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감각기관 눈 복잡하기로 말하면 조의 몸 안에 있는 다른 어떤 기관도 나와 맞설 수 없다. 크기는 탁구공 정도밖에 안되지만 나는 수천만 개의 전기회선을 가지고 있어서 전달되는 150만 개의 메시지를 처리할 수 있다. 나는 조가 흡수하는 모든 지식의 80%를 수집한다. 그는 나를 소형 텔레비전 카메라쯤으로 생각한다. 그런 비유는 나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제일 크고 값비싼 TV 카메라보다 훨씬 민감하다. 나는 모든 기적 중에서 가장 놀라운 기적으로 손꼽히는 시각을 관장하고 있다. 오늘날의 세계는 나에게 고달픔을 안겨 주고 있다. 나는 원래 이런 일을 하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조의 선사시대 조상들에게는 눈의 주요 임무는 먼 거리에 있는 사물 피해야 할 위험, 잡아야 할 짐승 등등 을 보는 데 있었다. 내가 계속적인 근거리 작업을 하라는 소임을 받은 것은 바로 최근의 일이다. 나의 해부도를 보면, 왜 내가 오늘날의 요구에 적응하기 어려운지 알게 될 것이다. 먼저, 나의 앞창 미국 돈 10센트짜리 주화만한 투명한 각막 을 보라. 각막은 광선을 질서정연한 모양으로 굴절시킴으로써 모는 과정의 첫 단계를 담당한다. 나의 동공으로 말하면 조절이 가능한 광선의 통로이다. 눈부신 햇빛 속에서는 거의 닫히고 어두운 밤에는 활짝 열린다. 그러나 지금까지 설명한 이런 정도의 그저 보기만 하는 일이라면 값싼 카메라도 능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사실 나의 경이로운 작업은 수정체 크기와 모양이 타원형 비타민 정제와 같은, 액체가 담긴 자그마한 주머니 에서 시작된다. 나의 수정체는 작지만 지극히 힘이 세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을 하는 근육 고리에 에워싸여 있다. 나의 수정체는 긴장을 하면 두꺼워져 가까운 물체를 볼 수 있게 되고 긴장을 풀면 납작해서 멀리 떨어진 물체를 보게 된다. 이것은 동굴에 살던 조의 조상들에게는 알맞는 조절장치였다. 그들은 주로 6m 또는 그 이상의 거리에 있는 사물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수정체의 근육은 대체로 긴장을 풀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조는 가까이 있는 것들을 보면서 즉 독서와 책상에서 하는 작업등을 하면서 살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나의 모양체근은 긴장해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따라서 지치게 된다. 나의 수정체 앞뒤에는 액체가 가득 찬 방이 두 개 있다. 앞쪽에 있는 액체는 물과 같고, 뒤쪽에 있는 것은 달걀 흰자위처럼 농도가 진하다. 물 같은 액체는 내가 쭈그러지지 않고 단단하게 부풀어 있게 해준다. 이 액체가 둘 다 티 하나 없이 맑아야만 빛이 통과할 수 있다. 눈부신 빛을 볼 때 조의 눈에 들어오는 '반점들'은 내가 자궁 안에서 만들어지던 때부터 있었던 세포의 잔재들이다. 이 세포의 잔재들은 조가 살아 있는 한 그의 눈에 있는 액체 속을 정처없이 떠다닐 것이다. 조가 어떤 물체를 볼 때, 빛이 수정체를 통과하면 수정체는 나의 안쪽 후면 3분의 2를 덮고 있는, 얇은 반투명 벽지 모양의 망막에 정확히 초점을 맞춘다. 조의 뇌를 제외하고는 그의 몸 어디에도 그처럼 좁은 공간에 그처럼 많은 것이 채워져 있는 곳은 없다. 넓이가 6.25㎠도 안되는 나의 망막에는 1억 3,700만 개의 감광세포가 들어 있는데, 그중 1억 3,000만 개는 명암을 식별하는 작용을 하는 막대기 모양의 세포(간상세포)이고, 700만 개는 색을 식별하는 기능을 하는 원추 모양의 세포(추상세포)들이다. 간상세포들은 나의 망막 도처에 흩어져 있다. 그러나 밤에 반딧벌레 한 마리만 지나가도 그들은 복잡한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반딧벌레가 지나가면 그 희미한 빛이 간상세포에 들어 있는 붉은 자줏빛 색소인 로돕신을 하얗게 변화시킨다. 로돕신을 하얗게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아주 약한 전기 -- 모기를 간질이기도 어려운 수백만 분의 1볼트 가 일어나는데 이것이 짚 굵기만한 시신경으로 들어가, 시속 약 480km의 속도로 조의 뇌에 전해진다. 뇌는 홍수같이 밀려드는 신호를 해석하여 이것이 반딧벌레라는 판단을 내린다. 이 모든 복잡한 전기화학작용이 일어나서 끝나기까지 0.002초밖에 안 걸린다! 간상세포들도 복잡해 보이지만 추상세포들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이 세포들은 내 방 뒤쪽에 있는 좁쌀만한 크기로 노랗게 파인 중심와에 모여 있다. 이곳에 예리한 시각 독서나 그 밖의 근접 작업 등 과 색채감을 담당하는 곳이다. 이 추상세포들 역시 하얗게 변할 수 있는 색소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유력한 학설이다. 추상세포 하나에 빨강, 초록, 파랑에 작용하는 색소가 각각 하나씩 있다는 것이다. 팔레트에다 물감을 섞는 화가처럼, 조의 뇌는 이 색들을 혼합하여 수십 가지 색깔을 만들어 낸다. 만약 이 복잡한 전기화학작용에 이상이 생기면 조는 색맹이 될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들은 8명에 1명 꼴은 색맹이다. 빛이 희미한 데서는 추상세포들의 활동이 감소되어, 색채감각이 사라지며, 간상세포가 일을 떠맡음에 따라 만물이 회색으로 변한다. 조는 사물을 나 즉 눈으로 보지만, 그는 또한 뇌 안에서 본다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아 뇌에 있는 시각중추가 파괴되면 조는 영영 장님이 되고 말 것이다. 그보다 약한 타격을 받으면 조는 '별들' 혼란스러운 전기교란 을 보게된다. 뇌가 가지고 있는 '보는' 기능은 조가 꿈을 꿀 때를 생각하면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는 나의 뚜껑(눈까풀)이 닫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영상을 '볼' 수 있다. 그가 만약 태어날 때부터 장님이었다면, 다른 감각적 자극 촉감, 소리, 냄새 을 통해서 꿈을 꿀 것이다. 조가 태어날 때의 눈은 지금의 눈이 아니었다. 출생 당시에는 단지 명암만을 식별할 수 있었다. 처음 몇 달 동안 그는 동굴에 살던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원시였다. 그래서 그는 딸랑딸랑하는 장난감 같은 것을 자세히 뜯어볼 때면, 그것을 얼굴로부터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떨어지게 들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되었다. 또 처음에는 조의 두 눈이 서로 보조가 잘 맞질 않았다. 내가 이쪽으로 가는데, 내 짝은 저쪽으로 가곤 했다. 우리들이 따로 노는걸 보고 조의 어머니는 걱정을 했다.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생후 수개월이 되자 우리들은 빈틈없이 행동을 통일할 수 있게 되었다. 조가 6살이 되자, 그의 시력은 아주 좋아졌다. 그러나 내 시력은 8살이 되어서야 절정에 이르렀다. 어린 시절에, 조는 어둠침침한 데서 책을 읽곤 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러면 눈을 '망친다'고 꾸중을 했다. 당치도 않은 말이다. 어린이들은 어른들보다 희미한 불빛 아래서도 더 잘 볼 수 있다. 그리고 설사 가장 나쁜 환경에서 무얼 본다고 하더라도 시력에는 아무런 해가 없다. 나는 이 밖에도 별난 속송을 많이 가지고 있다. 나의 근육들은 비록 작지만, 단위 중량의 힘으로 말하면 몸 안에서 가장 힘이 센 근육 축에 낀다. 나는 하루 평균 10만 번 가량 물체들을 정확하게 초점에 올려놓기 위하여 움직인다. 조가 다리 근육에 비슷한 양의 운동을 시킨다면, 그는 같은 시간에 80km를 걷게 되는 셈이다. 나의 청소장비도 또한 이에 못지 않게 놀랍다. 나의 눈물샘은 끊임없이 수분 먼지와 기타 이물질들을 씻어내는 눈물 을 만들어 낸다. 말할 필요도 없이 내 눈까풀은 자동차의 창닦이와 같은 역할을 한다. 조는 1분에 3 6회 눈을 깜박거리는데 내가 피곤하면 그 회수가 많아진다. 이렇게 해서 나의 각막은 항상 축축하고 깨끗하게 유지된다. 또한 눈물에는 리소자임이라고 하는 강력한 살균제가 들어 있는데 이 물질이 감염성 세균으로부터 나를 보호한다. 나는 가능한 한 많이 쉼으로써 피로를 피하려고 노력한다. 조가 눈을 깜박일 때, 나는 휴식을 취한다. 또 나는 내 짝과 번갈아 가며 일을 한다. 내가 업무량의 90%를 맡고 있는 동안, 조의 다른쪽 눈은 휴식을 취한다. 그러다가 그쪽이 일을 시작하면, 내가 쉰다. 자연의 여신은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보호장치를 마련해 주었다. 나는 충격흡수장치 역할을 하는 불쑥 튀어나온 광대뼈와 이마로 둘러싸인 뼈의 동굴 속에 들어있다. 자연의 여신은 또한 나에게 티처럼 해를 입힐 가능성이 있는 침입자가 들어올 경우 경보를 울리는 초고성능의 신경을 주었다. 그래도 나에게는 골칫거리들이 있다. 나의 초점조절장치가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는 때가 가끔 있다. 이 문제는 안경으로 95%를 교정할 수 있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질병이다. 또 한 가지 걱정거리는 배수 문제 즉 나에게 들어오는 액체가 너무 많거나, 그것이 너무 적은 경우이다. 안구의 압력이 항진하여 나의 시신경에 공급될 혈액을 감소시키기도 하는데 이것이 녹내장이다. 녹내장에 걸리면 심한 경우에는 며칠 만에 영영 장님이 되는 수도 있다. 이 병은 진행속도가 더딘데다가 초기의 증후가 아주 미미한 까닭에 병에 걸렸다는 것을 모르고 지내기 쉽다. 등불의 주위에 무지개 같은 색륜이 보이고 측면시력이 감퇴하며 어둠에 대한 적응이 잘 안되고 시상이 몽롱해지는 것이 녹내장의 증후이다. 47세인 조가 그 나이에, 시력의 손상이나 완전 실명을 가져오는 녹내장에 걸릴 확률은 40분의 1이다. 의사는 내 안구에 음진동측정계라는 작은 계기를 갖다 대고 누름으로써 녹내장을 간단히 검진할 수 있다. 조는 해마다 이 같은 검진을 받아야 한다. 녹내장을 치료하려면 점안약을 사용하거나 수술을 해야 한다. 나에게 흔한 또 다른 질환은 난시이다. 나의 망막 표면이 고르지 못해서, 유리조각 속에 거품흠집이 들어 있는 경우처럼 상을 일그러뜨리는 것인데 안경을 끼면 교정된다. 그보다는 망막박리가 더 무서운 병이다. 벽지 모양의 망막이 부풀어오르거나 벗겨지는 경우를 말하는데, 보통으로 번쩍이는 빛이 보이고 영상이 일그러지거나 희미한 반점이 보이는 등 뚜렷하게 증세가 나타난다. 외과의사가 나의 벽지를 '압정'으로 다시 제자리에 붙일 수 있는데, 그 성공률은 80% 정도이다. 나의 각막과 수정체 정상일 때는 완전히 투명함 가 모두 흐려져서 실명할 수도 있다. 각막이 원인이라면, 조는 각막이식으로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 수정체에 원인이 있다면, 백내장 수술을 받고, 그 뒤 두꺼운 안경이나 콘택트 렌즈를 사용해야 한다. 다행히 조는 지금껏 이 모든 질병을 모면해 왔다. 그렇긴 하나 나는 조의 다른 기관들과 마찬가지로 늙어 간다. 내 수정체의 투명도가 떨어지고, 조절근육들이 점차 약해지고, 동맥들이 굳어져서 나의 망막에 공급되는 피의 양이 줄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계속되겠지만, 조가 지나치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 그가 죽는 날까지 내가 그에게 든든한 시력을 제공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귀 조는 얼마 전 자기 회사에 사다놓은 컴퓨터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가 얼핏 보기에 그것은 기적을 일으키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그것은 콘크리트 혼합기같이 엉성한 기계에 불과했다. 컴퓨터에 대한 나의 이러한 평가는 어쩌면 편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고도의 소형화기술을 대표하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조의 몸 어디에도 나의 내부구조같이 아주 작은 공간에 그처럼 많은 것들이 꽉 채워져 있는 곳은 없다. 나는 상당히 큰 도시의 전화사업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전기회로를 갖추고 있다. 나는 또한 조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쓰러지지 않도록 막아주는 일종의 키잡이이기도 하다. 나는 조의 오른쪽 귀인데, 개암알만한 공간에서 이 모든 일을 해내고 있다! 조는 눈을 가장 중요한 감각기관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짝과 내가 없다면, 그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가운데 고독하게 살아야 하는 비운 실청은 실명보다 정서적으로 훨씬 더 해롭다 에 빠지게 된다. 조는 나를 단순히 자기 머리 옆에 달려 있는 살덩어리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조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외이일뿐이다. 외이는 소리를 모으는 나팔이다. 거기서 길이 2.5cm의 동굴이 비스듬히 고막과 이어지는데, 이 동굴은, 꼬부라져 있어서 섬세한 나의 내부구조를 보호하고 공기를 따뜻하게 데워서 내부환경을 아늑하게 유지해 준다. 이 동굴에는 엄청나게 많은 털과 4,000개의 귀지샘들이 있는데 이들은 벌레, 먼지, 그 밖의 다른 잠재적인 유해물들을 잡아내는 일종의 파리잡이 끈끈이 구실을 한다. 귀지는 세균 감염을 예방해 주기도 한다. 특히 조가 더러운 물에서 수영을 할 때 귀지가 큰 몫을 한다. (그가 보기 흉한 귀지를 씻어내는 것은 무방하지만, 귀지를 모조리 파내진 말았으면 좋겠다. 내 고막을 다칠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어차피 내가 또 여분의 귀지를 내보낼 것이기 때문이다.) 지름이 1cm 정도밖에 안되는 팽팽하게 당겨진 질긴 막인 고막은 소리를 듣는 복잡한 작업이 시작되는 곳이다. 소리를 실어 오는 공기의 파동이 이곳을 때린다. 마치 북채로 북을 치는 것처럼. 속삭임에서 나오는 가녀린 진동으로도 고막을 안으로 밀어 넣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아주 미소하여 10억 분의 1cm 밖에 되지 않는다. 이 미세한 자리 이동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는 신비로운 일련의 과정을 거쳐 의미를 지닌 소리로 변한다. 그 과정을 보려면 내 고막을 거쳐 완두알만한 조의 중이로 들어가야 한다. 여기에 경첩같이 서로 이어진 세 개의 작은 뼈가 있는데, 생김세를 따라 각각 침골, 추골, 등골이라 부른다. 이들은 내 고막의 미세한 운동을 조절하고, 이 운동을 22배로 증폭시켜 등골에 붙어 있는 타원형 창을 통하여 나의 내이로 전달한다. 나의 내이 진짜 청음기관 는 몸에서 가장 단단한 뼈가 파여서 생긴 요새 같은 동굴 안에 있는데 이 동굴은 물 같은 액체로 채워져 있다. 그 주요한 청음부위는 달팽이 모양의 와우각인데, 이 와우각의 꼬부라진 내부에는 현미경으로 보아야 보이는 털 모양의 신경세포 수천 개가 박혀 있고, 그 하나하나가 각기 특정한 진동에 조율되어 있다. 중이의 등골이 내이로 이어지는 타원형 창을 '노크'하면, 이 액체가 진동한다. 가령, 중간 C음이 울렸다고 가정하면, 와우각의 중간 C 털세포가 조수에 일렁이는 바다풀처럼 임파액 속에서 흔들린다. 이 흔들림으로 극히 약한 전기가 일어나서 나의 청신경 연필심의 굵기밖에 안되는 이 신경에는 3만여 회선이 들어있다! 으로 들어가고, 다시 1.5cm쯤 떨어져 있는 조의 뇌로 전달된다. 나의 와우각은 똑같은 일을 하는 조의 왼쪽 귀와 함께 수천 개의 이런 전기신호를 받아들이지만, 이 자료들을 정리하여 의미있는 소리로 전환시키는 것은 뇌의 임무이다. 그러므로 조는 나를 가지고 듣지만, 사실은 그의 뇌 안에서 듣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공기의 파동으로 전달되는 소리만을 이야기했다. 조는 또한 뼈를 통해 전달되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조가 말을 하면, 소리의 일부는 입을 떠나 내 고막을 때리지만, 다른 일부는 바로 턱뼈를 통하여 나의 내이의 임파액에 직접 전달된다. 그러므로 조가 듣는 소리는 상대방이 듣는 소리와 아주 다르다. 그 때문에 그는 녹음 테이프에 담은 자기 목소리를 듣고도 그것이 과연 자기 목소리일까 하고 의아해 한다. 또 조가 셀러리를 먹으면서 자기가 아주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똑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듣는 것은 신기한 나의 내이에 관한 이야기의 일부에 불과하다. 나는 와우각 위에 액체가 가득 찬, 3개의 아주 미세한 반원형의 도관 즉 삼반규관을 가지고 있다. 이 삼반규관은 조의 평형기관이다. 그중 하나는 상하운동을 탐지하고, 다른 하나는 전진운동,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좌우운동을 알아낸다. 조가 넘어지기 시작하면, 한 반규관의 액체가 자리바꿈을 한다. 그러면 그곳에 있는 털세포가 이것을 탐지하여 조의 뇌에 알리고, 그의 뇌는 조를 똑바로 서 있도록 하기 위해 근육에 힘을 주라는 명령을 내린다. 어린 시절에 조는 이따금 어지러워 비틀거릴 때까지 다른 소년이 자기를 빙글빙글 돌려 주는 것을 좋아했다. 조가 어지러워 비틀거린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삼반규관으 액체가 자리바꿈을 빨리 하는 바람에 뇌가 미처 처리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메시지들을 받게 되었고 따라서 조는 근육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되었던 것이다. 뒤흔들리는 배 안에서처럼 무질서한 자리바꿈이 너무 오래 계속되면, 다른 기관들까지 영향을 받기 시작한다. 조는 땀을 흘리게 된고, 멀미가 뒤따르는 게 보통이다. 조의 청력은 그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쇠퇴하기 시작했다. 나의 세포조직이 탄력을 잃고 털세포들이 퇴화하고 칼슘앙금들이 중요한 부위에 침투함에 따라, 그의 청력은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조가 갓난 아이였을 때, 조는 진동수가 매초 16에서 3만까지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만약 진동수가 초당 16 이하인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면, 그는 자기 신체의 진동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조는 지금도 자기 몸의 진동을 들을 수 있다. 손가락으로 귀를 막으면 웅하는 나직한 울림이 긴장한 손가락과 팔의 근육을 타고 들려온다.) 여남은 살 되었을 무렵 그는 초당 진동수가 2만 이상인 소리는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지금 그는 초당 진동수가 8,000 이상인 소리는 듣지 못한다. 80 살이 되면 그는 초당 진동수 4,000 이하의 소리밖에 듣지 못할 것이다. 그때에는 조용한 장소에서 하는 대화는 제법 잘 들리겠지만, 시끄러운 곳에서는 잘 안 들릴지도 모른다. 그는 높은 소리보다는 낮은 소리를 더 잘 들을 것이다. 또한 그에게는 데시벨 로스(decibel loss 난청)도 나타나고 있다. 데시벨은 어느 특정한 주파수에서의 소리의 강도를 측정하는 단위이다. 조용한 방안 1.2m 거리에서 들리는 속삭임은 약 30데시벨이며, 정상적인 대화는 약 60데시벨, 로큰롤의 연주는 120데시벨, 그리고 엽총 소리는 140데시벨로 나타난다. (그러나 로큰롤 밴드가 일상 대화보다 볼과 2배 정도만 시끄럽다는 뜻은 아니다. 데시벨의 수치가 20 많아지면, 소리의 강도는 100배로 증가한다.) 지금 조는 데시벨 로스 40을 나타내고 있다. 이만하면 그의 청각은 꽤 쓸 만하다. 하지만 그는 요즘 사람들에게 가끔 한 말을 되풀이해 달라고 청하곤 한다. 나와 같이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기관은 탈이 날 소지가 많다. 고막 파열이 자주 일어나는데, 다행히 고막은 파열돼도 대개 저절로 낫거나, 수술로 고칠 수 있다. 이명 즉 귀울음 또한 두통거리다. 이 이명의 원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약물(일부 항생제, 알콜), 열병, 순환계 이상, 청신경에 생긴 종양 등이 모두 이명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일단 그 원인을 추적하여 제거해 주면 내 속에서 나는 소리가 멈추는 수도 있다. 또 하나의 두통거리는 중이염이다. 항생제가 나오기 전까지는 중이염이 악화되어 결국 청력을 상실하게 되는 수도 종종 있었다. 중이에서 조의 인후로 통하는 에우스타키오관(오이스타히관, 유스타키관, 이관, 청관, 구씨관 이라고도함 편집자주)이 그 범인이다. 미생물학적으로 말하면, 인후는 아주 불결한 곳인데, 에우스타키오관은 미생물들이 중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감기가 들었을 때, 조는 코를 너무 세게 풀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코를 세게 풀다가 목구멍에 있는 오염물질을 내 안으로 밀어 넣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뼈의 지나친 성장으로 중이에 있는 뼈들의 움직임이 방해받는 수가 있다. 이 뼈들의 움직임이 정지되면, 청각에 장애가 일어난다. 이것이 전도청각상실이다. 조는 이 증세의 초기단계에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심한 실청상태로 발전할 가능성은 열에 하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청각을 상실하더라도, 조에게는 두가지 길이 있다. 즉 보청기를 사용하거나 수술을 하는 것이다. 수술(성공률 80%)을 통하여 나의 등골을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작은 필라멘트로 대체한다. 그러면 뼈의 움직임이 되살아나고, 조는 다시 들을 수 있게 된다. 아마 지금 조가 제일 걱정해야 할 것은 소음공해일 것이다. 시끄러운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난청증세를 일으킬 수도 있으며, 현재 로큰롤을 연주하는 음악가들은 몇 년 뒤에는 보청기를 끼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조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는 현대의 날카로운 소음에 적응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지나치게 요란하면서도 낮은 저음이 내 고막을 때리는 한, 나는 근육을 움직여 고막을 팽팽하게 하여 그에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저음이 아닐 때는 나로서 대처할 길이 없다. 조의 조상들은 그래도 괜찮았다. 천둥이나 사자의 울부짖음이 주위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큰 소리였고, 이들 소리는 저음이었으니까. 나를 망가뜨리는 것은 새로 등장한 고음 제트기의 굉음, 리베트 박는 기계의 탁탁거리는 소리 이다. 이를 입증하기 위한 한 예로, 생쥐에게 계속적으로 큰 소음을 들려 주면 생쥐의 내부기관이 파괴되어 결국 생쥐는 죽고 만다. 만약 그러한 실험을 조에게다 할 경우, 그 결과가 같아지리라는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 조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쓸데없는 소음에 큰 소리로 항의해야 한다. 집안과 사무실에서는 되도록 고요와 안식을 찾도록 할 것이며 사냥 같은 것을 할 때면 두 귀를 막도록 해야 한다. 되풀이해서 발사되는 엽총의 총성이 나를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또 담배를 끊거나 줄이도록 해야 한다. 니코틴(커피도 마찬가지)은 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내이의 동맥을 수축시켜, 내이가 필요로 하는 영양분의 공급을 감소시킨다. 조는 정기적으로 눈 검사를 받는데 나에게도 동일한 관심을 기울여 주었으면 좋겠다. 침묵의 세계가 얼마나 갑갑하고 외로운가를 조가 안다면, 그는 내 짝과 나를 보전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다. 코 나는 조의 얼굴 한복판에 솟아 오른 작은 언덕 즉 그의 코다. 조는 자기 눈과 귀와 소화기관에 대해서는 걱정을 하지만, 나는 귀찮은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 내가 겨울철에 콧물을 흘리고 아무때나 재채기를 하며 감기에 걸리면 막히기 일쑤고, 사고를 당할 때면 잘 깨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얼굴의 다른 부위 눈, 귀, 입술 에 대해서는 다채롭고도 시적인 비유를 하곤 하지만 나는 그런 대접도 받지 못하고 있다. 끊임없이 혹사당하고 이용당하면서도, 나는 얼굴에서 가장 천대를 받는 신세이다. 그러나 나는 조의 몸에 있는 중요한 기관 중의 하나이며, 그가 모르는 숱한 일을 하고 있다. 예컨대 그가 왼쪽으로 누워 잘 때면, 그의 왼쪽 콧구멍이 점차 충혈된다. 약 2시간이 지나면 나는 소리없는 신호 그를 깨우고 싶지 않기 때문에 를 보내서 그를 돌아눕게 한다. 이것은 조가 잘 때에도 그로 하여금 몸운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몇 가지 격발장치 중 하나이다. 그래야만 조가 아침에 일어날 대 근육이 저리지 않게 된다. 조가 음식을 먹기 전에 나는 자동적으로 그 냄새를 맡아 식중독을 일으킬 위험이 있는 상한 음식을 먹지 않도록 해준다. 또한 조가 먹을 때 느끼는 쾌감의 상당한 부분은 나를 통해서 느끼는 것이다. 익어가는 스테이크의 냄새를 맡으면, 나는 침샘을 활발하게 작동시켜 입에 침이 고이게 하고 위액분비가 시작되도록 한다. 이미 조도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감기 등의 병으로 내가 둔해지면, 음식이 맛이 없어지고 식욕이 떨어지며 따라서 조는 체중이 줄어든다. 내 자극이 없으면 조는 좀처럼 음식을 잘 먹으려 하지 않게 된다. 또 한 가지. 조는 감미롭고도 깊은 목소리의 소유자인데 그 점에 대해서도 그는 나에게 얼마간 감사해야 한다. 내가 그런 소리를 내게 하는 데 어느 만큼 이바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을 할 때 코를 손가락으로 꽉 쥐어보면 아마 내가 목소리에 어떤 몫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건축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나는 자랑할 게 전혀 없다. 나는 조의 입 천정과 뇌 사이에 샌드위치가 되어 있다. 실상 나는 하나가 아니고 둘이다. 격벽이라 부르는 칸막이가 나를 둘로 갈라놓고 있기 때문이다. 조의 입 위에 동굴과 같이 움푹 파인 내실이 있는데 이곳이 나의 작업실인 비강이다. 아울러 나를 둘러싼 여러 개의 뼈 두 뺨의 뼈, 눈 위에 있는 이마 뼈, 나와 두 눈 사이의 벽을 이루고 있는 뼈, 그리고 나의 비강 뒤에 있는 뼈 에는 작은 구멍들이 파여 있다. 이 8개의 구멍들을 부비강이라고 한다. 이 구멍들은 내 안의 공기를 축축하게 하는 데 필요한 습기의 일부를 제공하고 음질에도 약간의 공헌을 하며 조의 두개골을 가볍게도 하지만, 대체로 탈이 잘 나는 곳이다. 박테리아가 몰래 들어가 감염을 일으켜서 나의 주요 통로로 이어지는 좁은 관들을 막아버리곤 한다. 그러면 조는 머리가 아프다고 고통을 호소한다. 나의 주요 임무 중의 하나는 조의 허파에 들어갈 공기를 정화시키고 조절하는 것이다. 매일 나는 약 1만 3,500ℓ의 공기 작은 방에 하나 가득 찰 만한 양 를 처리해야 한다. 조는 메마르고 매섭게 추운 날 스키를 할 수 있겠지만, 그의 허파는 메마른 영하의 공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의 폐는 습한 여름날의 그것과 비슷한 공기 습도 75∼80%, 30 C 정도 를 원한다. 폐는 또한 병균이 거의 없고 먼지, 연기와 기타 자극적인 이물질이 제거된 깨끗한 공기를 요구한다. 우리가 중간 정도의 방에서 사용하는 에어컨은 작은 트렁크 만한 데 비해 나의 에어컨장치는 불과 몇 cm 길이의 작은 공간에 압축되어 있다. 가습작업을 위해 나는 하루에 1ℓ가량의 수분을 분비한다. 수분은 대개 끈끈한 점액의 형태로 콧구멍에 줄지어 있는 해면 같은 빨간 막에서 분비된다. 조의 콧구멍에 있는 털들이 대충 정화작업을 하고 나면 점액이 본격적인 정화작업을 하는데 마치 파리잡이 끈끈이처럼 털이 걸러내지 못한 세균과 미립자들을 잡아낸다. 물론 이 점액은 몇 시간 쓰고 나면 썩는다. 그래서 나는 20분마다 깨끗하고 새로운 점액을 만들어 대체해 준다. 오래 묵은 점액을 쓸어내기 위해서 나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미세한 비 섬모 들을 준비하고 있다. 이 미세한 털들은 오래 된 점액을 잽싸게 목구멍으로 쓸어내어 삼키게 하고는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러면 강력한 위산이 목구멍을 통해 삼켜진 병균을 대부분 파괴한다. 이러한 작업은 조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밤낮으로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추운 날이면 추위가 내 섬모의 일부를 마비시켜 점액을 과잉 생산하게 만들기 때문에 조는 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때에는 그 점액이 목구멍으로 쓸려 들어가지 않고 바깥으로 뚝뚝 떨어진다. 콧물을 흘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방어수단 외에 나는 병균에 대한 또 다른 방어수단을 가지고 있다. 조의 눈을 감염으로부터 보호하는 것과 꼭 같은 물질인 리소자임이라 불리는 살균제가 그것이다. 그 덕분에 나는 모든 기관들 중에서도 제일 깨끗한 것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이렇게 깨끗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코수술은 따로 소독을 하지 않고 할 수 있다. 조가 숨쉬는 공기를 데워 주는 일 역시 상당히 벅찬 작업이다. 이일은 거의 모두 갑개골이 하고 있다. 작은 뼈토막 3개로 이루어진 갑개골은 제일 큰 것의 길이가 2.5cm 가량인데 내 콧구멍의 측벽에 불거져 나와 있다. 말하자면 이것들은 작은 난방기들이다. 이것들은 비교적 많은 혈액 난방기의 증기인 셈 이 공급되는 발기성 조직으로 덮여 있는데 대체로 피는 작은 동맥에서 흘러나와 모세혈관을 통해 흐른 다음 정맥으로 들어간다. 나의 갑개골 안에는 모세혈관들이 발기성 조직의 작은 웅덩이와 연결되어 있는데 피가 더 많이 흘러 들어오면 그 작은 웅덩이들이 팽창한다. 이 현상은 조가 찬 공기를 마실 때 일어나는데 내가 팽창함에 따라 열을 방출하는 표면이 그만큼 넓어지게 된다. 나의 또 다른 중대 임무는 말할 나위도 없이 냄새를 맡는 일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조는 4,000여 가지의 냄새를 가려낼 수 있다. 아주 민감한 코는 최고 1만 가지까지 냄새를 판별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나의 이런 훌륭한 기능들은 제대로 쓰여지지 않고 사장되어 있다. 조가 장님과 벙어리로 태어났다면, 그는 나의 거대한 잠재능력을 보다 많이 이용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나는 사물을 판별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의 하나가 되어 그는 냄새만으로 사람, 집, 방을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냄새를 어떻게 알아낼까? 내 비강들의 천정에는 예외 없이 우표보다 작은 황갈색 조직이 있다. 그 조직마다 대략 1,000만 개의 수용세포들이 있고, 그 세포 하나하나에는 6 8개의 작은 감각털이 돋아 있다. 이 모든 장치가 2.5cm 가량 떨어져 있는 조의 뇌에 연결되어 있다. 이상이 내 생김새에 대한 설명이다. 그런데 이 설명은 조가 어떻게 익어가는 스테이크의 냄새를 알아맞히는지는 밝혀 주지 못한다. 여기 대해서는 몇 가지 학설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은 그 물질이 분자들을 내뿜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뜨거운 양파 수프는 많은 분자들을 방출하고 차가운 강철은 분자들을 거의 방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학설에 따르면 나의 수용세포들은 서로 다른 분자들의 크기와 모양을 판별해낼 수 있다고 한다. 그 차이가 어떤 방법으로 기록되어 특정한 분자가 분출되면 약한 전기가 발생하여 뇌에 전달된다는 것이다. 그 전기신호를 조의 뇌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식초다, 금잔화다, 혹은 불에 타고 있는 고무다 하고 판정을 내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색깔에 삼윈색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냄새에도 기본적인 냄새가 있을지도 모른다. 팔레트에서 삼원색을 섞어 여러 가지 색을 만들어 내듯이 뇌가 기본적인 냄새들을 배합하여 여러 가지 냄새를 만들어 내는지도 모른다. 내가 특정한 냄새에 압도당하게 되면 잠시 후에는 그 냄새를 가려내지 못하게 된다. 처음 몇 차례 뿌릴 때 외에는, 조의 아내는 자기가 쓰는 향수 냄새를 거의 느낄 수 없다. 조가 가죽공장, 아교공장 또는 외양간에서 일을 한다면, 처음에는 그 냄새에 기가 질리고 만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는 그 특별하고도 지독한 냄새에 마비가 되어 거의 냄새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다른 냄새에 대한 그의 감각은 여전히 남아 있다. 가죽공장의 지독한 악취 속에서도 장미의 향기는 변함없이 달콤하게 느껴진다. 인체에서 가장 노출된 기관 중 하나인 내가 광범한 질병의 표적이 된다는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어떤 미생물들 특히 매독과 결핵의 세균 은 나의 물렁뼈를 공격해서 내 모양을 일그러뜨릴 수도 있다. 또한 나의 점막에 폴립 작은 것은 완두, 큰 것은 포도알만한 다양한 크기의 작은 '버섯들' 이 돋아나기도 하는데 그것들이 기도나 비강의 통로를 막아 갖가지 고통을 일으키기도 한다. 알레르기 항원, 담배연기와 먼지들은 나의 점막을 자극하여 부어오르게 하고, 점액을 과잉 생산케 하여 목으로 흘러가게 한다. 이것이 가래다. 때로는 감기로 기도에 염증이 생겨 기도가 막힐 경우도 있다. 조는 곧잘 냅다 코를 풀어 뚫어 보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이건 위험한 짓이다. 에우스타키오관을 통하여 나의 부비강이나 중이 안을 감염시키게 되기 때문이다. 조는 아마 점비약 각종이 조직수축제 을 사용할 수도 있다. 이 경우에도 아주 조심해야 한다. 점비약들은 '반동' 현상 일시적인 수축 뒤에 당초보다 더 심하게 부어오르는 현상 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점비약들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결국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그 사용을 경계하고 있다. 조는 지금 47살이고, 따라서 나의 감도는 쇠퇴해 가고 있다. 커피도 옛날처럼 향기가 좋질 않고, 다른 악취들도 그전만큼 지독하지 않다.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다. 사람이 아직 자라는 동안 어느 시점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면 장애가 될 수도 있겠지만 조의 지금 단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조가 마지막 숨쉴 공기를 데우고 정화할 때까지 나는 그를 위하여 내 임무를 계속 수행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기관에 비해 비천한 나의 신분을 변호하는 뜻에서 한마디 덧붙이거니와 조가 노인이 된 후에도 나는 눈과 귀보다 훨씬 훌륭하게 나의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피부 조는 자기 피부인 나를 보기를 면도, 목욕, 긁기, 화장 등 요구하는 것은 많으면서도 주는 것은 별로 없는 힘없는 양피지나 별로 흥미를 끌 수 없는 소시지 포장지쯤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정말 잘못된 생각이다. 나는 절대로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조가 상상도 하지 못할 일들을 하고 있다. 그는 나를 정교한 화학물질을 만들어 내는 존재라고는 생가지 않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상 나는 그런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최소한 한가지 중요한 비타민 비타민D 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조의 고환에서 만들어지는 테스토스테론이라는 성호르몬을 활성화시키는 구실도 한다. 나는 혈압조절을 돕고 있으며 수분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고 (내가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조는 곧 죽게 된다), 또 물이 몸 속으로 흡수되는 것을 방지하기도 한다. (조가 몇 시간 동안 수영을 해도 물먹은 통나무처럼 불지 않는 것은 이때문이다.) 나의 복잡한 신경계는 통증, 촉감, 열, 추위를 탐지하고, 그 결과를 즉각 조의 뇌에 전달한다. 흔히 나를 조의 신체의 전선이라 부르지만 차라리 '성벽'이라 부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 표면에 살고 있거나 내려앉은 무서운 침략자의 대군 세균 을 막아내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 가지 모양을 하고 있다. 조의 손톱과 발톱, 그의 머리카락, 그의 뒤꿈치 군살, 한때 그의 손가락에 났던 사마귀, 이 모두가 나의 변신이다. 나는 세 겹으로 이루어졌는데, 제일 위에 표피, 그 아래에 진피, 그리고 그 밑에 피하조직이 있다. 조의 몸주위 대부분에 있는 나의 겉껍질은 종이처럼 얇다. 혹시 조가 손가락을 볼에 데게 되면 조는 나의 표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물집 위에 덮여 있는 투명한 조직이 나의 표피이다. 표피에는 피가 흐르지 않기 때문에 뒤꿈치의 군살을 벗겨 내더라도 피가 나지 않는다. 그 세포들은 밑에서 확산되어 올라오는 영양분을 받아먹고 살아간다. 뱀은 짧은 시간에 허물을 벗어버리지만 나의 겉껍질을 벗어버리는 작업은 느리게 오래 지속되는 과정이다. 나의 표피 가장 깊은 곳에서 날마다 수백만 개의 새로운 표피세포들이 형성되어 밖으로 밀고 나오기 시작하는데, 올라오는 동안에 그 세포들은 젤리 같은 세포질에서 점점 딱딱한 각질로 바뀌어 간다. 나의 각질층은 펑퍼짐한 널빤지 모양의 세포들 모두 생명이 없다 로 구성되어 있다. (연약한 세포들은 외부에 노출되면 살아남지 못한다.) 조가 샤워를 하거나 피부가 옷에 쓸릴 때 날마다 수백만 개의 세로가 떨어져 나간다. 그리하여 그는 세포들이 탄생해서 사망할 때까지의 기간인 27일마다 완전히 새로운 표피를 갖게 된다. 지방질로 이루어진 나의 피하조직의 기능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 않다. 그것은 내부기관을 보호하는 충격흡수장치의 역할을 하며, 체온을 보전하는 절연체로서 또 보기 좋은 육체의 고건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도 중요하다 을 유지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어떤 전문가들은 이 피하조직층을 아예 나의 일보라고 생각지 않는다. 사실 피하란 말은 '피부의 밑'이라는 뜻으로서 피하조직은 피부의 일부로 볼 수 없다는 시사가 담겨 있다. 그러면 이제 나의 질긴 '가죽' 즉 진피를 살펴보기로 하자. 그것은 모든 것을 안에 담고 있는 튼튼하고 탄력성 있는 자루이다. 이 자루가 체내의 혈관이나 지방질 등이 불룩 불거져 나오거나 흘러내리지 못하도록 한다. 진피에는 신경, 혈관과 샘들이 복잡하게 모여 있다. 무엇이 얼마나 촘촘하게 있느냐는 몸의 부위가 어디냐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평균적으로 1㎠의 표면 즉 조의 새끼손톱만한 크기에 두께 3mm인 진피에 약 100개의 땀샘, 3.6m의 신경, 수백 개의 신경종말, 10개의 털주머니, 피지샘 15개와 혈관 90cm 정도가 들어 있다! 나의 복잡한 혈관망은 특히 흥미롭다. 조가 더운 날 운동을 하면, 이 혈관들이 팽창하여 그의 얼굴이 상기된다. 이는 내가 열을 밖으로 발산해 내보내려고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반면 추운 날에는 그와 반대현상이 일어난다. 나의 혈관들이 닫혀서 피를 조의 몸 안쪽으로 흘려보내기 때문에 얼굴이 창백해진다. 나의 혈관은 감정의 지배도 받는다. 화가 나면 조의 얼굴이 붉어진다. 내가 얼굴의 혈관을 활짝 열어놓기 때문이다. 공포를 느끼면 혈관이 닫히고 조의 몸은 싸늘해진다. 땀이 증발하면서 몸을 식힌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나의 복잡한 온도조절체계를 완전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정상체온인 37℃에서 상하로 몇 도만 변화해도 조는 죽어 버린다. 이것을 피하고자 나는 어마어마한 수의 땀샘 200만 개 을 가지고 있다. 이 많은 땀샘들이 1만 5,200㎠쯤 되는 조의 몸 표면에 퍼져 있다. 그 하나하나는 단단하게 감긴 작은 관으로서 진피 깊숙이 자리잡고 있으며 길이 12m의 도관이 피부 표면을 향해 솟아 있다. 비록 작기는 하지만, 내가 가진 이런 도관을 모두 합하면 그 길이가 10km에 이른다. 혈액에서 물과 소금, 그리고 그 밖의 몇 가지 노폐물을 걸러내기 위해서 나의 땀샘들은 거의 쉬지 않고 작동하고 있다. 조가 땀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는 쾌적한 날씨일 때도 나의 땀샘들은 하루에 약 1/4ℓ의 땀을 만들어 낸다. 만일 조가 프로 미식축구의 전위로 더운 날에 경기를 한다면, 그는 7ℓ가량(무게로 치면 약 6.3kg)의 수분을 잃게 된다. 한편 나의 땀샘들은 정서적인 자극에도 반응을 보인다. 불안할 때 조는 이른바 '식은 땀'을 흘리게 된다. 이때는 많은 땀이 나서 급속히 증발하기 때문에 찬 기운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공포를 느낄 때에는 조의 손바닥이 축축해지는데, 역시 많은 땀이 난다는 증거다. 그 가치가 보다 의심스러운 존재가 나의 피지선들이다. 이것들은 수십만 개에 이르고 있으며 반액체형의 기름을 만들어낸다. 그 대다수는 모낭(털주머니 )에 붙어 있고 털과 그 둘레에 있는 피부에 기름을 공급해 준다. 털가죽을 가지고 있었던 조의 원시시대 조상들에게는 이 기름샘들이 보다 쓸모 있었으리라고 짐작된다. 그들의 털에 방수처리를 하여 주고 열보유능력을 높였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 기름샘들이 말썽을 일으키곤 한다. 이들 때문에 나의 털주머니가 막히면, 세포 찌꺼기들이 모여서 젊은이들의 특별한 고민거리인 여드름과 구진 등이 생긴다. 이제 내가 털을 어떻게 만들어 내는지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기로 한다. 나는 1㎠에 약 10개의 모낭을 가지고 있으며, 그 하나하나가 깊숙이 박혀 있는 구군 모양의 모근과 위로 뻗어올라가 밖으로 솟아 있는 모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의 아내 제인도 거의 같은 수의 모낭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제인의 모낭들은 대체로 아주 섬세하고 옅은 색깔의 털을 만들어내므로 그 털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 나의 모낭들은 쉬지 않고 털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죽은 세포들을 표면 위로 밀어낸다. 나는 또한 멜라닌이라는 색소를 생산해 내는 흑색세포(melanocyte) 수백만 개를 가지고 있다. 멜라닌은 조의 털과 눈, 피부의 빛깔을 결정하는 물질이다. (이 색소가 모자라면 조는 백자환자 [백자는 피부, 모발, 눈동자가 하얗게 변하는 병 편집자주] 가 된다. ) 멜라닌은 주로 보호적인 성격을 지닌 물질로 태양광선 중 인체에 위험한 요소인 자외선을 막아낸다. 조가 하루쯤 햇빛에 나가 있으면 나의 색소입자들이 나의 표피 밑바닥에서 표면으로 솟아오르기 시작하여 피부를 갈색으로 변화시켜 그를 보호해 준다. 죽은깨는 이 멜라닌 색소가 뭉쳐 생긴 것이다. 나의 신경조직은 정말 놀랍다. 조의 손가락 끝에는 1㎠당 1천개가 넘는 감각신경종말이 있다. 그가 발가락을 돌에 부딪치거나, 손가락에 화상을 입거나, 면도칼에 베이면, 나는 즉각 경고를 발한다. 그의 몸이 차가워지면, 나의 추위 감지가가 그의 뇌에 그를 통보한다. 그러면 조의 근육들은 곧 작업에 착수한다. 즉 그는 몸을 떨어 혈액순환을 촉진하며, 소름 나의 모낭에 있는 작은 근육들이 피부에 이와 같은 돌출현상을 일으킨다 이 돋아난다. 소름이 당초에 가지고 있던 목적은 털을 곤두세우는 데 있었다. 털을 곤두세움으로써 싸울 때에는 보호기능을 더해 주었고, 추울 때에는 한층 따뜻하게 해주었다. 이것은 지금도 조의 개한테는 유용하지만, 조 자신에게는 아무 수용이 없다. 조는 47세이고, 그래서 나에게도 노화의 기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나이가 들면 나는 으레 보다 얇아지고 한층 투명해진다. (나이든 사람의 손에는 혈관이 유난히 두드러진다.) 나의 지방질층이 점점 없어지고 따라서 살갗에 주름이 생긴다. 탄력있던 피부섬유가 활기를 잃기 때문에 눈 아래 주름이 잡히기 시작하며, 뺨이 늘어지기 시작한다. 나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암이다. 대체로 그 원인은 햇빛에 지나치게 노출되는 데 있다. (햇빛에 지나치게 노출되는 것은 피부를 늙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마, 코, 귀가 암이 좋아하는 부위다. 다행히 나에게 걸리는 암들은 치료가능성이 높다. 그렇더라도 때로는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으므로 피부에 이상 특히 출혈이 멎지 않는 증세 이 생기면 조심해야 한다. 조가 나를 위해서 해줄 일이 있을까? 햇빛에 과다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마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골프를 칠 때에는 꼭 모자를 쓰는 것도 그가 지켜야 할 일이다. 또 피부에 지나치게 기름기가 많으면 몰라도, 겨울철에 욕조에 지나치게 오래 몸을 담그는 것은 좋지 않다. 나를 메마르게 하기 때문이다. 조가 아무리 나를 잘 돌본다 하더라도 내게 아무 탈이 없을 수는 없다. 나는 몸의 안과 밖을 갈라놓고 있는 방파제로서 안과 밖 양편에서 오는 질병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다. 따라서 내가 2,000가지가 넘는 숱한 질병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건선이 나의 중요한 질병이다. 그 비늘 같은 빨간 반점은 표피세포들이 너무 빨리 27일 걸려야 정상인데 5일 가량 형성되어 벗겨져 나가기 때문에 생긴다. 그 원인은 아무도 모른다. 대상포진이 나를 파멸시키는 또 다른 원흉이다. 이것은 수두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한다. 처음에 통증이 오는데 흔히 그 통증이 매우 심하다. 그 뒤 대체로 몸통에 물집이 생긴다. 물집이 사라진 후에도 얼마 동안 통증이 지속되는 수도 있는데 특히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경우가 많다. 위에 든 병이나 그 밖의 갖가지 병에 걸렸을 경우, 조는 의사의 충고를 따라야 할 것이지만 내가 그래도 이만큼 일을 잘 해내고 있는 데 대해서 감사해야 할 것이다.
혀 조는 가끔 거울 앞에 서서 나를 쑥 내밀고 요리저리 살펴보곤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살펴보는 대상이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알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좀 이상한 것이 눈에 띄어도 십중팔구는 엉뚱하게 잘못 해석하게 된다. 나에 대한 관심은 그 정도가 고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길이가 10cm남짓하고 무게 또한 57g 밖에 안되며 더구나 보통 눈에 잘 띄지도 않기 때문이다. 나는 바로 조의 혀이다. 나는 눈이나 귀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평한 대접을 못 받아 왔다. 흔히들 말하기를 "다섯 가지 감각 중에서 별 볼 일 없는 것" 이 미각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항의한다. 그러한 인식은 전혀 공정하지 못한 것이라고! 내가 없으면 조가 어떻게 되는가 한번 따져 보자. 예를 들어 조에게 나를 입 밖으로 내밀고 이빨로 가볍게 누른 다음 말을 해보라고 한다면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무슨 말인지 거의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다. 사실 나는 몇몇 동물의 혀처럼 뛰어난 재주를 지니고 있지는 못하다. 나는 개구리 혀처럼 잽싸게 곤충을 채서 잡거나 또는 뱀의 혀처럼 어두운 동굴 속을 헤치고 나아가는 '더듬이' 구실을 하지는 못한다. 그렇긴 해도 나는 수많은 일을 감당하고 있다. 우선 나는 음식물을 씹는 일을 돕는다. 입 안에 든 음식물을 굴려서 골고루 씹히고 갈아지도록 하는 것이다. 나는 아주 쓸모있는 이쑤시개 역할도 하고 있으며 온갖 찌꺼기를 말끔히 치워서 내 담당구역을 항상 깨끗이 하는 청소부 노릇도 한다. 나는 감정표시의 도구로 이용되기까지 한다. 조의 자녀들은 반감이나 혐오감을 나타낼 때 나를 밖으로 쏙 내밀곤 한다. 그러나 내가 맡은 가장 중요하고 복잡한 일 중의 하나가 음식을 삼키는 동작을 돕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내 앞부분은 입천장에 있는 경구개를 밀어붙인다. 그리고 내 뒷부분은 둥글게 말리면서 음식물을 식도 입구로 밀어 넣는다. 이렇게 설명하면 매우 간단하게 보이지만 실제는 신경조직의 지휘와 복잡한 근육의 움직임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나타나는 활동이다. 조는 이미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오기 전에 삼키는 방법을 익혔는데 이로 미루어 보면 삼킨다는 반사작용이 생명체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말을 하는 일은 사정이 약간 다르다. 나는 말이라는 신경근육의 특이한 묘기를 습득하기 위해서 훈련을 받지 않으면 안되었다. 어릴 때 조는 2년 이상 여러 가지 소리를 실험한 후에야 비로소 간단한 말을 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지칠 줄 모르는 운동선수가 되어 극히 다양한 형태로 몸을 굴신시키면서 한층 복잡한 말을 해내고 있다. 간단한 문장 한 구절을 발음해 보면 조는 내가 부리는 곡예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가 말을 할 때 내 움직임을 눈여겨본다면, 그 변화무쌍한 동작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조는 이 밖에도 다른 일도 생각해 보아야 될 것이다. 나는 대단히 위협적인 존재인 치아와 가까이 붙어살고 있다. 치아들이 실제로 나에게 상처를 입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나는 몸을 피하는 재주가 뛰어나기 때문에 치아의 움직임을 잘 피해서 물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본래 나는 평평하고 두툼하게 생겼으며, 복잡하게 얽힌 근육과 신경을 점액막이 둘러싸고 있다. 내 위쪽표면엔 조그만 돌기형태의 설유두가 수없이 돋아나 있는데 이 설유두 중 일부에는 미뢰가 들어 있다. 이 미뢰 속에 맛세포가 들어 있으며 이것이 미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 아래쪽에는 소대라는 조그만 끈이 있다. 이 소대가 너무 짧으면 정상적인 움직임을 제약하게 되고 나는 결국 혀짤배기가 되고 만다. 일단 혀짤배기가 되면 평생 무슨 이야기인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게 되는데 오늘날에는 외과 수술로 이런 결함을 바로 잡을 수 있다. 내 미뢰들은 극히 작은 장미꽃 봉오리처럼 보이는데 이 미뢰의 미각작용은 취각작용과 마찬가지로 화학적인 과정을 거친다. 매우 흥미 있는 사실은 미뢰들이 내 윗면뿐만 아니라 아랫면에도 있다는 점이다. 과학자들은 최근까지도 그들이 미뢰의 위치를 완전히 밝혀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즉 짠맛은 내 끝에, 단맛은 내 중간에, 쓴맛은 내 뒤쪽에, 그리고 신맛은 내 옆부분에서 느낀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4가지 기본미각이다. 기본색인 빨강, 파랑, 노랑이 섞여 수많은 색채를 만들어 내듯이 이 4가지 기본적인 맛도 뒤섞어서 수많은 미각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이들의 판단은 그릇된 것이었다. 미뢰는 결코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조의 구강내 여기저기에 깔려 있다. 신맛과 쓴맛을 주로 느끼는 미뢰는 입천장의 경구개와 연구개가 맞닿는 부분 근처에 있다. 조가 구개부분까지 덮는 틀니를 끼어 이 부분의 미뢰가 덮이게 되면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것이다. 레몬파이는 톡 쏘는 특유의 신맛이 사라질 것이고 홍차나 커피도 그 맛의 대종을 이루는 쓴맛이 없어져 그 묘미를 잃고 말 것이다. 짠맛과 단맛을 받아들이는 미뢰는 대부분 혀에 있지만 일부는 다른 곳, 특히 목 윗부분에 자리잡고 있다. 음식물은 일단 녹아야만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아이스크림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입안에서 물처럼 녹기까지는 아무런 맛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일단 물처럼 녹게 되면 단맛을 감지하는 미뢰의 맛세포에 붙게 되고, 그러면 화학작용에 의해 극히 약한 전류가 발생하여 이것이 뇌신경에 의해 뇌의 미각중추에 전달된다. (음식물의 신맛, 쓴맛, 짠맛도 다른 자극에 의해 뇌에 전달된다. ) 팔레트에서 원색을 섞어 갖가지 색채를 만들어 내듯이 뇌에 전달되는 미각도 여러가지가 혼합되는데 뇌는 이러한 혼합된 미각을 전달받고 판정을 내린다. 예를 들면, '이건 아이스크림이고 맛이 좋다' 하는 식으로.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은 모든 음식물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맛을 전한다고 생각했다. (듣는 것이나 보는 것이 사람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음이 잘 알면서도 맛에 대해서만 그렇게 생각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에 따라 맛을 느끼는 감도에 큰 차이가 있음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어떤 사람에겐 시금치가 정말 맛있게 느껴지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쓰고 지겹게만 느껴진다. 다른 많은 음식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부 순수한 화학물질도 사람에 따라 맛에 대한 반응이 크게 다름을 뚜렷하게 보여 주고 있다. 예를 들어 방부제로 쓰이는 안식향산나트륨은 어떤 사람에겐 단맛으로, 다른 사람에겐 신맛이나 쓴맛, 짠맛, 또는 아무 맛도 없는 것으로 느껴진다. 따라서 당신이 맛이 있다고 생각하는 양젖치즈를 다른 사람은 싫어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다. 미각은 사람마다 타고난 배경에 따라 다르다는 시사가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 혀는 상당한 정도의 적응성을 지니고 있다. 조가 전에 도저히 입에 댈 수 없었던 음식물을 이제는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유아들 중에 버터밀크(버터를 빼낸 뒤의 우유)를 좋아하는 아기는 거의 없지만 어른이 되면 버터밀크를 즐기는 사람이 많다. 내가 카레나 고추, 맛이 진한 치즈 따위에 맛을 들이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한번 맛을 알고 나면 나는 그 맛을 절대로 잊지 않는다. 신체의 다른 대부분의 기관과는 달리 나는 나이가 들어도 제 기능을 그대로 유지한다. 조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청각이나 시력이 감퇴하지만 미각은 그렇지 않다. 콩수프는 그가 10세 때 느끼던 맛이나 90세가 되어서 느끼는 맛이나 거의 아무런 차이가 없다. 앞서 잠깐 이야기했지만 조는 가끔 나를 쑥 내밀고 요리조리 살펴보는 일이 있다. 그러다가 내 몸에 무엇인가가 '덮여 있으면' 소화장애나 변비증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만성적인 변비증세를 보이면서도 혀에 아무 것도 끼지 않는 사람이 많이 있는 반면 변비증세가 없으면서도 혀에 녹백색의 물질이 덮여 있는 사람이 많이 있다. 내 몸에 끼는 이 '태'는 설유두 사이에 끼어서 세균의 침범을 받은 미세한 음식물 조각과 노후한 세포에 불과하다. (이 태는 깨끗이 문질러 낼 수 있다. ) 입으로 숨쉬는 버릇이 있는 사람에게 특히 이런 태가 끼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혀는 '질병의 거울'이라고 불리고 있는데, 실제로 다른 신체부위의 병이 혀를 통해 그 중후를 드러내는 일이 종종 있다. 악성빈혈에 걸리면 내 모습은 붉은 색을 띠고 두툼해지며 또 반질반질해진다. 황달에 걸리면 황색을 띠게 되며, 피부병의 일종인 펼라그라가 나타나면 시뻘개진다. 또 어떤 균종에 걸리면 내 몸이 검은 색으로 변할 수도 있다. 내 몸에 생기는 불쾌한 질병 중 하나가 미각장애인데 이병에 걸리면 미각이 엉뚱하게 뒤틀려서 설탕이 비위에 거슬리거나 고기맛이 역겹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 사탕이 짜게 느껴지기도 하고 고등어가 단맛을 띠기도 한다. 요즘에 와서 널리 인식된 이 증세는 주로 체내의 아연 결핍 때문에 생기는 것 같다. 아연 결핍증은 식이요법 과정에서 빚어질 수도 있고, 충분히 섭취했어도 제대로 흡수가 되지 않거나 또는 인플루엔자 같은 다른 질병을 앓으면서 아연을 한꺼번에 많이 상실했을 경우에 나타난다. 아연섭취를 늘리면 미각은 정상으로 되돌아온다. 내 몸에 생기는 또 다른 병은 미각감퇴증인데 이것은 이름 그대로 음식물에 대해 느끼는 맛이 감퇴하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의 음식에 아무 맛도 뭇 느끼기 때문에 불고기를 먹어도 연한 고무를 씹는 맛이고 오린지는 무미건조한 아교를 씹는 맛이다. 따라서 조가 만약 이 병에 걸리면 커피를 마실 때도 설탕을 듬뿍 타야만 단맛을 느낄 수 있다. 미각감퇴증을 유발하는 요인은 몇 가지가 있는데 이 요인들이 미뢰의 모양과 기능을 변화시킴으로써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미각감퇴증이 극심한 경우에는 모든 맛을 완전히 느낄 수 없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환자는 심한 우울증에 빠지고 만다. 이런 사람들은 미각이 가장 유쾌한 감각기능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람들에게 이처럼 크게 봉사하는 기관이 형편없는 푸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평상시에 조는 나에게 머리카락이나 손톱에 기울이는 것만큼도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는데 사실 머리카락이나 손톱은 조의 건강에 긴요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런 불공평한 처사를 시정할 힘이 나에게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나로서는 그저 죽을 때까지 맛을 느끼고 말을 만들면서 꾸준히 내 할 바를 다하는 도리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