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태훈아! 엄청 오랜만에 공편 써봐. 태훈이가 남긴 편지를 보고 얼마간 마음이 이래저래 그랬다가, 그래도 더 늦기 전에 무어라도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해서. 어떤 말은 오래 고민한 뒤에 꺼내는 게 좋은 것도 있지만 또 어떤 건 시간을 놓치기 전에 해야하는 말도 있잖아.
태훈이 요즘 몸은 어떻니? 갑자기 긴장이 풀리면 난데없이 몸살이 오기 쉬운데 이번엔 잔병치레 안 하고 무사히 지나갔을지. 멤버들이랑 간 여행은 어땠어? 요즘 엄청 덥던데. 그래도 사진 보니 좋아 보이더라. 나는 그동안 바라왔던 정적 속에서 오랜만에 복희 목욕 시키고, 고양이 화장실 모래도 싹 갈고, 손발톱 정리같은 뭐 그런 시덥지 않지만 꽤 효과적으로 내 마음을 가라앉게 해주는 것들을 해나가는 중이야. 집안의 소음은 겨우 에어컨 바람 소리나,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차라리 비트코인 체굴하는 게 더 나은 삶이었을 내 컴퓨터 본체 돌아가는 소리 정도라서 뭐가 거슬리는 거 없이 참 좋아.
그리고 부지런히 자료들을 백업 해두느라 예전 너희 모습을 다시 들춰보고 있다네. 고작 2년 좀 더 된 건데 태훈이 예전에 왤케 애기같니? 어휴. 울 엄마가 나 팬사인회 가있는 거 봤으면 뭔 새파랗게 어린 애덜을 쫓아다니느냐며 등짝 오천대 때렸을 듯. 예전 자료 속의 너희는 너무 어려서 모니터 속 디지털 파일일 뿐인 것을 아는데도 야악간 흐린 눈으로 보게 돼.
태훈아. 데뷔 쇼케 전에 네가 공식 트위터 계정에 남긴 메세지 혹시 기억나니? 나도 오랜만에 본 건데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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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훈]D-3
여러분 볼 생각에 마음이 두근거려 미치겠어요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네요! 맛난 저녁 드시고 시간 빨리 좀 가게 해 달라고 같이 기도해요🥲
https://x.com/tan__official_/status/1500768745534328841?s=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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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앨범 팬사인회를 다니던 때에 웃기지만 ‘이별여행’을 하는 것 같단 생각을 했었어. 우리는 헤어질 것을 알지만 서로 조금이라도 덜 힘들 수 있게 최대한 시간을 가지고, 그 시간 동안 서로를 최대한 배려해주고, 좋은 기억을 끝으로 마무리하려고 노력하는, 그런 과정을 밟아나가는 것이 말야.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써야하나 생각해보면…. ‘후회’를 남기지 않는 게 나도, 그리고 너도, 너희들도 같은 목표일 거라고. 혼자 그게 당연하다 생각한 거 같아.
그리고 후회를 남기지 않는 방법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마음을 전하는 것이라 생각했어. 그래서 태훈이가 팬사인회 마친 뒤 한동안 소식이 없어도 팬콘이라는 행복한 마무리를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는 중이기 때문일 거라고, 더 그렇게 애써 바랐던 거 같아. 태훈이의 편지를 읽은 뒤엔 쪼오끔,, 마음이 깨지는 듯한 심정이 되더라. 태훈이가 자주 보이지 않던 이유는 내가 가장 부정하고 싶었던 이유였거든.
편지를 읽은 처음은 뭐라 말하기 힘든 감정 속에서 있다가, 다음 날엔 멍,,~ 허니 생각이 사라졌다가.. 갑자기 처음으로 태훈이를 원망도 해보고. 태훈이는 늘 나한테 행복한 기억만 주는 왕자님이라 그랬는데. 왜 혼자 저멀리 가버렸나 싶고 그렇더라고.
한 번 마음의 고삐가 풀리니 이런저런 어지러운 생각이 휘몰아치기 시작해서는. 감정에 휩쓸리고 있다가 우연히… 라기엔 예전 자료 백업 중이었으니 결국 보게됐을 필연이려나? 여간, 태훈이의 저 예전 트윗을 보니 그제야 마음이 조금 가라앉더라. 그리고 팬콘 무대 영상 보정하다가 무대 중에 태훈이가 맨 뒤에서 홀드 상태일 때 카리스마 넘치는 호랭이 표정!이었다가 갑자기 씨익 웃는 걸 보게 된 거야. 연달아 몰아치던 무대 중이었고, 너도 그 전까지는 이악물고 춤을 췄는데 갑자기 이게 미치게 신난다는 듯이 웃는 걸 봤어. 그 표정을 보니 그제서야 태훈이가 팬들과 멀어지려 했던 게 이해가 되더라. 태훈이는 상처받기 싫었던 거구나. 너 이렇게 무대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되게 노력했는데. 네가 사랑하는 것을 두고 떠나는 게 엄청 힘든 일이라서 최대한 상처받지 않는 방법을 선택한 거였구나 싶더라.
태훈아, 너는 그 한 달의 공백을 후회하진 않니? 나중엔 어떨 거 같아? 이 타이밍에 물어보면 ‘너 후회할걸?! 후회하고 있지?!’라고 찌르듯이 물어보는 거 같겠지만, 전혀 아님ㅋㅋ 음..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 했다 생각했는데 요즘 오만 거를 다 후회하고 있거든.
사소하게는 팬콘 날 무대를 너무 즐기지 말고 이악물고 죽기살기로 더 촬영을 했어야 했는데! (ㅋㅋㅋㅋ) 같은 너희들의 바람에 반하는 후회가 일단 첫 번째고. 크흠. 팬콘 사인회 때 울지 말고 차분히 인사하자 결심하고 올라갔었는데, 그때 차라리 냅다 울면서 바짓가랑을 좀 잡았을걸 싶고. 차라리 그랬으면 나았을까 아니면 저랬으면 좀 더 내 마음이 전달됐으려나 뭐 그런.. 사서 스트레스 받기 일인자 답게 별걸 다 후회하는 중.
사람이 누군가를 걱정하고 위로하는 건 어쩌면 나 자신이 걱정하고 위로받고 싶은 부분일 거란 얘기도 있잖아. 자기가 가진 경험치나 생각만큼만 남한테 투영할 수 있다 해야하나? 그래서 그런가. 나는 나중에 후회하는 게 두려웠던 사람이었으니 태훈이가 혹시 그 시간을 아쉬워 하지 않을지, 그런 걱정이 드는 게 사실이야.
그런데 참 웃기게도 나는 덜아픈 이별을 한답시고 세상 바지런 다 떠는 것처럼 굴어놓고도 지금 별걸로 다 후회하고 있잖아. 그러니 내 방법도 네 방법도, 사실 어떤 선택이고 맞는 것은 없고, 아름다운 이별 같은 건 사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 무엇을 선택했는지 간에 아쉬움 혹은 후회, 그런 종류의 감정이 아니라도 우리 마음에 무언가가 깊게 남을 수 밖엔 없었을 거 같아. 흉이려나? 공백 혹은 공허함이라 표현해야 하나, 잘은 모르겠지만 말야.
그러니 혹시나 태훈이가 그 한 달간의 시간을 다시 돌이켜 보았을 때 아주아주 만약의 만약에 만약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면 말이야.
태훈이가 그때 멀어지는 걸 선택하지 않았다 해도, 또 무언가 나와 네가 선택한 방법 말고 또 다른 걸 선택했더라도. 지금의 나처럼 결국 별걸 다 끄집어내서 후회하고 아쉬워 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뭐 그런 말을 미리 하고 싶었어. 노파심이란 걸 알지만 말야. 이별을 맞이하는 방법에 더 나은 선택이란 게 있을까?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 이 이별을 맞이했건, 이별은 결국 슬펐을 거야.
혹시 나은 방법이 있진 않았을까, 며칠 내내 편지의 말문을 띄워둔 채 계속 고민해봤지만 나는 여전히 모르겠는 상태로.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태훈이가 바랐던 것처럼 네가 최대한 아프지 않았기를 바라고 있어.
언젠가 한 번은 무대에서 객석 방향을 보는 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고 하니, 네가 무대 위 조명 얘기를 했잖아. 되게 높은 천장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조명이 너를 향해 있고, 그게 조금 기분이 이상하다고 했나.. 그랬는데. 그 팬사인회 이후의 공방 때에 너희를 기다리며 올려다 본 스튜디오 천장은 지인짜 높고 조명은 딱 봐도 무겁고 뜨겁고 밝아서 나는 그게 좀 무섭다는 느낌이었어. 영화 트루먼쇼에서, 트루먼의 세계가 세트장이라는 걸 알려주는 첫 단서는 하늘에서 떨어진 조명이었잖아. 태훈이는 그래서 무대에 서면 조명을 바라봤던 거였나 생각도 해보고. 생각이 너무 많은 너라 이 세계의 현실감을 계속 의심하는 것은 아닌지, 그때 새삼스레 너는 참 신기한 사람이란 생각을 했었어. 생각이 엄청 많은 사람은 가끔 세상에서 붕 떠있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하거든.
다행인 것은 태훈이 주변의 현실에서, 소다를 떠올릴 것이 많다는 점인 거 같아. 예전에 소다친구들과 태훈이가 팬사인회 때에 무엇을 보고 그 소다를 떠올렸는지 얘기 해줬던 거에 대해 수다를 떤 적이 있어. 예를 들어 꽃을 보면 내가 떠오른다는 얘기 있잖아. 역시 티에이엔이 인증해준 미녀.. 나.. 선데 농담입니다. 사실 진담입니다. 여간 태훈이가 현실에 발이 붙어있는 세상의 무언가 여러가지를 보고 소다들을 떠올렸던 덕에, 이제 태훈이는 살아가며 너를 지켜줄 기억과 그 사람들이 곳곳에 있게 된 거잖아. 뭐 예뻐서 꽃을 보고 날 떠올리는 게 아니라, 종종 꽃무늬 옷을 입었던 나라서, 또 네게 꽃을 선물했다는 이유로 꽃을 보고 나를 떠올렸던 것처럼.
세상의 많은 것을 보며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계속 떠올린다면. 일단은. 우선 일단은 그런다면 좋지 않을까? 이별은 아프고 우리는 멀어진다 해도 그 기억의 개체들은 계속 남아있을 테니까, 나도 너희라는 기억에 먼지가 앉지 않게 잘 정돈해보려 해. 태훈이도 태훈이의 세상을 꾸려나가다가 혹시 더 나은 방법을 알게 된다면 얘기해줄 수 있니? 나도 계속 고민해볼게.
휴. 편지 짱 길다. 대박이다. 미안합니다. 🌝💦
암튼 태훈아. 아프지 말아. 알았지? 나는 늘 태훈이 잔병을 걱정하는 사람이니, 아프지 말기. 편안해졌을 때에 편하게 인사하기. 밥 잘 챙겨먹구, 쑥 빠진 살 다시 잘 채워넣기를 바람!
많이 많이 사랑해.
Ps. 아 맞다! 나 어렸을 때 트루먼쇼 본 뒤부터 짐 캐리 좋아하게 돼서 최애 배우 중 한 명이거든. 그래서 이터널 선샤인도 보게 된 건데, 태훈이도 한 번 봐볼래? 태훈이한테는 좀 지루하려나 싶지만…! 트루먼쇼 만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