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윤의 미술치유]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와 스마트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 그리운 이유
소원은 이루어졌다.
80년대 학창시절의 소원은 희귀 레코드판으로 가득한 나만의 음악 감상실을 갖는 것이였다. 재즈 바를 운영했던 무라카미 하루키(1949-) 처럼, 나만의 락(rock) 콜렉션들 속에 파묻히고 싶었다.
당시 락 레코드의 커버 또한 하나의 예술 장르처럼 창의적이고, 파격적으로 아름다웠다. 영국의 디자인 그룹 힙노시스(Hipgnosis)가 디자인한 락 밴드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앨범 커버들은 말 그대로 근사한 현대미술작품이였다.
앤디 워홀의 "소 " 작품에 영감을 받아 제작된 커버. 작가 스톰 토르거슨(Storgerson)은 무작정 시골로 차를 몰고 가 처음 본 소의 사진을 찍었다. 핑크 플로이드, Atom Heart Mother (1970) 앨범 커버
어느날 갑자기, 라디오 음악 신청 엽서와 세운 상가의 발품으로 찾아 헤맨 모든 음악을 한 손아귀에 넣게 되었다. 소원이 일상이 되자 음악에 전율하던 감수성, 함께 듣던 친구들, 미팅 장소의 문을 열듯 비닐을 뜯던 두근거림은 풍화한 이미지 파일처럼 희미해졌다.
본래 예술은 감상의 대상보단 생활 속 마음의 위안이였다. 가장 오래된 미술품 중 하나인 ‘빌렌도르프의 비너스(Venus of Willendorf)’는 오스트리아 지역에서 발견된 조각품으로, 2만 2000년- 4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강릉의 한 조각 공원에서도 동해안을 배경으로 이 풍만한 비너스의 다양한 모작들을 감상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 이 비너스는 스마트폰과 흡사한 작은 크기(11cm)로 무엇보다 이 둘 사이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세울 수 없다’라는 것. 이 특징은 둘 모두 거리를 두고 관조하는 대상이 아닌, 몸에 지니고 다니는 휴대용이라는 것을 추측케 한다. 고대인들은 왜 이 비너스를 만들었을까.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빈 자연사 박물관
당시 풍만한 지방질의 여체는 천상의 여신과 같았을 것이다. 궁핍한 식량과 추위에 노출된 환경에서 이 비너스의 체형은 현재 아이돌들이 뼈를 깎는 노력으로 얻은 외모와 동일하지 않았을까.
적도에서 멀어질수록 세계 각지에서 발견되는 고대 여체상들의 허리둘레는 늘어난다. 또한 다산의 능력은 강력한 권력이기도 했으니, 당시 사람 머릿 수 하나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강한 군사력이자 경제력이였기 때문이다.
이 비너스를 갖고 다닌 사람의 마음은 무엇을 구하려 했을까? 포유류의 감정 중 가장 강력한 모성애, 혹은 이성애였을까?
그것이 무엇이든, 이 석상을 지닌 그는 마음의 평안과 안식을 얻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없을 때, 불안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는 이 감정을 ‘애착(attachment)’이라 한다.
감정이 채 발달되지 않은 영유아에게 최초로 양육자와의 애착이라는 감정이 생겨난다. 애착의 대상이 사라질때, 아이는 불안과 슬픔을 느끼고 울음이나 칭얼거림 등의 신호를 보낸다.
이때 애착관계 형성을 위한 양육자의 일관된 상호작용 반응은 필수적이다. 아이는 양육자로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욕망도 갖게 되는데 그 사이 특정 물건에 애착을 갖는다.
이 물건을 영국의 아동심리학자 도널드 위니콧(Donald Winnicott,1896–1971)은 ‘‘이행대상 (transitional object)” 이라 일컫는다. 우리가 언젠가 이삿짐에서 슬쩍 빼놓은 애지중지하던 인형과 장난감, 이불등이 그것이다. 이행대상과의 애착과 이별을 연습한 아이는 양육자와도 건강한 이별과 독립의 경험을 잘 수행하게 된다.
“아기 때는 젖 주면 좋아하고 아이 때는 노는 걸 좋아하고 … 어릴 때는 엄마가 필요하고, 커 가면서 애인도 필요하고 아하. 저 가는 세월 속에 모두 변해가는 건, 그것은 인생”
발달심리학의 정수를 담고있는 가수 최혜영의 1983년 히트곡, ‘그것은 인생(박건호 작사)’ 가사처럼 인간은 양육자로부터 점차 이성관계에서 애착을 찾게 된다. 연인간에는 ‘롱디’ (long distance relationship), 장거리 연애 라는 유형의 관계가 있다.
‘안 보면 멀어진다’, ‘out of sight, out of mind’ 라는 동서양 공통의 격언을 증명해온 이 관계에서 스마트폰은 수시로 연인의 얼굴과 일상을 보고 듣는 것을 가능케 했다. 롱디 연인들의 소원도 이루어졌다.
하지만 최근 퍼빙(Pphubbing : phone + snubbing) , ‘전화로 무시하기’ 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카페에서나 식당에서 말없이 서로 스마트폰에만 집중하는 이들의 모습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상대방을 은근히 차단하는 행위를 ‘퍼빙’이라 한다.
롱디 연인들의 소원을 이루어준 스마트폰은 이제 눈 앞의 연인을 쉬이 차단하는 훌륭한 도구가 되었다. 2016년 이루어진 설문에 따르면 미국 시민의 29%는 일주일 동안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것과 3개월 동안 성관계를 하지 않는 것 중 후자를 선택했다. 이 비율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스마트폰은 우리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친밀함(Intimacy)/케빈 글라스(Kevin Grass), 아크릴, 2015
요즘 현대인의 애착은 무엇보다 스마트폰에 있는 것 같다. 가족과 친구의 부재보다 스마트폰의 부재가 더욱 불안하다. 내 손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축복만이 아니라는 건, 인간의 행복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이 아닐까.
어쩌면 미래의 아이들에게 겪는 최초 애착의 대상은 양육자보다 스마트폰, 혹은 보이지 않는 가상의 인공지능이 될 수도 있겠다. 우리는 이 미래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이의 발달과정 중 ‘이행대상’의 존재와 이별이 필수적인 것처럼, 스마트폰도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더 나은 행복을 찾는 여정 가운데 지나치는 하나의 ‘이행대상’ 에 불과했으면 좋겠다.
오랜 역사를 보면, 문화 예술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을 위한 것이였다. 서로의 마음을 잇는 춤과 음악을 즐기며, 이미지를 만들고 이야기를 하며, 축제와 가족 간 의식을 함께 하는 것. 이것은 우리의 마음 건강에 필수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톨스토이(Tolstoy, 1828-1910) 는 예술의 본질은 선한 감정을 전염시키고 인간을 결합시키는 것이라 했다. 예술 치료(arts therapy)도 다양한 예술 경험을 통해 인간 성장과 발달에 필수적 체험을 다시금 하는, 마음이 떠나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이라 할 수 있다.
무한한 음악이 담긴 스마트폰 보다 음반 하나 하나에 가졌던 애착이 그립고, 터치 하나로 순식간에 사라지고 찾아지는 음악보다 정성스레 바늘을 올리며 잡음 소리에 숨 죽이던 순간이 고프다.
훗날, 나의 묘 어딘가 퀸(Queen) 의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 QR 코드를 새겨 놓고 싶다. ‘엄근진’한 얼굴은 망자들의 몫이니, 내 비석 앞에서 서로 ‘퍼빙’ 대신 ‘헤드벵잉’을 하며 즐거워하는 이들이 있다면 나는 그 어딘가에서 참 행복할 것 같다.
글 | 임성윤 교수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