니. 몸에서 벗어나려는 마음. 바위의 얼굴. 그리고 남겨진 것.
나를 미워하고 있을 때도 미래는 계속 생겨났다.
몽중설몽
최근에 출간한 시집 『당신의 죄는 내가 아닙니까』의 시작은 전쟁입니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습니다.
유라시아 철도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대륙 횡단 철도입니다. 우리는 분단된 국가에 살고 있지만, 통일되거나 북한과 교류하게 되면 기차를 타고 유럽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 길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있습니다.
비약해서 상상하면 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 여행할 수 있는 곳들입니다. 두 차례의 큰 전쟁을 겪은 인류가 또다시 큰 전쟁을 일으킨다는 건 인류가 진보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전히 많은 곳이 전쟁 중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희생당했는데도 불구하고, 누가 무엇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걸까요? 시집은 이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전쟁은 겪지 않은 자가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심연과 같습니다. 상식과 도덕은 물론이고, 인간성마저 파괴하는 참혹한 사건입니다. 전쟁에 몰두할수록 저는 전쟁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에 다다랐습니다. 더 나아가 누군가 죽어가는 때에도 살 궁리만 하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시집은 전쟁으로 시작해 결국 나의 일상에 이릅니다. 자유와 의무는 서로 갈등하고 충돌하며 변화합니다. 그것에 대한 정의는 시대에 따라 이동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질문은 인간의 오래된 화두입니다. 그것을 묻다 보면 미지에 이릅니다. 그곳에서 저는 나의 욕망과 민낯을 마주합니다.
시가 되지 못한 말은 넘치고 넘쳐서 나를 압도합니다. 시가 된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꿈속에서 꿈 이야기를 하는 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