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를 만든 마포구 용강동(2)
용강동 149번지 일대에 있던 우물을 작은 우물, 430번지 부근에 있던 우물은 큰우물이라 했다. 큰 우물은 동막 사람 모두가 마실 만큼 수량이 풍부한 우물이었다. 작은 우물은 여름철에 배탈이 났을 때 효과가 있었다고 하는데 톡 쏘는 듯한 맛이 있었다. 이로 보아 아마도 탄산 성분이 함유된 것이 아닌가 한다.
용강동 335번지에는 서울시 민속자료 제17호로 1977년에 지정된 정구중(鄭求中)집이 있다. 이 가옥은 동향으로 배치된 구가형(口家形)집으로 안채, 행랑채, 별당이 따로 축조되어 있으며 안채뒤에 있는 별당은 전형적인 ‘ㄱ자’ 집이다. 이 가옥은 도시의 제약된 좁은 대지 안에 전통적인 안채에 별당채까지 갖추어 오밀조밀한 깊은 맛을 보여주는게 특징이며, 1920년대 이후 한식주택의 면모를 보여주는 개량한옥으로서 보기드문 예인 것이다.
이 집에 들어서면 넓지 않은 마당에 측백나무, 철쭉, 목련, 장미, 소철, 사철나무, 난초롱이 있어 운치를 더해준다. 이집은 구한말 용강동의 부농인 이모씨가 무남독녀에게 주기 위해 당시 장안에서 이름난 4대 목수중의 하나인 연영달씨를 시켜 지었다. 목재는 압록강 유역의 홍송과 백송을 뗏목으로 옮겨와 한강에 2년 동안 잠겨 놓았다가 1년간 건조한 후에 못을 전혀 사용치 않고 지었다.
용강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토정길의 연변은 ‘마포 주물럭갈비’가 처음 시작된 곳이다. 처음에는 전차를 이용한 승객들이 종점인 이곳에 내려 퇴근길에 주로 이용하던 주점의 술안주로 개발해낸 것이다. 돼지고기의 특유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 몇가지 양념을 섞어 만들었다. 사람들의 입맛이 변함에 따라 ‘마포 주물럭갈비’라는 대명사로 바뀌었고, 재료도 점차 고급화되어 점차 쇠고기로 바뀌어지면서 마포를 알리는 명물로 바뀌어졌다.
토정길 북쪽은 옛날 지번 그대로이나 그 남쪽은 구획정리가 되어 비교적 반듯반듯한 모양새를 이루고 있다.
「토정 이지함 집터」
무소유를 실천한 자유인이자 조선 3대 기인이며 『토정비결』의 저자로 더 잘 알려진 토정 이지함 선생이 살던 집터로 토정동 한강 삼상아파트 자리에 표석이 있다.
「삼개포구」
마포의 옛 포구 이름으로서 토정동 강변도로 아래에 삼개포구의 표석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