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43호 至氣今至願爲大降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포덕 154년 5월 21일(화요일) | |
|
포덕 154년 |
5월 넷째주 화요시일식 | |
발행처:천도교 동천교구 발행인:김학봉 편집인:김대석 주소:부산시 남구 대연5동 1564번지 전 화:(051) 628~1302~6 Fax:624-0519 카 페:http://cafe.daum.net/dongcheon21 |
집례 : 노암 강병로 교화부장
- 청 수 봉 전
- 개 식 심 고
- 주 문 삼 회 병 송
- 경 전 봉 독 ---- 의암성사법설 '교 비평설' (경전 550~557쪽) ------- 박기홍 학생동덕(2)
- 천 덕 송 합 창 --------------------------------- 제9장 도덕가(천덕송 22쪽, 1~2절)
- 설 교 ------------- 해월신사와 정선, 그리고 영월 ------------- 학암 김학봉 교구장
- 천 덕 송 합 창 ----------------------------- 송가, 개벽의 등불(천덕송 106쪽, 1~2절)
- 폐 식 심 고
* 음악준비 : 문준기 학생동덕(2)
[유학과 동학의 마음수양](송봉구, 도서출판 심포지움, 2012.11)
■ 책 소개 유학과 동학의 마음수양을 천착하는 책이 나왔다. 구체적으로 천도교 제2세 교조 해월 최시형 선생의 일생과 마음 수양법을 공자, 주자, 양명의 수양법과 비교 서술하고 있는 책이다. 그리고 동학의 마음수양법이 주자학(유학)보다는 양명학 쪽에 가깝다는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저자(송봉구)는 성균관대학교 유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철학박사), 현재 양산에 있는 영산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로 있으면서, 천도교 대연교구에 다니는 천도교 동덕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본 서 외에도 <주자의 공부방법론 연구>, <동양고전탐구>, <처음 만나는 논어 이야기>, <처음 만나는 명심보감> 등이 있다. ■ 목 차 서문 Ⅰ. 해월 최시형의 일생 Ⅱ. 해월 최시형의 以心治心 Ⅲ. 주자의 거경(居敬)과 해월신사의 수심정기(守心正氣) 비교 Ⅳ. 양명의 致良知와 수운의 侍天主 비교 Ⅴ. 해월신사 말씀 |
해월신사와 정선, 그리고 영월
학암 김학봉 교구장
모시고 안녕하십니까?
한울님 조화의 자취(天主造化之迹)가 완연한 신록의 계절 5월입니다. 지난 5월 17일 불교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이라 하여 전국의 사찰들이 연등을 밝히고 찾아오는 신도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는데, 저는 부산시교구와 한울산악회가 주관한 정선과 영월지역 해월신사님의 자취를 찾아가는 성지순례 길에 동참을 했습니다. 금토일 황금연휴 3일을 편히 쉴 수도 있었겠지만, 이처럼 뜻 깊은 행사에 빠지면 나중에 후회가 밀려올 것 같아서 만사 제쳐두고 참가신청을 했습니다. 부산에서 강원도 정선과 영월까지는 오전 7시 30분 부산시교구 인근에서 출발하여 밤 10시 30분에 다시 부산에 도착하였으니, 장장 왕복 14시간이나 걸리는 먼 길이었습니다. 일행은 모두 23명이었는데 대부분이 부산시교구 교인들이었습니다. 그래도 평소 연합체육대회 때나 합동시일식에서 면을 익힌 덕분에 큰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오늘 설교는 이번 성지순례를 다녀온 소감과 교사에 나타난 해월신사님의 행적을 살펴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먼저 들렀던 곳은 정선의 ‘적조암(寂照庵)’입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성지순례는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적조암에 대한 기대감이 컸습니다. 예정된 시간인 12시 30분에 버스는 정확하게 도착하여 점심식사부터 했습니다. 식사 후 일행은 함백산(1,573m) 등산로를 따라 화산활동으로 생긴 돌비탈 너덜겅 길을 약 30~40분 정도 올라가니 제법 넓은 절터가 보였습니다. 이 곳 적조암은 2km 정도 아래쪽에 위치한 정암사(淨巖寺․ 일명 갈래사 葛來寺)의 말사입니다.
해월신사께서는 당시 동학도인 이필제가 수운대신사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영해교조신원운동을 일으킨 것으로 인해 관의 지목이 심해져 관에 쫓긴다는 긴급한 상황과 일정하게 거처할 곳과 식량조차 구할 길 없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정성을 다하여 눈 덮인 태백산맥의 고봉준령의 깊고 깊은 산골짜기에 위치한 작은 적조암에서 후천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고자 하는 열망을 담아 49일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신사께서는 적조암 기도 이후 스승인 수운대신사의 51회 탄신향례식을 모시면서 도인들을 향하여 ‘용시용활 用時用活’의 설법을 펴면서 한울님의 가르침이 이 시대와 짝하여 나가야 적절히 활용할 수 있음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접주제(接主制)의 부활을 비롯한 교단정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정점이 된 곳이 바로 이곳 적조암이기도 합니다.
윤석산 상주선도사님의 말씀을 빌면 “관의 지목과 배고픔과 추위 속에서 소백산맥에서 태백산맥으로 이어지는 고초의 나날들을 해월신사는 살아 있는 수련이요, 기도로써 생각하고 지내왔고, 이제 태백의 가장 깊은 산에 들어 마음을 정비하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이렇듯 49일간의 기도로 보냈던 것이며…미래로 가득 날개를 펼칠 봉황을 가슴에 안고 태백의 정상보다도 더 높은 내일을 향해, 적조암 굳게 닫힌 문을 밀쳐 열고 광활한 세상을 향하여 힘 있는 첫 발을 내딛은 것이니, 적조암은 이러한 면에서 동학 천도교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했습니다.
『천도교백년약사』에 나타난 적조암 관련 자료를 살펴보면, “포덕 14년(1873) 10월 15일에 신사는 강수, 유인상, 전성문 등과 태백산 정암사(갈래사) 적조암에 오르니 주지승 철수좌(哲首座)의 대우가 극진하였다.(중략) 포덕 15년(1874) 1월 5일은 공부를 마치는 날인데 이 날 새벽에 신사께서 강화(降話)로 다음과 같은 시를 부르며 말씀하기를「이것은 안짝 句이니 후일에 바깥 句를 채울 자 있으리라」하였다. 그 강시인즉『태백산에서 사십구일 공부를 하고 내가 봉황 여덟 마리를 받아 각각 주인을 정하니, 천의봉 위에 꽃핀 한울이요, 오늘 오현금을 갈고 닦으니, 적멸궁전에서 티끌세상을 벗어나네(太白山工四十九 受我鳳八各主定 天宜峯上開化天 今日琢磨五絃琴 寂滅宮殿脫塵世)』하였다.(중략) 이후 철수좌가 단양군 도솔봉으로 공부할 곳을 알려주니, 신사께서 철수좌의 호의에 감사하고 산을 내려와 정선군 무은담(霧隱潭) 유인상의 집으로 갔다가 스승의 박씨 사모님이 환원하심에 친히 염습을 하고 출상을 한 다음, 철수좌의 옷 한 벌을 지어 2월에 적조암에 들르니 철수좌가 중병으로 누워 있어 문병하고 의복을 주자 눈을 들어 감사한 뜻을 표하였다. 그 이튿날에 철수좌가 입적하였으므로 신사께서 친히 화장하여 장례를 치루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잠시 해월신사께서 받은 강시의 내용을 살펴보면, 성인이 탄생할 때 한 번 거동한다는 상스러운 봉황을 여덟 마리씩이나 한울님으로부터 받으신 정황을 통해 훌륭한 후학들이 많이 나와 우리 도의 미래를 밝힌다는 예견을 해 볼 수 있고, 훌륭한 임금의 표상인 순임금이 직접 만들었다는 오현금(五絃琴)을 갈고 닦아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에서 속세를 벗어났다고 하셨으니, 이로 인해 온 세상에 진정한 한울님의 덕을 펼 기틀을 마련하셨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겠습니다.
적조암 일대는 자작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는데, 천도교의 어느 성지나 사적지가 그러하듯이 이곳 또한 천도교의 성지라는 표지석 하나 남아있지 않아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정확하게 어느 곳이 적조암 터인 지도 명확하지는 않답니다. 조립식 사찰 건물에는 ‘대한불교 조계종 함백산 적조암’이라는 나무 팻말이 붙여져 있었지만, 스님은 출타를 했는지 인기척도 없이 황량하기만 했습니다. 일행은 암자 위 둔덕에 자리를 잡고 참례식을 봉행했습니다. 천도를 수호하기 위해 육신의 고달픔을 마다하지 않고, 도산검수의 험고한 상황 속에서도 오직 기도의 생활로 일관했던 스승님의 유지(遺志)가 더 이상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간절한 심고를 올렸습니다.
다음 성지순례지는 산 하나를 경계로 있는 강원도 영월군 중동면 직동2리입니다. 굽이굽이 산허리를 돌아 내려오니 마을이 보입니다. 이곳은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포덕 147년(2006) 11월에 한 번 다녀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북부산교구의 성지순례에 참여했었습니다. 앞서의 정선 적조암 이전인 포덕 12년(1871) 10월에 해월신사께서 제자 강수, 황재민과 함께 이곳으로 피신해계시던 곳입니다. 그전에는 이 마을 입구에 천도교 서울교구 여성회에서 세운 표지석이 있었습니다만, 최근 새 도로가 나는 바람에 표지석은 자리를 옮겨 길 안쪽에 방치된 상태입니다. 당시에도 우리 소유지가 아닌 도로변에 마을 주민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표지석을 세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앞으로는 교단 차원에서 부지를 매입하여 제대로 표지석을 세워야하는 처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표지석의 내용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기 직동(稷洞)은 천도교 제2세 교조 신사(해월 최시형)께서 포덕 12년 10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관의 박해를 피해 머무르시던 곳이다. 신사께서는 이곳 산중으로 들어와 동굴에서 13일간을 지내시다가 도인 밀양 박씨 용걸(朴龍傑)의 집에 기거하시면서 교단의 정비를 꾀하는 한편 49일 기도를 봉행하시고 ‘인시천(人是天)’이니 ‘사인여천(事人如天)’하라는 <대인접물(待人接物)> 등의 법설을 펴신 곳이다. 또한 천도교 제1세 교조 대신사(수운 최제우)의 부인 박씨 사모님과 그 가족들이 포덕 13년(1872) 봄 잠시 머물러 계시기도 한 곳이다. 이에 후학들은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워 훗날에 알리고자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일행은 전과 같이 참례식을 가졌습니다. 성지순례에 참석하신 분들 중에는 해월신사께서 호랑이의 도움을 받았다는 대호굴(大虎窟)과 함께 박용걸의 집을 찾아보는 것이 어떤가 하는 말씀을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만, 그전에 제가 왔을 때는 마을 주민인 당시 73세 김학수(金學洙 . 본관 김해) 할아버지의 안내를 받아 갔던 길이라 확실히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관계로 확실한 길잡이 노릇을 할 수도 없는 처지여서 아쉽지만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지난 메모를 토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마을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서 그다지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아 길도 없는 산길 계곡을 따라 1시간 가량 올라갔습니다. 사실 순례에 참가한 교인 분들의 연령대가 50대도 있었지만, 대부분 60~70대였기에 산행은 무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젊은 우리들보다 더 잘 산을 타시는 것을 보고 ‘아~ 이게 수도(修道)의 힘이구나’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대호굴은 계곡 끝나는 지점에 떡허니 가로막고 있는 절벽 바위를 우회하여 20~30걸음 지점에 있었습니다. 입구는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야 할 만큼 좁았으나, 굴 안은 스무 명 남짓한 일행이 모두 들어가고도 남을만큼 길이가 제법 길었습니다. 굴은 석회질로 종유석도 있었으나 이미 잘려나가 누군가의 손을 탄 흔적이 있었고, 굴 안쪽에는 흔히 민간신앙에서 볼 수 있는 산신상(山神像)과 좌우에 촛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종종 사람들이 복을 빌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일행은 준비해 온 청수로 참례식을 갖고 스승님의 성령이 간섭하시어 우리 천도교단이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마음속 깊이 심고를 드렸습니다.”
대호굴에 대한 이야기는「천도교서」에 보면, “신사 강수와 더불어 태백산 암혈(巖穴)에 계실 때 14일을 음식을 드시지 못하고, 나뭇잎을 씹어 드시며 연명(延命)하시더니 대호(大虎)가 있어 밤낮으로 굴 주위를 떠나지 아니하거늘 신사 호랑이에게 일러 말하기를 ‘너는 산군(山君)이라 어찌 와서 나를 보호하는가?’ 하니 호랑이가 머리를 숙이고 소리를 내어 응대(應對)하여 기뻐하는 뜻이 있는 듯하였다.” 고 되어 있고, 또 조기주님의 「동학의 원류」에는 “후에 들은 즉 관군(官軍)이 뒤를 따라 소백산 일대를 탐색하여 암굴(巖窟) 근방까지 왔다가 대호를 만나 봉변(逢變)하고 그냥 되돌아갔다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을 보더라도 해월신사님의 지극한 정성에 산중호걸이라 일컬어지는 호랑이조차 감응을 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렇게 해서 원래 목적했던 성지순례지 두 곳을 모두 돌아보았습니다. 시간만 허락했다면, 이곳 외에도 무은담과 미천, 장현곡과 소밀원 등지를 둘러보았겠지만 워낙 장거리인지라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지순례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입니다만, 단지 교사(敎史)를 책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현장을 직접 답사함으로써 얻는 분위기와 느낌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기회가 닿는 대로 짬을 내어 스승님의 발자취를 찾아가리라 다짐하면서 오늘의 설교를 가름합니다. 감사합니다.
☞ 강원도 정선, 영월 해월신사 사적지 순례 다녀와(5/17) : 지난 5월 17일(금) 부산시교구와 한울산악회가 주관한 강원도 정선 적조암, 영월 직동 성지순례 행사에 우리 교구 김학봉 교구장이 참여했습니다.
☞ 경북 영양에 새로 발견된 해월신사 49일 기도처 현장 답사(5/18) : 경북 영양 일월산에서 최근 발견된 해월신사 49일 기도처를 확인하기 위해 우리 교구 성강현 종학실장이 현장을 답사하고 왔다. 이날 답사에는 최초 기도처 발견자인 김기선 영양군청 문화관광과 직원과 신인간사 박 철, 방상언 해원포 직접도훈, 안동한 대연교구 교화부장 등이 동행했다. 앞으로 보다 심도 있는 연구가 있어야할 것입니다.
☞ <제233차 천도교 부산연합 간담회> 결의사항(5/19) : 지난 5월 19(일) 오후 2시 북부산교구에서 부산연합 간담회가 열렸다. 당일의 안건 및 결의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내년 포덕 155년도 천일기념 행사 이웃종교 성직자 참석의 건 : 이웃종교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이나 성탄절에 우리 종단에서 참석하고 있으나, 우리 종단의 최대 명절인 천일기념식에는 교단 자체 행사만으로 머무르고 있어 내년 천일기념 행사부터는 이웃종교 성직자의 참여도 고려해보는 것이 좋을 듯함. 추후 충분히 논의해야 할 것임. 2) 부산종교인평화회의 천도교 공동대표 선임의 건 : 부산시교구 김길철 교구장을 선임함. 3) 6/16 부산연합 합동시일식 및 강도회 개최의 건 : 부산시교구에서 시일식을 봉행하고, 시일설교 및 강도회 강사로는 윤석산 상주선도사를 모시기로 함. 4) 6/24 유엔평화공원 유엔전몰장병 추모제 참석의 건 : 오전 11시. 추모관. 교구장은 도복을 지참합니다. 교인 참여 독려. 5) 부산종교인 평화회의 천도교 분담금 납부의 건 : 부산시, 동천(각 30만원), 북부산, 동부산, 남부(각 20만원), 대연, 송도교구(각 5만원) <기타 안건> 1) 5/26 천도교 부산여성연합 및 연합 합창단 창단기념일 합동시일식 봉행의 건 : 창단 기념일에 맞춰 합동시일식을 부산시교구에서 봉행키로 함. 2) 차기 회의(234차) : 포덕 154년 7월 21일(일) 오후 2시 동부산교구에서 개최됩니다.
* 집례 : 중암 김대석 교무부장
* 경전봉독 : 김병우 학생동덕(2)(의암성사법설 '대종정의', 경전 558~570)
* 천덕송 합창
(1) 제10장 흥비가(기1)(천덕송 24쪽, 1~2절)
(2) 송가, 땅 위에 한울나라를(천덕송 108쪽, 1~2절)
* 설교 : 덕암 성강현 종학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