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회고록 21] 기초연금 축소에 사표 던진 복지장관 “내가 알던 진영 아니었다” 朴 놀라게한 측근의 돌변 앞서 언급했던 대로 연금 문제를 다루는 것은 정치적 부담이 매우 크다. 여당도 소극적이다. 내가 임기 초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연계하는 방안을 추진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르신 세대들은 대한민국 발전에 크게 기여했지만 자녀 교육 등으로 지출이 많다 보니 정작 은퇴 후에 본인을 위해 남겨놓은 것이 별로 없다. 그래서 어려운 분들이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해주자는 차원에서 소득 하위 70%의 65세 이상 노인에게 월 9만4000원을 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제도가 2008년부터 도입됐다. 이와 관련해 나는 2012년 대선 때 기초노령연금을 확대해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을 지급하는 기초연금 공약을 내걸었다. ‘65세 이상 노인 월 20만원’ 공약 못 지킨 이유 그런데 막상 대통령이 되고 보니 재정 상황이 예상했던 것보다 상당히 좋지 않았다. 이전 이명박 정부에서 세수(稅收)를 너무 크게 잡아놓고 국정을 추진해 내 임기 첫해부터 세입세출이 마이너스였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지출을 확대하는 공약을 무조건 지키겠다고 고집하기 어려웠다. 내가 욕을 먹더라도 공약을 손질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관련 전문가들과 상의한 결과 소득 하위 70%의 노인을 대상으로 매달 10만~20만원의 기초연금을 국민연금 가입 기간과 연계해 차등 지급하는 것으로 조정했다. 당연히 야당을 중심으로 반발이 나왔다. 국민연금과 연계하면 기초연금이 줄어든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가입 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연금수령액이 증가한다.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길어서 기초연금은 다소 줄더라도 국민연금 쪽 증가분을 고려하면 전체적인 연금액은 손해라고 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염두에 둔 것은 연금제도의 장기적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나라 곳간이 충분하다면 모르겠지만, 사정이 어려운 게 확인된 만큼 국가가 빚을 내면서까지 무리하게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원 전액을 지급할 수는 없겠다고 판단했다. 무리하게 돈을 주기 시작하면 기초연금의 토대가 불안정해지기 마련이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과 연계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가입 기간이 아니라 소득에 연계시키자고도 했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들과 이야기해보니 자영업자 소득을 보겠다며 전수조사를 하기 시작하면 큰 혼란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행정적으로 너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가입 기간으로 기준을 잡는 게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판단이 맞았다고 본다. 어쨌든 공약을 100% 지키지 못한 셈이 됐다. 공약을 만들 당시 정확한 자료를 다 받지 못하다 보니 벌어진 일이지만 국민께는 송구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내 공약을 지키겠다고 재정을 망가뜨리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나는 2013년 9월 26일 국무회의에서 기초연금 축소와 관련해 “어르신들 모두에게 지급하지 못하는 결과에 죄송한 마음”이라고 사과했다. 이어 다음날도 대한노인회 임원들과 노인복지단체연합회 관계자 등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하면서 “당초 계획했던 것처럼 모든 분께 다 드리지 못하고 불가피하게 수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서 저도 참 안타깝고 죄송스러운 마음”이라고 거듭 사과했다. 당시 이 문제는 연일 언론을 뒤덮었다. 그런데 야당도 야당이지만 주관 부처 담당자인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초연금 축소에 반대한 게 문제를 더 크게 확대했다. 진 장관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이걸 어떻게 국민한테 설득하라는 말이냐”며 거세게 반대했다. 진 장관은 내가 한나라당 대표 시절에 비서실장을 했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때부터 부위원장으로서 정책을 다듬었다. 진중하고 일 처리도 무난하기 때문에 복지 예산처럼 중요한 것을 챙기는 것은 가장 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진 장관의 거친 반발은 굉장히 놀랍고 뜻밖이었다. 나는 진 장관이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해 조원동 경제수석을 보내 설득을 시도했으나 진 장관은 끝내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진영 장관은 2013년 9월 27일 e메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어 복지부 출입 기자들에게도 ‘보건복지부 장관직을 사임하면서’라는 제목의 e메일을 보내 사퇴를 공식화했다. 장관이 청와대와 충분한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사의를 발표하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평소 알고 있던 진영 장관의 모습이 아니었다. 어찌 됐든 대통령직인수위 부위원장으로 복지 분야 국정과제 수립에 깊게 관여했던 그가 기초연금 처리를 마무리하지 않은 채 청와대와 의견이 다르다며 장관직을 그만두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정홍원 총리를 통해 사직서를 반려했다. 정 총리는 27일 보도자료를 내 “현재 새 정부 첫 정기국회가 진행 중이고 국정감사도 앞두고 있으며, 복지 관련 예산 문제를 비롯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일들도 많다”며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장관의 사표를 받을 수 없어 반려했다”고 밝혔다. 이는 내가 진 장관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진영 장관 면담 요청, 전달 못 받았다…끝내 아쉬움 하지만 진 장관은 물러서지 않았다. 복지부로 출근도 하지 않았고, 국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결국 나는 어쩔 수 없다고 보고 9월 30일 진 장관의 사표를 수리했다. 나는 이날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진 장관의 처신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국민을 대신해 정책을 입안하는 정부와 국무위원, 수석들은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비판을 피해간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당당하게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낼 수 있다는 의지와 신념이 결국 그 문제를 해결해 내는 것입니다.” 진 장관이 사표를 내기 전에 나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불발됐다는 이야기가 나중에 언론을 통해 나왔는데, 사실 나는 당시 그런 요청을 전달받은 적이 없다. 돌이켜 보니 그때 직접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끝내 남는다. 나중에 진 장관은 20대 총선 직전인 2016년 3월 더불어민주당으로 건너가 4선 고지를 밟았고, 문재인 정부에서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냈다. 2013년 진 장관이 복지부 장관을 그만둔 뒤 나는 그를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다. 인기 없던 담뱃값 인상, 청소년 흡연 차단 위해서였다 내 임기 때 추진한 인기 없는 정책을 꼽으라면 담뱃값 인상도 빠지지 않을 것이다. 담뱃값을 인상하겠다고 하자 세금을 더 거두려고 추진한다는 원성이 높았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담뱃값을 인상한 것은 성인도 성인이지만, 무엇보다도 청소년들을 담배로부터 최대한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청소년 흡연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했다. 고3 학생들의 경우는 흡연율이 25%, 즉 4명 중 1명이 흡연을 했다. 청소년 때부터 흡연을 시작하면 장기간 니코틴이 쌓이면서 건강상 악영향을 주게 된다. 정부 관계자, 전문가들과 논의해보니 청소년을 흡연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담뱃값 인상이라고 했다. 물가는 계속 올랐지만, 저항이 크다 보니 담뱃값은 거의 올리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담뱃값이 너무 저렴해졌고, 청소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야당 대표 시절 노무현 정부에서 담뱃값을 500원 올린다고 했을 때 ‘왜 서민을 힘들게 하느냐’고 반대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청소년 흡연율 문제라는 게 이처럼 심각하지는 않았을 때였다. 하지만 이제는 청소년들의 흡연율 문제가 심각해진 만큼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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