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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이번 호에 <토끼와의 전쟁>을 쓴 김원 선생이 회장으로 있는 양평문협의 10월 말 안동 문학기행에서 체험한 것을 토대로 엮은 수필입니다. 에세이트 회원들이 가을 문학기행을 갈 때 나는 친구따라 강남으로 갔었지요. 안동고택은 김원 선생의 고택도 포함되어 있어요. 그럼 여러분을 김원 선생의 고택으로 초대합니다.
어떤 문인이 제목을 "요강 합궁"으로 고치면 좋겠다고 해서 반영합니다.
요강 합궁
조 정제
시월 마지막 주말, 양평문협의 문학기행 초대를 받고 이른 새벽 집을 나섰다. 일정은 택리지에 나오는 삼남의 최고 길지(吉地)가 두 곳이나 있는 안동을 중심으로 하회마을-도산서원-이육사문학관-임청각-내앞 독립기념관-조지훈문학관-부석사로 이어지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달리는 관광버스 차창에 치악산이 언뜻 모습을 드러내었다. 울긋불긋 화장을 다 마치지 못하고 보고픈 임이 오는지 급하게 얼굴을 내밀었다. 산, 산, 산. 저 산을 펼쳐서 지표로 면적을 측정하면 우리나라는 두세 배 더 넓어지겠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첫 방문지는 하회마을이었다. 하회는 현대 도시계획가 눈에도 입지가 뛰어나고 기능 배치가 잘 되어있다고 평판을 받을만하니 놀랍다. 낙동강이 S자로 감싸듯이 돌아들고 부용대 괴석이 파적을 자아내는 외딴 길지, 그곳에 6백 년 전 조선조 초기에 오늘날 자동차가 통행이 가능할 정도로 도로를 널찍하게 뚫고 삼신당 신목(神木) 등 온갖 기능을 적절하게 배치해두고, 양반을 조롱하는 하회 탈출을 양반들이 지원하고 스스로 즐기는, 반상이 함께 어울려 사는 마을, 이 얼마나 평화롭고 멋지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우리 일행은 강변의 외곽도로를 따라 걸으면서 예약된 식당을 찾아 들었다. 안동찜닭과 동동주가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찜닭 맛에 걸신들인 듯 말없이 잘도 먹었다. 난 국물 맛이 더 좋았다. 동동주 한잔 걸치고 팔자걸음으로 만송정 숲길을 걸어가니 내가 바로 서애선생이 된 기분이었다. 쪽배에 몸을 건들건들 싣고 맞은 편 부용대로 건너가서 다정한 벗들과 마주 앉아 시 한수 읊고 한담(閑談)을 즐기니 천상낙원이 어디에 따로 있으랴.
식후에 우리는 넉넉한 기분으로 도산서원(陶山書院)을 거쳐 고성(固城)이씨 종택 임청각을 향했다. 임청각은 조선중기에 정승이 세분이나 탄생했고, 독립운동가로 상해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선생의 생가로 3대에 걸쳐 9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곳이다.
본래 99칸의 대저택이었으나 일제시대 중앙선 철도 건설로 인하여 33칸이 헐리고 지금은 66칸이 남아 있다. 그 당시 정원에 있던 나무가 그 앞 차가 쌩쌩 달리는 대로 속에 두세 그루 청승맞게 살아남아서 무언의 호소를 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허주 이종학선생이 230여년 전에 그린 임청각의 멋진 동양화의 모습을 늦게나마 재현할 수 없을까.
저녁은 안동시 김종휘시장이 베푸는 만찬이었다. 45도 안동소주에 헛제삿밥과 안동 간 고등어, 그것은 상 그득한 최고의 성찬이었다. 이 작은 문인모임에 까지 와서 저녁을 대접하고 안동을 PR하는 모습이 여유롭고 떳떳해 보였다. 식사하고 나오니 휘영청 밝은 달이 기다리고 있었다. 보름이 이틀 지났다고 했지만 둥그렇게 솟구친 달은 월영교 위로 살포시 내려와 함께 거닐자고 손짓했다.
우리의 숙소는 지난 8월10일 개관한 안동 독립기념관이었다. 안동은 갑오의병부터 시작하는 항일독립운동의 출발지로서 독립운동 포상자를 310명이나 배출한 고장이다. 그 중심지가 내앞이고 그래서 독립기념관이 그곳에 섰다. 우리 일행은 다음날 아침 내앞마을을 둘러보았다. 이 마을은 학봉 김성일의 부친 대에 정착한 이래 500년을 이어오면서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고 특히 일제침략기에 만주지역에서 항일운동을 펼친 일송 김동삼 등 독립운동사에 걸출한 인재를 쏟아낸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 기존의 가산서당을 1906년 협동학교로 개편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중등학교를 열었었다. 이 학교는 결국 독립운동의 산실이 되자 일제가 이 학교를 불태우고 탄압함에 따라 1910년 150명이 넘는 마을주민 전체가 만주 망명의 길을 나섰던 것이고 그래서 한마을에서 20명이 넘는 인물이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일송(一松)선생의 생가를 둘러보았다. 그분의 생가는 좁고 초라했지만 그의 마포감옥 옥중 유언은 힘차게 맥박치고 있다.
“나라 없는 몸 무덤은 있어 무엇 하겠느냐/내 죽거든 시신을 불살라 강물에 띄어라/혼이라도 바다를 떠돌면서 왜적이 망하고/조국이 광복되는 날을 지켜보리라.”
안동의 두개의 길지, 하회와 내앞은 여러 가지로 대조적인 것 같다. 하회는 신천지에 새로 마을을 조성하고 꾸민 곳이라면, 내앞은 산 골짜기를 따라 좁따란 평지에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촌락이다. 지세와 그 땅의 정기가 거기서 배출되는 인물의 성향을 규정해주는 것일까. 내앞은 산세가 뻗어내려 가산서당과 독립기념관 자리에 와서 불끈 솟아오른 것 같은 기상이 엿보였다.
끝으로 瑞雲古堂이란 현판이 높다랗게 걸려 있는 솟을 대문 앞에 섰다. 운곡 김 원학형의 종택이다. 운곡은 이제 고향 내앞에 돌아와 그의 종택을 개축하고 그곳에서 노후를 멋지게 보내려 구상하고 있다. 집에 들어서니 넓은 뜨락에서 작은 똥개 두 마리가 꼬리를 흔들고 정겹게 맞는다. 뒤뜰에는 4백 년 전부터 샘솟은 서천(瑞泉)이 겨울에는 따스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질 좋은 우물을 지금도 솟구치고 울타리 밖에는 운곡서당이 예나지금이나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다.
우리 내외는 일행과 함께 독립기념관에서 편히 자기보다 나의 허물없는 친구의 종택에서 자기로 했다. 리모델링한 실내에서 두 내외가 밤늦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일을 위하여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이 되니 오줌이 마려워왔다. ㅁ자 집밖에 있는 길손 화장실에 나가자면 대문을 열어야하고 그러면 문 여는 소리에 모두들 깰 것 같아서 운곡이 넣어준 요강신세를 졌다. 최신형 스테인리스 요강이었다.
이 편한 것, 어떤 현대판 변기보다 편리했다. 좀 있으니 내자도 신세지는 소리가 들렸다. 내앞의 기를 듬뿍받았음인지 조용한 새벽에 크게 울렸다. 아참, 양반 골에 와서 점잖지 못하게 이런 야담을 백일하에 글로서 남겨서야 쓰겠는가. 에라, 모르겠다. 하도(下道) 사람이 어쩌겠나.
“우리는 그렇게 역사적인 요강 합궁을 했다.”
첫댓글 아! 박사님 글, 반갑습니다. 마지막 부분 치고 나간 부분이 아무래도 일품이예요. 속이 다 시원해요.
요강함궁 멋있습니다. 마지막이 일품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요강 합궁은, 주연은 우리 내외이고 총감독은 운곡 김원선생입니다. 감독님에게 공과를 돌려야 할 것 같아요, 두분 작가님.
저도 작년에 안동에 갔었어요. 농암종택에서 하루 묵고 청량사 들러 왔어요. 내앞이란 마을 이름이 참 좋아요. 우리가 묵었던 그곳도 바로 앞에 내가 흐르고 있었는데 그 풍경이 연상되어요. 그런데요... 이런 말씀 드려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맨 마지막 사모님 요강 울리는 소리가 내앞의 기를 듬뿍 받았기 때문인거 같으시다는 부분에서는 왠지 동네 이름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자꾸 웃음이 새어나와요. ㅎㅎㅎㅎㅎㅎ혹시 의도하신 것이었나요?
내앞이 독립지가 많이 배출된, 기가 쎈 곳이라 그렇게 연상을 하였지요, 재미 삼아. 좀 더 웃으시오. ㅎㅎㅎㅎ!
스테인 리스 요강은 소리만 요란할 뿐 ... 깨지지도 뒤 집어지지 않았으니 휴~ 다행입니다.
전해주님. 최신형 스테인 리스 요강은, 옛날 것 보다 가볍고, 깔고 앉게 편하게 디자인도 되어 있고, 뚜껑도 예쁘고...... 혹시 구하시려면? 안동장터로 가야 한답니다.
참 맛갈스런 기행문입니다. 성찬을 포식한 느낌입니다. 근데 선생님께서 복분자술 안 드신게 다행입니다. ㅋㅋ 요강이 깨지걸랑요^^ ㅎㅎ 건안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설마, 깨어지기야 하겠어요? 스테인 리스 요강인데요. 우그러질지는 몰라도.
유익한 문학기행을 다녀 오셨군요. 저도 작은 문학스터디클럽에 속해 있는데 언제 이 코스를 답습해 봐야겠군요.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건필을 기원합니다.
늘 안동을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아직 가 보지 못했습니다. 하회탈도 보고 싶고 몰몰이동도 보고싶고 안동의 헛제사밥도 먹고 싶었는데... 지면으로나마 좋은 구경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언제든 오세요. 환영합니다. 011-233-1144
아쿠아님. 늦게사 생각나네요. 하회가서 탈춤 보시려면 그 공연 시간을 알라보고 맞춰 가야합니다. 우리도 그날 가서 탈춤은 감상 못했으니까요. 아쉬웠어요.
저희 안동 시장님의 함자는 "김휘동" 입니다. 털털하고 좋은 분이지요. 한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도산에 국학진흥원이 있고 올 8월에 개원한 천전의 독립기념관이 한 40명 수용할 수 있는 세미나를 겸할 수 있는 숙소입니다. 많은 분들 안동으로 문학세미나 오시기바랍니다
아, 시장님 이름이 잘못 되었군요. 이거 미안합니다. 이번에는 고택에 한정했습니다. 볼꺼리가 넘쳐요. 우리가 한번 가면 또 스폰서 한번 더 하려나? 운곡 김원과 나, 그리고 안동댁이 나서면 되지 않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