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뿌린 대로 거둔다.' 이 격언은 다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열심히 일하는 농부가 많은 수확을 누리듯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으며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최고의 방법이란 뜻도 있겠지만, 보통 ‘당신이 행한 것이 그대로 당신에게 돌아온다.’라는 뜻이 대표적이다.
어쩌면 이렇게 뿌린 대로 거두는 세상이 가장 공평한 세상이리라. 그런데, 종종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일제 강점기, 친일에 앞장서던 조상을 둔 후손들은 당시 조상이 얻어둔 재산과 지위로 아직까지 호의호식 하는 경우도 많은 반면,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지금까지도 생계 자체를 이어나가기가 어려운 경우도 많다. 또 많은 사람을 학살한 어떤 사람은 아직까지 건강하게, 또 여유 있게 떵떵거리며 사는 모습이 텔레비전 뉴스에 종종 등장하기도 하며, 그때마다 여러 사람의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럼에도 과연 세상의 이치는 악인과 선인을 구별하여 악인에게 벌을 내리고 선인에게 복을 내린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세상의 이치나 조물주가 그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뿌린 대로 거두게 되는 걸까?
오늘은 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황제, 왕, 그리고 그 다음 가는 지위가 바로 공(公)이다. 중원을 통일한 조조는 위공(魏公)에 자리에 오른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위공에 오른 조조의 위세를 왕은커녕 천자도 미치지 못했다고 전한다. 그렇게 되자 조조는 천자를 업신여기기 시작하고, 방자하게 굴어 황제를 모시는 신하들은 이를 한탄했다고 한다.
그러자 황제의 아내이자 황후인 복황후는 허수아비로 전락한 자신의 지아비를 위하여 계책을 내어 놓는다. 자신의 아버지인 복완에게 부탁하여 거사를 일으키기로 하고 일을 꾸민 것이다. 하지만, 과거에 이미 동승 등 외척들에게 데인 전적이 있던 조조는 이러한 외척들에 대한 방비해두고 있었고, 결국 이들의 계획은 쉽게 들통 나고 만다.
이에 분노한 조조는 복씨 가문의 3족을 모조리 잡아 가두고 복황후의 옥새를 거둔다. 복황후를 잡아오라는 조조의 명령을 받은 상서령 화흠이란 자는 숨어있는 복황후를 찾아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끌었다.
황제인 헌제는 달려나와 이렇게 끌려가는 복황후를 끌어안고 통곡했지만, 이를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조조에게 끌려간 복황후는 황후임에도 불과하고 몽둥이로 맞아 죽음을 맞게 된다. 또한 그녀가 낳은 두 왕자도 독살한다.
그 외에도 황후와 복완 사이에서 심부름꾼 노릇을 하던 목순과 그의 가족 2백여 명도 모조리 죽임을 당한다.
이렇게 절대 권력을 누리고, 또 이를 효과적으로 방어하던 조조도 결국 천명이 다해 사망한다. 이 뒤를 이은 조조의 장남 조비는 황제인 헌제를 폐위하고 스스로 황제에 오른다. 이렇게 400년을 이어져 내려오던 한나라는 멸망하고, 이제 위나라의 시대가 온다.
그사이 제갈량의 북벌을 여러 차례 막아내며 능력을 입증한 사마의는 위나라의 중신이 되고, 조비와 그를 이은 조예까지 사망한 뒤에는 권세를 잡게 된다. 그도 결국 늙고 병들어 죽게 되나, 아들인 사마사와 사마소가 그 뒤를 이어나가 위나라는 사마씨의 수중에 놀아나게 된다. 조예가 젊은 나이에 죽은 까닭에 이때 위나라의 황제는 8살 무렵 황위에 오른 조방이었다. 사마씨의 세력이 워낙 강대한데다가 황제의 나이까지 어리니 사마씨 형제를 제어할 수단은 없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이에 사마사는 과거 조조가 헌제에게 했던 것처럼 조방을 몰아세운다. 원통한 조방은 황후의 아버지인 장즙과 공모하여 사마사를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과거 조조가 복완 등의 모반을 쉽게 알아냈듯, 사마사 역시 이들의 모반 계획을 알아차린다.
조방은 장즙의 딸이자 자신의 아내인 장황후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지만, 사마사는 끝내 황후의 목숨을 거둔다.
훗날, 황제가 되어 삼국통일을 이루는 사마염은 “이 나라는 본래 한나라의 것이다. 그런데 조조가 스스로 위왕에 올라 한실을 찬탈했다. 우리 할아버지(사마의)는 3대에 걸쳐 위를 도와 오늘이 있게 했다. 지금의 위가 있는 것도 우리 사마씨들이 잘해서이지 조씨들이 잘해서가 아니다. 너희들이 한을 빼앗았으니 나는 한을 위해 원수를 갚으려 한다. 안될게 뭐 있겠느냐.” 라고 말하고 진나라의 황제에 오른다. 400년 걸친 한나라를 찬탈한 조씨 일가는, 자신들이 벌였던 일과 너무도 유사하게 사마씨에게 나라를 넘겨주고 만다.
헌제를 핍박하고 황후를 살해한 조조의 행동과 사마사가 조방에게 행한 행동은 놀랍도록 일치한다. 조조의 업보가 그대로 몇 대를 지난 후손에게 전해졌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위의 사례가 오랜 기간에 걸쳐 나타난 ‘뿌린 대로 거두기’ 라면, 짧은 기간에 나타난 예를 몇 개 보자.
- 한중의 제후인 장로의 부하 양송은 그 뇌물을 좋아하는 성품 때문에 마초와 방덕 등을 장로와 이간질 하여 각기 유비와 조조에게 항복하게 만든다. 또한 훗날에는 장로를 속여 밖으로 싸우러 나가게 한 뒤, 조조에게 성을 들어 바친다. 하지만, 조조는 항복한 양송에게 상을 내리기는커녕, 목을 베어 버린다.
- 촉한의 간사한 환관 황호의 이야기도 있다. 뇌물을 받고 관직을 파는 등의 행동을 하고, 유선을 추동하여 촉나라를 어지럽혔다. 그러나 그도 촉나라가 멸망한 뒤에는 저자거리에서 능지처참 당했다고 전해진다.
위와 진의 이야기처럼 행한 일과 받은 벌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악행을 행하던 이가 결국 벌을 받았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벌을 받은 사례 말고 비록 적이었으나, 선처를 받은 사례도 많다. 여포의 참모 진궁, 원소의 참모 심배 등은 조조의 적으로 집요하게 그를 괴롭히다 사로잡혔으나 끝내 항복하지 않고 절개를 지켰다. 이에 감동한 조조는 그들의 유족을 후대했다고 한다.
이렇게 삼국지 속에서는 착한 일을 행한 자는 상을 받고, 못된 일을 행한 자는 벌을 받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야말로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다.
이로부터 2천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오늘날은 어떠한가. 자본주의로 경제적 부를 축척하고, 민주주의로 정치적 발전을 얻었다는 현대는 과거에 비하여 ‘뿌린 대로 거둔다.’는 원칙이 잘 적용되고 있을까?
당연하겠지만,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시대와 같은 왕이나 제후들이 ‘즉각적으로 만드는 법’ 보다 안정된 법제도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이기에, 개개인의 권리를 보호받기는 훨씬 쉬워지고 절차도 갖추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과하고 우리는 아직까지 ‘역사적 심판이 따르리라.’라는 말을 놓지 못한다. 이 말은 곧 악인에 대한 심판이 잘되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뿌린 대로 거두는 원칙’과 ‘역사의 심판이 따르리라는 말’은 같아 보이지만 사용에 있어서 좀 다르게 쓰이는 것 같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그 말 속에는 뿌리는 일을 하는 주체가 인간으로 보인다. 글의 서두에서도 밝혔지만, 이 말은 사람의 노력여하에 따라 그 결과를 얻는다는 소리니 열심히 해야 한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 심판이 따르리라’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역사를 만드는 주체는 인간임에도 불과하고 이런 말을 들으면 마치 악인에 대한 하늘의 천벌이 내려지리라는 말과 뉘앙스가 더 비슷해 보인다.
결국 역사의 심판이 따르게 하려면 먼저 역사를 이끄는 주체가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히 해두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을 길러내기 위한 경제적, 사회적 환경 조성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우리는 막연히 “악인에게 역사의 심판이 따르기 마련이니, 화가 나지만 언젠가 저 사람도 벌을 받겠지.”라며 기다리기만 하고 있다. 심판을 내릴 후손들을 길러내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후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의 일들을 잊어 갈 테고, 결국 완전히 잊히고 만다. 정말로 하늘이 벼락을 내려 그 사람을 망하게 할 때까지 역사적 심판은 멀어져간다.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이후, 우리는 일제에 빌붙어 민족을 탄압하던 이들을 제거해야만 했다. 피의 숙청은 아니더라도, 우리 민족이 직접 나서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는 등 자발적으로 해결을 하여 결론을 지었어야 할 문제인 것이다. 그렇지만, 서구 열강의 가세 및 국가재건을 위한 인재들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 등이 맞물려 친일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이러한 문제들이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문제를 만들어 낸다.
사실 친일에 관한 문제라면 좌우할 것 없이 함께 해결해나갔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남북이 이념으로 갈라서고, 또 전쟁까지 치르면서 일이 복잡하게 꼬여나갔다.
본래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 ‘진보’란 시장경제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집단이다. 빈부격차문제의 해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지원을 위하여 국가가 나서서 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대로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 ‘보수’란 시장의 기능과 보이지 않는 손을 신용하여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시장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국가의 개입은 필요가 없고 그냥 그대로 놔두는 것이 좋은 것이라 한다.
문화적 부분에 있어서 ‘진보’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길 꺼려하지 않고, 상대주의를 중시한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치달을 경우 식인 등의 문화까지 긍정하게 되는 약점을 가진다. 문화적 부분에 있어서 ‘보수’란 전통을 존중하고 계승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역시 극으로 치달을 경우 극심한 수구로 인해 발전이 불가능해진다.
이 두 가지 주장은 둘 다 스스로의 논리를 담고 있고, 상당히 합당해 보인다. 그렇기에 현대에는 극단적 진보와 극단적 보수는 존재하기 힘들고, 타인에게 공감을 얻기 힘들어 살아남기도 어렵다. 결국 둘의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위에서 살펴본 역사적 특수성 때문에 이러한 진보와 보수의 개념이 통용되지 않는다. 빈부격차를 줄이고 못사는 사람을 도와주자라는 진보의 주장은 ‘북한 빨갱이 같은 소리’로 탈바꿈 하고, 시장을 믿어보자는 보수의 주장은 ‘기득권층 1%’로 매도된다. 그리고 이러한 변질된 좌우의 다툼은 친일인명사전의 편찬에 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 사전에 등장하는 인물의 후손들은 민망함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테니, 그 사전에 등재되는 인물이 엄정하게 선정 되어야 함은 당연하겠지만, 사전편찬여부와 사전등재인물에 대해서까지 진보니 보수니 하며 싸워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런 어른들의 부질없는 싸움은 후세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되어, 우리사회는 당연히 청산했어야할 친일에 관한 문제를 잊게 될 것이다. 그래놓고 역사적 심판을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다. 차라리 굿판 벌이고 천벌 받게 해달라고 비는 편이 나을듯하다.
그대들이 뿌린 대로 거두기를 바라며, 과거에 비추어 오늘을 기록해 나가야 한다. 그게 역사가 필요한 이유일 테니까 말이다. |
첫댓글 친일파 이야기가 나와서 순간 욱해서 한마디. 이숭만 정권을 지탱한 많은 핵심 인물들은 과거 친일 또는 부일에 몸 담았던 인사들입니다. 아이러니하게 이승만 정권의 몰락을 가져온 마산 사태 때(3월 15일) 군중에 대한 총격을 명해서 마산 시만 5명을 죽이고 30명을 부상 입히고 김주열 시체를 바다물에 수장시킨 자도 아라이 긴빼이라고 불리던 박종표라는 친일 경찰(과거 헌병대)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당성을 조작하기 위해 파출소에 불을 지르고 그 죄를 학생들에게 뒤집어 씌워서 1주일간의 고문끝에 자신들이 공산당의 지령을 받은 간첩이라는 것과 김일성 만세 이승만을 죽이자 등을 모의했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나이 어린 학생들이 무자비한 친일 고문 전문 경찰관한테 잡혀가서 1주일을 고문을 당했는데 못 들을 자백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른들도 하루면 다 자백을 하고 싶을 텐데요. 그 무시무시한 고문 경찰들한테 고문기술을 배운 악덕 경찰들이 박종철학생을 고문하다 죽였습니다. 아무튼 우리가 우리 힘으로 독립을 쟁취했다면 안 일어났을 민족의 비극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아직도 일제 시대 자신들이 백성에게 강제로 , 불법적으로 빼앗은 재산을 자기 소유라고 주장을 하고 있고 자신들의 행동을 미화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습니다. 해방 후 미군에 붙어서 다시 이승만에 붙어서 그렇게 정경 유착이라는 더러운 고리로 생명을 이어 나가는 저들. 저들도 언젠가는 그 역사의 심판을 받을 날이 있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