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날 그렇게 환호성을 지르도록 아름답던 꽃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흔적조차 없이 잎만 무성해져 은근히 궁금해질 때가 있다. 마치 한바탕 춤판이 휩쓸고 다니면서 초록빛 치맛자락이 물결치듯 출렁거리는 것 같다. 겨우내 훤히 드러냈던 굳은살 몸통이며 팔다리 같은 줄기가 생각났던 것뿐이다. 이미 져버린 꽃은 어디로 간 것인가? 다른 곳에 가서 다시 꽃이 되었을까? 여전히 곱고 향기로운 마음을 지녔을까? 바람과 새들의 노랫소리에 지금껏 휘날리며 벌 나비가 찾아들까? 어딘가에서 아주 조용히 머물다가 일 년 후에 돌아와 그날의 그 꽃으로 다시 피어나는 것은 아닌지 오늘따라 궁금해진다. 꽃이 없으면 나무는 별 볼 일 없어 끝장인 것처럼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그게 아니다. 꽃이 지는 아픔을 딛고 비로소 열매를 맺게 된다. 잎이 무성해져 의젓한 나무로 우뚝 선다. 꽃은 나무나 풀이 살아가는 과정에 일부분일 뿐 전부는 아니다. 물론 꽃 때문에 잎을 적게 피우는 것은 아니다. 꽃과 잎은 나무에 꼭 필요하다. 잎은 광합성작용으로 나무가 자라고 지탱하는 역할을 충실하게 하고 꽃은 종족보존이란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꽃이 피고 지고 잎이 무성해지는 사이에 내려다보던 작은 나무가 올려다보게 성큼성큼 자라서 듬직해졌다. 그러나 꽃과 잎은 단순한 경쟁 관계가 아닌 보완관계이다. 나무는 꽃이 있어 제일인 것이 아니고 잎이 있어 나무를 독차지하는 것도 아니다. 잎도 때로는 꽃인 셈이다. 그만한 역할을 하게 된다. 봄이면 새잎이 산자락을 초록으로 뒤덮으며 팔랑이고 가을이면 잎이 고운 빛깔로 단풍든 우아한 모습으로 꽃 못지않게 아름답다. 나무는 한 번 태어난 자리에서 꼼짝 못 하지 싶어도 삶에 왕성한 면면을 드러낸다. 잠시도 가만히 머물지 못하는 듯 계절에 뒤질세라 꼼지락꼼지락 변화하며 주저하지 않고 즐기는 모양새다. 거부감 없이 순순히 세월을 보내면서 맞이한다. 나무는 꿋꿋이 자라며 나이를 잊을세라 한 해에 한 줄씩 몸 안에 나이테를 그려서 고이 간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