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교인 송도고등학교 운동장에서 개교 117년 기념 송도가족 한마음체육대회가 열리는 날, 학교를 찾아가는 길에 먼저 문학산을 오르기 위해 인천지하철 1호선 선학역에 내리니 시샘이라도 하듯 빗방울이 떨어진다.
문학산은 학산 또는 남산이라고도 한다. 예전엔 배꼽산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산이다. 산봉우리가 마치 사람이 배꼽을 내놓고 누워 있는 모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배꼽 모양이 없어졌을 뿐 아니라 옛날 산 형태를 기억하는 이들도 줄어 문학산으로 통칭되고 있다.
문학산은 길마재, 선유봉, 문학산 정상, 연경산, 노적봉 등이 동에서 서쪽으로 길게 능선을 이루고 있어 연수구의 지붕이고 일컬을 수 있는 산이다.
문학산 정상에는 삼국 시대의 유적인 문학산성이 일부 복원되어 있고, 봉화대가 있어서 남쪽으로 안산 정왕산의 정왕봉수와 북쪽으로 서구 가정동의 축곶봉수와 서로 교신역할을 하였으나 지금은 흔적이 없는 상태이다.
문학산은 미추홀 왕국의 발상지로서 유서 깊은 역사의 장소다. 또한 문학산에는 인천도호부 청사와 인천 향교를 비롯해 지방 지정 기념물인 문학산성, 학산 서원 터가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늘에 제를 올리던 도천현, 능허대를 거쳐 중국으로 떠나는 사신 일행을 전송하던 고개로 전송객이 이별을 아쉬워하며 사신 일행을 크게 세 번 불렀다는 삼호현의 이야기도 전해 온다.
선학역 3번 출구를 들머리로 선학 음식문화거리로 들어선다. 선학동은 본래 인천부 구읍면 지역으로 '도재' 또는 '도장'(도쟁이, 도정)이라 했다. 1914년 무지물, 늑각부리를 병합하여 '도장리'라하고 부천군 문학면에 편입시켰다 다시 1940년 인천부에 편입되어 일본식으로 무학정이라 하였으며, 1946년 선학동이 개칭되었다고 한다.
무학정이라 불릴 당시 '무학'이란 '문학산이 학이 춤을 춘다'는 뜻이고, '선학'이란 이 마을 뒷산인 문학산 줄기를 신선이 놀았다는 선유봉이라 불러, 선유봉에서 선자와 문학산에서 학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란다.
법주사 우측으로 문학산 안내판이 서 있다. 가을이 물들기 시작하는 등산로는 연수둘레길 그리고 서해랑길 안내판이 반갑다. 서서히 오르막길이 시작되면서 삼림욕을 즐기며 걷다보면 산의 형태가 '말안장인 길마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길마재에 오른다.
길마재에서 가파른 나무계단을 올라서면 쉼터가 마련되어 있는 전망대다 전망대에 올라서니 흐린 날씨에 간혹 빗방울이 떨어지지만 최고의 조망을 선사한다. 좌측으로부터 강화 마니산과 초피산이 보이고, 한남정맥 능선인 계양산이 그리고 북한산과 우측으로 관악산도 반갑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1km 남짓 남은 문학산으로 향한다. 길마재 전망대에서 문학산 정상으로 가는 중간지점에 아기자기한 바윗길이 나타나면서 신선들이 놀았다는 선유봉이 마중 나온다. 전망대에서 휘둘러보는 조망이 아름답다. 발아래 송도신도시가 손에 잡힐 듯하고 정량산도 반갑다. 올라야할 문학산 정상도 이제 손에 잡힐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