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올립니다. 이번엔 평가 해주세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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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게 들이마시다 내뿜자 타오르던 불꽃이 꺼지고 탁한 회색연기가 눈앞을 어지럽힌다. 줄담배를 내리 피우니 이제 남은 것은 돗대뿐. 누가 들을까 조심스럽게 읊조린다.
"젠장 어린 새끼가 부장이라고 반말이 찍찍해대고."
참았던 분노가 피를 역류하게 한다. 누가 월급쟁이가 안정적이라고 했나? 뒤따라오는 젊은 피 아니 위아래 못 가리는 핏덩어리 눈치나 보는 게 안정......?빗방울이 떨어진 시계를 바라봤다. 점심때가 채 5분도 남지 않았다.
"비가 억수같이 오네."
한숨 섞인 말을 내뱉었다. 비 사이를 뚫고 건널목을 건너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편의점 바로 앞에 서서 김이 서리고 물방울이 맺힌 안경을 대충 옷으로 닦는 데 희미한 초점에 비 내리는 거리 편의점 앞에 한 왜소한 사람의 뒷모습이 아른거린다. 연민인가?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이다. 재수 없는 생각이다. 구부정한 모습이 나이를 꽤 먹은듯하다. 그 절음 발이 늙은이를 무시하고 편의점에 들어가 보리음료와 담배를 샀다. 다시 시계를 확인하니 이미 점심때가 지나버렸다. 아아- 분명히 부장이 난리를 칠 텐데 편의점 유리문을 부딪치듯 밀었다. 아직도 비가 오는 거리에 발을 뻗었다. 방금 사온 따끈한 담배를 하나 물고 담뱃갑을 안주머니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왠지 모르게 그 담뱃갑이 거북하게 느껴졌다. 원인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까 그 노인의 모습 때문이리라. 늙은이는 아직도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힐끔 곁눈질로 노인의 얼굴을 바라 봤다. 자세히는 볼 수 없었지만 언뜻 본 그는 자상하고도 슬픈 눈을 가진 노인이였다. 그 눈을 어디서 본 것만 같았다. 순간 정의의 용사가 된 듯 담배를 사고 남은 돈을 움켜잡고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 차마 노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어 고개를 숙인 나의 귓가에 잘못 들으면 괴로운 한숨소리 같은 늙은이의 인사가 들렸다.
"고마워 젊은 청년."
누가 40대인 나를 젊은 청년으로 봤던가? 얼마 만에 듣는 젊은 청년인가? 놀란 눈으로 그 얼굴을 바라보니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순간 울컥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무언가가 차올랐다. 마치 어릴 적 나처럼 콧물까지 훌쩍이며 눈물을 흘렸다. 빗줄기가 고개 숙인 나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때린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다음 신호에 건너 주세요."
나는 그를 외면한 채 건널목을 건넜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사이로 달려가자니 눈에 자꾸 물이 들어가 제대로 뜰 수조차 없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옷에 떨어진 빗방울들을 털어내자니 10만 원짜리 싸구려 양복은 물세탁을 방금 하고 난 것 같았다. 민망해진 나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세수를 하고 핸드 드라이어에 머리를 말리고 엘리베이터에 황급히 올랐다.
"띵"
소리에 놀라 흠칫 몸을 세우고, 층을 확인하고 나서 사무실로 들어갔다. 역시나 과장이 눈을 부릅뜨고 기다리고 있었다. 뜨거운 아니 차가운 눈초리를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옆에 앉아서 분위기를 살피던 권 대리가 꽤 측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축축해진 양복 끝에서 흐르는 구정물이 마치 내 신세처럼 떨어진다. 부장은 뜻밖에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그냥 평소와 다름없었다.
"일을 못하면 자리라도 지키고 앉았어야지"
이렇게. 띠동갑인 어린 윤 과장은 나에게 애정 어린 말을 서슴없이 하는 편이다. 고맙기도 해라. 나만큼이나 낡고 흠집 난 모니터를 켰다. 정신없이 시간에 몸을 맡긴 채 정신없이 억눌린 모습으로 타자를 쳤다. 현재는 빠른 것을 원한다. 나처럼 느린 것은 원하지 않는다. 나도 발을 맞추어 걸어가야 한다. 왜냐면 책상 속 서랍엔 밝게 빛나는 나의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교복 입은 모습이 아주 귀여운 나의 희망.
"저녁 안 하세요?"
착한 미스 우는 내가 걱정이 되나 보다. 신입이라 내처지가 어떤지 모르는가 보다. 그렇겠지....... 된통 터지니까, 불쌍할 만도 하겠지.
"괜찮아요. 아까 전에 대충 때웠어요. 걱정하지 말고 미스우 식사하러 가 봐요."
"어이 미스우 뭐해! 얼른 와."
재차 재촉하는 과장을 무시할 수 없는지 서둘러 옷가지를 가지고 나간다. 그리곤 뭔가 생각이 난 듯 다시 뒤를 돌아본다.
"오늘 환영회 있는 거 아시지요? 꼭 오셔요."
옆에 있는 윤 과장 얼굴을 보고는 하는 소리인지. 윤 과장의 얼굴이 점점 묘하게 변해간다.
"이런, 어쩌지 ........ 오늘 약속이 있어서, 미안해요."
"아- "
"가자니까. 기다리잖아 모두."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타자를 쳐내려갔다. 야근을 마치고, 퇴근길에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들이켰다.
나 한잔, 나 한잔, 나 한잔, 나 한잔........
질끈 묶은 넥타이를 아무렇게나 벗어 던지고 구멍 난 양말조차 벗지 않은 채 비틀거리며 침대에 앉는다.
"뭐야 좀 씻어, 아우 술 냄새."
침대에서 꾸물거리던 마누라가 퉁명스럽게 말을 한다. 남편에 대한 예우 따윈 개나 줘버린 지 오래다.
"야 빨리 안 일어나?"
더 버텼다간 쫓아낼 심산이다. 머리를 울릴 마누라의 목소리를 상상하니 그냥 씻다가 죽는 게 났겠다. 하지만, 뇌는 알콜에 취했는지 몸에 신호를 보내지를 않는다. 빌어머글으으을. 그대로 출렁이는 회색침대에 흡수되어 버린다. 마치 물속을 유영하듯이 마누라의 목소리가 점점 기포로 떠오른다. 웅얼거림은 멈춰지고 잠의 심해로 잠수한다.
"삐삐삐삐 삐삐삐삐"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시계. 힘겹게 손을 들어 시끄러운 녀석을 잠재웠다. 천근만근 무거운 눈을 뜨고 계란후라이를 만들어 접시에 담았다. 번들거리는 계란후라이의 표면이 나를 메스껍게 했지만, 식욕을 이길 수는 없었다. 프라이팬이 낡았는지 녹슨 맛이 느껴진다. 철분 섭취인가. 늘어진 러닝셔츠 속을 벅벅거리며 화장실로 들어간다. 그때까지 마누라는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솔이 다 벌어진 칫솔에 개의치 않고 윗니 아랫니를 요란스레 닦았다. 시야는 아직도 5mm이다.
"아빠 얼른 좀 나와, 나 급해."
"어어, 아 끄나떠."
문을 열었다. 다 나오기도 전에 딸이 문을 잡아챈다. 아슬아슬하게 문 사이를 지나왔다.
"쾅"
어느새 부인님이 나오셨다. 분주하게 한 상을 차린다. 냉장고 속에 깊숙이 손을 집었다. 그리고 김치와 깻잎 사이에 숨겨놨던 큼지막한 통을 꺼낸다. 뚜껑을 열고 그 속을 꺼내 새 프라이팬에 달구어 낸다. 그 향기마저 먹음직스런 돼지 불고기다. 아니다 쇠고기인가? 하도 오랜만에 고기라....... 군침이 살살 돈다. 지글지글 지지는 소리....... 숟가락이 놓인 자리에 앉으니 부인님이 묘한 표정을 짓고서 하는 말이.
"식사했잖아."
"엄마 밥은?"
"아이고, 내 새끼 앉아. 오늘 학부모 총회 맞지?"
"아 창피하게 오지 말라니까."
버릇없는 말투, 쓴소리를 해줘야 하는데 .......
"그래도 담임선생님은 찾아봬야지. 중요한 시기야 지금이."
그 말을 하면서도 내 앞에 있던 반찬들을 딸래미 앞으로 옮긴다. 자리를 피했다. 넥타이도 묶지 않고 신발도 구겨 신고, 바지 단도 접힌 지도 모르고, 계단으로 내려간다.
"헥헥헥"
거친 숨, 귀가 먹먹하고 메슥거린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데 나의 귀청을 때리는 잡음이 들린다.
"띠리리리리리- 띠리리리리리-"
'뭐지? 모르는 번호인데.'
외부화면으로 본 전화번호는 내 기억 상으로는 모르는 번호임이 틀림없다. 저장된 번호도 아니고....... 나의 마음에 미심쩍음이 자리 잡았다.
'이거야 원, 요즘 사기전화가 하도 판을 치니 마음 놓고 받을 수도 없고.'
갈등하는 나와는 관계없이 열심히 울려대는 전화. 좀처럼 끊어 지지 않는다.
'역시 일단은 받는 게 낳겠지?'
폴더를 열고 통화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우연인지 필연인지 전화가 끊어졌다. 분명히 전화를 건 묘령의 사람도 나를 무시하는 게지. 혹시나 착각했을까, 통화내역을 확인하려고 누르려는 순간. 또 우연인지 필연인지 전화를 받아버렸다.
'앗!'
주츰주츰 하는 사이 수화기에선 사람의 소리가 들려온다. 몸을 다시 곧추세우고 핸드폰에 입을 갖다 댄다.
"비참남입니다."
"여어! 나다 이놈아."
대뜸 나라고 말하는 남자. 이상하게도 익숙함을 느꼈다.
"실례지만, 누구 신지요?"
"어허, 너도 많이 늙었네. 나라고 문어 대갈."
"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문어 대갈리라는 이름이 있었나?
"거참 못 알아먹네, 나라고 왕대두!"
"어.......어!"
놀라웠다. 왕대두. 이름만으로도 알겠지만, 그는 머리가 컸다. 그래서 별명도 문어 대갈, 대두는 나와는 국민 학교 출신부터 알고 지낸 죽마고우, 속된 말로는 불알친구였다. 첫 담배도 첫 연예도 첫 외박도 모두 그 녀석과 함께 했다. 고등학교까지 이어진 우리의 우정은 영원 할 것 같았지만, 아쉽게도 졸업을 끝으로 연락조차 못 했다. 일방적으로 사라지고 없어진 것이다. 이 망할 대두가! 첫 동창회에서 들은 바로는 일찍 사고를 치는 바람에 나이 25에 애가 벌써 다섯이라는 것이다. 인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대두가 자랑스러웠다만, 이제야 연락이 온 대두가 원망스럽기도 반갑기도 하다.
"오랜만이다. 잘 지내는 거야?"
"뭐 그렇지. 너는?"
"나도 뭐 그렇지. 도대체 뭐하고 지낸 거야 이 자식아."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대두는 무언가 생각이 난 듯 말했다. 그 말은 나를 멈추게 했다.
"휴....... 그러니까 우리 고등학교 3학년 때 가르치던 담임선생님 말이야."
그 분이라면 기억이 난다. 그동안 왜 잊고 있었지? 차갑게 식어버려 세상에 냉정해져 버린 우리들의 삶을 뜨거운 열정이 숨 시는 세계로 만들어 주신 분이다. 아버지........ 아니, 정신적 지주 아니, 그것보다 더한 무언가. 나는 무엇 때문에 소중한 그분을 잊고 지냈을까? 맹세했는데....... 잊지 않겠다고 꼭 갚아 드리라 맹세했는데.
"왜? 잘 지내시지? 우리 한번 찾아 뵙자."
"그, 그게 안 될 것 같아."
"무슨 소리야! 최정직 선생님이라고 최정직!"
"알아. 나도. 근데....... 돌아 가셨데."
"뭐, 뭣? 무, 무슨 소리야?"
긴장하거나 놀라면 나오는 더듬는 버릇.
"나도 어제 들은 거야, 장님이가 말해줬어, 그것 때문에 어렵사리 연락도 한 거고."
"언젠데? 언제 돌아가셨는데?"
"엊그제 새벽이래. 자세한 건 나도 몰라."
말이 안 된다. 말도 안 된다. 마음속으론 되뇌는 데 왜 눈물이 맺히는 거지?
"오늘 갈려고 하는데 같이 가자고. 마지막이라도 지켜봐 드려야지."
"몇 시에 ?"
"일 때문에....... 늦게 쯤"
"병원은 어디야?"
"관악 보라매 병원."
"난 지금 간다."
달렸다. 아파트로 곧장 달렸다. 고맙게도 엘리베이터는 1층에 멈춰있었다. 여는 버튼을 5차례, 6층 버튼을 10차례 눌러서야 6층에 도착했다. 그리곤 우리 집 앞에서 초인종을 끊임없이 눌러댔다. 아내가 나올 때까지.
"나가요. 나간다니까요. 뭐야 당신이야? 초인종 고장 나게 뭐하는.......악!"
시비를 걸려고 시동을 거는 아내를 밀쳐내고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 던졌다. 부엌을 빠르게 지나 안방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장롱 문을 다 열어 검은 양복을 찾기 위해 안을 뒤적였다.
"당신, 미쳤어? 뭐 하는 짓이야 이게?"
"닥쳐."
"뭐?"
"닥치라고!"
아내는 꽤 놀랐는지 입만 뻐금거릴 뿐 더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아내의 그런 모습은 오랜만, 정정해야겠다. 처음 이였다.
'찾았다!'
깊숙이 박아 두었던 양복을 갈아입는다. 단추는 왜 이렇게 많은지, 벨트 버클은 왜 잘 안 채워지는지. 어떻게든 양복을 입고, 5분 전부터 계속 벙져 있는 아내에게 말을 했다.
"차 키."
아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허겁지겁 옷걸이에 걸려 있는 옷들의 주머니를 뒤적여 차키를 찾아냈다. 그리곤 또 허겁지겁 내게 달려와 차 키를 건넸다. 아내의 차 키, 엄밀히 말하면 내 비상금과 내 용돈으로 산 아내의 차다. 아깝다고 그 좋은 차 자기혼자 타겠다고, 한 번도 빌려주지 않았던, 아내의 차. 차 키를 손바닥에 쥐고 양복 재킷을 다른 한 손에 구겨 잡는다. 어깨까지 들썩이며 놀랜 나의 어린 딸은 눈치를 보며 작은 방으로 들어간다. 다시 현관에 나가 신발을 구겨 신고 집 문을 발로 차고 나왔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는데 8층에 머무른 엘리베이터는 도무지 내려올 생각을 안 한다. 엘리베이터를 한번 째려봐주고 하는 수 없이 계단을 이용한다. 내려가는 거니까 괜찮겠지 라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였다. 생각외로 나는 늙었다. 후들거리는 무릎에 물건을 쥔 주먹을 누르며 허리를 폈다. 역시 두 번이나 뛰어 내려오는 건 무린가? 반짝이며 나를 반겨주는 아내의 새 차 앞에서 땀으로 인한 습기가 가득한 키를 구겨 넣었다. 구멍에 자꾸 빗나간다. 겨우겨우 문을 열고 차 안에 들어가 시동을 걸고 말없이 식은땀을 닦아 냈다. 드디어 보라매 병원의 웅장한 모습이 보였다. 빠르게 구석 자리에 주차하고 양복 재킷을 입으며 거울로 상태를 보려 하는데 거울에서 눈에 띄는 건 땀에 젖은 내 얼굴이 아녔다. 바로 힘에 겨운 모습으로 담배를 피는 나의 옛 친구 반장님의 모습이였다. 시동을 끄고 문을 닫고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갔다. 배가 임신한 것처럼 나오고 이마에 주름살이 늘었지만 내 친구 장님을 못 알아 볼 리 만무하다. 내가 다가가는 지도 모르고 그 중년인은 심각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웠다.
"반장님!"
시선이 아래로 박혀 일어설 줄 모르던 고개가 나를 향했다.
"어! 비참남! 너 맞지? 참남아! 이야!"
"그래, 맞다 이놈아!"
"오랜만이다. "
"그러게 연락 좀 하지, 잘 지냈냐?"
"너무 바쁘더라. 너는?"
"그런대로 잘 지내, 근데 왜 안 들어가고 뭐해?"
"이거 원, 겁이 나서 말이지........ 늙었나봐, 겁 없던 시절 다가니까. 하하"
웃음소리는 호탕하고 컸지만, 표정은 한없이 슬프고 고요했다. 그의 말이 진심인 것처럼
시들어져버린 수양버들 같은 잠님의 어깨에 두툼한 나의 손을 올렸다.
"잘됐네! 같이 들어가자."
우린 검은색 대리석으로 입구를 장식한 칙칙한 장례식장 안에 서서히 빨려 들어갔다. 동굴같은 빈소를 더 깊숙이 더 깊숙이 들어가자 산 자들의 슬픈 눈물들이 동굴 안 온 천장을 적셨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눈물로 즐거움을 가린 돈에 눈먼 자들이 보였다. 마지막 빈소 ........ 구석에 처박힌 그곳은 초라한 국화 꽃바구니 하나가 영정사진 옆을 지키고 있을 뿐, 삭막 그 자체였다. 그리고 영정사진의 다른 쪽을 지키는 남자. 무릎을 꿇고 낙담한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아들이겠지?
"뭐해, 들어가자."
'아까만해도 무섭다던 녀석 맞아?'
조의금을 두 손으로 정성스럽게 모아 쥐고 구멍을 맞추어 집어넣었다. 드리고 빈소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들어가기까지 고개를 들 줄 모르던 남자는 영정 앞에 앉아 기도를 마치고 시들어 버린 국화를 영정사진 앞에 놓을 때까지 일어날 줄 몰랐다. 차마 죄송스러워 영정 사진 이지만 은사님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위로의 말을 건네려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놀랍게도 선생님을 닮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닮지 않았다. 모순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의 눈을 바라보면 냉정과 이기적이 서려 있었다. 선생님은 아니셨다. 열정과 배려가 있던 자상한 눈이었다.
"아드님 되시나 봅니다. 저와 이 친구는 선생님의 고등학교 제자였습니다. 삶에서 배워야 할 모든 가르침을 그분에게서 배웠지요. 정말 존경하던 분이셨는데........ 분명히 은사님께서는 좋은 곳에 편안히 안식을 누리셨을 것입니다."
의미 모를 미소. 그는 웃고 있었다. 아아- 그분의 죽음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 게 분명하다. 나도 그랬으니 가족은 오죽할까. 하나뿐인 혈육인 듯한데. 혼자 남은 쓸쓸함이 오죽할까. 뒤를 이어 장님이가 상주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장님이는 이미 눈물을 그렁이고 있었다. 그의 옆모습을 보면서 그가 정말 하나도 변하지 않았음을 알았다.
"저는, 저는 정말 존경했습니다. 찾아뵙지 못 한 게. 너무너무 죄스러울 뿐입니다."
"아닙니다. 이렇게라도 오신 두 분을 기억하고 고마워하실 겁니다."
입술이 열리고 누런 이를 드러낸 채 웃는 상주. 메스꺼움이 느껴졌다. 뭐 잘못 먹었나? 아우 넥타이를 너무 졸라맸어. 눈물을 닦는 장님이를 이끌고 구석으로 자리를 잡았다. 우리 뒤론 중년의 아줌마들이 자리를 잡고 한참 수다를 떨고 있다. 우리는 그저 말없이 머리 고기를 권하고 술을 권했다. 한 2시간 정도 지났을까. 장님이는 취기에 밥상에 머리를 처박고 나는 흔들거리는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그 때 대두가 나타났다. 자기가 주인공인가? 이렇게 늦게 오고 말이야! 다급한 모습에 대두는 반들거리는 신발을 서둘러 벗고 영정사진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곤 한참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러다 한 손을 들어 얼굴에 댔다. 뒷모습이라 자세히는 모르지만, 눈물을 훔치고 있었으리라. 절을 하고 상주에게 무언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리곤 눈물을 감추며 우리를 찾으려 두리번거렸다. 나는 크게 손을 휘둘렀다.
"대두야 여기다."
이마가 M자형으로 벗겨져 더욱더 머리가 커져 있었다. 그는 어릴 적 근육질의 모습이 더 이상 아니었다. 수척해진 모습이 어른이 된 장님의 반 정도로밖에 안 보였다.
"임마, 구석에 자리를 잡으니까 못 찾았잖아."
"하하 잘 지냈냐?"
"못 지낼 건 뭐냐? 장님이는 맛이 가버렸네."
고개를 쳐 박고 있던 장님이는 놀라운 속도로 고개를 쳐들더니 하는 말
"나 맛 안 갔거든?"
그랬다. 그는 술에 취하지 않았다. 슬픔에 취해 있었던 것이다. 칠칠맞게도 장님이는 밥상에 눈물을 마구 흘려 놓았다.
"그래, 너도 잘 지냈지?"
"그래 잘 지냈다. 너는 아들들 잘 있냐?"
"기러기 아빠다. 외국에 나가 있어. 잘 지내는지는 모르겠다. 요즘엔 전화도 잘 안 해서, 국제전화가 좀 비싸야지."
대두는 내 잔을 빼앗더니 반 정도 남은 술잔을 들었다. 나는 그를 저지했다. 그리고 그 소주병을 빼았아 채워주었다. 우린 계속하여 술잔을 채우고 비워갔다. 끝이 없을 것 같던 상황을 바꾼 것이 있었다. 그것은 우리 셋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 셋의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건 그렇고, 어쩌다가 멀쩡한 양반이 길가에서 동사로 죽었을까?"
투명한 유리잔 안 알콜이 요동을 치며 멈추었다.
"어머 몰랐구나? 멀쩡하진 않았어. 교통사고로 한쪽 발을 절뚝거렸지. "
"난 몰랐네?"
"더 놀라운 건 말이야. 저기 앉아 있는 상주가 후레자식이라는 거지."
"뭐? 후레자식? 무슨 말이야 ?"
요동으로 인한 알콜의 범람이 있어 내 헌 검은 바지를 적셨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글쎄, 아들이라고 낳은 놈이 아버지 청소년 시절에 집 나가서 아버지 교통사고 나니까, 갑자기 찾아와서 하는 말이 보험금 내놓으라고 했데. 그래서 어쩌겠어 외동아들인데 그래서 줘버렸더니 그날로 또 어디로 가버렸데.”
옆에 있던 아줌마도 방정맞은 입술로 대화의 박차를 가했다.
“우리 동네에 김 씨가 도박장에 자주 들락거리는데 그때마다 저놈 면상을 봤다는 거야 보험금으로 도박 한 거지.”
“어머, 어머 그럼 이번에 나타난 거야? 그럼 보험금 때문에?”
“그게 끝이 아니야, 집도 몰래 팔아서 최 씨 내쫓은 게 누구게?”
“그럼, 그것도 아들이?”
장님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 말 사실입니까?”
장님은 눈을 부릅뜨고 무섭게 아주머니를 쳐다보았다. 아줌마는 잠시 놀래 망설이더니 대답을 했다.
“아니 그럼 내가 거짓말이라도 했다는 거야?”
“사실입니까?”
이번엔 대두가 몰아붙였다.
“사실이라니까, 내가 쓸데없이 뭣 하러 거.......”
말을 끝맺기도 전에 우리는 일어섰다. 시작은 대두가 빨랐으나 내가 앞서갔다. 좀 더 빨리 그놈에게 달려갔다. 1등은 나였다. 가식적으로 슬픔으로 얼굴을 포장하는 무릎 꿇은 그놈의 턱주가리를 무릎으로 냅다 찼다.
‘너희는 누군가에게 폭력을 휘두를 자격이 없다. 너희는 돈이나 명예나 권력에서 난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서 난 것이야. 같은 인간이란 말이다. 너희는, 너희는 다른 학생들보다 못난 것도 잘난 것도 없어!’
턱을 감싸 쥐고 아파하는 그놈에게 뒤이어 대두가 번쩍이는 머리를 내려쳤다. 어린 시절 돌머리로 학교를 평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의 필살기. 아마 별이 번쩍였을 것이다.
‘왕 대두, 자식 머리 하난 잘 뒀네. 알맹이가 아주 꽉 찼다. 이 머리로 공부하면 전교일등은 껌이겠네? 하하’
장님이는 울먹이는 눈으로 애원하는 그놈의 배를 말없이 걷어찼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운영비라니,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네. 네 가방에 들었으니 너 쓰라고 누가 줬나 보지. 누군지 몰라도 좋은 투자 하는 거네. 나중에 두 배로 갚아야겠다? 하하 사내자식이 짜기는........ 눈물이 그렇게 헤퍼서야 쓰겠냐?’
누군가 나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그놈에게서 나를 떼어 내려고 나를 끌어냈다. 나는 지지 않았다. 온 힘을 다해 경비원으로 보이는 남자를 바닥으로 엎어트렸다. 그러나 그들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뒤에 있던 다른 경비원도 따라서 나의 나머지 손을 잡아챘다. 쓰러져서 비틀거리던 경비원도 일어나 다시 손을 잡았다. 장님이와 대두도 마찬가지였다. 상복을 입은 남자들이 그들의 얼굴을 차가운 바닥에 눌렀다. 포박상태였다. 그놈은 겁에 질려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얼굴을 감췄다. 코에서 난 피와 입에서 난 피로 그의 얼굴은 감추지 않아도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구경하러 온 다른 빈소 사람들도 우리를 중심으로 원을 만들며 서 있었다.
“놔.”
어디서 나온 자신감일까? 손을 잡는 생판 모르는 남자에게 소리를 질렀다.
“놓으라고!”
놀란 두 남자는 내 손을 놓아 주었다. 나는 몸을 추스르고, 구겨진 양복 안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담뱃갑을 꺼내 찌그러진 뚜껑을 열었다. 알싸한 담배 냄새. 단 하나 남은 담배를 집게손가락과 엄지손가락으로 꺼내 쥐었다. 뒷주머니의 넣어두었던 사거리 호프집 싸구려 라이터로 담배 끝을 불로 지폈다. 타들어가는 담배를 입술로 머금었다. 폐부로 들어가는 진부한 향기.
‘이놈들이! 빨리 죽고 싶어 환장했어? 그렇게 죽고 싶으면 나 먼저 죽이고 죽어! 너희들 피는 거 걸리기만 하면 다 압수해서 다 필 거니까. 내가 죽었으면 죽었지 너희 먼저 죽는 꼴은 못 본다. 나 죽이고 싶으면 뻑뻑 피워대라.’
짠 것이 눈을 흐리게 한다. 나는 담배를 들고 영정 앞으로 다가갔다. 혹시라도 자기를 또 때릴까봐 움찔거리는 놈....... 때릴 가치도 없었던 놈이었다. 적막 속에 나는 영정에 도착했다. 늙고 추한 할아버지. 웃음인지 울음인지 알 수 없는 얼굴. 영정 앞에 조심스럽게 담배를 내려놓았다. 나는 왜 화가 났을까? 이제야 연락한 친구 녀석들 때문에? 지아비도 못 알아보는 이 후레자식 때문에? 꼭 은혜를 갚겠다고 맹세했는데....... 바쁜 생활을 핑계 삼아 잊어버린 것 때문에? 아니면 거리에서 만난 은사님을 알아보지 못한 나 자신 때문에? 그때 집에 모셔 왔었더라면....... 돈이라도 좀 더 쥐여드릴 것을.......
“띠리리리리리- 띠리리리리리-”
쉬지 않고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 회사일 것이다. 침체한 공기 속을 가르는 소리. 나는 용감하게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저 주름진 영정 앞 없어져 가는 담배를 바라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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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들어와서 모니터로 긴 글을 읽어보려니 눈이 뻑뻑해지네요^^;; 으음... 읽어본 느낌 상으로는 글쎄요.. 이야기가 중간에서 끊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옛친구 '대두'의 전화가 그 기점이겠지요. 마치 다른 소설을 이어서 붙여 놓은 것같은 느낌이랄까요. 물론 흐름 상으로는 이해가 가지만, 결국 두 이야기 (직장에서 회사원으로서의, 집안에서 가장으로서의 위치 & 옛 은사의 아들의 배은망덕함, 그리고 은사에서 오버랩되는 그 빗속의 노인) 가 서로 제각각 따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만 같아요. 조금 더 가지치기를 하면 훨씬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중간중간에 뭐랄까요, 쓸 데 없는 말(?), 굳이 쓰지 않아도 될 말이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처음 부분에서 책상 속의 딸 사진 (저는 의도를 잘... 글에서 자식에 대한 부모님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건 아닌 것 같아서요.), 대두가 나중에 도착했을 때 주인공의 빈정거리는(?) 독백 등등..... 그리고 말을 너무 어렵게 꾸며쓰려고 한 듯한 흔적이 보이는 것도 같아요. 흡수, 유영, 범람..... 물론 문장력이 좋으면 좋겠지만... 글의 분위기와는 이질적인 것 같습니다. 문체가 가벼우려 했다가 무거워지고 하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아... 너무 싫은 말만 하고 가는 것 같아요^^;; 좋은 하루 되시고, 건필하세요!
음... 원고지에 맞추어 글을 쓰려니까 ... 조금 연결부분이 부실했네요...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면서 수준을 의식하고 억지로 어려운 말을 쓰려고 했던것 같아요 ㅜㅜ 고쳐야 할 점이 태산같네요! 좋은 비평 감사합니다! 새겨듣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