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살기
나는 용기 있게 삶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는 방법은 가족 사업에서 물러나고, 아버지 재산과의 모든 관계를 끊는 것이라고 결심했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하고 자유로워지는 선택이라고 느꼈다. 이는 나의 진실성을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 아버지는 내 선택을 이해하지 못했다. 슬프게도 그것이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고 말았다. 아버지는 내가 가는 길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고, 내가 왜 아버지가 제시하는 황금 같은 기회를 거부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도 아버지를 실망시켜드리긴 정말 싫었지만 나 자신에게 떳떳해야 했다. 1969년 아내 데오와 나는 캐나다의 브리티시컬럼비아 연안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외딴섬으로 이사 가서 방이 하나인 통나무집을 짓고 거기서 10년을 살았다. 우리는 우리가 먹는 음식의 대부분을 재배했고, 우리의 채소밭은 완전히 유기농이었다. 필요한 생활비는 내가 가르치는 요가와 명상 수업에서 나왔다. 우리는 재정적으로 빈곤해서 여러 해 동안 1,000달러 미만을 썼지만 필요한 것은 많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깊이 사랑했고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우리의 시간을 마음껏 쓸 수 있었다. 우리는 음식과 치유와 우리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1973년 섬에서 생활한 지 4년째 됐을 때 아들인 오션을 내가 집에서 직접 받았다. 오션이 커가는 동안에도 우리는 돈을 거의 쓰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중요한 일에 시간을 쓸 수 있었다. 우리는 “욕망을 줄이면 부자가 된다”라고 소로(월든)가 한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우리는 소박함을 찬미했다.
오션이 성장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그에게 바라는 목표가 생겼지만 그가 그 기대에 부응하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에 대한 내 기대와 그의 숙명이 일치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을 만큼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일이었다. 내가 결코 원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나 자신의 두려움과 이루지 못한 꿈을 가지고 아이를 억누르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날 실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배반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는 캘리포니아로 다시 돌아왔고, 우리 자신과 세상을 치유하는 것을 주제로 쓴 책 몇 권이 베스트셀러가 돼서 재정적으로 어느 정도 든든해지게 됐다. 언론에서는 나를 ‘아이스크림콘이 없는 반항자’와 ‘비영리 단체의 선지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한편 아버지는 당뇨와 고혈압 때문에 식생활을 대대적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서서히 아이스크림이나 다른 형태의 설탕을 포기했고, 고기 섭취량을 크게 줄였다. 그 결과 아버지의 건강은 극적으로 좋아졌다. 아버지는 자신이 ‘정식 채식주의자’는 아니라는 걸 내게 자주 일깨워주셨지만,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과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점점 더 존중하기 시작했다.
내 손자들은 아주 이른 조산아로 태어나 생의 첫 2개월을 병원의 신생아 집중치료실에서 보냈고, 아주 허약한 상태로 집에 왔다. 또한 조산된 아이들은 종종 자신의 몸을 만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우리는 의사들에게 아이들이 인간적인 접촉에 정상적으로 반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들었다. 우리는 그 경고에 대해 갓난아기를 사실상 24시간 내내 끊임없이 안아주면서 살갗을 만지며 접촉했고, 밤에는 우리 몸 위에서 재우기까지 했다.
우리 부모님은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와 ‘아이를 너무 안아주면 버릇이 나빠진다’와 같은 믿음이 만연하던 시대의 부산물이셨던 분들- 우리가 갓난아이들에게 신체적 접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끊임없이 제공하는 모습을 보셨다. 그리고 그 결과 갓난아기들이 꼭 껴안아주는 것을 좋아하는, 호기심이 많고 늘 기뻐하는 꼬마들로 성장하는 모습을 주시하셨다.
부모님이 떠날 때가 되었을 때 어머니 역시 전에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씀을 하셨다.
‘넌 물질적으로 부자가 아닐지 몰라도 사랑은 아주 많다는 게 분명해 보이는구나’ 어머니는 심호흡을 하셨다. ‘사실 결국은 그게 더 중요하단다’
인간의 삶에서 사랑이 가장 중요하며 가장 큰 치유의 원천이라는 사실이 부유하고 유명해지고자 하는 현대인의 욕망과 어긋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는 실로 상당히 오래된 지혜다.
오랫동안 지리적으로 목가적인 고립 상태를 만끽했고 건강과 장수로 유명해진 압하지야는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후 최근 몇 년 동안 심각하게 그 명성에 손상을 입었다. 1993년 전까지 압하지야는 자체적인 문화와 종교가 있었지만 그루지야 소비에트 공화국에 속해 있었다. 많은 압하지야인이 전통적인 생활방식으로 평화롭게 사는 반면 일부 사람들은 현대적인 생활방식을 선호해서 옛 방식을 버리고 점점 더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1990년대 초반 소비에트 연방에서 그루지야가 독립한 후 압하지야 당국은 자치 공화국이 되고자 하는 염원을 추구하기로 결심하고 이 지역의 독립을 선포했다. 곧바로 그루지야는 그 지역을 재탈환하기 위해 압하지야에 군대를 보냈다. 1993년, 이는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비극적인 전쟁으로 발전해서 압하지야에서 무려 10만 명이 죽고 엄청난 격변과 파괴가 일어났다.
현재 전 세계 곳곳에서 가장 현명하고 오래 장수한 문화들이 살아남기 위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키나와에서는 오랫동안 노인들을 위한 놀라운 성과를 낳은 삶의 방식을 그 이후 세대들이 포기하고 있다. 대대적인 미군의 주둔 결과 정크푸드에 노출된 오키나와의 젊은 주민들은 패스트푸드 버거, 소다수, 도넛, 가공된 육류, 통조림 음식을 열성적으로 소비해서 건강상태가 심각하게 악화되고 있다.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미국식 식습관을 모방하면서 비만, 암, 심장병 발병률이 급상승하고 있다.
체중 증가, 심장병, 암, 당뇨를 일으키는 유독한 식품 환경이 급속히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으며, 그 결과 지구상 모든 국가에서 비만과 그에 수반되는 질병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이 시대의 고민 중 하나다. 이런 경향이 심지어 전에는 고립돼서 소박하게 살아가던 훈자와 빌카밤바 같은 곳까지 퍼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게 돼서 유감이다.
훈자는 1960년대 후반, 이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인도와 전쟁이 일어날 경우 중국의 도움을 얻을 수 있기를 원했던 파키스탄 정부는 특별히 제조된 차량들이 다닐 수 있는 원시적인 도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1979년 카라코람 고속도로가 완공되면서 이 산악지대 왕국은 세상 사람들이 훨씬 더 접근하기 쉬운 곳이 됐다. 도로가 완성되자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던 고요한 훈자에 즉각적인 영향이 미쳤다.
고속도로가 완공되면서 훈자인에게는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현실이 열렸다. 호텔과 상점들이 들어섰고, 관광업이 생겼다. 도로가 건설된 이후 완전히 새로운 정착지들이 생겨났으며, 많은 훈자인이 파키스탄에 있는 더 큰 마을들과 도시들로 이주했다. 젊은 훈자 남성들은 파키스탄 군대에 입대했다가 담배와 캔디에 입맛을 들여서 돌아왔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훈자는 파키스탄에 공식적으로 합병됐다. 젊은 훈자인은 이제 식습관과 생활방식을 서구화하기 시작했다. 통조림에 든 육류, 캔디 바, 흰 밀가루가 점점 더 흔해지고 있다. 전에는 있는지도 몰랐던 질병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사의 반대편에 오랫동안 건강과 장수로 명성을 떨쳐온 또 다른 사회인 빌카밤바가 있다. 훈자처럼 1970년대 근대의 물결이 빌카밤바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1990년대가 되자 포장된 고속도로, 전기, 원시적인 단계의 전화, 텔레비전과 코카콜라와 막대사탕을 포함해서 고도로 가공되고 정제된 식품들의 형태로 빌카밤바에 진보가 도달했다.
고속도로와 함께 현대의 의료 관행이 들어왔다. 에콰도르의 농촌 의료 프로그램을 통해 젊고 열정적인 의대생들이 빌카밤바에 도착해서 항생제와 다른 약들을 처방하기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의 장점도 있었지만, 젊은 의사들이 도착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항생제가 그들의 결장에 있던 몸에 좋은 박테리아를 전멸시켜서 몇몇 노인이 이질로 사망했다.
최근까지만 해도 로하주에서 빌카밤바로 가는 유일한 길은 고생스럽고, 시간을 많이 잡아먹고, 위험했다. 하지만 지금은 로하주에서 출발하는 버스와 택시들이 다니는 2차선 고속도로가 깔려 있다. 이제는 관광시즌에는 지프차와 SUV의 소음과 배기가스가 광장을 꽉 채운다. 그리고 미국인 배낭여행객과 부유한 에콰도르인의 구미에 맞춘 인터넷 카페들이 생겼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 동안 번성해왔던 건전한 문화와 생활방식이 우리 눈앞에서 멸망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물론 가끔은 전통을 뒤로 하고 떠나는 것이 진보를 향한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서구의 소비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는 윤리가 되고, 고지방과 설탕이 많이 들어 있는 음식이 전 세계인이 주로 먹는 음식이 되는 것을 보면 오싹하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장수하는 문화의 비결 중 하나는 기쁨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과 기쁨을 나누는 것이며,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두려움과 슬픔을 함께 나눈다는 점일 것이다. 이들은 우리 모두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벅찬 일에 패배감을 느낄 때, 끔찍하게 외롭다는 느낌이 들 때, 낙담해서 한쪽 구석에 숨고 싶을 때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우리 모두 영혼의 어두운 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며, 그럴 때에는 감정적으로 약한 부분을 드러내고 솔직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찾아와주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 깊은 절망에 빠져 있다 해도 우리가 공동체의 일부이며, 우리에게 마음을 쓰는 사람들이 있고, 우리가 아직도 삶의 흐름의 일부라는 점을 다시 깨닫게 된다. 우리의 슬픔은 우리 자신, 우리의 정열, 헌신, 용기, 약점과 연결될 수 있는 원천이 된다.
누구도 지금 우리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그래서 우리의 집단적인 미래와 삶에 대해 고통을 느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이는 현재 우리가 깨달아야 할 아주 중요한 점이다. 물론 우리 각자에게는 나름의 고통과 개인적인 패배감과 실망과 좌절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 내면의 고통은 개인적인 고통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 고통은 우리의 개인적인 삶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것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금 위기에 처한 것은 지구에서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인 것이다.
이 슬픔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이 슬픔은 우리 시대의 본질이며, 우리가 껴안아야 할 것이다. 함께 나눈 깊은 고통을 통해 우리는 서로 돌봐주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의 근원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고통은 반응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둘러싼 껍질을 부수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뭔가 소중한 것이 태어날 수 있다. 고통을 나눈다는 건 그 소중한 것이 태어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몇 년 전 나는 남부 캘리포니아의 한 여성으로부터 편지를 한 통 받았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오랫동안 열심히 건강관리를 했다고 편지에 썼다. 부부는 요가와 명상을 했고, 정제된 설탕이 들어 있는 음식은 한 입도 먹지 않았다. 그리고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약은 절대 먹지 않았으며 심지어 아스피린 같은 것도 먹지 않았다. 이 부부는 금실이 아주 좋았고,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건강에 좋다는 일들을 하며 결코 병에 덜리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비통하고 분하고 속은 기분이다. 50대인 남편이 암에 걸려 사망한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면 그간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해온 일들이 다 무슨 소용이냐고 그녀는 한탄했다. 낙담하고 배신당한 기분이 든 그녀는 건강을 관리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햄버거와 캔디를 비롯하여 오랫동안 먹지 않았던, 몸에 좋지 않은 음식들을 마구 먹어치웠다. 그녀는 더 이상 운동을 하지 않았고 그 결과 남편이 죽은 후 3년 만에 체중이 35킬로그램이 불었다. 그녀는 당뇨에 걸린 데다 극심한 우울증에 빠졌다.
이 여인의 편지를 읽으면서 난 슬퍼졌다. 나는 그녀가 남편과 사별했다는 것이 슬펐고, 아주 침울하고 의기소침하고 비통한 사람이 됐다는 것이 슬펐다. 그리고 그녀와 남편이 건강에 좋은 식생활과 생활방식을 유지하면 영원히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품었다는 것 역시 슬펐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을 충분히 하면 결코 병에 걸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에는 순수하면서도 천전한 면이 있다. 우리 모두는 마법과 같은 규칙을 따르거나 절대 오류가 없는 권위자에 순종하면 모든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구석이 있다. 하지만 삶은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삶은 그보다 훨씬 더 예측하기 힘들고 좀 더 신비롭다.
나는 모든 조리된 음식은 건강에 해롭다고 믿고 병에 걸리면 최근에 먹은 조리된 음식 한 조각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탓하는 한 생식 애호가를 알고 있다. 또한 탄수화물을 죄악으로 여기는 엣킨스 다이어트의 강력한 신봉자로 잠깐 의지력을 잃고 구운 감자 한 조각 먹었다고 몹시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알고 있다. 그리고 깨끗하고 불순물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만 먹고 수천 달러나 되는 영양 보충제를 먹으면 영원히 살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알고 있다.
몸에 좋은 식습관과 운동은 건강하게 살아가는 데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는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많은 요인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10대 때 햇볕에 탄 것이 원인이 돼서 50세에 피부암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 일부 암들은 –특히 유방암, 자궁암, 난소암, 전립선암- 자궁 내에서 시작되기도 하고, 부분적으로는 우리의 엄마들이 먹는 음식과 환경에 있는 화학물질로 생기기도 한다.
우리는 점점 더 유독해지고 오염이 심해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가 전혀 통제할 수 없이 노출된 환경적 조건도 많다. 어떤 질병들은 그 원인이 하나도 밝혀지지 않은 채 그들의 생활방식엔 아무 상관도 없이 사람들을 덮치기도 한다. 인간관계를 저해하고, 어이없을 정도로 오랜 시간 사람들을 일하게 만들고, 공기와 물을 오염시키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 우리 세계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한 가지 요인이기 때문에 우리는 가끔 현실과 어긋날 정돌 음식에 큰 중요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 완전히 자신의 건강을 통제하고 있다는 환상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마법과 같은 힘을 부여한 식습관을 열심히 따르면 어떤 나쁜 일도 우리에게 생기기 않을 것이라고 느낀다. 문제는 완벽한 식습관을 지닌 사람들도 가끔 암에 걸린다는 점이다. 종종 그럴 일을 당할 것 같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끔찍한 일들이 일어난다.
내게 편지를 쓴 여성은 그녀와 남편의 생활방식이 병에 걸리지 않으면서 장수를 누릴 수 있게 보장해줬다고 믿었다. 이 믿음이 그렇게 고통스럽게 파괴됐을 때 그녀는 혼자 남아 현실에 대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아주 슬픈 이야기였다. 나는 그녀에게 당황하지 말고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탓하지 말고 그 대신 그녀의 경험으로부터 다른 사람들이 뭔가를 배울 수 있기를 희망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이 자리를 빌려 말한다.
나는 그녀에게 남편과 사별하게 돼서 유감이며 그런 큰 아픔을 겪어서 유감이라고 답장을 썼다. 나는 내 인생에서 겪었던 고통과 환상이 깨진 경우들을 말해주면서 내가 믿었던 이상과 꿈들이 산산조각 났을 때, 그리고 그런 환상이 깨지고 절망했을 때 찾은 또 다른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편지 후반부에 시간이 흐르면 그녀가 결코 병에 걸리지 않거나 죽지 않을 거라고 믿어서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삶에 고통스러운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걸 알지만 되도록 많은 질병을 예방하고 고통을 줄일 수 있게 하기 위해 건강한 선택을 원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길 빈다고 썼다. 자신의 건강과 삶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은 가능하지만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경험 중에서 고통스러운 경험을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그보다는 고통을 줄이면서 자신의 삶을 지혜와 사랑으로 풍요롭게 밝히라고 썼다.
그녀의 편지를 읽으니 전에 한 현자로부터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고 썼다. “앞으로 나가가도 죽을 것이요, 뒤로 물러서도 죽을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낫다.“
앞으로 나아간다는 말의 요지 –당신의 삶이 당신의 가장 숭고한 비전의 긍정적인 표현이 되도록 한다는 것- 는 인간으로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모든 고통과 죽음을 피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말의 요지는 가장 어려운 것까지 포함해서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일을 사랑과 치유의 힘을 가지고 대처하는 것이다. 앞으로 나아갔을 때의 장점은 육체적으로 쇠퇴하거나 병에 걸릴 가능성을 줄이고 삶을 좀 더 완전하게 살아갈 수 있고,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우아하고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몸에 좋은 식습관과 생활방식은 건강한 삶으로 이어진다. 이 둘을 병행하면 활력이 늘어나고, 병에 대한 내성이 향상되고, 일체감과 자유로움이 한결 더 커진다. 하지만 가장 훌륭한 운동과 식단으로도 노화라는 불가피한 일을 막을 수는 없다. 결국에는 가장 잘 관리한 신체도 약해지기 마련이고, 일단 그렇게 약해지면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몸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우리는 노인들로부터 배울 게 무척이나 많다. 가족과 친구들이 죽는 것을 보고, 여러 세대에 걸쳐 아이들이 태어나는 것을 본 노인들은 비극을 좀 더 깊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죽음이 가까워진 이들은 삶의 순환을 좀 더 많이 접하고 있다. 노인들은 삶이 가치 있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한지 이해하고 있다. 노인들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지 않으면 콜레스테롤이 낮고, 바윗돌처럼 단단한 복근이 있어도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모두 삶의 신비 앞에서 약하며 벌거벗은 존재다. 가끔 우리가 받은 상처를 솔직하고 깊게 들여다보면 거기서 우리의 힘, 기쁨, 그리고 살고자 하는 의지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스스로가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완벽한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인간의 삶에는 자연이 그런 것처럼 그만의 계절이 있으며, 그 계절 하나하나에 독특한 아름다움과 가능성이 있다. 삶이 영원히 봄에 머물러 있기를 원한다면 이는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을 찬미와 감사의 과정보다는 상실의 과정으로 돌려놓는 것과 같다.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문화들은 노화를 저주로 보지 않으며, 죽음 또한 적으로 보지 않는다. 이러한 흐름을 성장과 성취와 사랑을 위해 끊임없이 변하는 일련의 기회들로 보고 있다. 누군가 죽으면 그 공동체 전체가 계속적으로 변하는 삶의 본질을 찬미하기 위해 모인다.
반면 현대 서구에서 우리는 죽음을 부인할 뿐만 아니라 실패로 보도록 길들여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원이 아닌 집에서 죽고 싶어 하고, 생명 유지 장치에 연결돼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죽고 싶어 하지만 결국에 그런 소원을 이루는 사람은 극소수다.
이제 호스피스 운동이 시작된 지도 40년이 됐다. 호스피스는 사람들이 편안한 자신의 집에서 품위를 지키며 평화롭게 죽을 수 있도록 해주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서구 의학에서는 삶의 말기에 병원이 너무 깊게 개입해 있다. 누군가 죽음이 가까워지면 우리는 여전히 죽을 때까지 매 순간 죽음과 싸운다.
레바논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칼릴 지브란은 아랍어를 구사하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생의 마지막 20년 동안 지브란은 미국에서 살면서 영어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의 책 <예언자>에 이런 글이 나온다.
죽음이란
벌거숭이가 된 채 바람 앞에 서는 것이며
태양 속으로 녹아버리는 것이다.
숨이 멈춘다는 것은
쉴 새 없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고역에서 해방되는 것이며
아무런 제약 없이 언제든
신을 만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강물 같은 고요 속에 있는 자만이
진실로 노래할 수 있으며
산 정상에 올라가본 사람만이
진정으로 산을 오르는 즐거움을 알 수 있듯이
대지가 육신을 다시 가져가고 나면
그대들의 영혼은 진실로 진실로
자유로이 춤추게 되리라.
죽음을 의사나 환자의 실패로 보는 우리 문화의 이런 태도는 거의 모든 전통적인 문화와 배치된다. 하지만 태도는 우리 모두에게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우리 문화에서 죽음을 부인하는 것이 노화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과 노인에 대한 공경 부족의 근본적인 원인이 아닐까?
우리가 내일이 어느 누구에게나 약속된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우리가 단지 빌려 온 시간을 살고 있으며, 일시적으로 주어진 시간을 사는 존재란 걸 이해하게 되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만약 우리가 우리 역시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게 된다면, 시인 매리 올리버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까? “당신의 하나 뿐인 격렬하고 소중한 삶을 어떻게 살려고 하는가?”
모든 인간의 삶에는 두 개의 아주 중요한 날이 있다는 말이 있다. 하나는 우리가 태어난 날이다. 또 하나는 우리가 왜 태어났는지 그 이유를 알아낸 날이라고 한다. 나는 그 두 번 째 날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 삶의 목적을 한 번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 그래서 죽음이 와도 정말로 자신이 제대로 삶을 산 건지 모르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다.
인간의 삶의 질은 살아온 시간으로 잴 수 없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생에 얼마나 많은 사랑과 지혜와 용기를 주었느냐는 것이다.
청춘의 샘을 찾는 것은 영원히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영혼의 아름다움이 이끄는 대로 삶을 사는 것이다. 그것은 기쁨과 생명의 샘을 찾는 것이다. 그것은 아주 완전히 삶을 살아서 정말로 당신이 제대로 살았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것은 정말 완전히 사랑해서 당신이 진정 사랑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당신이 삶을 완전하게 살아서 당신이 죽을 때 세상은 눈물을 터뜨리고 당신은 크게 기뻐하길 빈다.
*자주 웃어라. 울어야 할 때는 울어라. 광막한 우주 앞에서 겸손해져라.
*변화를 찬미하라. 삶의 각각의 새로운 단계를 경험하고 즐기는 방법을 확인하는 의식을 만들어라.
*하지와 동지와 춘분과 추분을 경축하라. 각 계절이 가져다주는 특별한 선물과 아름다움을 눈여겨보라.
*사소한 것에서 기쁨을 찾아라. 더 많은 것이 항상 더 좋다는 잘못된 믿음에 맞서라. 겸손함이 지닌 힘에 기뻐하라.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기억하라.
*어느 정도면 충분한지 알아라. 즐거운 관계, 보람된 일, 그리고 꿈을 실현하는 데 좀 더 많은 시간을 쓰면서 좀 더 천천히 사는 것에 대한 갈망을 존중하라. 다른 사람들도 소박하게 살 수 있도록 소박하게 살아라.
*삶을 어지럽히는 것들은 모두 주어라. 당신의 집에 필요하지 않거나 아름답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게 하라.
* 이 세상을 밝히는 것은 당신이 매일 하는 사소하고 단순한 일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라.
*살날이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면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라. 향후 2년 동안 당신이 그중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라.
*실현 가능한 비전을 위해 당당히 나서고, 변할 수 있는 당신의 힘을 절대 과소평가하지 마라.
*잠을 충분히 자라. 당신의 꿈을 기억하고 그 꿈을 남들과 나눠라. 꿈을 적은 노트를 간직하라. 시간이 지나도 계속 떠오르는 이미지나 주제를 기다려라. 거기서 뭘 배울 수 있는지 보라.
*시간을 내서 명상하거나 시를 쓰거나 일기를 써라.
*자연에서 뭔가를 보고 겸허해지고 위로를 받아라. 경탄했을 때 그 이야기를 가족 또는 친구와 나누거나 노트에 써라.
*고양이와 개와 다른 동물들을 귀여워하라. 그리고 사람들을 많이 안아줘라.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안아달라고 말하지 못할 만큼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을 안아주지 못할 만큼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다.
*죽어가는 누군가의 옆에 앉아라. 그들을 위해 명상하고 기도하거나 노래를 하고 책을 읽어줘라.
*호스피스 자원봉사자가 돼라.
*당신에게 가까운 사람들에게 당신이 앓는 큰 병에 대해 말하라. 아팠을 때 얻게 되는 자신과 삶의 방식에 대한 통찰력을 존중하라.
*심각한 건강상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면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치료를 받고, 당신의 몸뿐 아니라 마음과 정신과 영혼을 존중하고 보살필 수 있는 시간을 내라. 위기를 단순히 극복해야 할 장애로 보는 대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라. 갓난아기를 안은 것처럼 다정하고 친절하게 당신 내면의 두려움과 고통과 방치된 감정들을 껴안아라. 행복해지고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뭔가를 해야 하거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될 필요가 없다는 걸 기억하라.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었다면 그에 대한 비탄의 감정을 적는 노트를 만들어라. 매일 자신을 탐구하고 표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 당신이 겪는 모든 감정을 그 노트에 적어라. 분노가 일고 절망감에 빠진다면 그것까지 포함해서 당신이 겪는 모든 감정을 적어라.
*자신에게 무한한 건강과 행복과 자유를 허하라.
*감사의 언어를 잊어버리는 사람은 행복과 친해질 수 없다는 걸 기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