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종이 되십시오
마가복음10:35-45 2024/4/28 부활절 제5주
10: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10: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10:37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10: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10:39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10: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10:41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10: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10: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10: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평안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우리 자녀와 이웃들에게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930년에 나온 감리교회 교리적 선언은 예수님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나사 우리의 스승이 되시고 모범이 되시며 대속자가 되시고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여기에서 도드라지는 것은 ‘스승’과 ‘모범’이라는 단어입니다.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 곧 예수님이 우리의 ‘참된 스승’이자 ‘참된 모범’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그리고 우리 교회의 ‘참된 스승’이자 ‘참된 모범’이라면, 무엇을 배우고, 어떤 일을 따라 해야 할까요?
최초의 복음서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의 결론은 ‘섬기는 일(디아코네오)’이었습니다.
막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인자’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소개할 때 주로 사용했던 예언자적 언어로 다니엘서 7장 13절에 나오는 단어입니다.
그 뜻은 ‘사람의 아들’로 하늘로부터 내려와 영원히 통치하시는 ‘영원한 왕’을 의미합니다.
단7:13 내가 밤에 이러한 환상을 보고 있을 때에 인자 같은 이가 오는데,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계신 분에게로 나아가, 그 앞에 섰다.
그런데 영원한 통치자로 오신 영원한 왕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무엇을 하시는가 하면, 이런 일들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①(새)막10:45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디아코네오) 왔으며,
②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대속)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
그래서 예수님을 배우고 따르는 제자의 조건이 이렇게 된 것입니다.
막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①자기를 부인하고 ②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①‘자기를 부인하고’ 무슨 말일까요?
사람을 섬기기 위해, 자기의 모든 것(존재와 가치)을 부인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의 설명입니다.
빌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내려놓고)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②‘자기 십자가를 지고’ 이것은 또 무슨 뜻일까요?
사람을 섬기기 위해 지어야만 하는 대속의 십자가, 용서의 십자가를 말합니다.
빌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처럼 우리 주님이 내건 제자의 조건은 아주 명확했습니다.
첫째 사람(이웃, 남)을 섬기기(디아코네오) 위해 자기 존재와 자기 가치의 모든 것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둘째 사람을 섬기기 위해 대속의 십자가, 용서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자기를 배우고 따르고자 하는 제자들에게 주신 새 계명이 이것이었습니다.
요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하지만 여러분들이 꼭 주의해야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누구나’ 섬겨야 한다고 해서 ‘아무나’ 섬겨서는 안 됩니다.
사탄을 섬길 수 없듯이 섬김에 있어 주의해야 할 대상이 있다는 말입니다. 세 부류인데, 시편 1편 1절에 섬겨서는 안 된 대상들이 나옵니다.
시1:1 복 있는 사람은 ①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②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③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악인들, 죄인들, 오만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섬김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①악인들
그릇된 사람들 사악한 사람들로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는 불경건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는 불경건한 사람들을 찾아가 의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②죄인들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 하면서까지 죄 짓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독일어 성경 해석에 따르면, ‘하나님에게 등을 돌리고 떨어져 나와서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러니 죄 짓는 사람 곁에 서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③오만한 자들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을 낮잡아 보면서 비웃는 뻔뻔하고 양심 없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형상을 낮잡아보고 비웃은 교만한 사람들의 자리에 앉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빌립보서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것을 이루기 위해 우리 주님은 제자들에게 세 번에 걸쳐 십자가의 죽으심을 예고해 주십니다.
①막8: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②막9:30 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9:31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③막10:32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10:33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10:34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이렇게까지 예수님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마가복음 10장 45절입니다.
①(새)막10:45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디아코네오) 왔으며, ②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대속)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따름에 대한 어떤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가장 먼저 자신의 욕망을 드러낸 것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었습니다.
막10: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10: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10:37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요즈음으로 말하면 ‘인사 청탁’을 합니다.
사람들로부터 섬김을 받을 수 있는 높은 자리, 주님의 오른쪽과 왼쪽에 앉게 하여 달라는 인사 청탁을 드립니다.
그러자 우리 주님이 이렇게 답하십니다.
막10: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왜요?
주의 우편과 주의 좌편은 섬김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섬기는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또 그 자리는 용서의 십자가를 지어야 하는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확인 차, 야고보와 요한 두 형제에게 두 가지를 되묻습니다.
①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②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예수님의 첫 번째 질문부터 보겠습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는가?’
‘내가 마시는 잔’ 그 잔은 어떤 잔일까요?
우리 주님이 사람을 섬기실 때 당하셨던 수치의 잔, 멸시의 잔, 고난의 잔, 죽음의 잔을 말합니다.
‘그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는가?’라고 우리 주님은 되묻습니다.
두 번째 질문입니다.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는가?’
이 역시 우리 주님이 사람을 섬길 때 당하셨던 죽음의 세례를 뜻합니다.
‘그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눈가?’라는 되물음이었습니다.
사실 답변하기 쉽지 않는 아주 무거운 질문들이지요.
하지만 자리와 성공에 눈먼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대답합니다.
막10:39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야고보와 요한의 확신, 그 확신은 결국 그릇된 확신이 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예수님이 수난을 당하실 때 우리 주님이 마시는 잔을 외면했고, 우리 주님이 받는 세례를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에게 그들이 부활을 경험한 이후 그리고 성령으로 거듭난 이후, 그렇게 참된 제자가 된 이후에 있을 일들에 대하여 두 가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첫 번째 말씀입니다.
막10:39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실제로 야고보는 예수님 제자 중 첫 번째 순교자가 됩니다.
행2: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12: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반면 요한은 도미니티아우스 황제 때 박해로 끊는 가마솥에 던져졌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남지요. 그 후 유배지 밧모 섬으로 가서 광산 노동자로 일하면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합니다. 도미니티아우스 황제가 죽자 유배에서 풀러난 요한은 에베소에 머물다가 94세에 죽습니다. 그렇게 두 형제는 주님이 마시는 잔과 주님이 받는 세례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두 형제가 요청했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라는 인사 청탁에 대해서는 우리 주님이 분명하게 거절하십니다.
왜냐?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권한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막10: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이렇게 해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요청한 따름에 대한 보상의 문제가 일단락됩니다. 그런데 41절에서 새로운 문제가 터집니다. 인사 청탁을 알아챈 다른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듣고 분노했다는 것입니다.
막10:41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왜 화를 냈을까요?
야고보형제에게 선수先手를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우리 주님이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따름에 대한 보상과 관련해서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막10: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10: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정말 이 세상에서 큰 자가 되고 싶은가? 대접 받는 자가 되고 싶은가?
그러면 먼저 섬기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정말 이 세상에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가? 그러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의 종이 되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따름이 무엇인지, 자기 부인이 무엇인지,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시가 있어 소개하겠습니다. 안도현의 시 ‘연탄 한 장’인데 안치환 노래 가사 버전으로 읽어보겠습니다.
삶이란 나 아닌 다른 이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싸늘해지는 가을 녘에서 이듬해 봄 눈 녹을 때까지
해야 할 일이 그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고 있다는 듯이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히 남는 게 두려워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려하지 못했나보다
하지만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아침에
나 아닌 다른 이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나는 만들고 싶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