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빙수의 사촌들' 우후죽순
애플망고·치즈케이크 등 '고명' 따라 신종 빙수 탄생 정통 팥빙수에 도전장
매출 올리는 일등공신
카페베네, 지난달 첫주에 아이스커피 매출 뛰어넘어 단팥빵 전문점서도 큰 인기
달콤 디저트, 다이어트엔 敵
이것저것 얹으니 열량 높아 카라멜팝빙수 1017㎉ 달해 무려 라면 2개를 먹는 셈
'빙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5월부터 시작된 이른 더위가 디저트 열풍에 불을 붙이면서 전쟁은 일찌감치 시작됐다. 치즈 케이크부터 와인 스틱까지 빙수 고명은 천차만별, 가격은 천양지차다. 팥빙수 전문점은 물론이고, 커피 전문점, 아이스크림 가게, 카페, 제과점, 단팥빵집에서 빙수를 내놓는다. 떡볶이집에서도 판다.
가게 입장에서 보면 빙수는 매출을 올리는 일등 공신이다.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은 비싸야 5000원 안팎이다. 하지만 빙수는 고명만 잘(?) 얹으면 1만원 넘는 가격을 쉽게 붙일 수 있는 효자 메뉴다. 커피 전문점 카페베네는 지난 5월 첫 주에 이미 빙수 매출이 아이스 커피 매출을 뛰어넘었다. 5월 마지막 주에는 전체 매출의 40%를 빙수가 차지했다. 뒤질세라 이디야커피는 지난해 2종류였던 빙수 품목을 올해는 5종류로 대폭 늘렸다.
◇정통 팥빙수에서 치즈빙수까지
금요일인 지난달 30일 점심시간,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에선 500명이 대기표를 뽑고 '그곳'에 자리가 나길 기다렸다. 팥맛으로 승부하는 '정통 팥빙수'의 원조 밀탑 빙수다. 7~8월 극성수기에는 대기 번호표가 999번까지 이르는 인기를 누린다. 지난 4~5월 누계 매출이 벌써 23.1% 늘었다.
밀탑은 터질 듯 통통하게 삶은 팥으로 빙수계를 평정했다. 1985년 밀탑 빙수가 생기기 전까지는 팥, 젤리, 콩가루 등 다양하게 섞어 먹는 빙수가 대세였다. 밀탑 이후 옥루몽, 동빙고가 정통 팥빙수에 가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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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여름 빙수 전쟁에 뛰어든 빙수들. 왼쪽부터 서울 흑석동 달그릇의 팥빙수, 파리바게뜨의 눈송이 우유빙수, 카페베네의 뉴욕치즈케익빙수, 서울연인의 팥빙수, 배스킨라빈스의 엄마는 외계인 빙수, 서울 신라호텔의 애플망고 빙수. /이명원·이태경 기자, 각사 제공
팥을 다루는 데 전문성이 있는 단팥빵 전문점도 빙수 전쟁에 뛰어들었다. '서울연인'은 유기농 원유와 1등급 팥을 넣은 빙수(7000원)를 내놓았는데, 시판 일주일이 안 돼 명일동 한 지점에서 하루 100그릇이 넘게 팔린다.이 같은 정통 팥빙수의 인기에 갖가지 고명을 올린 변칙 빙수가 도전장을 던졌다. 올릴 수 있는 건 뭐든지 올리는 분위기다. 일단 과일이면 다 올라간다. 딸기나 수박은 식상하고 고가의 애플망고도 흔해졌다. 제주 한라봉, 홍시를 얹은 빙수도 나왔다.빙수라기보다 디저트에 가깝게 치즈를 얹은 제품도 인기다. 디저트 카페 '설빙'의 치즈빙수(9000원)는 치즈 케이크를 잘라 얹고 치즈 가루를 뿌렸다. 치즈 케이크 한 조각을 그대로 얹은 '뉴욕치즈케익빙수'(카페베네·1만3500원)는 전국 900개 매장에서 하루 4500개가 팔린다. 영화관에서 먹는 캐러멜 팝콘을 넣은 '카라멜팝빙수'(9800원)도 있다.기존 제품을 팥빙수로 변신시키기도 한다.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는 얼음을 갈아 넣은 프라푸치노에 팥을 얹은 레드빈 프라푸치노 3종(6800원·355㎖ 기준)을 사실상 빙수로 선보인다. 지난해까지는 팥만 올렸지만, 올해는 밤, 곡물, 견과류 등 고명을 추가해 팥빙수에 가까워졌다. '레드빈 크림 프라푸치노'는 밀크 빙수요, '크림' 대신 '커피'를 이름에 넣으면 커피 빙수, '그린티 크림'이라 부르면 녹차 빙수가 된다. 머핀 가게인 '마노핀'은 '마시는 빙수'라는 뜻의 '마빙'을 내놓았다. 기존 프라푸치노에 빨대를 꽂아 마시기 쉽게 변형시켰다. 아이스크림 전문점 배스킨라빈스의 인기 메뉴인 '엄마는 외계인'은 살짝 얼음 위에 앉아 '엄마는 외계인 빙수'가 됐다.분식 전문점 국대떡볶이는 빙수(4000원)를 두 종류나 판다. 맵고 뜨거운 떡볶이를 먹고 입가심으로 찬 빙수를 찾는 손님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8만2566 그릇이나 나갔다.이것저것 얹고 더하다 보니 일부 빙수는 칼로리가 만만치 않다. 뉴욕치즈케익빙수는 678㎉, 카라멜팝빙수는 1017㎉나 된다. 디저트로 먹으려다, 라면 2개 열량을 섭취할 수도 있다.◇4만2000원 대(對) 3000원, 극과 극 빙수 뭐가 다르기에 호텔 쪽에서는 애플망고가 대세다. 주도한 것은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이다. 1층 카페 '더 라이브러리'에서 파는 애플망고 빙수가 4만2000원(부가세 포함)이다. 팥빙수로는 최고가(最高價)인데도 주말에는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다. 신라호텔 빙수가 '럭셔리' 최강자라면, 값은 소박하나 만족도는 뒤지지 않는 동작구 흑석동 '달그릇' 빙수가 있다. 국내산 팥을 쓰면서도 3000원이다. 4만원 빙수를 먹으려고 줄을 서는 고객도 있고, 3000원 빙수에 반해 몰려드는 손님도 있는 곳이 맛 동네다. 값은 극과 극이지만, 만족도는 용호상박이다.토요일인 지난달 31일 오후 6시, 신라호텔 '더 라이브러리'의 입장 대기자 명단에는 7명이 있었다. 약속이나 한 듯 카페 손님들의 탁자 위에 놓인 것은 애플망고 빙수였다. 한 그릇이면 성인 두 명이 넉넉하게 먹는다. 애플망고 빙수는 2012년 처음 나왔다. 당시 메뉴판 가격은 3만2000원(부가세 포함 3만8720원). '3만원 빙수'라는 화제성에, 적당히 달면서 부드러운 망고 맛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빙수 매출을 전년 대비 5배나 끌어올렸다.'4만2000원' 빙수의 구성은 단순하다. 얼음과 애플망고뿐이다. 팥은 원하면 얹어 먹으라고 따로 나오고, 더 단맛을 원하면 섞어 먹으라고 망고 셔벗도 같이 나온다. 빙수가 4만원이 넘으면 너무 비싼 거 아닌가 싶다. 따져봤다. 한 그릇에 들어가는 망고는 1개 반 정도다. 무게는 씨를 포함할 때 450g. 신라호텔 측에 따르면 시중가 3㎏에 27만원인 제주산 애플망고를 19만5000원에 들여온다고 한다. 신라호텔 측은 "빙수 한 그릇에 망고 값이 3만원으로, 재료비가 80%를 차지한다"며 "수익용 메뉴라기보다는 여름 시즌 고객 유치용"이라고 했다. 일반 음식점의 식재료비 상한율이 35% 정도임을 감안하면 재료비 비중이 꽤 높은 편이다.흑석동의 '달그릇'은 지난 3월 문을 열었다. 20㎡(6평) 작은 가게로, 손님 10명이 앉으면 꽉 찬다. 팥빙수와 팥죽(각 3000원)만 판다. 팥빙수 재료는 얼음, 삶은 팥, 손가락 한 마디 길이 찹쌀떡 2개다. 팥은 매일 집에서 삶고 찹쌀떡도 직접 만든다고 한다. 3000원대 팥빙수는 많지만 '달그릇'은 국내산 팥을 쓴다는 점이 다르다. 국내산 팥은 중국산에 비해 단가가 30% 이상 비싸다. 1㎏당 시세가 국산은 1만2000원, 중국산은 8000원 정도다. 그래서 시중의 1만원대 빙수라도 중국산을 쓰는 곳이 대부분이다.3000원 빙수가 국내산 팥을 쓴다 하면 진짜인가 의구심이 들 법하다. 여기도 따져봤다. 최병로(67) 사장은 "팥이 비교적 저렴하던 지난해 12월 즈음에 1㎏당 7000원~1만원으로 3t 분량을 미리 사뒀다"고 밝혔다. '달그릇' 빙수의 전체 중량은 310g, 팥이 40%로 125g가량이다. 값으로 따지면 약 1000원. 연유, 설탕, 소금을 약간 넣는다. 3000원이 가능한 것은 주재료인 팥 값을 낮춘 데다, 인건비가 따로 들어가지 않은 덕분이다. 최 사장과 부인이 직접 만들고 서빙하며, 손이 달리면 최 사장의 처제가 돕는다.극과 극 빙수 비교에는 서비스와 분위기도 고려해야 한다. 넓은 호텔에서 피아노 연주를 감상하며 즐길 것인가, 작은 가게에서 동행과 어깨를 붙이고 앉아 소곤거리며 먹을 것인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값'도 계산서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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