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뚜벅...
한정된 공간, 한정된 자원으로 큰 일은 해낸다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것이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이라면,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일이
라면 말이 필요 없는 일. 조용하기 그지없는 구둣발 소리가 힘차게 울려퍼
질 정도의 좁은 이 건물에서라면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온 벽이 하얗게 채
색되어 눈부실 정도의 광채를 내는데도 불구하고 복도의 끝에서부터 조용히
걸어오는 한 남자의 눈에는 그런 기미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들고
있는 3"5인치 DVD 미디어와 프린트된 자료집만을 유심히 바라보느라고 벽따
위는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머리는 며칠동안 감지 않았는지 푸석
푸석해진 상태여서 상당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걸 짐작하게 해줬다.
뚜벅...
발자국 소리가 순간적으로 멈추며 남자의 몸이 우뚝하고 제자리에 멈췄다.
그리고는 갑자기 큰소리를 내질렀다.
"맞아!!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스크류 감압방식을 이용해서 각 관절에
순간적으로 강한 압력을 가한다면 에너지 소모가 최대 1/100까지 바라
볼수도 있잖아!!"
소리를 질렀던 남자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전방을 향해 급하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알아냈다는 뜻의 내용을 담은 그의 말투에선 절박함보
다는 환희의 느낌이 강하게 풍겼다. 잘 손질된 대리석 바닥을 달리는 그의
발소리는 마치 말발굽 소리처럼 울려 퍼졌고, 곧 이어 강하게 전방의 문을
열어제끼는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끼이이이잉~!! 위이잉...
문을 열자마자 엄청난 크기의 소음이 울려퍼졌지만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
은지 곧바로 앞에보이는 컴퓨터 중앙 콘솔을 향해 달려갔다. 자판을 두드리
는 소리가 바쁘게 울려퍼지고 트랙킹 포인터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갑자
기 들어와서 콘솔을 두둘기는 남자를 보는 다른 여러명의 사람들은 왜그러
나 하고 그를 쳐다보았지만, 곧 예의 남자의 고함에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
했다.
"어서!! 관절의 y 감압파이프를 A 커널에서 E-F 커널로 돌려!!"
그의 흥분에 찬 목소리에 사람들은 머?가가 찌릿하고 오는 것이 있는지 빠
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작업복을 입고서 각종 서치라이트에
빛나고 있는 철거인의 형상을 한 무언가에게 다가갔다. 신장 5M 는 가볍게
넘어설 듯한 크기에 낮은 두부, 그리고 두부에 돌출되듯이 튀어나온 안쪽
으로 휘어진 뿔은 흡사 12지신의 우신(牛神)을 빼다박은 듯한 모습이었다.
기술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커다란 우신 형상의 물체의 팔부분을 분해하기
시작했고, 나머지 여러 스텝들은 나름대로의 데이터 분석을 시작했다. 그러
던 중 한 동양인이 금발의 남자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슈피헬, 당신이란 사람은..."
"당신의 이론을 보고 응용을 했을 뿐이오, 나와무라."
둘의 대화는 그렇게 쉽게 끊어졌고 슈피헬이라 불린 사내는 기술자들에게
소리쳤다.
"아직 멀었나?!!"
"잠시... 됐습니다!! 가동해보십시오!"
그와 함께 슈피헬은 떨리는 손동작으로 콘솔을 가볍게 두들겼다. 그리고..
.
위이이이잉---------------!!!
경쾌한 소리와 함께 팔의 일부분이 가볍게 들어 올려졌다. 그 광경을 바라
보던 사람들에게선 일순 침묵이 퍼지고, 5초 쯤 지났을까? 실내는 환호성으
로 가득찼다.
-일본 중앙 국방성, 지하 12층 대회의실
어두운 실내에 프로젝터가 빛을 뿌렸다. 가벼운 반 자외선의 불빛은 한쪽
벽에 세워진 스크린에 닿앗고 그 빛은 각 종 이미지와 데이터를 보여줬다.
앞에서 설명을 하는 듯 보이는 남자는 가볍게 말을 마쳤다.
"...인 것입니다."
"그럼 한국에서 성공했다는 얘기로 해석해도 되는 거겠지?"
누군지 알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진 소리. 프로젝터 앞에 있던 남자
는 그 말에 역시 빠르게 답했다.
"프로젝트 GRAND-BULL로 명칭되는 이번 HA 생산계획의 92%가 완료된 것으
로 알려졌습니다. 핵심기술은 이미 완성상태, 간단한 조정을 하고 프로토
타입이 만들어지기 까지는 1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보입니다."
"1개월이라... 너무 빠르군."
대답과 함께 걸어나온 한 남자. 장군임을 표시하는 별 2개의 칭호를 단 이
남자는 앞으로 걸어나오며 프로젝터에 나타난 데이터를 가까이서 바라봤다
. 그리고 뒤로 돌아서서 어둠을 향해 조용히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 아니 이제는 대한연방인가? 그들이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때는 우리
모두는 웃고 지냈지, 아니 웃을 수 밖에 없었어. 제대로 걸을 수 조차 있
을까하고 의심하던 이 프로젝트는 10년만에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러간다.
이미 우리 일본을 15년 이상 앞지른 속도야. 탱크 20대를 가볍게 상회하는
전투능력을 가진 병기라니...
우리가 너무 대한연맹을 우습게 본 것 같군. 이 정도의 전략무기가 완벽하
게 양산된다면 동아시아에서의 일본과 중국의 위치는 한 없이 떨어진다. 그
전에!
...
싹을 잘라낸다."
"그런?!!"
"총수상각하와 천황각하에게 직통으로 연결하도록!"
그 말과 함께 실내는 일순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프로젝터 앞의
남자가 다음 내뱉는 말과 함께 22세기 세계를 흔드는 최대의 전쟁이 시작
된다. 수백년간 계속된 이념과 갈등을 부서버릴수도, 더욱 견고하게 굳혀버
릴수도 있는 그런...
"대한연맹에 2191년 8월 15일, 선전포고를 한다!"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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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의 컴백입니다. 예전에 실험연재로 시작햇던 서먼 나이트가 새로운
제목 DU-AL(듀얼)로 다시 정비되어 새롭게 연재될 예정입니다. 서먼나이트
는 액트1 의 제목으로 생각해 주시길. 전체적인 분위기와 등장인물, 세세한
설정, 내용전개가 바뀌었습니다. 예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실수도 있으
리라 기대합니다.
. 멜은 kaoru@netian.com로 보내주
심 정말루다가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