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의 진산, 고려산(高麗山) (436m)
강화도 내륙에 위치한 고려산(436m)은 그리 높지 않지만 기세가 장엄하고 꿈틀거리며 뻗어나간 능선이 아름답다. 이 산은 고려가 강화로 천도한 후 토성을 쌓고 진산(鎭山)으로 관리했다. 진산이란 도읍이나 성시(城市)의 뒤쪽에 있는 큰 산을 주산으로 삼아 난리가 나지 못하게 하거나 난리를 제압하는 의미로 제사를 지내던 산을 가리킨다. 고려산에는 풍혈(風穴)이 있다. 풍혈이 있는 곳을 파면 큰 바람이 일어나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게 된다. 이를 무시하고 누군가가 풍혈이 있는 지점에다 묘를 쓰면 여지없이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고 한다. 이처럼 고려산에는 전해져 내려오는 구전과 전설이 많다.
장수왕 4년(416년)에 진(晋) 나라의 천축(天竺) 스님이 고구려 땅을 찾아 왔다. 천축 스님은 장수왕을 만나 절을 짓게 해 달라고 청을 넣었다. 왕의 허락을 받은 스님은 절터를 찾아 길을 떠났다. 그러나 좀처럼 좋은 터를 만나지 못했다. 스님은 강화도에 이르러 잠을 자다가 꿈에 백발노인 만났다. 스님은 노인에게 계시를 받고 이 산으로 올라갔다. 정상에 연못이 있었는데 그곳에 적(赤) ․ 황(黃) ․ 청(靑) ․ 백(白) ․ 흑(黑) 등 5가지 색깔의 연꽃이 피어 있었다. 천축 스님은 다섯 가지 꽃잎을 따서 산 위에서 날려 보냈다. 꽃잎은 산 아래로 날아가 떨어졌고 스님은 그 다섯 군데에다 절을 지었다. 그런 연유로 해서 산 이름이 오련산(五連山)이었는데 고려가 천도한 후 고려산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고려산 자락에는 지금도 백련사, 적석사, 청련사가 남아 있고 정상 북쪽에 오련지(五連池)가 있다.
고려산에 얽힌 대표적인 구전 중의 하나는 연개소문과 음마천(飮馬泉)이라고 부르던 오정(五井)이다. 연개소문은 고구려 영양왕 초년(603년)에 강화북부지방 동나음현(현 하점면) 대인(현 군수) 태조의 아들로 태어났다. 연개소문은 어릴 때부터 말을 타고 고려산 정상까지 올라가서 무술을 익혔는데 정상 부근에 있는 다섯 군데의 우물에서 말에게 물을 먹였다. 나중에 원의 사신들이 강화로 들어와서 고려산 사방에다 큰 칼과 못을 박고 다섯 군데의 우물에도 큰 못을 박고 흙으로 덮었다. 연개소문과 같은 영웅이 다시는 태어나지 못하게 하려는 영산에 대한 투기와 시기 때문이었다. 고려산 서북쪽에 위치한 시루미봉(지형이 시루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에 연개소문 집터가 있다.
진달래와 억새와 해넘이의 명소
고려산 정상에는 레이더 기지가 있다. 그뿐만이 아니고 또 다른 군 시설물과 부대가 있다. 그로 인해 고려산은 오랫동안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은 은둔의 산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던 것이 2003년의 진달래 축제를 기점으로 해서 산의 진면목이 드러났다. 진달래 축제는 인터넷 사이트 ‘강화로닷컴’을 운영하는 윤용완 씨에 의해 계획되었고 군청의 협조를 얻어 시작됐다.
산행은 원점 회귀보다 능선을 횡단하는 것이 좋다. 강화읍을 지나 서문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바로 국화저수지가 나온다. 저수지 위쪽에 국화교회 있고 그곳에 청련사로 가는 돌 이정표가 서 있다. 여기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좁은 길로 올라가면 청련사 주차장이 나온다. 이곳에 차를 세우고 청련사 돌담을 끼고 우측으로 난 등산로로 오르면 된다. 등산로는 가파르지 않은 흙길이다. 2.5km를 40여분 동안 걸어서 올라가면 고려산 정상이다.
진달래군은 정상 헬기장에서 낙조봉 쪽으로 뻗은 북쪽 능선과 기슭에 수만 평의 너비로 형성되어 있다. 천상의 빛깔 같은 진달래의 진분홍 색깔과 독특한 향기에 취해 모두 탄성을 자아낸다. 이곳에 이르면 사람들은 좀처럼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발품을 조금 팔아 능선에 오르면 누구나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작은 행복감을 맛볼 수가 있다. 차가운 해풍을 맞고 피어나서 그런지 고려산 진달래는 색깔이 강하다. 강화도는 기온이 낮아서 4월 중순이 되어야 진달래가 피기 시작한다. 따라서 마산의 무학산, 창녕의 화왕산, 여천의 영취산 등지에서 진달래를 본 후에 고려산을 찾아도 늦지 않는다. 정상에서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북쪽으로 100여m 내려가면 군부대 앞에 있는 오련지를 만날 수 있다. 우물처럼 석축을 쌓아 보호되고 있는 오련지 앞에 서면 그 옛날 천축 스님이 연꽃을 건져 바람에 날리는 광경이 그려진다.
진달래 능선에서 낙조봉 쪽으로 내려가면 7부 능선에 고인돌군이 형성되어 있다. 강화도에 고인돌군이 여러 곳에 있는데 이곳 능선의 고인돌은 낯설다. 하지만 고인돌이 만들어지던 선사시대에는 고려산 아래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으니 이해 못할 것도 없다.
고인돌군을 벗어나 소나무 숲길을 지나면 억새 능선이 나온다. 가을에 가면 억새 정취에 취해 고려산의 새로운 면모를 알게 될 것이다. 이 지역에는 봄에 할미꽃이 많이 핀다. 여기서 적석사로 곧장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지름길로 택하면 낙조봉(343m)으로는 갈 수 없다. 고려산에 왔다면 누가 뭐라고 해도 해넘이를 보아야 한다. 그러려면 지름길 말고 오르막길로 가야 한다. 이곳에서 5분간 올라가면 서해가 탁 트여 보이는 낙조봉에 이르게 된다. 이 지점에 명신초등학교와 미꾸지고개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다. 등산객 중에는 미꾸지 고개에서 출발하여 낙조봉→고인돌군→진달래 능선→정상→청련사로 내려가는 종주 코스를 택하는 사람도 있다. 미꾸지 고개는 고려산 서쪽의 가장 끝부분인데 꽃을 엮은 것과 같다 하여 산화(山花)마을로 불려지는 마을에 있다. 이곳에 산화휴게소(구멍가게)가 있고 두세 대의 차를 세워 둘 공간이 있다.
낙조봉에서 해넘이를 보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이곳에서 능선을 타고 남쪽으로 7분 정도 내려가면 제대로 된 일몰을 볼 수 있는 낙조대가 나온다. 연말이면 낙조대에서 해넘이 행사가 치러진다. 낙조대에는 적석사에서 조성한 해수관음보살과 조망대가 있다. 바다와 점점이 흩어져 있는 섬을 붉게 물들이는 광경은 조물주의 조화가 아니면 보기 어려운 장관이다. 감동으로 붉게 물든 가슴을 안고 해수관음보살께 작은 소망이라도 빌면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이곳의 낙조는 강화 8경 중 하나다.
낙조대에서 500여m 떨어진 곳에 적석사가 있다. 이곳에서 택시를 불러 산행 시작할 때 차를 세워 둔 청련사로 가면 하루의 산행이 끝나는 것이다. 강화 개인택시 연락처는 032-934-7898이다. 버스를 이용하려면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군내버스의 운행 시간이 뜸하기 때문이다.
산행 거리는 약 6km이고 도보로 9500보 정도 된다.
등산로
1. 백련사 주차장 → 도보로 20분 거리에 정상 → 백련사 주차장
2. 적석사 → 낙조대 → 낙조봉 → 고인돌군 → 정상 → 청련사
3. 청련사 → 정상 → 고인돌군 → 낙조봉 → 적석사 또는 미꾸지 고개
4. 연촌마을(적석사 입구) → 고인돌군 → 정상 → 청련사
5. 미꾸지 고개 → 낙조봉 → 고인돌군 → 정상 → 청련사
※ 1번 등산로는 진달래 관광을 위한 나이든 분들에게 적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