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시(主知詩)
인간의
지성을 주로 그리는 시. 기지(wit), 풍자(satire), 아이러니(irony), 역설(paradox) 등 지적 작용이 크게 된다. 문명
비판 의식 또한 주지시의 중요한 요소이며, 흔히 주지주의, 모더니즘, 이미지즘 등으로 불리는 계열의 시인들이 사물을 관찰하고 노래하는 데 있어서
지적 요소를 강조하는 까닭에 그들의 작품 중에 주지시라 할 수 있는 것이 많다. 주정적인 시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주정시가 느끼는 시라면
주지시는 생각하는 시이고, 주정시가 노래하는 시라면 주지시는 만드는 시다.
【주지파】-
모더니즘.Modernism
자유분방한
감정의 억제, 지성과 이미지를 중시하며 회화성을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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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1934년 최재서의 이론 도입, 김기림, 김광균, 장만영 등.
주정적(主情的)인
시에 비하여 지성을 더 존중하는 입장에서 쓴 시. 종래의 낭만주의적 시 작품이 감정과 정서를 중시하고 언어의 음악성을 강조한 데 반하여 주지시는
주지주의적 입장에서 냉철한 지성을 바탕으로 하여 범람하는 감정을 억제하고 이미지와 언어의 회화성을 강조했다.
한국에서는
이와 같은 영미(英美) 계통의 주지시의 이론을 1930년대에 최재서(崔載瑞)가 소개하더니, 김기림(金起林)이 이를 적극 주장, 실천하여 한국시에
새로운 풍토를 조성하였는데, 작품으로 결실을 거둔 이는 김광균(金光均)이었다. 주지적 모더니즘으로 불렸던 이들의 영향은 6ㆍ25 전후를 통해서
새로이 일어났으니, 1951년 후반기 동인들이 [현대시연구회]를 조직하고 전통적인 기성의 미학에 반기를 들었는데, 그들은 주로 초현실주의적인
공통의 경향을 띠었으며, 논리적인 구성미의 탐구를 통해서 포에지를 포착하려고 했다.
당시의
멤버는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이라는 동인지를 냈던 조향(趙鄕), 김경린(金璟麟)을 비롯한 박인환(朴寅煥), 김규동(金奎東),
이봉래(李奉來), 김차영(金次榮)이었다. 이 모임은 1953년 12월에 해체되었으나, 그 영향은 자못 컸다. 그 후로는 이활(李活),
박태진(朴泰鎭), 전봉건(全鳳健), 김구용(金丘庸), 김수영(金洙暎), 김상화(金相華) 등이 활약하였고, 그 이후엔 장호(章湖), 이일(李逸),
성찬경(成讚慶) 등이 이 계열에 드는 작품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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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抒情詩)는
원래 인간의 순수한 감정을 가장 솔직하게 노래하는 주관적(主觀的)인 형태에 속한다. 따라서 그 소재나 표현은 자연 감동적(感動的)이다,
서정시(抒情詩)에는 지적(知的)이며, 객관적(客觀的)인 사실이 크게 작용할 수가 없다, 철저한 정서(情緖)와 이러한 세계를 작관(直觀)하는
심상(心像)이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세계로 승화(昇華)된다. 그러나 초기의 서정시는 이러한 정서(情緖)나 직관(直觀)에 미치지
못했다.
1920년대
[백조)白潮)] 문학이 홍사용(洪思容)ㆍ이상화(李相和)나 한국의 독특한 김소월(金素月)ㆍ김영랑(金永郞)의 작품세계는 그 자체에서 발상(發想)한
감정의 경험에 의해서 이를 직관(直觀)하고 승화시킨 서정시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서정시의 바탕을 이룬 주관적(主觀的)인 감정은 정서의
파(波動)동으로서의 음악과 직결된다. 인간의 오관(五官) 중에서 가장 발달한 청각기관(聽覺器官)에 의해서 감정이 표출(表出)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서정시이다. 따라서 서정시는 시인이 자기 자신을 향해서 노래하는 소리의 문학이며, 동시에 철저히 주관적(主觀的)이며, 주정적(主情的인)
것이다.
그런데
이 서정시에서 지성(知性)이 문제가 된다. 지성이란 인간이 사물에 대한 인식으로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시에 있어서 지성이라 함은 현실에
대한 의미의 깊이를 이성(理性)으로 측량하며, 표현하려는 것이다, 엘리엇(Thomas Eliot)은 지성을 가리켜 ‘인상을 언어로 표현하는
찰나 이를 분석하며 구성하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했다. 즉 어떤 대상에서 느낀 감정 상태를 시로 표현하는 경우 그 감성을 조직화하고 통일화하여
질서를 세우는 것이 바로 지성임을 말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에 입각한 지성적)知性的)인 시는 과거의 서정시가 감정과 정서의 직관적 표현만으로 개인적인 감동에 치우쳐 버린 것과는 달리, 절실한 감정의
체험을 냉정한 태도로 사고(思考)하여 정신적 노력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즉 정신적 노력이란 지성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시로서 냉철하고 거의
과학서(科學性)에 가깝다. 이렇게 말할 때 현대시는 엘리엇의 말대로 감성(感性)의 첨단에서는 지성(知性)이 주체가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엘리엇은 시에 있어서 지성의 작용은 독자의 감동을 방해하는 것이라는 인습적(因襲的)인 관념을 맹렬히 반대하면서, 지성만이 신의 사랑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 형식과 내용에 혁명을 일으켰는데, 이것이 바로 주지시(主知詩)이다.
김기림(金起林)은
그의 시론(詩論)에서,
“오늘의
시인은 인공적(人工的)이며, 부자연스러운 리듬에는 일고(一顧)도 보내지 않고, 언어의 가장 자유스러운 구체적 상태에서 시적 관계를 발견하는
것이다.”
라고
했다. 엘리엇도,
“지성(知性)과
감성(感性)의 혼합을 마침내 정서의 매개(媒介) 없이 직접적으로 사고(思考)에 의하여 표출시키는 것이 주지시(主知詩)이다.”
라고
했다. 이러한 결과로서 표상(表象)된 시는 가끔 통일된 의미의 세계에서 전혀 동떨어지며, 그것이 다만 우리의 사고(思考)의 세계에서만
느껴지는데, 이를 가리켜 주지시(主知詩)가 난해(難解)하다고 일컬어지게 된다.
1930년대
한국 시단(詩壇)에서 엘리엇와 에즈라 파운드 등의 영향으로 주지주의(主知主義)가 도입되어 김기림(金起林)ㆍ김광균(金光均)ㆍ정지용(鄭芝溶) 등이
주지시(主知詩)를 개척했으며, 평론가 최재서(崔載瑞)와 백철(白鐵) 등이 주지주의의 이론을 전개했다.
정지용은
동양적 사상에 날카로운 예지(叡智)의 비판적 안목(眼目)이 깃든 기교에서 주지시를 시도했으며, 김기림은 보다 많이 엘리엇의 사상을 받아들였고,
김광균은 서구적(西歐的)인 정경(情景)과 인간 본래의 예지(叡智)와 동양의 적막사상(寂寞思想)을 바탕으로 하는 주지시(主知詩)를 전개해 나간
것이다,
한국의
주지시는 이처럼 정지용ㆍ김기림ㆍ김광균 등에 의해서 이루어졌으나, 다다이즘과 쉬르레알리즘에 영향을 받은 주지시인(主知詩人)으로 이상(李箱)과
서정주(徐廷柱)가 있다. 이상(李箱)은 잠재의식(潛在意識)의 세계를 파고들어 기괴(奇怪)한 방법과 기교로 주지시를 시도했으며, 서정주는 초기에
있어 육성(肉聲)의 노래를 한꺼번에 쏟아놓은 인생의 기묘한 한국적 정신을 주지적 경향으로 옮겨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는 후기에 들어서서
이와는 거리가 먼 주정적(主情的)인 서정시의 세계로 옮겨갔다.
이러한
주지시ㅡ이 흐름은 1950년대 이후에도 이어져
김경린(金璟麟)ㆍ박인환(朴寅煥)ㆍ이봉래(李奉來)ㆍ김수영(金洙暎)ㆍ김규동(金奎東)ㆍ한무학(韓無學)ㆍ김광림(金光林)ㆍ김종삼(金宗三)ㆍ조향(趙鄕)
등에 의해 계승되었다.
그러니
주지시는 1930년대 한국 시단에서 가장 활발하게 꽃을 피웠다. 특이한 감성의 창문을 열러 현대인의 지적 세계를 민감하게 받아들여 사색과 감각의
오묘한 결합으로 새로운 시의 경지를 개척한 것은 역시 정지용ㆍ김기림ㆍ김광균 근 세 시인이었다.
<폭포>
산골에서
자란 물도
돌베람박
낭떨어지에서 겁이 났다.
눈뎅이
옆에서 졸다가
꽃나무
아래로 우정 돌아
가재가
괴는 골작
죄그만
하늘이 갑갑했다.
정지용의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한국 특유의 정서와 감정이 내포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형태에 있어서도 시조와 접근된 것을 볼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여백 있는 동야오하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재가 괴는 골작, 죄그만 하늘이 갑갑했다.’라는 표현은 가재의
지적(知的) 작용이 시인의 지성 일치되고 있는 것이다.
<병든
풍경>
지치인
바람은 지금
표백된
풍경 속을
썩은
탄식처럼
부두를
넘어서
찢어진
바다의 치막자락을 거두면서
화석된
벼래의 뺨을 어루만지며
주린
강아지처럼 비틀거리며 지나간다.
김기림의
<병든 풍경>에서도 볼 수 있듯이 바람이 동물로 의화(疑化)되어 마치 생명 잇는 물체와 같은 동작을 느끼게 한다. 그의 이미지가
엘리엇의 안개와 연기가 동물화된 것과 비슷한 것을 보면, 엘리엇의 서구적 기질에 강한 영향을 받았으나, 어디까지나 그의 지성은 한국적 풍토
위에서 주지정신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주린 강아지처럼 비틀거리며’라는 시구에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1930년대의 주지시의 경향이 1940년대에 이르러서는 영국의 엘리엇의 경향으로 떠나 프랑스의 다디이즘과 쉬르레알리즘 계통의 영향을 받아
이상(李箱)과 서정주가 1930년대 전기와는 다른 주지시를 시도했다. 이상(李箱)은 잠재의식의 자동기술법(自動記述法)에 의한 심리주의적인
쉬르레알리즘의 지성을 도입했으며, 서정주는 세기말적인 탐미주의(眈美主義)와 육성의 노래로 휴머니즘을 구가했다.
<최후>
능금한알이추락(墜落)하였다.
지구(地球)는부서질정도(程度)만큼상(傷)했다. 최후(最後).
이미여하(如何)한정신(精神)도발아(發芽)하지아니한다.
이
시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밑바닥에 깔린 잠재의식이 어둠 속으로 깊숙이 가라앉아 백일몽(白日夢)과 같은 환각과 역구성의 기괴한 이미지로
자동기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즉 감각의 착란과 개관적 우연의 모색이 빚어낸 상식성의 파괴를 쉬르레알리즘 특유의 상징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는 무서우리만큼 기성 가치나 인식에 대한 반항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 김해성(金海星) : <한국현대시문학개관>(19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