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막장 삼류 건달의 삶 <파이란>은 깡패영화나 깡패영화의 관습을 빌린 영화가 아니라, 인간 이강재에 관한 영화였다. 일본 열도를 뒤흔든 프로레슬러의 일대기 <역도산>도 영웅이 아닌 고독하고 외로웠던 인간 '역도산'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 영화 속 인물들은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여 늘 고독하고 외로웠다. 뒷골목 밑바닥 인생을 향한 파이란의 진심과 애모는 죽음 이후에야 강재의 가슴을 울렸고, 그래서 한 남자의 인생을 위로하고자 했던 한 여자의 사랑은 미완의 구원에 머무른다. 치열한 삶을 살았던 역도산 또한 링 위에 섰을 때 열렬한 환홀르 온 몸으로 받았지만, 링 밖의 세상은 그를 위로하거나 구원하지 않았다.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도 결국, 인간의 소통에 관한 이야기다. 그들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싶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두 남녀도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이후 삶에 대한 어떠한 희망도 포기한, 더 이상 밑을 볼 수 없는 바닥까지 내려와 있는 지독히 외로운 사람들이다. 세상은 그런 그들을 쉽게 '나쁜 사람'들로 치부해버린다. 나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통해 그런 두 남녀가 소통하고, 그 소통으로 서로를 구원해내는 아름다운 과정을 목격하고 싶었다. 살고 싶은 의지도 희망도 없었던 두 사람의 만남과 변화를 통해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고 이해하며, 사랑과 삶의 가능성을 깨닫게 되는 여정'을 따라가 보고 싶었다. 그런 내 진심을 담은 이 영화가 고통과 상처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란다.
▣ VIEW POINT
[소설 VS 영화]
◎ 고유한 향기로 다시 태어난 영화
인간과 인생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휴머니티를 전해온 송해성 감독. 그는 "상처를 지닌 두 남녀가 서로를 구원하는 이야기."라는 컨셉의 새 영화를 구상하고 있던 차에 우연히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접하고 차기작으로 선택했다. 그려보고자 했던 것과 같은 메시지의 소설이었기 때문. 공지영 작가 또한 '송해성 감독'을 통해 영화로 만들어지길 원했던 터라 흔쾌히 동의했다.
대게, 소설 원작의 영화는 이야기와 캐릭터를 가져오면서 독자들의 선입견도 덤처럼 얻곤 한다. 책을 먼저 접한 관객들은 특정배우가 대신한 나의 주인공을 바라보며 가슴 설레면서도 낯설어 하고, 상상과 다른 장면들이나 없어진 설정들을 아쉬워하는 것.
<파이란>에서 소설 원작을 영화화해본 경험을 가진 송해성 감독은 "영화는 소설에 대한 나의 해석이기도 하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담는 틀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한다. 소설을 영상화하는 단순작업이 아닌, 창작자 송해성의 생각과 정서를 담아내는 새로운 작업이라는 것. 두 배우도 같은 생각이다. "소설 속 인물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소설은 인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줬지만, 나는 내가 바로 유정(또는 윤수)이라 믿었다"고. 소설과 같으면서도 분명히 다를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기대되는 진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