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연의(退魔演義)Ⅱ 181 - Case No.21 살인귀(殺人鬼)

[love]

퇴마연의(退魔演義)Ⅱ 181 - Case No.21 살인귀(殺人鬼)

피의 향기.

뼈를 잘라내는 느낌.

살점을 도려내는 쾌감.

다시 그 희열을 맛보고 싶어.

File#03 사랑은 이기적인 것

아침을 먹고 다시 한 번 그 집에 가보기로 한 멤버들이 준비를 하는 사이, 웬일로 벌써 준비를 마친 혜성이 마루에 걸터앉아 거울을 이리저리 돌리며 중얼거렸다.

“역시 기회는 이번뿐인데 함 봐볼까? 어차피 돌려주면 다시는 이런 기회가 안 올 거 아냐?”

“하지마!”

거울을 보며 중얼거리는 혜성의 모습에 마침 방에서 나오던 민우는 크게 소리쳤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혜성은 놀라 눈을 크게 뜨며 민우를 돌아봤다.

“하지마. 그런 멍청한 짓.”

단호하게 말하는 민우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아있었지만, 혜성은 눈치채지 못한 듯 발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 뭐 어때? 그냥 전설인데? 한방 중에 달빛아래서 물 떠놓고 식칼물고 들여다보면 미래의 남편이 보인다는 것처럼 미신일 뿐이잖아.”

“때로는 미신은 진실에서 파생되는 거야. 좋지 않은 건 하지 않는 게 좋아.”

“나쁠 거라는 보장이 어디 있어? 좋은 게 보일 수도 있잖아?”

“하지 말라면...!!!!!...”

혜성을 말릴 생각으로 몸을 내밀었지만, 혜성은 이미 거울을 들고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마치 귀신에 홀린 듯 있는 혜성의 모습을 바라보던 민우는 퍼뜩 정신이 들어 크게 소리치며 혜성의 손에 들린 거울을 쳐내듯 빼앗았다.

“신혜성!”

“어? 아, 어어...”

하지만 혜성은 이미 굳어진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 그 모습에 민우가 다그치듯 물었다.

“뭐 봤어?”

“어?”

“뭐 봤냐고?!!”

“아... 아무 것도...”

무섭게 추궁하는 민우의 목소리에 혜성은 멍하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민우는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거울을 들고 있지 않은 왼손으로 혜성의 팔을 꽉 잡은 채 몸을 가까이 들이밀며 다시 물었다.

“뭐 봤지?”

“아. 아냐.”

“뭐야? 뭘 본 거야?!!”

“아, 아무 것도 못 봤다니까?!!”

민우의 계속된 물음에 혜성은 화를 버럭 내며 민우의 팔을 치고 고개를 돌렸다. 민우가 보지 못하게 오른쪽 손등으로 볼을 부비는 혜성의 얼굴은 당황함으로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그건 대체...”

「그 거울은 본인의 의지나 가슴 속 깊은 곳의 욕망을 보여준다고도 하지.」

“본인의 의지나... 가슴 속 깊은 곳의... 욕... 망? 에이... 설마... 설... 마...”

스스로 그럴 리 없다고 되뇌였지만, 뭔가 찜찜한 기분은 지울 수 없었다. 민우는 그런 혜성을 굳은 표정으로 바라봤다.

“선호야.”

“응?”

커튼까지 겹겹이 친 어두컴컴한 방에서 인형처럼 앉아만 있던 진의 부름에 진의 옆에 앉아 책을 읽던 선호가 책을 덮고 진을 돌아봤다. 하지만 진은 여전히 허공을 바라본 채 물었다.

“넌 귀신 본 적 있어?”

“나? 아니. 없어.”

“재미있지 않아? 정작 귀신을 못 보는 넌 귀신 잡는 일을 하고. 귀신이 보이는 난. 도망이나 다니고...”

“진아...”

“세 살이 되던 해야 알았어. 모든 사람들이 그걸 볼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다른 애들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귀신과 이야기 하던 날 본 정혁이 형이 다른 사람들은 귀신을 볼 수 없다는 걸 알려준 뒤였어.”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봐야만 한다는 건... 어떤 걸까?

“그리고 그 순간부터 귀신들이 두려워지기 시작했어. 형과 내가 함께 있음으로 인해 귀신들이 모여든다는 걸 그때는 몰랐지만, 그래도 어렴풋이 느낄 수는 있었어. 혼자 있을 때보다 형과 있을 때 더 많은 귀신들이 우리 주변을 맴돌았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혼자보다 형과 함께 있는 게 좋았어. 오히려 그게 덜 무서웠거든...”

알아. 나도 알아. 나도 그렇거든.

“형은 날 위해 내 기억을 지워버리고 사라졌어. 얼마 전에 다시 기억이 돌아오기 전까지 난 그렇게 형을 잊고 살았던 거야.”

“응...”

그 말 밖에 해 줄 수 없었다. 그 말 밖에...

“여행가고 싶어.”

“여행?”

“응.”

“어디?”

“그냥... 조용한 시골...”

“그래. 가자. 어디로 갈까? 제주도? 부산? 강원도? 경주?”

여행을 가고 싶다는 진의 말에 드디어 마음을 정리한 것 같아 선호는 기쁜 마음에 웃으며 물었다. 선호의 목소리에 진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강원도... 형들... 가 있다는 곳.”

“...그럴래?”

진의 대답에 선호는 망설이며 말했다. 선호의 말투에 진은 푸석한 얼굴에 띄웠던 연한 미소를 지운 채 슬픈 눈으로 선호를 바라보며 물었다.

“싫어?”

“아냐. 안 싫어. 가자.”

선호는 진의 마른 손을 꼭 쥐고 웃으며 말했다.

뭐... 정혁 형도 없으니까...

선호는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날 그렇게 정혁에게 화를 내고 난 뒤, 왠지 어색했다. 잘못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진을 생각하면 그보다 더한 말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 형에게 화를 내 본 게 굉장히 어색하고 불편했다. 그래서 선호는 진의 말에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동의 했다. 며칠만이라도 단 둘이 마주치지 않다가, 다 함께 만나는 거라면... 조금 덜 어색할 것 같았다.

.

.

.

“어? 너희가 웬일이야? 진아, 괜찮아?”

“네. 괜찮아요.”

진과 선호가 찾아간 시골집에서는 승민과 동완, 혜성이 마당에서 열무를 다듬고 있었다.

“뭐하는 거예요?”

“김치담가.”

“김치요?”

“응. 열무가 좋아서 김치 담가 가려고. 근데 어쩐 일이야?”

“그냥... 좀 쉬려구요.”

“그래. 여기 공기도 좋고, 조용하더라.”

진의 대답에 혜성은 웃으며 말했다. 혜성의 말에 진은 혜성의 맞은편에 쪼그려 앉으며 물었다.

“도와드려요?”

“됐어. 우리끼리 할 수 있어.”

“근데 형 김치도 담글 줄 알아요?”

“아니. 실은 비호씨가 할 줄 안다고 해서, 우린 그냥 돕는 거야.”

“어이~ 슈퍼 스타~ 얼굴이 헬쓱해졌네? 여기 밥 맛있으니까, 다시 통통해질 거야.”

“전 안 통통하거든요?”

“큭큭... 역시 귀엽다니까? 문정혁씨. 나와봐요. 꼬맹이들 왔다.”

“정혁 형... 왔어요?”

집 안쪽을 향해 소리치는 비호의 목소리에 선호가 놀라 물었다. 비호는 빨간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어젯밤에. 몰랐어?”

“아... 네에...”

정혁에게는 말도 하지 않고 나왔다. 당연히 옥탑방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빠져나왔는데, 생각해 보니 거실 소파에서 자는 꽃등심과 망고를 보고 정혁이 없다는 걸 눈치 챘어야 했다.

“자, 자.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비호는 대청 마루에 앉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때 마침 나온 정혁과 눈이 마주친 선호는 놀라 시선을 돌렸고, 진은 모른 척 혜성의 옆에서 고춧가루를 만지작 거렸다. 부드러운 바람이 진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문정혁씨는 어디 간 거야?”

“아까부터 안 보이던데요?”

읍내에 나가 사온 돼지고기까지 삶아 새로 담근 열무김치를 놓고 이른 저녁을 먹던 비호가 마당을 둘러보며 묻자 입안 가득 쌈을 싸 넣은 혜성이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알았어. 내가 찾아볼게. 어? 고마워.”

비호는 쌈을 싸 내미는 혜성의 손에서 쌈을 받아먹고는 빙긋 웃으며 혜성의 볼을 톡톡 쳤다. 비호의 인사에 혜성은 두 볼이 빵빵하게 부푼 채 ‘헤-’소리가 날 듯 웃었다. 각자 멀리 떨어져 있던 두 사람은 그 모습을 매섭게 노려봤다.

“상극이로군.”

논두렁에 앉아있는 정혁의 뒤로 걸어간 비호가 중얼거리듯 말했지만, 정혁은 아무 말 없이 바람에 흔들리는 논을 바라봤다.

“진이 녀석과 상극인 거지?”

“네가 상관할 바 아냐.”

“비극적이군... 첫 사랑이 상극이라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나 생각보다 아는 거 많아. 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걸 안다고.”

“그럼 입 다물고 있어. 네 명 재촉하지 말고.”

“혜성이가 미래를 볼 수 있는 거울을 가졌어.”

“뭐?”

“보고 싶지 않아? 너와 그 녀석의 미래?”

비호의 말에 정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런 건 너나 봐.”

“난 안 봐.”

비호는 정혁과 같은 논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 미래는 이미 알고 있거든...”

비호의 머리칼을 쓸고 지나가는 바람이 지독하게 쓸쓸하다고 정혁은 생각했다.

늦은 밤.

동완은 화장실에 가기 위해 방을 나오다 나란히 놓인 신발 중 선호의 신발이 없다는 걸 깨닫고는 두리번거리며 선호의 모습을 찾았다. 그러다 집 밖의 골목까지 걸어나갔다. 선호는 논두렁에 앉아 캄캄한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호야.”

“형?”

“깜깜한데 여기서 뭐해?”

“그냥... 생각 좀 하고 있었어요.”

“무섭지도 않아?”

“저야... 귀신도 안 보이는 걸요...”

“요즘은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서운 세상이야.”

“사람이야 형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에요?”

빙긋 웃으며 말하는 선호의 모습이 예전과는 조금 달라졌다는 느낌에 동완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늘 아이같기만 하던 선호의 성장이 자신과의 일 때문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냥 때가 돼서 자란 거예요.”

“뭐?”

동완은 마치 자신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말하는 선호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형 얼굴에 써 있어요. ‘네 변한 모습이 나 때문인 거 같아서 신경 쓰인다’라고.”

“아냐. 아냐. 그런 거...”

“잊는다고, 기억하지 못한다고 모든 일이 없었던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이같은 발상이었어요.”

“넌 어린애였잖아.”

“네. 그래서 자라려고요.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줄 수 있게 자라려고요. 그때는 지킬 게 아무 것도 없었는데... 이젠 소중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어요.”

선호의 말에 동완은 왠지 모르게 가슴 한 구석이 욱씬거렸다.

“그 중... 형이 제일 소중해요.”

마치 그 일이 있기 전의 선호처럼 베시시 웃으며 덧붙이는 선호의 말에 동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졌다. 가슴 속 제일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마음. 소중했던 지수와 어리기만 했던 선호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숨기고 싶었던 마음. 하지만 점점 커져 그 마음이 넘쳐흘렀다. 그리고 이제 숨길 수 없어졌다.

선호의 가느다란 손목을 잡아당겨 품안에 선호를 안았다. 선호는 힘없이 끌려와 동완의 품에 안겼고, 마른 두 팔로 동완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선호야... 선호야...”

하지만 목구멍 중간까지 나오던 그 말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마치 목안의 무언가가 끌어당기기라도 하는 듯 마지막 한 마디는 나오지 않았다.

“선호야...”

그저... 선호의 이름만 되풀이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선호는 동완의 허리를 더욱 꼭 안아주었다.

여름 밤의 서늘한 기운 속에서 온 몸을 휘감아오는 아이의 체온에 동완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 아이를 보면 가슴 한 구석이 무거운 지금의 감정이 평생 가더라도, 아이를 보지 않을 자신이 없어졌다. 애증. 사랑해서 미운 감정.

.

.

.

“낚시?”

“응.”

“난 싫어.”

“왜? 같이 가자.”

“난 물 싫어요.”

낚시대를 어깨에 맨 마루에 앉아있는 혜성에게 함께 가자고 권했지만, 혜성은 단박에 거절했다. 비호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선호를 향해 물었다.

“선호는 갈 거지?”

“저요? 진아. 너도 갈래?”

“갔다와. 난 잘게.”

“하지만...”

“갔다와. 난 괜찮아.”

선호의 걱정스런 목소리에 진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몇 주만에 처음 보는 진의 웃는 모습에 선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완과 비호, 승민 일행을 따라나섰다.

선호가 눌려놓은 고소한 누룽지를 대접 한 가득 담아가지고 나온 혜성은 입안에 든 누룽지를 오도독 오도독 씹으며 마루에 걸터 앉았다. 마루 한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진의 모습을 본 혜성이 몸을 일으켜 진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진아. 누룽지 먹을래? 선호가 눌려서 그런지 아주 고소...”

“누나...”

“진아.”

“누나. 누나아...”

진은 거울을 부여잡으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놀란 혜성이 진을 떼어내려 했지만, 진은 떨어지지 않았다.

“형! 혀엉!! 진이가 이상해요! 혀엉!!!”

혜성이 소리쳤지만, 근처에 아무도 없는지 나타나지 않았다.

“진아! 이러지 마! 진아! 전진!!!”

“뭐야?”

혜성의 비명에 집 뒤에서 나타난 정혁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정혁 형! 진이가 이상해요! 어떡해!!!”

“전진. 그 손 놔.”

“알았어요. 나랑 같이 가요. 나도... 같이가요...”

혜성을 밀어낸 정혁이 거울에서 진을 떼어내려 했지만, 어쩐 일인지 진을 떨어지지 않고 더욱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한참을 진과 거울을 떼어놓으려고 실랑이하던 정혁은 이제 거의 거울을 부여안은 진의 눈동자색이 변하고 있는 것을 깨닫고는 심호흡을 하고 몸을 돌렸다.

“미안하다.”

“네?”

정혁의 알 수 없는 말에 혜성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는 순간 정혁은 오른손으로 혜성의 이마를 탁-치며 말했다.

“깨어나라!”

“... 역시. 절 다시 부르셨군요.”

“어서 저 녀석을 깨어나게 해주십시오.”

정혁의 말에 혜성은 작게 법문을 외우며 묘한 수인을 맺었다. 그 순간 진은 거짓말처럼 옆으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저 세상으로 갔을 겁니다.”

혜성의 안에 있는 공주의 목소리가 혜성의 목소리가 되어 청아하게 울려 퍼졌다.

“저 녀석을... 구할 방법은 없습니까?”

“당신이 가까이 있어도, 당신이 멀리 있어도 상처받고, 고통 받을 겁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없는 쪽이 좋을까요? 당신이 함께 하는 쪽이 좋을까요?”

혜성의 모습을 한 공주의 물음에 정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계속 절 불러내실 거라면... 이 아이에게 한 마디쯤은 해주시는 게 어떨까요?”

“다시는...”

“예?”

“다시는... 공주님을 불러내지 않을 겁니다.”

“오늘과 같은 일이 있어도요?”

“항상... 제가 곁에 있을 겁니다. 이렇게 되지 않게... 제가 있을 겁니다.”

“네에. 그러시겠죠. 책사라면... 그러시겠죠. 반드시...”

혜성은 그렇게 말을 마치고는 마루 위로 쓰러졌다. 선 채로 정신을 잃어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가는 혜성을 받아든 정혁이 마루 위에 누운 혜성의 이마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미안하다...”

거울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힘을 주던 진의 몸 이곳 저곳은 가벼운 상처가 생겼고,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아 제대로 밥도 먹지 못한 진의 몸은 허약 할대로 허약해져 있었다. 결국 그대로 차에 실려 병원으로 온 진은 나흘째 영양제를 맞으며 요양 중이었다. 이삼일은 병원에서 북적이던 기자들도 나흘째가 되자 다른 새로운 기삿거리를 찾아 사라져 병원은 다시 한산해졌다.

“진아. 매니저 형이 전화했어. 연락 안 해 줘도 돼?”

매니저까지 병실에 못 들어오게 한 탓에 매니저와 소속사에서는 애꿎은 선호에게만 전화를 해댔다.

“나... 일 그만 둘 거야.”

“뭐?”

“나... 사랑받으려고 시작한 일인데, 이제 사랑받는 기쁨보다 고통받는 괴로움이 더 커졌어...”

“하지만 너 이 일 좋아했잖아.”

“그냥... 다 귀찮아졌어. 모든 게 다... 싫어졌어... 그냥... 평밤하게 살래. 다시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갈래...”

“진아...”

진의 말에 선호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진을 바라봤다. 하지만 진은 멍하니 창밖만 바라봤다. 푸른 무늬의 병원복 아래로 나온 진의 손목은 여전히 가늘게 마른 모습이었다.

“전진.”

정혁의 부름에 병원의 잔디밭 벤치에 앉아있던 진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에서도 정혁은 전혀 덥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너... 진짜 일 그만 둘 거냐?”

“... 네.”

진은 다시 고개를 돌려 어린 아이들이 뛰어노는 잔디밭을 바라보며 작게 대답했다.

“피하는 거야?”

“... 네. 피하는 거예요.”

“그렇게 나약한 녀석이었냐?”

“네. 난 나약해요. 그래서 이제 못 견디겠어요. 이 생활도... 형도...”

담담한 목소리로 이어지는 진의 대답에 정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제... 다 포기해요. 그러니까 이제 안심해요.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까.”

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벤치에서 일어나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크게 한걸음 다가선 정혁이 진의 팔을 잡아 돌렸다. 그대로 빙글 몸이 돌아간 진은 정혁의 품에 안겼다.

“포기하지 마.”

“무슨...”

정혁의 말에 진은 의미를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정혁을 밀어내며 말했다. 하지만 정혁은 그대로 진을 안은 팔에 힘을 준 채 다시 한 번 말했다.

“포기하지 마. 나약한 녀석아.”

“이제... 지쳤어.”

진은 정혁을 밀어내던 팔에 힘을 빼고 축 늘어뜨린 채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잊었어? 내가 왜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는지?”

“그건...”

“난 도망가고, 넌 따라오는 거야.”

정혁의 이기적인 말에 진은 화가 나 정혁을 밀쳐내며 소리쳤다.

“그런... 그런 이기적인 말이 어디 있어요?!! 왜? 왜 항상 나만 따라다녀야 하는데?!! 이제 싫어! 싫단 말이야!!!”

“그럼... 이제 네가 도망다닐래?”

“뭐라고요?”

정혁의 의미를 알 수 없는 물음에 진의 얼굴이 더욱 구겨졌다. 농담이라면 너무 잔인한 농담이었다. 하지만 정혁의 눈은 진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말하고 있었다. 진심이라고.

“도망가 봐. 끝까지 따라가 줄 테니.”

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하는 정혁의 낮은 목소리에 진의 눈에는 점점 눈물이 차올랐다.

“... 나빠요. 형 진짜 나빠.”

진은 주먹 쥔 손으로 정혁의 가슴을 때리며 울먹였다. 정혁은 진의 작은 머리통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날 잊었던 너도 나빠.”

“그건...”

“반갑다. 꼬맹아.”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말하는 정혁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진은 팔을 뻗어 정혁의 등을 끌어안았다.

.

.

.

“담배. 다시 피우는 거야?”

비청원 건물로 들어오던 다린은 비청원 현관 앞에서 담배를 물고 있는 정혁을 발견하고 다가오며 물었다. 정혁은 긴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워진 담배를 내려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뭐...”

“근데 여긴 무슨 일이야?”

“별 거 아냐. 넌?”

“난 지난 번 있었던 일 마무리.”

“아아...”

정혁은 담배를 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번. 일이라면 정유의 파티에서 있었던 사건을 말하는 것이었다. 다린은 정혁이 기대고 있는 화단 옆에 기대섰다.

“정혁씨.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내가 안된다고 하면 안 물어 볼 거야?”

“물론 아니지. 그땐... 어떻게 된 거야?”

“뭐가?”

“별장에서. 정혁씨가 불러낸 거 비연 공주 맞지?”

“... 그래.”

다린의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정혁은 담배꽁초를 끄며 대답했다. 담담한 정혁의 대답에 다린은 눈을 크게 뜨며 몸을 돌려 정혁을 향해 빠른 말투로 물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어? 정혁씨가 어떻게 공주를 불러낼 수 있었던 거야?”

“난 못해.”

“그럼?”

“... 내가 말하면? 상부에 보고서라도 올리게?”

정혁의 말에 다린은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정혁은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악의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보호 본능이 깨어나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버렸다.

“미안...”

“아냐. 그럴만 하지, 뭐. 괜히 물어봐서 미안해.”

“전진.”

“뭐?”

“진이가 있어서...”

“그럼 역시 진이가 정혁씨의 상극인 거야?”

“응.”

“그래서... 그 동안 진일 모른 척 한 거구나?”

“응.”

“이제 진인 알아?”

“그때. 다 기억해냈어.”

“그래. 그렇게 정혁씨를 따라다녔으니... 근데 괜찮겠어?”

“뭐가?”

“진일 위해 혜성이 안의 공주를 깨운 사실을 민우가 알면... 가만있을 것 같아?”

다린의 물음에 정혁은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혜성인 모르지? 자기가 어떤 상태인지?”

“응.”

“민우는? 민우는 알아? 혜성이가 어떤 상태인지?”

“... 아니.”

“언제 말 할 거야?”

“... 조만간...”

정혁의 대답에 다린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정혁의 손가락에 끼워진 담배를 빼내어 입에 물었다.

“조만간 다 말 할 거야...”

정혁은 혼잣말처럼 말했다.

.

.

.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잔인한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여전히 윤곽을 드러내지 않는 탓에 국민들은 동요하고 있습니다. 경찰 관계자들 역시 지하 주차장 등 인적이 드문 곳에 혼자 가는 것을 자제 하도록 권유하고 있습니다.]

TV에서는 몇 주 전부터 일어난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례적으로 잔인한 수법으로 국민들은 공포에 떨고 있었다.

“이상한 게 왔어요.”

“뭔데?”

마트에 갔다 온 선호가 장바구니를 식탁위에 올려놓고 서류봉투에 담긴 소포를 내밀며 말하자 혜성이 물었다. 선호는 테이블 위의 칼을 들어 봉투를 뜯었다. 봉투에는 주소만 써 있을 뿐 받는 사람은 적혀 있지 않았다.

“비디오 같은데요?”

“누가 보낸 거야?”

“모르겠어요. 보내는 사람은 안 쓰여 있어요.”

“그래? 일단 틀어보자.”

혜성은 선호에게 건네받은 비디오 테잎을 플레이어에 넣고 재생 시켰다. 화면에는 CCTV화면으로 보이는 영상이 나타났다. 지하 주차장에는 1/3쯤 차가 주차 되어 있었고, 잠시 뒤 한 중년의 남자가 화면의 왼쪽에 주차된 차 옆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시동을 거는 순간, 또 한 인영이 나타나 번쩍이는 것을 휘두르며 남자의 팔을 잘라냈다.

“허억!”

그 끔찍한 모습에 선호와 혜성 모두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굳어버렸다. 하지만 영상 속의 인영은 계속해서 남자의 다른 쪽 팔과 두 다리를 차례대로 잘라냈다. 분수처럼 피를 뿜어내는 남자의 비명소리가 거실 가득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 비명조차 오래 가지 못했다. 남자를 처리한 인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천천히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조명 아래로 나온 인영은 CCTV 카메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저건...”

“마, 말도 안돼...”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는 사람은 민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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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돌아왔습니다.

핑계를 대자면 그동안 일도 바빴고, 그래서 아팠고, 또 복귀하느라 여행도 좀 다녔습니다.

한 달 정도 충전을 했으니 다시 글이 쑥쑥 나올 예정입니다.

그러고 보니 다른 분들께는 한 번도 말한 기억이 없는 것 같지만, 실은 제가 한달에 쓰는 분량은 딱 정해져 있거든요.

억지로 정하는 게 아니라, 매일매일 써도, 한 달에 한 번 몰아 써도 써 놓고 보면 분량이 똑같아요... 흐흐-

이번에는 퇴마연의가 종반을 향해 어떻게 갈지 고민하던 중이라 조금 늦었습니다. 다시 달려요~

꼬리의 힘! 이얍!!!

[유스라우메]

역시..........민우씨였군요. 요즘 코난을 봐서 그런지 얏빠리가 먼저 입에서 튀어나왔어요;;; 점점 흥미진진해지는 군요. 항상 그렇지만 뒷이야기 너무 궁금합니다. 재미난 글 항상 감사해요~~~^-^

[키키]

꺄 2등! 댓글 미리달고 보고 다시달꼐요~♥

[키키]

역시 민우씨였군요...............그 거울에서 봣던게 무엇일지 너무너무 궁금해요~~~~~~~~~ㅠ_ㅠ 너무 오랜만에 오셨어 깜짝놀랐어요! 자주자주 와주세요ㅠ_ㅠ잘 읽고 갑니다~~~

[망할휘르교]

역시 민우씨였어...그럼 혜성 오빠랑 진이 오빠는 무엇을 본걸까요? 다음편도 기다리고 있을께요.

[Orange]

오랜만에 너무 재밌어요 ㅠㅠ 혜성오빠가 거울에서 본장면이 왠지 알것같은....ㅋㅋ 흠..다음이야기가 너무궁금한데요 으헝 어떻게 기다려요 ㅠㅠ

[하현-_-]

민우가...ㅜ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용ㅋㅋㅋㅋ

[외계인]

헉 .......이럴줄알았엉 ㅠㅠㅠㅠㅠㅠ민우씨가 뭔가가 있더라니 . 음 . 뭐에 씌인건가 ;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재미있써용 ㅋㅋㅋㅋ

[perfumegreen]

진짜 러브님 절단신공 대박이시라는!! 이렇게 끝내버리면 궁금하잖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아아아아 또 어떻게 기다려요ㅠㅠ 징징징 너무 드러내놓고 물증이 생겨버리면 어떡하면 좋습니까;; 이런거 또 걱정합니다

[오렌지빛민셩]

역시......민우씨가 ;;;;; 너무 오랜만에 오셔서 눈물이 ㅜ.ㅜ 자주자주 오세요~

[봉봉이]

와우! 러브님 너무 오래 기다렸어요ㅠㅠ 드디어 무언가가 본격적(?)으로 시작 되는거죠?? 정혁이가 알고 있는 진실을 뭔가요? 너무 궁금해요!! 다음편도 기다리고 있을께요!!!

[율언니]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러브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너무 오랜만이셔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건필하세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재영군]

오랫만이에요 ^^* 많이 기다렸는데 이렇게 오셔서 정말 기분 좋네요 ~~ 그나저나... 점점 이 숨겨진 이야기가 궁금해지네요. 상극인 정혁씨와 진이씨 가모이면 어떻게 되는지도 궁금하구.. 혜성씨가 거울로 본 그 것과 이제 시작인 동완씨와 앤디씨.. 그리고 혜성씨 안에 있는 비연공주ㅠㅠ 정말 대박이에요 ㅠㅠ

[Morninglory]

왜이제오셨어요ㅜㅜ기다리다 목이빠지는줄 알았다구요ㅜㅜ.........앞으로의 내용이 점점 궁금해지는데요? 더불어 저 영상엔 뭔가 비리(?)가 있지않을까하는 소녀의 생각이...................소녀의 목이떨어지기전에 돌아오셔야해요-_-!꼭

[새컴해]

정말 목빠지는줄알았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런데 대체 민우오빠에게 무슨일이 생긴거죠 ㅠㅠ??? 어떻게 씨씨티비에 저모습이 잡히는거죠 ㅠㅠ?!?! 대체 뭔일이래요 이게 ㅠㅠ 글구 혜성오빠가 본건 무엇일까요 ㅠ ㅠ 글구 진이오빠와 정혁오빠가 이미 오래전에 만났었군요 ㅠㅠㅠ 악악악악악 담편이 궁금해죽겠어요 ㅠㅠ 건필하세요!!

[땡글]

으앙으앙! 완전 목 빠지게 기다렸어요ㅋㅋㅋㅋㅋ 간만에 기분좋게 읽고갑니다ㅋㅋㅋㅋ 아잉 벌써 다음편 궁금해서 잠 제대로 잘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ㅠㅠㅠㅠ 다음편도 기대할게요!

[즐거운하루]

핫핫핫핫핫핫~~~~ 그래요!! 돌아오셨어요~~~ 내일 개학이랍니다..... 우울했는데. 러브님땜에 괜찮아요~~ㅎㅎㅎ

[민누]

앗............ 민우씨가 그랬다니.... 뭔가가 씌였죠? 그랬죠..? 뭔가가 있을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다음편 읽으러 가야겠어요!

[미르]

오랜만에 보는 퇴마연의 ㅠ_ㅠ 러브님 기다렸어요... 진이랑 정혁씨가 나름 러블리 모드인것 같아 기분좋았으나.. 민우씨 일로 또 걱정이;;;;

[쫑ㅋ]

오랜만에!!ㅠㅠㅠ민우오빠가...ㄷㄷㄷㄷㄷㄷㄷ

[happy dream]

허억....... 그날.... 민우오빠가 그런일을 ㅠㅁㅠ 엄훠엄훠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것입니까 꺄악!!!!!!

[바다빛민우]

엑? 짐작은 했었지만,, 민우씨가,,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