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26] 이정수(李貞壽) - 내 모든 것 하늘에 맡기고 2. 열쇠를 통일교회에서 찾다 - 1
1 1955년 3월 4일에 나는 권영아 씨(타계)의 인도를 받아서 통일교회(김정락 씨가 살던 무주농고 사택)를 찾아갔고 인도자 김정락 씨(타계)를 통해 말씀을 듣게 되었다.
2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꼭 무슨 풀지 못하고 밀어 두었던 문제들의 답을 풀어 주는 듯 빈틈이 없어서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있노라니 온몸에 불의 역사가 내려서 성령이 충만하였다.
3 그런가 하면 그날 밤부터 꿈에 하얀 한복을 입으신 분이 나타나셔서(후에 알고 보니 문선명 선생님이셨다) “나를 찾느라고 수고 많이 했다” 하시며 내 손을 잡아 이끌어 주시기도 했고 원리 생활을 교육시키기도 하셨다.
4 이렇게 되니 지금까지 느껴볼 수 없었던 환희와 기쁨이 마음속에 가득해서 집에서 무슨 일을 하다가도 우선 교회에 가서 말씀을 듣고 싶어서 집안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이런 은혜의 기간 속에서 나의 20여 년간 구도 생활의 결실지가 통일교회임을 확신하고 내 인생의 전부를 아낌없이 바치자고 결심했다.
5 나는 불철주야로 말씀에 불이 붙어 교회 집회와 전도활동에 전력을 쏟다 보니 자연히 가정사와 세상사엔 무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의 생활은 그저 감사하고 황송하기만 하였다.
6 무주 교회는 순식간에 식구 수가 놀랄 정도로 증가되어 400여 명이 예배를 볼 때도 있었으며, 뜨거운 불의 역사 속에서 무주 읍내는 온통 통일교회의 열기로 가득 찼었다. 이런 불길의 역사 속에서도 내가 넘어야 할 탕감의 시련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7 내가 뜻을 알던 때가 차남 환수를 낳았을 때이므로 별로 젖꼭지를 물려보지 못했기 때문에 직장 생활을 하는 남편이 나 대신 설탕물과 과일을 갈아 먹이면서 아기를 기르다시피 해서 쇠약해진 아기는 병이 들어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8 나는 어린 것을 앞에 놓고 기도했다. 하늘은 나의 기도를 들으셨는지 차츰 아기의 건강은 회복되어 갔다. 그렇게 되자 뜻의 시급함과 식구들의 은혜의 갈증을 저버릴 수 없어서 다시 집을 나와 전도활동을 하였다.
9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는 환수는 조금 철이 들자 엄마를 찾아 혼자서 울며 골목길을 헤매다가 지치면 허수룩한 담벼락 밑에 쭈그리고 앉아서 잠들어 버리곤 했다. 그러면 마을 사람들이 안아다 주었다. 그래도 하늘은 그 애를 지켜 주시고 훌륭하게 키워 주셨다.
10 1961년 동계 전도가 시작되었을 때 나는 예년과 다름없이 전도를 나갔다 돌아오니 7살짜리 환수가 3일 금식을 했다고 한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환수는 ‘엄마가 보고 싶으니 엄마 보고 싶지 않게 해주고, 엄마 건강케 해달라’라고 금식 기도를 했던 것이다.
11 첫날과 둘째 날은 용케 참고 견디더니 셋째 날은 비실비실 쓰러지더라는 것이다. 아빠와 누나들이 밥을 먹으라고 권했으나 말을 듣지 않고 끝까지 금식을 마쳤다고 하였다.
12 그리고 3일이 지나서 밥을 먹으라고 주니 “하나님 아버지! 우리 엄마 전도 잘 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엄마 돌아올 때까지 보고 싶은 마음 들지 않게 해주세요” 하면서 기도하더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