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평행우주 고구려를 엿보다
- 이경순, 『고구려 아이 가람뫼』, (파랑새, 2021)
성질 급한 떡갈나무는 그새 언덕을 갈색으로 물들이며 가을 문턱을 넘고 있었다. (15쪽)
『고구려 아이 가람뫼』 시작 부분이다.
지구는 1년에 한 번 태양 주위를 돌고,
이 책이 출간된 2021년으로부터 지구가 태양을 1500번도 넘게 공전하기 전인
고구려 땅에도 가을은 이렇게 왔을 것이다.
디지털 현실인 메타버스가 아직 보편화되지 않은 시점에서,
디지털 트윈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컴퓨터 안에 나와 같은 표정을 짓고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는”
또 하나의 나를 만드는 사람이 우리나라에서도 확인된다.
“채팅 로봇 시스템, 얼굴 생성, 음성 생성”이라는 세 가지 기술을 융합하여
디지털 트윈을 만드는 이 사람을 아마존 원주민 조에족과 나란히 세우면,
21세기 지구에는 미래와 과거가 공존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고조를 찾아서」에서는
역사 공부를 위해 주인공이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하지만,
『고구려 아이 가람뫼』를 펼친 독자는 고구려 시공간에 뚝 떨어지고 만다.
2018년 지구와 2081년 지구를 평행우주로 설정한
『우주로 가는 계단』에서처럼 평행우주마다 시간이 서로 다르게 흐른다면,
가람뫼가 살고 있을 어느 평행우주를 떠올려도 좋을까?
(중략)
작가는 하루빨리 벽화를 되찾아서
건강한 모습의 가람뫼를 만날 수 있도록 소망하는 마음으로
『찾아라, 고구려 고분 벽화』를 썼다고 한다.
그런데 가람뫼의 능력으로 시간의 통로를 열어
동맹 대회와 안시성 싸움을 직접 체험했던 1997년 6학년 사총사가
서른여덟 살이 된 2022년까지 벽화를 찾지 못했다.
그러나 이경순 작가는,
『고구려 아이 가람뫼』에서 잃어버린 고분 벽화를 환기시키는 대신
독자들을 아예 고구려로 데리고 가서,
기원전 37년부터 기원후 668년까지 존속한 왕국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깨닫게 만든다.
여기에서 화공이 되고 싶은 마오리가
“하늘의 별자리, 천부경, 역사 이야기……,
많이 알면 그림도 훨씬 풍성하게 그려 낼 수 있을” 것 같아서 경당에 나온다면서
슬쩍 끼워 넣은 천문도는 이스터 에그(easter egg)처럼 보인다.
“현재 남아 있는 고구려 고분 중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은 모두 95기다.
그 가운데 22개의 고분 천장에 별자리가 있다.
… 고구려 천문도의 흔적이 다시 발견된 것은
그로부터 천 년 후 조선초 태조 4년(1395)에 만든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이다.
“오래전부터 우리 선조들은 거대한 무덤 돌 덮개에 이 북두칠성을 새겼다.” (75쪽)
작가가 고구려 3부작을 생각하며
『찾아라, 고구려 고분 벽화』 본문에서 ‘시간 여행’을 언급하고
『고구려 아이 가람뫼』에서는 별자리 이야기를 꺼낸 까닭에,
3부는 앞으로 지구가 1500번쯤 더 공전한 시공간일 수도 있겠다는
짐작을 하게 된다. 즐겁게 기다린다.
첫댓글 올려주신 글 읽으며 서평 한편을 완성하기까지 만만찮은 품을 필요로 하겠단 생각이 드누만요~.
'언젠가' 쓰리라 다짐한 3부인데, 덕분에 '조만간'으로 바꿔얄까 봐요.^^
늘 깊고 넓게 읽어주셔서 감사한 맘 한가득입니다~. 초록 숲 보며 눈 건강도 잘 챙기서요~.💝💝💝
ㅎㅎㅎ
'언젠가' 읽을 수 있을 책을 '조만간' 읽게 되면 기쁘겠어요.
내 맘대로 15세기를 훌쩍~! 작가는 맘대로 쓰고, 독자는 맘대로 읽고~. ^^
"로젠탈 효과(Rosenthal effect)는
독자(비평)와 작가 관계도 설명 가능할 것이다.
관찰자-기대 효과는 작가로 하여금 더 좋은 작품을 창작하게 이끄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