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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예사의 첫사랑
오늘 아침, 출근을 하며 고속도로에서 내리는데 내림길 자락에 이어져 펼쳐진 너른 빈 터에 밤새 신기루처럼 커다란 천막들이 피어나 있다. 마치 크레믈린 붉은 궁전처럼 아이스크림 모양의 꼭지에서부터 뒤틀린 굵은 줄무늬가 흘러내린 크고 둥그런 서커스 천막들이다. 추수감사절이 다가오면 노란 호박덩이들을 한 구석에 널어놓고 팔거나 그 때가 좀 지나면 싱싱한 바늘잎 크리스마스트리를 트럭 째 부려 놓거나 하던 그런 자리다. 스쳐 지나며 보니 천막 아랫도리 틈새로 말이며 코끼리 같은 짐승들의 움직이는 발목이 보인다. 돈 받는 천막 입구의 주위에는 땡땡이 고등학생 이마빡에 쏟아 부은 여드름같이 굵은 전등알들이 이미 햇살이 빗기는 아침인데도 여태 나 몰라라 하고 껌뻑인다.
미국 서커스는 어찌 생겨 먹었나? 이 근처는 멕시칸이 많은 동네니까 그 입맛에 맞추어 좀 라틴식일까? 에라, 출근이고 뭐고 저쪽에 차 대어 놓고 몇 십 년 만에 나 홀로 슬쩍 샛길로 빠져 서커스 구경이나 한 번 할까 보다. 조조할인 같은 거는 없나? 어렸을 때 생각이 난다. 그 때는 왜 어른들이 이런 데라면 무조건 선뜻 잘 안 보내 주고 애를 태웠는지…, 조르고 조르다 안 되면 최후수단이다! 제 딴엔 꾀를 낸 거라고 동무들 하고 짬짜미를 하여 망을 보다가 기회를 잡는다. 그러다 잽싸게 천막 자락을 들치고 안으로 기어드는데, 아뿔싸! 귀신같이 알고 눈앞에 딱 버티고 서서 내려다보는 험상궂은 기도 아저씨! 우악스럽게 목덜미를 잡혀 끌어올려져 꿀밤만 몇 대 눈물 나게 맞고 쫓겨난다. 그런 저런 것들이 이때도록 포한이 진 건가, 수십 년 묵은 앙금이 갈바람에 들떠서는 보리 까끄레기처럼 이 아침 다시 바닥에서부터 일어나려 한다.
만약에 그렇지가 않았고 그 때부터 제약 없이 실컷 이런데 드나들었다면 지금 내가 어찌 되어 있을까?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이런 자동차를 몰고 곧바로 사무실로 가서 컴퓨터를 켜 놓고서는 화물 컨테이너 나부랭이나 챙기고 항공편 따위나 확인하며 커피를 홀짝거리는 대신 지금 이 순간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을까? 살아나 있을까? 당연하지. 그건 그래야지. 그보다도 혹시 내가 이때도록 살아오는 그 사이에 이리 헤매지만은 말고 그 옛날 인도의 욱가세나처럼 높다란 서커스 장대 끝에 올라서서 그야말로 한 소식, 무슨 깨침이라도 이루었을지 누가 아나?
인도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부처님 당시에도 서커스, 달리 말하면 곡예(북한에서는 교예란 말을 쓰더군)가 성행했음은 불경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하기야 사람이 처음으로 야생말을 잡아 길들여 올라타고 다니면서부터 말등 위에서 얌전하게 꼿꼿이만 다녔겠나. 때로는 장난기가 발동해 물구나무를 서거나 달리는 이 말 저 말을 폴짝 폴짝 옮겨 타기도 했겠지. 또 말을 타고 기병들끼리 칼싸움 같은 것을 하면서는 적이 휘두르는 칼날이나 창끝을 피하려고 말의 배옆에 납작 붙어 숨었다가 위로 솟았다가 하며 재주를 부리고 한 것이 ‘말등 재주’, 곧 마상희이고 이게 시초가 되어 발전하여 갖가지 제대로 된 눈요기, 볼것으로 전문화한 게 곡마단이 벌이는 곡예가 아니겠나. 그리고 다른 쪽으로, 운동이나 근대 스포츠 쪽으로 뻗어가 올림픽 종목에까지 채택 되어 메달을 다투게도 되었겠지. 안장같이 생긴 굵은 나무 둥치에 두 손을 짚고 올라가 윗몸과 흰 바지 입은 가랑이를 번갈아 휘돌리는 것이 안마요, 내달아 뛰어와 짚고 몇 바퀴 공중에서 비틀며 재주를 부리고는 내려서는 것이 도마 같은 체조경기 아닌가. 이런 게 다 연원을 따지자면 아마도 유목민들, 처음으로 말등에 올라탔을 사람들인 흑해 북쪽 스텝 지역의 스키타이족이나 아니면 고비사막의 흉노족에 가 닿는 것이 아니겠나.
아무튼 부처님 당시 인도에는 이미 유목민에게서 배운 이런 말등 재주를 포함하여 온갖 곡예와 눈요기, 귀요기를 보여 주고 밥을 먹는 대규모 서커스단이 생겨나 전국을 순회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불경에도 더러 나오는 이런 곡예단이 어느 날 그 당시의 대도시인 왕사성에 터를 잡고 일주일이나 머무른 것이 지금 이 이야기의 배경이다. 그런데 그 때 왕사성에는 구경거리 귀한 시골구석 촌놈이었던 나와는 달리 아주 부잣집 아들이었던 욱가세나라는 친구가 살고 있었다. 그래서 이 욱가세나가 어느 날 입장료 따위엔 전혀 개의치 않고 로열박스 표를 사서 때마침 공연을 온 서커스 구경을 간 것이렷다. 지금으로부터 약 2,600년 전 일이다. 그런데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약간 뜸을 들여 내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처음으로, 그것도 정문으로 떳떳이 출입하여 서커스 구경을 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는데 단체로 줄서서 구경을 간 시골 장터에서 하는 곡마단이었다. 그 때 코끼리도 처음 봤고 낙타도 처음 봤다. (나중 알고 보니 비교적 작은 코끼리요 낙타였고 영양상태가 좋지 않아선지 짐승들이 비쩍 말라 있었던 것 같다. 그 때 이미 영화에 밀려 서커스가 사양길이었나 보다.) 그런데 이런 것들보다 더 생생하게 인상에 남은 것이 무슨 짐승이냐 하면…, 그건 사람이었는데…, 누구냐면 특히 공중그네와 외줄타기를 하는 아이였다는 것이다. 우리보다 나이가 몇 살 위인 듯한 곱상하고 한편 야무지면서 처연해 보이는 계집아이였는데, 이 소녀를 내가 눈이 빠지게 올려다보며 가슴을 졸였다는 얘기다. 짧은 파마머리의 그 소녀가 입은 윗도리는 약간 봉긋했던 가슴께 밖에는 잘 생각이 안 나지만 알록달록 꽃무늬가 있는 팬티, 아니 여리면서도 탄력 있고 고운 허벅지에 끝에 고무줄을 넣은 주름 사루마다를 조여 입고 조심조심 줄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높이 가로 걸린 외줄에 올라선다. 그리곤 몇 걸음 아찔하게 사바박 걸어가 높은 천장에서 드리운 그네의 좁은 발판에 올라서서 조금씩 발을 구르던 모습이 눈앞인 듯 선하다. 불쌍하고 이뻐! 떨어지면 어쩌나! 그물도 제대로 없는데…. 학교는 안 다니고 저거만 하나…? 숨을 죽이며 무사하길 빌며…. 요 정도까지가 그 당시 나의 사고 수준이며 정서와 심성의 수준이었다.
이런 소심하고 어렸던 나와는 달리 그 당시 욱가세나는, 오뉴월 하루 볕이 무섭다고 나보다 몇 살이나마 더 먹었던 것인지, 아니면 꽤나 조숙했던 건지 왕사성의 그네 타는 곡예사 소녀를 보고는 속된 말로 정신이 그만 뿅 가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다 겨우 집에 돌아가서는 아예 방구석에 드러누워 버렸다.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끙끙 앓으며 말도 제대로 잘 안 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렇게 데모 아닌 데모를 하다가 영문을 몰라 애를 태우는 부모에게 마침내 못 말리는 소리를 뇌까렸다. 그 소녀에게 장가를 들겠다고, 걔 좀 데려와 달라고, 안 그러면 죽어 버리겠다고!
세상에 가장 난치병이 상사병이요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는 말이 동서고금에 부처님 말씀 다음으로는 진리인가 보다. 처음엔 부모도 콧방귀를 뀌었지만 결국 백약이 무효다. 그래서 결국 그 계집애를 오게 하라고 서커스단에 전갈을 했는데 답도 없다. 하다 하다 안 되어 마침내 부모가 다 죽어가는 욱가세나를 들쳐 업고 서커스 구경, 아니 서커스 단장을 면담하러 간 게 아니겠나, 우리 아들 좀 살려 달라고, 딸 좀 내어 주십사고. 갈 때만 해도 조금은 여유가 있어서, 말로 뱉은 건 아니지만, 이런 생각을 깔았었다. 우리 같은 재벌 집 격에 맞지 않고 스펙도 영 아니올씨다지만 자식을 봐서 우리 크게 인심 한 번 쓰기로 했다고…, 그리하여 사회적 위세와 부의 평준화에도 일조를 하겠다고…. 그런데 결과는? ‘꿈 깨라’이다.
알고 보니 사람 호리는 그 여우(?) 같은 곡예사 처녀는 서커스 단장의 딸이라는데 단장 왈, 자기들은 돈 받고 딸을 바깥에 팔 수는 없다는 것이다. 굴러든 복도 제 발로 찬다고 싫으면 말아라 할 수도 없는 게 당장 아들놈이 눈앞에서 숨이 끊어질 다. 그럼 어찌 하면 좋겠소? 울상이 되어 되물었다. 완전히 갑이 을 되고 을이 갑 된 모양새다. 한 가지 방법은 있소. 당신 아들이 서커스단에 들어온다면 내 딸과 혼사가 될 것이오.
이러니까 요즘도 서울 사람들이 아들을 낳으면 삼등석 타고 딸 낳으면 특등석 탄다느니 하나 보다(옛날 버전으로는 아들 낳으면 보리죽 먹고 딸 낳으면 인삼죽 먹는다 운운). 하여간에 이 쓸개 빠진(?) 녀석은 부모를 보기를 돌같이 한 채 냉큼 그 소녀와 결혼하여 서커스단에 붙어살게 되었는데 날이면 날마다 볼따귀가 귀밑에까지 찢어져 여미어지지가 않았고 얼마 후에는 아들도 태어났다. 하지만 욱가세나가 거기서 하는 일이란 맨날 옮아 다니는 서커스단을 따라 수레에 짐을 싣고 부리는 일, 물 긷기나 청소 같은 허드렛일이나 잔심부름 따위로서 말하자면 그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일 뿐이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기가 찬 일이 생겼는데 그건 어느덧 아이가 자라 아장아장 걸으며 말귀를 제법 알아들을 때였다. 아내는 언젠가부터 늘 노래 부르듯 가락을 넣어 아이를 불렀는데 좋은 이름 놔두고 대신, ‘달구지나 끄는 자의 아들새끼야!’ 아니면 ‘나무나 하고 물이나 긷는 사내의 자식아!’하는 식이었다. 누가 들어도 욱가세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 따위 소리 또 하면 나 떠날 거야! 흥, 갈 테면 가라지 누가 뭐래? 아내는 전혀 아랑곳 않았다. 참 세상에 믿을 곳 하나 없구나, 내가 그토록 사랑하여 재벌 이세 자리는 물론 모든 것을 버리고 왔는데 이렇듯 나를 발가락에 낀 때만도 못하게 여기고 자식새끼한테까지 모욕을 주고 저주를 하다니! 저걸 그냥 확!
하는 순간 속을 누르고 언뜻 되새겨 보니, 맙소사, 말인즉슨 틀린 말 하나 없는 것이다! 이를 어쩔꼬! 나는 그저 달구지 끌고 물 긷고 빗자루 들고 바닥 쓰는 하찮은 사나이가 아닌가! 돈도 쥐꼬리만큼만, 그것도 벌어다 주다 말다…. 맞다! 서운하지만 아내의 노랫가락은 정확한 리포트다!
이 세상 여자들이 가장 듣기 좋아하는 소리가 무언지 아는가? 클래식 음악? 첫눈 내리는 휴일 아침, 산장에서 모카커피 끓는 소리? 산새의 지저귐? 첫아기의 옹알거림? 아니다! 남자가 돈 벌어와 옜다 너 써라, 돈다발을 방바닥에 패대기치는 소리다! 이 진리를 왜 진작 못 깨쳤을꼬! (이 대목에서도 지진아인 나하고는 좀 차이가 난다.) 돈이 아니면 지위, 그도 아니면 뭘 해서든 식구 낯짝이라도 좀 세워 줘야 다른 것도 따라오든가 말든가 할 게 아닌가! 이도 저도 아무 것도 아니니 당연한 대접이지 그 이상 무얼 바라나? 그렇구나! 아내야 말로 정말 정확한 선생이요 족집게 교사다. 그 순간 욱 하는 성질 잘 참았네. 나도 잘 한 게 하나 있네.
욱가세나는 곧바로 장인에게 달려가 무릎을 꿇었다. 장인어른, 허리가 뒤틀리고 목이 부러져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장인어른의 곡예를 모조리 전수 받겠습니다. 가르쳐 주십시오. 맹세코 천하제일이 되겠습니다!
이 날부터 욱가세나의 진정한 피눈물이 시작 되었다. 아무튼 중간 얘기는 다 생략하자. 돈은 여전히 별로였지만 꿈이 있고 목표가 있고 거기에 닿으려고 온 정신과 힘을 다해 쏟고 있는 눈에 광채 나는 남자를 어쨌거나 아내는 더욱 내치거나 영영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몇 해 후, 그는 마침내 인도에서 가장 어렵고 위험한 곡예를 거뜬히 해 내는 맨 윗자리 곡예사가 되었다.
욱가세나는 그 곡예단을 이끌고 여러 해 만에 다시 왕사성으로 돌아왔다. 아이폰이 애플사를 대표하듯이 이제는 그의 이름이 최고의 곡예를 가름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앞으로 이레 동안, 지금껏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위태로운 곡예를 선보일 것이오. 그는 왕사성의 신민들에게 조용히, 그러나 당당하게 선포하였다. 뒤가 켕기는 하수들만이 괜히 요란하게 부풀려 떠드는 법이다. 이제는 그의 이름, 그의 언명 하나로도 족했다. 아무튼 희대의 눈요기를 놓치기 두려운 구경꾼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 듣고 알아서 일찌감치, 구름같이 모여들 테니까.
욱가세나는 자기만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자기만을 위한 단을 서커스 둥근 안마당에 높이 쌓았다. 그리고 마지막 이레째 되는 날, 이제까지 듣도 보도 못한 60 자의 장대를 그 한가운데에 세웠다. 내가 저 장대 끝에 올라설 것이오. 이 때까지의 곡예들은 기껏해야 스무 자 안팎이었고 흰소리로도 서른 자를 일컫는 이는 없었다. 그런데 무려 예순 자라니! 사람들은 반신반의했지만 어쨌든 자기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니 이왕 하는 구경, 숨죽여 지켜보기로 했다. 잘 하면 일생일대의 눈요기요 어쩌면 오늘, 천하제일의 곡예사의 죽음을 애도하는 초상 떡을 얻어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꽃놀이패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 아니 그렇게까진 아니고 최소한 나에게는 쇼킹한 뉴스, 역사의 현장을 증언하는 버릴 수 없는 얘깃거리가 되겠지.
욱가세나는 천천히, 침착하고 능숙하게, 두 가랑이로 장대를 감싸 끼고 두 팔을 번갈아 뻗어 당기며 위로 위로, 아스라이 꼭대기를 향해 올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 까마득한 끄트머리, 손바닥 하나가 덮고도 남을 작은 표면에 발을 포개어 웅크리고 앉아 서서히 몸을 펴 일으켜 세우기 시작했다. 층층이 원형 좌석을 꽉 채운 구경꾼들은 미동도 없이 숨을 멈춘 채 다 같이 저 높은 장대 끝, 까마득한 바늘 끝에서 몸을 펴고 일어서는 욱가세나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만약 이들 구경꾼들의 안광이 무슨 빛이라도 모으는 것이었다면 수천의 그 빛들이 한 점에 모아진 그 장대 끝 초점에서 욱가세나의 몸은 성냥개비처럼 발화하여 타 버릴 수도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다만 허물 벗는 잠자리처럼, 욱가세나는 정적 속에서 시계의 초침이 돌아가는 속도로 조금씩 조금씩 웅크렸던 허리를 폈다. 두둥…, 그런데 이 순간…, 제3의 인물 부처님이 등장한다.
부처님은 멀리서 이 사태를 미리 하늘눈으로 내다보고 계셨던 것이다. 그리고 욱가세나에게 때가 이르렀음을 아시고, 두둥…, 때맞추어 제자들을 거느리고 서커스 장 입구에 들어서신 것이다. 그 순간 또 한 번 두둥…, 수천의 안광이 한 순간에 초점을 싸그리 옮겨 부처님께로 맞추었다. 후천개벽이요 전광석화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장대 끝의 잠자리는 동작 그만! 필름이 정지하듯 껍질 벗음을 멈추었다. 아니, 시간이 멈춰 버린 것 같았다. 이럴 수가! 이 모든 주시를 순식간에 앗아간 저 부처님이란 분은 도대체 누구시란 말인가! 욱가세나는 정적 속에서 탄식하였다. 그러자 다음 순간, 이 멈춰 버린 허물벗기를 바라다보며 부처님은 곁을 따르는 목건련에게 이르셨다. 목건련아, 저 곡예사에게 가서 여래가 그의 곡예를 마저 보고자 한다고 전하여라. 이에 목건련은 장대 아래로 다가가 목청껏 소리쳤다.
뛰어난 곡예사 욱가세나여
자, 이제 구경꾼들에게 솜씨를 보여
그들을 즐겁게 만들어 보라
장대 끝의 욱가세나는 저 대단한 부처님께서도 자기의 곡예를 보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 알고는 몹시 기뻤다. 다시 전기가 들어온 장난감 인형처럼 그는 신이 나서 이렇게 화답했다. 불은 켜지고 필름은 다시 돌아간다.
슬기와 신통력의 목건련이시여
여기를 보십시오!
이제부터 제 곡예로
모두를 즐겁게 만들겠습니다
말을 마치자 그는 몸을 공중으로 높이 솟구치더니 무려 열네 바퀴나 돈 다음 다시 사뿐히 그 장대 끝, 바늘 끝에 다시 내려섰다. 중력의 법칙이 빗겨간 인간 스프링이요 공중제비 하는 물총새를 낚아채는 날랜 암고양이 같은 모습이었다. 구경꾼들은 눈을 의심하고 말을 잃을 지경이었다. 거대한 서커스의 안마당 전체가 감동과 긴장이 꼭지까지 차올라 움직임이 불가능한 호리병 속이라도 된 것처럼 한 순간 말문을 닫고 정적이 흘렀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그 출구 없는 긴장을 깨시면서 천천히 입을 열어 멀리서 웅장하게 이르셨다. 온 지붕아래가 그 목소리를 따라 함께 울렸다.
욱가세나여
그대는 여래의 가르침을 들을지어다
무릇 슬기로운 이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업에 대한 애착을 버리느니라
그리하여 그는 태어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
윤회의 수레바퀴를 벗어나느니라
이어서 부처님께서는 이를 다시 게송으로 읊으셨다.
다섯 무더기에 대한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모두 버릴지니
윤회의 바다를 멀리 건너
다섯 쌓임의 모든 업으로부터
네 마음을 깨끗이 맑혀라
그리하면 태어남과 늙음을
다시는 받지 않으리라
이 게송을 듣는 찰나, 욱가세나는 드높은 장대 끝에 외발로 선채로 그대로 정각을 이룬 아라한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깃털처럼 사뿐히 바닥으로 뛰어내려 부처님께 다가가 그 발밑에 팔다리를 뻗어 엎드리니 부처님께서는 오른팔을 들어 그를 부르셨다.
오라, 비구여!
그 때 비구에게 필요한 바루와 여덟 가지 일상 용품이 저절로 허공 가운데에서 나투어 욱가세나의 팔에 안겨지니 그는 곧바로 부처님의 예순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이 장면이 조금 지나자 의심 많은 다른 한 비구가 욱가세나에게 물었다. 높은 장대에서 뛰어내릴 때 무섭지 않았냐고. 그렇지 않았다고 대답하자 그 비구는 그 대답이 진실이 아닐 것이라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은 다시 게송으로 그 의심 많은 비구에게 이르신다.
그는 모든 애착을 끊어 버렸기에
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 않는다
그는 모든 얽매임에서 벗어났기에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이와 같은 경지에 이른 이를
여래는 브라흐마나라 일컫노라
이것이 법구경의 제 348번째 게송, 곡예사 욱가세나에 얽힌 이야기다. 그건 그렇고 도도하게 한 인물 하던 그의 아내는 그 후 어찌 됐을까? 최고의 곡예사요 돈줄인 남편을 부처님께 빼앗겨 흥행을 망쳤다고 원망이나 하지는 않았는가? 아니다. 부창부수, ‘내 남편이 이룬 것을 나도 반드시 이루리라’ 하고 비구니가 되었고 마침내 자신도 남편을 뒤따라 아라한을 성취했다는 것이다.
조금 더 뒷얘기를 들추자면 욱가세나도 아내도 전생에서부터 부부 인연을 맺었다는데(부부인연, 그것 참 못 말리게 끈질긴가 보다. 이혼 전문 변호사, 참 궂은일인 것 같다. 수임료 많이 받아야겠다) 전생에서 남편이 어느 날 길에서 우연히 만난 아라한에게 공양을 올린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 때 공양을 올리며 자기 같은 사람도 생사의 윤회를 벗어날 진리를 성취하겠는가를 여쭌 적이 있었다는데 그 아라한은 욱가세나가 내생에서 자기처럼 아라한을 성취할 것임을 내다보고는 대답 대신 얼굴에 싱긋이 웃음을 띠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웃음을 보고 아내가 남편에게 말하기를, ‘저 아라한은 배우 기질이 있나 봐요.’ 이랬다는 것이다. 이 한마디를 지껄인 업으로 이들은 다음 생에서 다시 부부가 되어 둘 다 한평생 곡예사라는 일종의 배우가 된 것이란다. 그리고 그 때 그 아라한에게 남편이 정성껏 공양 한 끼 올린 공덕으로 자기들도 이생에서 마침내 세트로 아라한을 이루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 것이 아니라 내생이 왔다 갔다 해한다는 얘긴데, 그렇다면 이때도록 생각 없이 저지른 내 이 구업들은 다 어찌할꼬?
아무튼 곡예사의 첫사랑, 70년대 초였던가? 오래 전에 나온 박경애의 같은 제목의 노래에서는 가사로 보아 곡예단 안에서 철없는 남녀 곡예사들이 어릿광대 사랑 놀음을 한 것일 테지. 무릇 첫사랑이 대개 그렇듯이 맺지 못할 사랑으로 끝나 버려 더욱 애처로운 가락이었던 것 같은데 욱가세나는 결국 첫사랑의 아내도 얻고 어쨌든 끝까지 서로 끼고 살다 잇달아 아라한마저 함께 이루었으니 대단한 해피 엔딩이다. 하지만 오늘도 백척간두에 선 21세기의 어설픈 또 다른 욱가세나는 공중으로 솟구치지도 바닥으로 뛰어내리지도 못하고 영 엉거주춤이다. 아라한의 성취는커녕 누가 꼭 그러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버릇처럼 내쳐 페달만 들입다 밟고 보니 서커스고 구경이고 뭐고 파노라마 같이 다 뒤로 밀려 버리고는 어느새 끼익, 흰색 노란색 금들만 족족 그어진 폭폭한 회사 주차장 안이다. 나무 관세음보오살….
2014.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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