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서정주
복사꽃 피고
뱀이 눈 뜨고
초록 제비 묻혀오는 하늬바람 위에
혼령있는 하늘이여,
피가 잘 돌아 ......
아무 병도 없으면서
가시내야, 슬픈 일 좀,
슬픈 일 좀 있어야겠다.
새봄․2
김지하
삼월
온몸에 새순 돋고
꽃샘바람 부는
긴 우주에 앉아
진종일 편안하다
밥 한 술 떠먹고
몸 아픈 친구 찾아
불편거리를
어칠비칠 걸어간다
세월아 멈추지마라
지금 여기 내 마음에
사과나무 심으련다.
봄날
이희목
어쩔 수 없이
봄은 다시 와
돌개바람 스쳐간 밭둔덕
하얀 난생이꽃 지천으로 피어나
이런 날엔
내내 입술이 말라 타
무논의 독새풀 위로는
종일토록 부연 바람만 불고 있었다.
早春
김춘수
양지바른 높다란 담장에 등을 붙이고 앉으면
스스로 눈이 감긴다. 오후 두 시
그 때다.
누가 와서 그의 염통에
주사침만한 바늘 하나 콱 꽂는다.
아 소리 한 번 지르고 피 실컷 쏟고
그는 숨이 멎는다.
봄 語錄
김규화
봄,
내가 봄
산에 들에 핀 진달래 개나리를 봄
아지랑이 종달이를 봄
화단의 목련을 봄
볼 것이 많은
봄은 와야 함
꽃은 봐야 웃음이 나듯이
임은 봐야 사랑이 일 듯이
봄은 봐야 누워 있는 만물이
일어남
그런 봄을
내가 봄
봄
목진숙
대지의 속살 헤집고
꿈틀거리는 꿈의 조각들이
철벽의 얼음장을 밀어올린다
겨우내 웅크린 생명의 노래가
실핏줄 같은 냇물의 잠을 깨우고
햇살의 간지럼에 버들강아지가 눈뜬다
때맞추어 불어오는 남풍이
북녘으로 길 떠나는 철새들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4월
임병호
봄에는 사람들이 풀잎이 된다
봄에는 사람들이 나무가 된다
봄에는 사람들이 들꽃이 된다
봄에는 사람들이 산꽃이 된다
봄에는 사람들이 남풍이 된다
봄에는 사람들이 냇물이 된다
사람들 가슴속에서 봄에는 풀잎이 움튼다
사람들 가슴속에서 봄에는 나무가 자란다
사람들 가슴속에서 봄에는 들꽃이 피어난다
사람들 가슴속에서 봄에는 산꽃이 피어난다
사람들 가슴속에서 봄에는 남풍이 분다
사람들 가슴속에서 봄에는 냇물이 흐른다
아아, 봄에는 사람들이 강물로 흐른다
청산으로 일어선다 하늘로 열린다
삼라만상을 품에 안는 대지가 된다
봄을 노래함
-진혼곡
조순애
잔설은 매워도
그래도 난
진달래를 노래한다
언 땅에 가두지 말라
새롭게 깃을 펴고
잠든 창공을 흔들테다
수억의 깃털마다
봄 향기에
취해 날고
봄 빛살
부드러운 애무여
해맑은 영혼이여
멀리 더 멀리
높이 더 높이
멈추지 않을 거다.
봄날은 간다
양병호
청보리 빗질하며
칼바람 서슬 죽더라
殘雪 사이 청산
몽고반점 짙어지더라
입맞춤 혀 내밀 듯
민들레 싹 트더라
하늘의 무게 받아내며
모란꽃 몸 열더라
꿀과 독침 버무려
암펄 수펄 닝닝닝
취한 듯 꽃가루 섞더라
절벽 메아리치는 향기
어영차 함성으로 터지더라
연분홍 옷고름 휘날리며
복사꽃 하염없이 지더라
떨어지는 꽃잎 데불고
시냇물 아득히 흘러가더라
그러면서 봄날은 가더라
뉘엿뉘엿 흘러가더라.
봄맞이 /박광호
어느새
눈에 뜨인 노랑나비
황망히 가는 곳은
여기 저기 멍울 잡힌
꽃눈에 입맞춤
얼었든 밤하늘 별빛은
봄비 타고 내려와
씨앗으로 뿌려지고
진홍의
꽃향기 설레는 꿈은
기다리는
임에게도 젖어드는가
산자락 음지엔
잔설은 남아있어
완연한 봄은 아직 이름인데
겨울과 봄 사이
물안개 피어 날 적
갯버들은 이미 꽃을 피었네
흐르는 물소리도
어제와 오늘 다르고
삼라만상 숨쉬는 것은 모두
강 건너
조용히 오는
봄을 지켜보고 있구나
누이야
우리도 이제
봄을 맞을 채비를 하자 !
봄 노래 /靑山 손병흥
새록새록 움트는 여린 잎새처럼
봄 향기 물씬 풍겨나는 계절
기지개 켜고서 소리없이 다가선
온 가득 싱그러운 봄바람 따라
정답게 지저귀던 새들 노래소리
아름답게 피어나던 우리네 사랑
만물이 생동하는 새싹의 향연
꽃샘바람 이겨낸 생명의 부활
가녀린 풋사랑 같은 그런 봄날
봄비 촉촉히 내려 옷깃 가슴 적시듯
꽃이름 불러보면 떠오르는 얼굴
햇살 한 줌 벌 나비 불러모아
너울너울 춤을 추고픈 봄의 왈츠
연두빛깔 온기 가득 담긴 향기로운 봄
봄, 그대 오심을 /김수잔
왜 오시지 않나
투정만 부렸는데
금빛 햇살로
아지랑이 앞세우고
저기 봄바람도 함께오시네
가만히 있어도
반짝이는 얼굴로
모두에게 그냥 주시는
눈부신 봄 햇살 당신
갓 눈 녹은 길섶 사이사이
거친 흙 뚫은 새싹에
따스한 미소의 아지랑이여
이렇게 다정히 오시는 임을
공명심 功名心에 눈이 어두워
참을성을 잃어가기에
이제야 느꼈지, 가슴 설레게
움 틔우는 저 실버들의 숨소리
희망의 봄, 그대 오심을
봄이 왔습니다 /노정혜
봄입니다
춘 3월 봄입니다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얼음 녹여 왔습니다
앞동산 뒷동산에 꽃 피는 봄
생명소리 들립니다
산과 들은 파란 옷 입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동산에서 노래하는 봄
농부는 콧노래 부르면 씨앗을 심습니다
꽁꽁 언 땅도 녹였습니다
참 좋은 계절이 왔습니다
우리 힘을 내요 힘을 내셔요
콧노래 들리는 봄
온 세상 활기로 채웠습니다
봄입니다
봄이 왔습니다.
봄에 하는 사랑은 /이채
바람이 따스한
봄에 하는 사랑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의
푸른 아픔을 몰랐으면 좋겠습니다
알록달록 꽃이 피는
봄에 하는 사랑은
붉어도 얇은 단풍 낙엽의
갈색 외로움을 몰랐으면 좋겠습니다
햇살이 포근한
봄에 하는 사랑은
찬바람에 부서지는 가슴
슬픈 이별을 몰랐으면 좋겠습니다
봄에 하는 사랑은
바람처럼 따스하고
꽃처럼 아름다와
곱고도 포근한 햇살 같은 그대 안에서
영원토록 함께하는 사랑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봄 /송찬호
이 적막한 계절의 국경을 넘어가자고
산비둘기 날아와 구욱 국 울어대는 봄날,
산등성이 헛개나무들도 금연구역을 슬금슬금 내려와
담배 한 대씩 태우고 돌아가는 무료한 한낮,
그대가 오면 함께 찻물로 마시려고 받아온 골짜기 약숫물도
한번 크게 뜨거워졌다가 맹숭하니 식어가는 오후,
멀리 동구가 내다보이는 마당가,
내가 앉아 있는 이 의자도 작년 이맘때보다 허리가 나빠져,
나도 이제는 들어가 쉬어야 하는 더 늦든 오후,
어디서 또 봄이 전복됐는가 보다
노곤하니 각시멧노랑나비 한 마리,
다 낡은 꽃 기중기 끌고
탈, 탈, 탈, 탈, 언덕을 넘어간다
봄날 산에는 /이국헌
봄날 산에는
꽃가지마다 물오른
초경의 고통처럼
탄성으로 피어오른 꽃들의 군무(群舞)
눈을 감았다
밀려오는 파도처럼
산허리를 때린다
산바람 꽃 보라
여인의 실오라기 끝에서
고통도 춤을 추듯
알알이 톡톡 틔우는 새싹
기다림 속에 희망이
깨달음도 침묵으로 꽃을 피운다
봄은 그이를 불러오고 /김인숙
축축 젖은 시간
봄비가 밤을 지킨다
창 사이로 불빛 새어 나오고
하늘을 찌르는 안테나
담벼락에 흐르는 눈물
비가 내린다
축축 늘어지는 봄밤
볏짚 추녀 끝으로
물방울 떨어지고
틈 사이로 스며드는 그리움
돌담에 기댄 장작더미의 기침 소리
비가 내린다
떠난 이에 소식 띄우는 봄날
얼룩 지우고 서성이며 기다리는
해 묵은 나이테
멍든 눈물 벌떡벌떡 마시다가
치미는 입덧
비가 내린다
봄날, 간지러움 /한분순
밤내 헝클어진 마음결
곱게 빗어 찰랑인다
봄볕 머리에 이고
따뜻이 달아오른 눈매
바람에 물든 얼굴이
꽃보다 부끄럼 탄다.
앉은 키, 발끝 간지러운
보랏빛 제비꽃도
가만 고개 내밀어
바깥녘 살피는데
여린눈 마른가지 비집어
기지개 켜는 이른 봄.
봄 /유희경
겨울이었다
언 것들 흰 제 몸 그만두지 못해
보채듯 뒤척이던 바다 앞이었다
의자를 놓고 앉아 얼어가는 손가락으로 수를 세었다
하나 둘 셋, 그리 熱을 세니 봄이었다
메말랐던 자리마다 소식들 닿아,
푸릇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제야 당신에게서 꽃이 온다는 것을 알았다
오는 것만은 아니고,
오다 오다가 주춤대기도 하는 것이어서
나는 그것이 이상토록 좋았다
가만할 수 없이 좋아서 의자가 삐걱대었다
하나 둘 셋, 하고 다시 열을 세면
꽃 지고 더운 바람이 불 것 같아,
수를 세는 것도 잠시 잊고 나는 그저 좋았다
실개천엔 봄이 오고 /松花 강봉환
바짝 메말라 버린 강줄기 따라
이름 모를 새들만 휑하니 날아
여기가 강인지 들녘인지 모를
떼 지어 이리저리 날아만 간다.
매섭게 몰아치는 꽃샘추위 속에
흙먼지만 자욱한 비릿한 내음새
아른거리는 아지랑이들 사이로
화려한 초록빛 계절이 그리운지
아쉬운 듯 가물가물한 물길만
끊어 질 듯 끊어져 흘러 가-고
그래도 실개천에 백로 한 마리
열심히 홀로 자맥질을 하는 구나
봄 /류종호
후밋길 후미진 마음들이
봇도랑 눈녹잇물에
낯주름 풀어 띄우고
찰랑찰랑 고이는 숫기에
짜글짜글 앳된 목통으로 여퉈서는
이 녘들 저 녘들에 볕발 내려
푸렁푸렁 푸렁것들로 휘돌아가는 세상
발부리를 짓차며 어서야 가자
가는 겨울, 오는 봄 /오정방
겨울의 끝은 봄의 시작이다
봄의 시작은 겨울의 끝이다
때로는 겨울 속의 봄,
봄 속의 겨울로 동거하기도 한다
꽃이 피는데 눈이 내리고
눈이 쏟아지건만 꽃망울은 터진다
꽃이 핀다고 내리던 눈이 돌아가겠느냐
주춤 할지언정 피던 꽃은 계속 피어난다
봄 속으로 가슴 스미다 /김민지
언 땅이 품었던 새싹들이
봄 마중에 왈칵 뿜어져 나와
여기저기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언 땅 위로 돋아난 새싹에
따사로운 숨결이 느껴진다
초록에 호사로워
내 심장도 콩닥콩닥 두근두근
봄 속으로 가슴 스미다
봄 처녀 /염경희
참 곱기도 하다
별들이 잔치를 벌였구나
봄맞이 축제로구나!
구름 덮고 잠자던 반 반달이
눈이 부신 듯 내려보고
산허리 베고 누운 밤안개는
별을 쫓아 부서진다
봄바람에 햇살이 너풀거려도
는개 비 추적추적 흩날려도
거울 속 소녀는 칠보단장을 한다
요리보고 조리 보고 토닥토닥
두 볼엔 연분홍 볼연지 찍고
립스틱 짙게 바르니 천생 봄 처녀로구나
활짝 웃는 하얀 목련꽃처럼
새초롬 이 고개를 내미는 들꽃처럼
옴폭 패인 보조개엔 웃음꽃 만발했다
별들이 춤을 추는 날이면
수줍은 봄바람도 달빛에 살랑살랑
봄 처녀 가슴에도 사랑 꽃핀답니다.
겨울과 봄의 교차점에서 /藝香 도지현
계절을 가름하는 비가 내린다
보내야 하는 슬픔에서인가
아직 잡아 두고픈 미련에서인가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지난 계절의 아직 남은 잔재를
말끔히 쓸어 버리고
새로 올 계절을 위한 길을 만든다
세월이란 것은
현재가 현재를 밀어내고
또 다른 현재가 그 자리에 존재해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없는 것
하나, 계절이란 것은
없는듯함 속에서 변화하니
삭풍이 산허리를 돌아가고
훈풍이 앞섶을 파고드는데
봄에 관한 어떤 추억 /상희구
국민학교 적 소풍날
꽁보리밥에 양념친 날된장을 반찬으로
도시락을 싸갔는데
다른 친구들 모두 쌀밥으로 싸왔거니 하고
산모퉁이에 숨어서 점심을 먹었다.
이 기억만은 선연한데
그날 그 소풍간 곳이 어딘지
그날 어머니는
무슨 색깔의 옷을 입으셨는지
그날 날씨가 개었는지 흐렸는지
그날 아침밥은 무슨 반찬으로
어느 숟가락으로 밥을 먹었는지
그날 내가 사자표 가루치약으로
양치질을 했는지 어쨌는지
그날 우리 집 뜨락에
철쭉이 몇 송이나 꽃봉오릴 매달았는지
그날 우리 집 앞을 어떤 자동차가
몇 대나 지나갔는지
그날 신문에 무슨 기사가 실렸었는지
그날 또 어머니가
어떤 종류의 눈물을 흘리셨는지
도무지 기억에 없다.
첫댓글 바라보는 봄과 느끼는 봄이 있나 봅니다. 시가 있으니 느낌으로 다가오네요. ㅎㅎ
아침 모닝커피와 함께 봄을 노래하는 시가 따뜻합니다. 고맙습니다.
하루에
詩 한편씩만 읽어도
정서 순화에 도움이 될텐데 말이죠^^
요즘 YouTube 댓글들을 보면
맞춤법이 엉망진창이더라구요~^^
이렇게 게시글에 댓글만 쓰도
몇 달이면 시집 한 권은 뚝딱 만들 수 있답니다ㆍ
박대장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