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13:15, 개정) “너는 마땅히 그 성읍 주민을 칼날로 죽이고 그 성읍과 그 가운데에 거주하는 모든 것과 그 가축을 칼날로 진멸하고”
우리는 종종 구약성경을 읽을 때 섬뜩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거 뭐지? 사랑의 하나님 말씀이 맞는가? 이런 의문들이 일어난다. 심지어 어떤 곳에서는 어린아이까지 죽이도록 내려진 명령 앞에서 혹자들은 구약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이고 신약의 하나님은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고 다른 분으로 결론 짓곤 한다. 하지만 그런 결론은 섣부른 판단이요 잘못된 선택이다. 하나님의 이런 명령은 우상숭배라는 엄청난 배도의 길을 막기 위한 하나님의 결단에서 내려진 명령이다.
(신 13:6) 네 어머니의 아들 곧 네 형제나 네 자녀나 네 품의 아내나 너와 생명을 함께 하는 친구가 가만히 너를 꾀어 이르기를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 (신 13:7) 곧 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민족 혹 네게서 가깝든지 네게서 멀든지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에 있는 민족의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할지라도 (신 13:8) 너는 그를 따르지 말며 듣지 말며 긍휼히 여기지 말며 애석히 여기지 말며 덮어 숨기지 말고 (신 13:9) 너는 용서 없이 그를 죽이되 죽일 때에 네가 먼저 그에게 손을 대고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대라
때론 온몸을 썩게 만드는 질병을 다룸에 있어서는 단호함이 필요하다. 방치하면 결국 모두가 죽을 수 있는 그런 영적 반역은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을 거역하게 하는 그런 무리는 반드시 진멸하도록 명해졌다.
신속하고 단호함이 요구되었다. 죄 앞에서 머뭇거리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다. 영적으로 우리 시대에도 마찬가지이다. 교회 공동체 전체를 위협하는 그런 종류의 위험이 도사리고 하나님께 반역하도록 만드는 공공연한 도전은 신속하게 처리하여 공동체를 보호하고 지켜내야 한다. 인정에 이끌리고 사랑을 운운한 나머지 공동체 전체를 위험에 처하게 해서는 안 된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원칙이다. 불법을 눈감아 주는 것을 사랑이라고 한다면 결국 공동체 전체를 궤멸시킬 것이다.
주님을 섬김에 있어서는 나누어지지 않은 충성이 요구된다. 우리 각자의 심령에 주님으로부터 떠나게 하는 모든 요인을 진멸하고 전적으로 주님만을 섬기는 새로운 다짐이 필요하지 않은가?
오늘날의 문제는 불법이 용인되고 교회 안에까지 버젓이 우상숭배가 들어와서 개판을 쳐도 그것이 사랑이라는 거짓 이름으로 덮어진다는 것이다. 우리 공동체는 그렇지 않은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내 안에, 우리 안에 있는 진멸 되어야 할 죄는 무엇일까? 오늘은 이 고민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신다. 그러나 죄는 미워하신다. 죄인이 끝내 스스로 죄가 되기를 고집한다면 죄와 하나가 된 죄인을 심판하시고 멸하시는 것은, 그분의 사랑의 원칙과 일치한다. 사랑은 하나님의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죽게 했다. 그런데도 그분의 사랑을 의심할 수 있는가? 죄를 고집할 수 있는가?
하나님 아버지! 죄 앞에서 망설이지 않게 하소서. 오늘 우리의 삶에 끊어 내야 할 불의하고 더러운 습관과 죄들을 당장 진멸하여 처리하고 온전히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게 하소서.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몰라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죄에 파묻혀서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생명수 한 모금 전하는 하루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