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든 떠날 엄두가 나지 않아 그저 고민 중이라면 잠시 집중하시라. 연로한 부모님, 어린 아이들과 함께라면 안성맞춤! 편안한 가족휴가지로 손색없는 고택체험을 준비했다. 특히 신혼부부이거나 2세를 계획 중인 부부라면 귀가 솔깃해질 고급정보까지 갖췄으니, 이곳에 가면 ‘드림베이비’를 얻을 수도 있을지니! 16세기 초 시작된 거창 신씨들의 집성촌, 황산전통한옥마을을 소개한다.
원학고가 사랑채
한옥마을과 고택체험이라.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이름이다. 영남의 안동하회마을과 호남의 전주한옥마을을 필두로 경주 양동마을, 순천 낙안읍성민속마을, 그리고 서울의 북촌과 서촌, 남산한옥마을까지. 이들 중에는 아예 관광지로 박제되어 구경만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그 공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이들을 만날 수 있는 ‘살아있는 공간’도 있다.
전라북도와 경상남도 경계 육십령 넘어 가는 길
황산전통한옥마을 돌담길. 담의 위아래 돌의 크기를 달리한 선조들의 지혜가 묻어난다
이런 살아있는 공간의 가장 큰 장점은 직접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 고택체험, 즉 하룻밤 묵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그 옛날 ‘이리 오너라’를 외치며 대갓집 객식구로 입성해 넉넉한 주인이 베푸는 음식과 잠자리에 쉬어가는 길손이 되어볼 수 있는 셈. 물론 그 시절의 인정까지 모두 화폐로 환산 가능한 21세기에 공짜는 없다.
앞서 소개한 한옥마을들은 모두 한번쯤 들어본 적 있는 유명한 공간이다. 하지만 오늘 살펴볼 경남 거창의 황산전통한옥마을은 익숙하지 않을 터. 그만큼 덜 알려진 공간이다. 오히려 황산전통한옥마을 초입 건너편에 자리한 ‘수승대’를 아는 이들이 더 많으리라. 고즈넉한 황산전통한옥마을에 시끌벅적한 수승대를 더하면 자칫 심심해질 수 있는 여행에 생기를 보탤 수 있다.
수승대 거북바위. 퇴계 선생을 비롯해 여러 문장가들이 바위에 글을 남겼다 [왼쪽/오른쪽] 백제와 신라의 경계에 자리한 수승대. 당시에는 백제 사신이 신라로 넘어갈 때, 기약없는 송별회를 하던 곳이었다. 원래 이름은 보내는 곳이란 뜻의 ‘수송대’였다 [왼쪽/오른쪽]수승대의 문루, 관수루. 1740년 건립했다. 서원의 학생들이 시름을 달래던 공간이지 않았을까 / 건축가의 뚝심이 전해지는 관수루 기둥. 나무 그대로의 개성을 살렸다.
황산전통한옥마을이 자리한 경남 거창으로 향하는 길, 거창보다 동쪽에 자리한 영남지방에서 출발하는 게 아니라면 백두대간 위에 자리한 육십령을 지나게 된다. 위로는 덕유산(1614m), 아래로는 백운산(1279m)과 닿는 육십령은 좌우로는 전북 장수와 경남 함양 경계에 자리한다. 즉, 육십령은 전라북도와 경상남도를 자연스레 나누는 백두대간에서 영남과 호남을 잇는 고개였던 것. 응당 교통의 요지였을 것이며 또한 삼국시대부터 신라와 백제 사이의 요충지인 동시에 격전지였으리라. 전쟁을 치를 때마다 속한 나라가 바뀌던 육십령 주변 백성들은 얼마나 모진 고통을 겪었을까.
행정구역상 경계를 넘나들며 이어지던 생각은 구불거리는 길 위에서 곧 사라진다. 26번 국도에 올라 함양땅에 들어선 뒤 37번 지방도로 갈아타며 곧 거창에 들어선다. 드디어 황산전통한옥마을에 도착, 길 건너에는 사철 관광지로 사랑받는 수승대가 자리한다. 이 땅이 백제에 속했을 때, 백제의 사신을 신라로 보낼 때 헤어지던 곳이다. 신라땅으로 들어서는 사신의 생사를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을 터. 그 모두를 지켜봤을 거북바위가 오늘도 말없이 자리를 지킨다.
500여년 이어져 온 거창 신씨 집성촌
[왼쪽/오른쪽]황산마을 취재에 동행한 거창군 표선자 문화해설사님. 마을 어귀를 지키는 600년 된 보호수 / 마을에서 키우는 소. 거창은 한우로도 유명하다
황산전통한옥마을로 들어서면 큰 정자 앞에 주차공간이 있다. 부족한 경우에는 고택체험을 하는 주인장에게 양해를 구해 집 앞에 주차하면 된다. 황산전통한옥마을의 또 다른 이름은 거창 신씨 집성촌, 고택이 즐비해 ‘황산고가마을’로도 불린다. 16세기 초, 요수 신권이 정착하면서 거창 신씨 집성촌으로 자리 잡았다. 이 마을의 나이는 500년 정도 된 셈이다. 영조 이후 이곳 출신 급제자들이 많아지면서 더욱 번영했단다.
황산전통한옥마을 전경 황산전통한옥마을 [왼쪽/오른쪽]마을 어귀를 지키는 600년 수령의 보호수 / 왕의 사랑을 기다리다 스러져간 여인의 슬픈 사랑을 품은 능소화
“이 마을을 보면 부드러운 산줄기에 안겨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또 마을 가운데 물줄기가 있지요? 땅의 기운이 아주 평안해요. 명당이라고 불릴 만하죠. 마을 뒤의 산줄기는 호음산, 물줄기는 호음천이에요. 호음천을 중심으로 마을이 양쪽으로 나뉘어요. 모두 황산전통한옥마을에 속하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고택체험은 마을 어귀에서 봤을 때 호음천 왼편의 고택에서 이루어지지요. 이 마을은 500여년 되었지만 지금 남아있는 고택들은 대부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지어졌어요. 건축물만 보더라도 구한말과 일제강점기가 뒤섞여 있죠. 완전히 전통적이지 않지만 이게 바로 당시 상황을 더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
거창군 표선자 문화해설사의 설명이다. 황토 돌담길을 따라 마을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꼽히는 거창 황산리 신씨고가 (경상남도 민속문화재 제 17호)로 들어섰다. 솟을대문을 지나 사랑채·중문채·안채·곳간채가 이어진다. 제일 먼저 닿는 사랑채를 지탱하는 기둥의 나무, 자체에 문양이 들어갔다. 이북에서도 추운 지방에서나 자라는 나무란다. 그 먼 곳의 나무를 어찌 여기까지 옮겨왔을까. 기둥부터 심상치가 않다. 또 일반적인 영남지방의 양반가옥과 달리 겹집에 팔작지붕이다. 또 궁궐에서나 쓸 수 있던 돌받침과 기둥 장식도 눈에 들어온다. 창살도 한땀한땀 화려하게 꾸며졌다. 이 집을 지은 이의 재력과 권력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화려한 집이다.
[왼쪽/오른쪽]원학고가의 모습과 원학고가 안채 / 1927년 다시 지어진 원학고가 안채. 드림 베이비가 탄생한 공간 [왼쪽/오른쪽]원학고가를 지키는 박정자 종부 / 화려한 창살만으로도 집주인의 권세와 재력을 엿볼 수 있다.
“시할머님께서 여기 안채에 머물며 학이 세 마리 달려드는 태몽을 꾸고 시아버님을 낳으셨다고 해요. 이 고택이 ‘원학고가’가 된 이유이기도 하죠. 시아버지께서 장관, 교수 등을 지내셨고 후손들도 잘 풀리는 건 다 이 집의 기운 덕분이 아닐까 싶어요. 요즘 젊은 부부들이 그 얘기를 듣고 ‘드림 베이비’를 꿈꾸며 찾아오더라고요.” 종부 박정자씨의 설명이다. 지난 2012년 한국 명품고가로 선정된 원학고가는 미리 예약하면 묵어갈 수 있다. 가격은 만만치 않다. 그래도 ‘드림 베이비’를 꿈꾼다면 한번쯤 도전해 볼 수도 있겠다. 원학고가 외에도 주변에 ‘신종법·신진법·신인범 고택’ 등에서 고택 체험을 할 수 있다. 20여 채의 고택 중 마음에 드는 곳을 선택하면 된다. 집성촌인 덕분에 모두 가족인지라 담장이 낮다. 세월의 흔적만큼 이끼를 잔뜩 품은 돌담길을 따라 걸으며 명당의 기운을 흡수해 보는 건 어떨까.
여행정보
- 주소 : 경상북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 문의 : 055-940-3114 (거창군청)
- 주소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송계로 433
- 문의 : 055-940-8530 (수승대관리사무소)
주변 음식점
숙소
- 원학고가(신위범 고가)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1길 / 055-943-3104
- 신창범고가(한솔댁)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1길 / 055-943-0051
- 신종범고가(석송댁)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1길 / 055-943-0160
- 신순범고가(정안당)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1길 / 055-943-0648
글, 사진 : 한국관광공사 국내관광진흥팀 이소원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