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살기와 마음 내려놓기
매일 반복되는 삶을 하나로 연결해보면 어떠할까? 일상에서 움직이는 테두리는 대부분 무미건조하고 무력하기 짝이 없다. 흡사 좌표를 잃은 배가 바다에 떠다니듯 내일을 알 수 없는 불안과 복잡함, 무언가 꽉 막힌 듯한 마음 상태를 끌어안은 채 우리는 인생을 살아간다. 당장 아침 알람 소리에 박차고 일어날지 말지, 습관적인 출근 준비와 교통편 결정, 하다못해 점심을 이것저것 중 무엇을 먹을지 선택을 고민하는 삶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자신이 선택한 결정은 감정으로 연결된 만족도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다. 만일 뭔가 완벽히 준비된 일이 있다면 선택으로 고민하지 않고 행복할까? 매일 콧노래로 흥얼거릴까. 놀란 나머지 압도당하여 ‘멘탈’이 붕괴할까. 또 다른 욕망으로 열망할까. 이것을 보면 어떤 것이 나다운 진짜와 가짜 감정일까?
그만큼 인생은 완벽히 준비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특히 팍팍하고 힘들 때, 열심히 한 일이 내 맘대로 잘되지 않거나 선택한 일이 잘못되어 만족하지 못하면 어떤가? 위축된다. 아무리 정신력이 강해도 그쯤 되면 나답지 못한 마음은 든다. 초라해지는 심리도 선택으로 야기된 감정이다.
반면 그런 감정에서 자신을 꿋꿋이 지키는 것도 스스로가 자존감으로 나다움을 지킨 내 선택의 결과가 아닐까. 주변의 비웃음에 자포자기하고 주저앉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이를 성장의 계기로 삼아 더 큰 성취를 이루기도 한다. 운명이 결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고통을 딛고 헤쳐나가서 성공에 이르는 이도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각자 느끼는 감정 선택의 결과가 모두 다르게 심지어 천차만별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렇듯 감정의 배는 어디엔가 도착하고 결과를 낳는다. 당신은 지금까지 이 세상에 없었던 나만이 지닌 무언가에 대하여 생각한 적 있는가?
내 안에 남 같은 나
내 안에 남처럼 살지 않고 나다운 삶을 구가하는 인생은 무얼까?
필자에겐 젊은 여성 친구가 많다, 그중 차분하고 상냥한 현정씨는 곧 40대를 바라본다. 결혼 11년차이지만 오늘도 그녀는 주변인들을 도와주느라 분주하다. 그런 현정씨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모습에 공연히 미소가 나온다. 신혼 초 부부 합산 400여만 원의 맞벌이 급여로 반지하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시쳇말로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큼 재정적 독립을 이루었다.
돈이 삶에 전부가 아니라는 그녀의 생각과 달리 팍팍한 살림살이는 행복한 신혼 시절 불안감으로 맴돌았다. 이어서 아이를 낳아 키워야 했고 당시 직장도 만족할 만한 수입을 보장하지 않았다. 단지 시간과 육체의 함수관계일 뿐, 직장은 더 이상 미래 희망이 될 수 없다는 마음도 들었다. 평생직장을 다니고 퇴사하는 부모 세대와 선배들 모습을 보면서 이래선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주변의 어떤 30대는 ‘저래선 안 되겠다’라는 생각으로 일찍 퇴사해 치킨집을 시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망해버리는 바람에 비탄에 빠진 사람도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자라목처럼 움츠러들기도 했다. 그러니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고 아낄 수밖에 없었다.
한편 돈에 대한 것이면 어떤 책이든 읽었다. 그때마다 느낀 생각을 그녀만의 노트에 무작정 글로 썼다. 때로는 자신 없어 아주 우울한 때에도 내 안에 조그마한 소망으로 썼던 글을 보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그러는 동안 차츰 경제에 눈을 뜬 것이다. 불안과 걱정도 있었지만, 그럴수록 그녀는 항상 최상의 결과를 상상하며 이를 시각화하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자신이 기대한 만큼 가치를 느끼지 못하면 ‘이렇게 살아도 될까? ’하는 고민을 하면서 대게들 걱정한다. 당신은 어떤가? 그러는 동안 찡그린 표정이 되고 때로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멈춰진 것 같고, 하루에도 몇 번씩 ‘유리멘탈’(glass mental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멘탈)과 싸우지 않는가.
신체에 난 상처는 손상된 정도가 보이지만 마음의 고통은 경중을 확인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마냥 둔다면 어떨까? 긍정하는 마음과 부정적인 자신이 부딪쳐 늘 갈등과 고통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를 견디다 못해 결국 ‘이대로도 괜찮아’ ‘이대로 살면 뭐 어때?’하는 원하지 않는 가짜 감정으로 합리적인 척 말하며 모든 걸 회피하고 마는 것이다.
가짜 감정을 내려놓고 기회로 보라
결국 직장이 불안한 미래를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현실을 깨달은 현정씨는 처음으로 부동산 투자에 손을 댔다. 아끼고 절약해 모은 종잣돈과 대출로 산 부동산이 추락하는 바람에 심장이 얼어붙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월급에서 많은 이자가 나갔다. 투자를 잘못한 것 같아 목구멍이 꽉 막힌 기분을 맛보기도 했다. 손실이 발생하는 현실을 믿고 싶지 않아 어딘가 숨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현정씨를 일으켜 준 것이 있었다. 마음을 여과 없이 드러낸 기록장이다. 그녀는 자신의 내면을 괴롭히고 부정하는 내 안의 나를 억누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내려놓으며 명확한 목표의 중요성을 되새겼다. 회복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기록을 바탕으로 ‘왜 해야 하는지’ 그 가치를 이해하고 정신력을 강화하는 것이 주효했다.
이윽고 그녀는 그러한 마음의 탈출구를 찾았다. 다시 일어서기 위한 준비였던 것이다. 재테크 공부를 폭넓고 깊게 했다. 질책하는 남 같은 내 안의 가짜 감정을 내려놓았다. 주어진 현실에서 허탈해 하기보다 오히려 마음공부를 하는 것으로 기회를 삼았다. 열망하는 자신을 들여다보고 기록하며 내려놓는 습관은 이후 기다릴 때와 신속하게 결정을 내리는 일에 많은 도움이 됐다. 우울한 감정을 독서로 달래고 지식을 넓혀 자신을 격려하며 사랑하는 그녀다운 방식으로 스스로를 만들어 나갔다.
그녀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당시 자신을 우울하게 했던 ‘나는 더 이상 할 수 없어’라는 자포자기에 빠졌다면 오늘과 같은 재정적 자립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동안 그녀가 이룬 변화는 반지하 흙수저에서 30대에 30억 자산가가 된 것이었다. 최근 현정씨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성공하려고 노력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누고 선한 영향력을 보태며 살고 있다.
이 사례를 들려주는 이유는 하나다. 잘못됐을 때 괴롭지만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은 누구나 있다. 그건 단지 실패를 위선하는 포장이다. 솔직하게 인정하며 과감히 아픔을 드러낼 수 있는가? 그렇다면 비로소 원하지 않은 부정적인 남 같은 나를 인정하고 내려놓은 것이다. 진정한 나다운 감정을 이해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마음을 글로 나타내고 또 다른 나를 알려고 한다면 비로소 괜찮은 척하는 가짜 감정에서 나답게 내려놓고 위기를 헤쳐나오게 된다.
“당신은 남 같은 내 안에 있는가?” “당신다운 내 안에 있는가?”
우리 내면에는 불필요한 감정이 있다.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살고픈 혼자만의 동굴로 이끄는 마음이다. 평소 그들은 잠자코 있다. 하지만 남 같은 기회가 왔을 땐 서슴없이 나타나 휘젓는 부정적인 우울한 마음이다. 그들은 상처를 꾸짖고 형편없이 쓰러뜨리려 한다. 움츠리게 하고 나답지 못하게 하는 남처럼 자책하는 마음이다.
내 안에 그런 감정으로 인해 힘들면 말 많은 주변과 가족을 피하고 싶어진다. 자신만의 장소를 가고 싶어지기도 한다. 아무 신경 쓰지 않고 경쟁을 피해 조용히 있고 싶기도 하다. 돌이켜 인정하고 내려놓지 못하면 나다운 목적과 기회가 상실되는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된다. 만약 그 감정을 나답게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준비를 한다면 오히려 열정과 의지의 기회가 된다.
'명확한 나다움'으로 시작하라
“인생길이 100리라면, 초등 10리, 중등 10리, 고등 10리길 외 70리는 스스로 가야 할 길이고, 대학을 졸업하면 남은 60리 길은 스스로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이라고 백세를 넘기신 김형석 교수는 말한다.
학벌과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스스로 가야할 길이다. 인생에서 아무리 명확한 목표를 세웠다하더라도 도달하기 결코 쉽지 않다는 기본 전제는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이를 위해 명확하게 내려놓을 수 있는 나다운 감정을 선택하려면 두 가지 질문을 해보라. ‘내려놓는다면 잃을 것이 무엇인가?’ 또한 ‘얻을 것은 무엇인가?’ 그런 다음에는 스스로에 내재된 부정적인 가짜 감정의 실체가 뚜렷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내 안에 내려놓지 못한 남 같은 가짜 감정과 맞설 준비가 된 셈이다.
혹, 잘못된다고 해도 미리 상정했기에 두려울 게 없다. 내려놓음으로 인한 성장은 늘 내 안에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곧 남처럼 사는 것 아닌 나답게 사는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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