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豆滿江)
김규동
얼음이 하도 단단하여
아이들은
스케이트를 못 타고
썰매를 탔다.
얼음장 위에 모닥불을 피워도
녹지 않는 겨울 강
밤이면 어둔 하늘에
몇 발의 총성이 울리고
강 건너 마을에서 개 짓는 소리 멀리 들려 왔다.
우리 독립군은
이런 밤에
국경을 넘는다 했다.
대로 가슴을 가르는
섬뜩한 파괴음은
긴장을 못 이긴 강심 갈라지는 소리
이런 밤에
나운규는 ‘아리랑’을 썼고
털모자 눌러 쓴 독립군은
수많은 일본군과 싸웠다.
지금 두만강엔
옛 아이들 노는 소리 남아 있을까?
통일이 오면
할 일도 많지만
두만강을 찾아 한번 목놓아 울고 나서
흰머리 날리며
씽씽 썰매를 타련다.
어린 시절에 타던
신나는 썰매를 한번 타 보련다.
(『현대문학』 363호, 1985.3)
[어휘풀이]
-강심 : 강물의 한복판
-나운규 : 羅雲奎(1902~1937).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인 영화인. 1926년 「아리랑」을 감독·
주연하였다.
[작품해설]
이 시는 김규동의 시적 변모를 보여 주는 작품으로, 통일에 대한 염원과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김경린·박인환 등과 함께 ‘후반기’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모더니스트로 출발했던 김규동은 1970년대부터 분단의 현실을 시로 표현하는 민족문학 시인으로 변모한다.
‘두만강’은 ‘압록강’과 함께 우리의 아픈 역사를 상징하는 시적 공간으로 문학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김동환의 「국경의 밤」이 그렇고, 이용악의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가 그렇다. 신경림의 「남한강」, 김용택의 「섬진강」, 조정래의 「한강」도 같은 맥락이다. 이 작품에서도 ‘두만강’은 화자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자 일제 강점기에는 생존을 찾아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던 유이민들의 아픔이 배어 있는 공간이다. 또한 ‘두만강’은 독립군들이 민족 주권을 찾기 위해 일본군과 투쟁하던 장소요, 언젠가는 다가올 통일의 그 날을 시퍼렇게 눈을 뜨고 바라볼 역사의 강이다.
이 시의 시상은 추보식 구성에 따라 ‘과거 회상 ⤑ 현재 의문 ⤑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과거 회상 부분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회상적 분위기가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첫째 단락은 1~19행으로, 일제 강점기의 민족 현실과 일제에 대한 투쟁을 보여 준다. 썰매를 타던 어린시절로 돌아가 화자가 회상해 본 현실은 ‘단단한 얼음장’ · ‘겨울 강’ · ‘어두운 밤하늘’ · ‘총성’과 같은 부정적 이미지로 그려질 수밖에 없는 암울한 모습이며, 그러한 상황 속에서 전개되는 독립 투쟁은 ‘강심 갈라지는 소리’가 날 만큼 가슴을 옥죈다.
둘째 단락은 20~22행으로, 역사의 강에 어린 시절의 추억이 아직 남아 있을까 탄식하면서 안타까운 심정을 노래한다. 그것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단순한 아쉬움이라기보다는 행여 민족의 아픈 역사를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데서 오는 안타까움일 것이다.
셋째 단락은 23~29행으로, 통일에 대한 염원을 보여 준다. 화자는 ‘통일이 오면’이라는 가정하에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두만강을 찾아가서 썰매를 타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을 피력한다. 통일을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구체적 행동은 진술되지 않았으나, 두만강을 배경으로 한 일제하의 독립 운동을 언급하는 방법을 통해 통일을 위한 화자의 의지를 드러낸다.
[작가소개]
김규동(金奎東)
문곡(文谷)
1925년 함경북도 경성 출생
연변의과대학 수료
1948년 『예술조선』에 시 「강」이 입선되어 등단
1951년 『후반기』 동인
1955년 『한국일보』,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1960년 자유문인협회상 수상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 역임
시집 : 『나비와 광장』(1955), 『평화에의 증언』(1957), 『현대의 신화』(1955), 『갈잎 피리』 (1958), 『죽음 속의 영웅』(1977), 『낙엽』(1984), 『깨끗한 희망』(1985), 『하나의 세상』(1987), 『한반도 시인 33』(1988), 『오늘밤 기러기떼는』(1989), 『생명의 노 래』(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