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영부영 세월이 가는 바람에 나도 퇴직자 대열에 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돈만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은퇴하고 싶은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 참고 버틸 요량이다
1. 화초와 반려견 키우기
마당에 개 2마리가 묶여 있다. 이 아이들과 가능하면 하루에 한번 동네를 돌고 있다. 집안에 있는 아이까지 도합 세마리인데 동네 할마씨는 자기네 개까지 데려가 키워달라고 한다. 늙어 개 치닥거리도 힘에 부친다고 우는 소리를 한다. 프렌치 불독인 그 아이는 얼마전 집 근처 살던 그집 딸이 맡아 키우다 이사하면서 친정에 다시 맡겼다. 그전에도 맡긴 적이 있어 그 아이는 이집저집을 떠돌아다니는 신세다. 안되었기는 하지만 내 아이들도 많아 답을 하지 않았다.
작년에도 뒷마당 장미를 작살냈던 옆집 영감이 올해도 어김없이 집앞 금낭화를 다 싹쓸이 해버렸다. 용인갔다 돌아온 어느 월요일, 집앞에 내려 기절하는 줄 알았다. 현관앞 무성하던 금낭화들이 마치 토네이도 지나간듯 절단되고 흩어져 있었던 것이다. 영감이 마치 귀곡산장 같았던 앞마당을 예의 그 솜씨를 발휘하여 남김없이 깎아버린 것이다. 그 것 뿐이랴. 며칠전 동네 권사님께 간청하여 얻은 데이지 수십그루도 역시 한방에 다 날려버렸다. 작년에는 아뭇소리 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반장님 집앞 그 꽃들 금낭화였어요. 금!, 낭!,화!!!!" 영감은 뱀이 나올까봐 나름 생각해서 깎아준 것이긴 한데 뱀은 내가 집에서 긴장화만 신고 다니니 별문제 될 것도 없었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열매맺지 않은 식물은 다 잡초로 보이나 싶었다, 돈이 안되니까.
그나마 다행은 작약모종에 손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주차장 근처에도 작약을 심었는데 영감이 어느새 제초제를 뿌려 한뿌리만 간신히 살아 있고 옆화단의 작약들은 그늘져서 그랬는지 어쨌는지 영감 예초기의 칼날을 피했다. 영감은 화단에 표시를 해놓으라 했다. 보면 모르나.
2. 교회생활
올해 초반부터 교회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그동안 열심히 성가대를 하고 예배후 사랑방모임 참석하고 하다보면 일요일 하루가 후딱 가버리곤 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주일성수해야하고 교회 안가면 안되는 것으로 살아왔던 내가 교회 안가니 너무 편하고 좋았다!!!! 토요일도 부담없고 일요일도 늦잠자고 다른 할 일 하고 하면서 오롯이 내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목사님 말씀없이도 생활은 잘돌아가고 교인들과 교제없이도 내생활은 편안했다. 헌금도 마찬가지로 내도 안내도 되었다. 신앙이 무엇일까. 교회만 열심히 쫓아다니면 만사형통이고 믿음이 억수로 좋은 걸까. 성경에 너희들은 다 제사장이라 하였거늘. 무거운 주제다.
오늘 집에 오는 길에 동네교회 목사님을 뵈었다. 손님과 함꼐 계셨다. 연대 기독병원 원목으로 가시고 대신 그 교회 목사님이 동네교회로 오신 것인데 안내하고 계신 것이었다. 목사님은 희희낙락 좋아서 난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동네교회는 주로 노인 한 20명이 안되는 교회라 월급도 제대로 나오기 어려운 교회고 최근에는 아예 월급도 없었을 것이다. 병원 원목은 아무래도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지 않을까. 원목이셨던 목사님은 65세가 되어 은퇴겸 해서 동네교회로 오신 것일 게다.
이번 수요일에 동네교회를 나가보려 한다. 그 교회 가보면 내가 영계(?)다. 나는 나의 은퇴후 생활을 이교회에서 할 생각이 있다. 남편은 4년전 신장이식수술을 받았고 당뇨로 인해 아픈데가 많다. 물론 체력은 지금도 나보다 좋다. 두세시간 거뜬히 걷는데 비해 나는 한시간이면 더 못 걷는 저질 체력이다. 그래도 별일 없다면 남편이 먼저 갈 확률이 높고 그러면 용인생활을 정리하고 원주에서 작은 이 시골교회에 다닐 생각이다. 성가대 접을 생각으로 피아노 배우고 있는데 반주를 담당하면 될 것 같다.
3. 손주키우기
아직 아이가 대학생인데 혹시 손주가 생기면 이도 내 노후의 큰 일이 될 것 같다. 그러나 유년기에 중국에서 학교를 다닌 탓에 아직도 읽고 쓰기는 중국어가 더 편한 아이다. 앞으로 이 아이가 한국에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가까이서 두고 보고 싶지만 어찌 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더구나 이번 코비드 사태로 인해 한학기 내내 원주에 와서 함께 있었는데 아이 시집살이도 만만치 않았다. 아이는 육식을 좋아하고 나는 채식(생선, 달걀은 먹는 초기단계 채식) 을 하는데 아이 원하는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한침대를 써서 일어나고 자는 시간도 함께하기가 불편했다. 피아노도 들여놓고 아이가 공부하면 제대로칠 수가 없었다. 20살 넘으면 아이도 남이다. 혹시 한국에서 직장 잡아 산다면 그 근처에 왔다갔다 하며 손주 볼 생각은 하지만 함께는 노노노!!!!!
4. 기타
친구 만나기, 생명살리기, 등등 할 일은 많다. 원주살이 장점 중 하나가 불필요한 만남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임에 못나가는 핑계대기가 쉽다. 너무 멀어서 --- 이렇게 말이다. 뭐가 멀다고 말이다. 멀다는 것은 마음이 멀다는 얘기다. 보고 싶다면 불원천리 못갈 것도 없다. 카페에서 모임있을 때 나오는 분들 보면 정말 멀리서도 나오신다. 마음만 있으면 거리는 문제가 아니다.
2달전 동네 어귀의 소나무에 덩굴이 얽혀있길래 청룡언월도 같은 긴 톱으로 손을 보다가 왼손 둘째 손가락을 다쳤다. 그날따라 장갑도 안껴서 상처는 깊었다. 병원 다니며 치료 받았음에도 지금도 그 손가락이 퉁퉁 부어있다. 아마 인대를 다쳐 그런 것 같다. 피아노도 장애우 피아니스트처럼 네손가락으로 치고 있고 구부리면 아직도 아프다. 장애가 될 가능성도 있다. 내 나무도 아닌데 괜한 오지랍으로 이모양이 되었다. 옆의 나무들이 덩굴들로(주로 칡이다) 고사되는 것을 봐서 더 내가 나서고 싶었던 것도 있다.
집주변에 어슬렁거리는 길고양이에게 밥주기 시작한 지도 꽤 되었다. 고양이가 와서 사료 먹는 모습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 사료는 그야말로 동네사료다. 까치들도 박새, 참새들도 동참하며 먹고 있다. 사소하지만 이런 것도 시골 사는 기쁨 중 하나다.
마지막으로 주식투자가 있다. 카페에 고수님이 계신다. 그분 이번에 자산을 좀 불리신 것으로 안다. 기회는 언제나 있지만 고수들은 불황에서 큰 몫을 잡는다. 나도 고수님 지령이 나오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별로 틀린 적이 없었다. 혹 시작할 생각이 있는 분들은 그분의 지도편달을 받으시기 바란다.
첫댓글 아르테미스님의 일상과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글 재밌게 잘 봤습니다.
저도 몇년전 다니던 한인교회를 그만두고 나니 완전히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되었지만 몸과 영혼은 더 자유로와진 듯.. 주님 모신 곳이 그 어디든 하늘 나라~
그럼요. 내자신이 성전인걸요. 주안에서 자유하시길
여유로운 시골생활이 상상이 되는 글이네요
저도 강아지 키우고 싶은데 지금 참고 있어요 집을 자주 비워서요
재밌게 잘읽었습니다
어디 계신지 모르지만 한국도 개식용국에서 개천국으로 바뀌어가는 모양새입니다. 강아지 호텔 많고요. 개와 함께 머물며 즐길 거리를 만드는 지자체가 생겼어요. 울산이 시작했어요.
아르테님의 일상이 그대로 묻어져 나옵니다. 손가락은 다 나으셨나요? 내 몸이 편한 것이 우선인데요. 주식투자는 제 일상의 약 10퍼센트는 차지하는 듯 합니다. 스피노자님도 오래하셨다니 언제 함께 토론해도 좋겠습니다. ㅎㅎ
본문의 고수가 david님인 것 눈치채셨나요. 코비드 초기 글이니 벌써 4년전이네요. 손은 멀쩡히 나았고 교회반주도 이젠 실수조차 우아하게 넘기는 방법 터득한지 오랩니다 ^^
@아르테미스 고수는 못되고 중수 정도는 됩니다 ㅎㅎ
엔제이님도 오시면 좋은데 친정집에 미련이 남으셔서…
몇 년 후 역이민 계획 하는데 저희 9살 댕댕이가 걱정입니다. 데리고 한국에 갈 수 있을지?
차멀미를 심하게 하는데 비행기 멀미는 더 심합니다 . 국내선 5 -6시간 타면서도 vet 에가서 약도 지어다 먹였는데
전혀 워킹 안하고 죽는 줄 알았습니다.
손주는 저도 못 키웁니다. 애 키울만한 체력이 못됩니다. ㅎㅎ
북캘리의 날씨는 어떤가요?
막내가 사는 곳이라 가고싶어집니다
@david 날씨 하나는 딱 맘에 듭니다.
동부에서 30년 살다 남편 직장 때문에 2022년 말에 이사 왔습니다. 북쪽은 샌프란, 남쪽으로는 산호세
아직 이 지역 낮 설어 어설픕니다. 여기서 한국으로 역이민 할지? 다시 동부로 가서 살다 역이민 할지 고민입니다
@mkc927 막내는 캠벨에 사는데 아무리 아틀란타에 오라고 해도 거들떠도 안보네요
오늘 개식용금지 법안 통과된 것 아시나요. 한국은 이제 강아지를 상전으로 모시는 분위기가 정착되고 있습니다 ^^ 몇년전만 해도 개들과 산책하면 그개들 주인 잘 만났다하던 시골 사람들이 이젠 자기네들도 산책시키네요.
개 장례식에 얼마 부조하나 하는 기사가 났더군요. 세상 많이 바꼈어요.
아이 한국 데려 오세요. 식구를 왜 안데려 오나요. 아파트에서 큰 아이라면 키우기 힘드니 저같이 외딴 집에서 키우심 됩니다
@아르테미스 당연 데리고 가야지요. 이 껌딱지를 어떻게 떨어 뜨려 놓나요?
한국 가끔 방문하면 울 댕댕이만가 젤 염려되고 보고 싶거든요.
노후준비 계획을 잘 정리하셨네요. 퇴직전에 쓰셨다고 했는데,
퇴직후에 이 계획을 계속 이어가시는지, 혹은 조금 변경을 해야했는지 궁금합니다.
화초와 반려견 키우기는 진행형이고 거기에 더해 고양이들까지 키우고 있어요. 이놈들이 중성화 시키기 전 이미 임신해서 골치가 아픕니다.
교회는 용인에서는 주일예배와 사랑방만 참석하고 원주 시골교회 수요예배에서 반주한지 1년 반이 됩니다. 할머니들과 은혜를 나누고 있지요.
아이는 졸업후 뒤늦게 취직했고 결혼은 아직입니다. 사귀는 남자가 맘에 안들어 기도중입니다. 뭐 제맘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읍니까만.
친구라기보다 여러관계를 되려 깔끔히 정리했습니다. 퇴직하니 좋은 게 관계를 손절(익절은 없죠^^)할 수 있는 거죠.
아직까진 시간강사하고 있는데 그나마 학생이 없어 폐과되어 올해가 마지막입니다. 밭농사 조금 흉내내다 고생끝에 진작에 제가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요. 다만 영농인 지위로 건강보험은 혜택을 보고 있어요.
주식은 주로 미국주식 조금 하고 한국주식은 귀가얇아 유튜버 말듣고 망했습니다 ㅠ
참 팬데믹 초기부터 퇴직 염두에 두고 피아노 시작해서 이제 5년차 들어섰습니다. 1주일에 1번 레슨받느라 연습하기도 벅찹니다. 안외워져요. 기억력 감퇴와 인지력 저하를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