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그립바1세로부터 제1차 유대전쟁까지의 기간(A.D.41-66)
a. 로마는 아우구스투스가 죽은 후에 티베리우스(14-37), 칼리큘라(37-41), 글라디우스(41-54), 네로(54-68)에 의하여 통치되었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 이후의 황제들은 아우구스투스만한 통치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 티베리우스는 눅3:1에 언급되고 있는 티베리우스는 원로원과 백성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었다. 군사적으로 성공을 거두기도 했으나 조카 게르마니쿠스가 거둔 것.
-- 칼리큘라는 게르마니쿠스의 아들로서, 무능했고, 일종의 정신병 증세가 나타나 스스로 신으로 숭배받으려는 광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 클라우디우스는 법적인 영역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 클라우디우스를 이어 네로가 등장. 잔인한 것으로 유명. 행정과 외교 모두 소홀히 했다. 네로를 죽이려는 수많은 음모들이 진행되다가 68년에 성공하여 네로를 자살로 내몰았다. 네로는 A.D.64년에 로마를 불질렀는데, 이 책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뒤집어 씌웠으며, 이것이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의 시초가 되었다.
b. 헤롯대왕과 마리암네의 손자였던 헤롯 아그립바(행12:1-23)는 칼리큘라와 절친. 카리큘라가 37년 황제가 되자마자 곧 아그립바에게 분봉왕직책을 줌. 2년후에 안티파스가 추방되었을 때 아그립바는 안티파스의 영토도 취했다.
-- 이 무렵 스스로 신으로 경배받고 싶어 했던 칼리큘라는 예루살렘 성전에다가 자신의 동상을 세울 것을 명령했다. 40-41년에 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시리아통치자 페트로니우스가 팔레스타인으로 감. 그러나 페트로니우스는 이 명령을 수행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 명령을 수행할 경우 팔레스타인에서 폭동이 일어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게다가 아그립바의 능숙한 정책과 칼리큘라의 죽음으로 폭동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글라우디우스는 팔레스타인에서 폭동을 막아 준 댓가로 아그립바에게 할아버지 헤롯대왕이 다스렸던 지역 전체를 아그립바에게 하사했다.
-- 아그립바 치하에서 유대와 사마리아는 다시 헤롯왕가의 통치 아래 들어오게 되었다. 아그립바는 하스몬왕조 출신의 마리암네의 후손으로서 정통적인 혈통을 계승하고 있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호감을 얻을 수 있었다.
-- 아그립바는 예루살렘 안에서는 율법을 지키는 경건한 유대인으로서 행세함으로써 유대인들의 호감을 얻으려고 했고, 예루살렘 밖에서는 헬레니즘 옹호자로 행세했다. 가이사랴에 딸들의 동상을 세웠고, 로마식 경기를 개최했다. 예루살렘에서 주조한 화폐에는 어떤 형상도 새겨넣지 않은 반면에 다른 도시에서 발행한 화폐에는 자신이나 황제의 초상을 넣는 위선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 아그립바는 예루살렘 북편에 새 성벽을 건축하려고 했으나 로마에 의하여 견제당했고, 로마의 다섯 봉신왕들과 함께 티베리아스에서 회의를 하고자 했으나 이 회의도 로마에 견제당함으로써 로마로부터 독립된 정책을 수행하려는 그의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나 클라우디우스를 설득하여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특권을 부여받게 했다.
-- 아그립바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첫 번째 박해자가 되었다(행12:1-19). 세배데의 아들 야고보가 그의 명령으로 죽임을 당했다. 베드로도 비슷한 운명에 처할 뻔 했다. 아그립바는 44년에 가이사랴에서 죽음.
c. 아그립바1세가 죽은 후에 글라우디우스는 팔레스타인 전역을 로마지방으로 만들었다. 글라우디우스는 파두스(44-46)를 총독으로 임명했다. 파두스 시절에 드다라는 한 선지자(행5:36)가 나타나 활동을 시작했는데 파두스는 기마병을 동원하여 이 선지자일파를 무서운 살육을 행하여 진압했다.
-- 파두스의 계승자는 티베리우스 줄리우스 알렉산더(46-48)이었다.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서 철학자 필로의 조카. 이 당시 팔레스타인은 기근으로 고통을 받았다(행11:27-29). 짧은 기간동안 총독으로 있다가 물러난 그는 70년 유다전쟁시에 예루살렘 포위를 지지한 로마군사령관의 조언자로 활약했다.
-- 벤티디우스 쿠마누스(48-52) 총독시에 소요가 증가했는데, 이 소요들은 쿠마누스의 분별없는 행동 때문에 야기되었다. 52년경 한 갈릴리 사람이 사마리아에서 살해당했을 때 갈릴리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에서 분쟁이 일어났다. 이 싸움에 예루살렘 주민들도 말려들었다. 엘르아잘과 알렉산더라는 이름의 두 열심당원들이 추종자들을 이끌고 사마리아에 대한 징벌원정을 단행했다.
이 일에 대하여 쿠마누스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나중에 왕이 될 아그립바2세의 중재와 로마황제 글라우디우스가 개입에 힘입어 사마리아에게 유죄가 선고되고 두 열심당원은 처형되었다. 글라우디우스 황제는 이 일에 대한 책임을 물어 쿠마누스를 해임했다.
-- 쿠마누스의 뒤를 이어 안토니우 )스 펠릭스가 총독으로 임명(52-60). 가이사랴에서 바울을 죄수로 감금했던 사람. 그의 통치기간 중 주민들 사이에서의 불안이 증폭되었다. 반란도 계속되었다. 펠릭스는 매우 잔인하게 전략도 없이 반란을 진압해 나갔다. 그 결과 로마에 대한 반감이 점점 강해져 갔다. 행24:26이 암시하는 것처럼 펠릭스는 부패한 통치자였다. 60년에 벨릭스는 네로에 의하여 쫓겨나고 포르시우스 베스도가 총독으로 부임했다(60-62).
베스도는 온건한 통치자. 아그립바2세와 제사장들 사이에서 싸움이 일어났다. 제사장들은 아그립바가 성안을 내려다 보지 못하도록 벽을 쌓았고, 아그립바는 그 벽을 허물어 버리기를 원했다. 베스도는 그와 견해를 같이 하였으나, 동시에 제사장들이 대표단을 로마에 파견하여 네로에게 이 문제를 진술하도록 했다. 네로는 제사장 편을 들었다.
-- 베스도 뒤에 임명된 알비누스 총독(62-64)과 게시웃 플로루스(64-66)는 부패하고 탐욕스러운 총독들이었다. 알비누스 때는 어떤 죄수라도 돈으로 자유를 얻을 수 있었고 플로투스는 모든 도시들과 마을을 노략질했다. 제1차 유대전쟁은 그가 통치하던 A.D.66년에 발발했다.
d. 아버지 헤롯 아그립바1세가 44년에 죽었을 때 그의 아들 아그립바2세는 17세였고, 아버지가 죽은 후 몇 년동안 로마에 머물러 있다가 49년 레바논의 작은 왕국 칼키스의 왕으로 임명됨. 동시에 예루살렘 성전의 감독권, 대제사장 임명권을 부여받았다.
-- 53년경에 아그립바의 영토는 이전 분봉왕이었던 빌립의 지경까지 확장됨. 아빌레네가 추가된데 이어 네로황제로부터 베뢰아의 아빌라와 줄리아스, 갈릴리에 있는 티베리아스와 타리케아를 하사받음(54-55년)
-- 누이 베레니체와 동거하여 근친상간이라는 비난을 받음.
-- 외교정책에 있어서는 철저한 친로마정책을 추진. 모든 화폐들에 로마황제들의 이름과 초상을 새겨 넣었다.
-- 66년에 로마와의 1차 유대전쟁의 발발을 막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기울이다가 일단 전쟁이 발발한 다음에는 철저하게 로마편에 섰다.
e. 41년 이후의 경제적 상황은 점차로 악화일로를 걸음.
-- 탐욕스럽고 타락한 총독들의 악한 통치가 민중들로부터 반감을 사서 소요가 끊이지 않음.
-- 로마 당국이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세금을 거두었고, 거둔 세금 중 상당 부분이 중개인들이 착복함. 민중들의 불만은 모두 로마당국으로 향함.
-- 예루살렘에는 제사장가문들과 부유한 토지소유자들이 살고 있었다. 사마리아는 유대인들과는 관계가 좋지 않았으나(요4:9) 유대전쟁시에는 유대인 편에서 로마를 대항하여 싸웠다.
-- 당시 예루살렘에는 헬라어를 쓰는 사람들고 있었고, 유대인들 중에도 헬라어를 쓰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 가운데 일부가 개종하여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 일원이 되었으며, 히브리어를 쓰는 사람들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행6:3). 구제문제를 둘러싸고 발생한 갈등을 해결하는 방편으로 헬라파 유대인들로 구성된 일곱 집사를 임명하기도 했다.
최초의 순교자인 스데반이나 빌립집사가 모두 헬라파 유대인 출신들이었다. 예루살렘 당국의 핍박을 피해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나와 각지로 흩어질 때 헬라파 유대인들이 흩어졌고, 이들이 흩어져 나가면서 전도하여 교회를 설립했다.
--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권은 베드로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담당했다. 야고보는 대제사장 안나스2세의 명령으로 산헤드린에 소환되어 순교당했다. 야고보의 순교는 온건한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의 반감을 불러 일으켜 안나스2세는 이 일 때문에 총독 알비누스에게 고소당했고, 로마 총독의 압력으로 아그립바2세는 안나스를 면직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