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까지 계속 이어진 가을장마땜에 매주 주말마다 비가 오는 통에 제대로 기행을 못하고 있다가
천고마비의 화창한 날씨를 자랑하는 10월에 들어 경북 성주군에 2020년11월 새롭게 단장하여 개관했다는
성주역사테마공원을 탐방하러 성주로 Go Go!!
(기행코스)
쌍도정~성주읍성북문~관천대~성주사고~충헌각~봉산재~시비공원~성밖숲
1.성주역사테마공원(경북 성주군 성주읍 예산리 516)
성주의 옛모습을 재현한 공원으로 성밖숲과 함께 군민들의 휴식처이자 성주의 랜드마크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조선전기 4대사고중 하나인 성주사고와 조선시대 전통연못인 쌍도정 그리고
조선시대 옛모습을 그대로 복원한 성주읍성 북문과 성곽이 공원의 중심입니다!
성주읍성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임정사앞 동북쪽 성곽의 흔적만 일부 남게 되었는데 2020년10월에서야 다시
재건하였으며 산책로에 조성된 비석들은 조선시대 곳곳에 세워져 있던 것을 도로개설 등의 이유로 이곳으로
이전하여 그 뜻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공원안내도
*쌍도정(雙島亭)
조선시대 성주관아의 객사인 백화헌의 남쪽 연못에 있던의 정자의 이름으로 정선이 그린 그림을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재현하였는데 네모꼴 연못속에 석축으로 둘러싼 2개의 섬이 조성되어 있어 쌍도정이라 칭하며 왼쪽섬에는 나무만 심겨져 있지만 오른쪽섬에는 정자가 설치되어 있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정선이 그린 최고의
작품이라고 평가되며, 연못의 조성은 고산 윤선도가 성주고을 수령으로 재임(1634~1635)시절과 관련있다고
추측함. 쌍도정의 원래위치는 현재 성주읍 경산리 관운사앞에 있던 연못으로 추정되고 있음.
*산책로옆에 늘어선 비석들(19개중 일부만 소개)
성주목사 오도일 공적비/성주목사 이보혁 공적비/성주목사 남궁숙 선정비/경상도좌영장 이인하 공적비
성주목사 이용화 애민선정비/성주현감 한덕필 청덕선정비/성주목사 구응 청덕선정비/경상도관찰사 정만석
영세불망비/성주현감 홍중보 청덕선정비/성주목사 이징해 애민선정비/성주목사 신상현 청덕선정비/성주목사
이주하 애민선정비/절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 김성중 불망비/경상도관찰사 조강하 영세불망비/경상도관찰사
서헌순 영세불망비/성주목사 윤자일 청덕선정비/성주목사 홍병희 위도흥학비/성주군수 이규환 애민숭유비/
성주목사 박제억 청덕숭학비
*성주읍성
고려우왕6년(1380) 토성으로 축성되었으며 조선 중종15년(1560) 석성으로 개축하였고, 임진왜란 발발 한해전인 선조24년(1591)에는 성문이 축조되었으며 읍성은 현재 성주읍의 중심부인 경산리, 예산리, 성산리,백전리
일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됨. "성주목읍지"에 따르면 읍성둘레는 6,755척으로 약 2.1Km에 달하는 대규모
읍성에 해당하며 평면형태는 옛고지도자료 및 최근의 지표조사보고서 등을 통해 볼때 장타원형이었을 것으로
추정됨. 현재의 성주읍성은 북문을 포함한 270m구간을 전문가 자문을 거쳐 2020년 재현함.
1)북문전경
2)성곽풍경
3)망루모습
4)망루에서 바라본 전경
*관천대(觀天臺)
"하늘을 살펴 백성에게 전한다"
조선후기 왕립천문관측시설로 일명 관의대라고도 불림.
성주관천대는 서울 창경궁에 있는 관천대를 본보기로 세종대왕의 명으로 조성된 성주사고, 세종대왕 자태실과
더불어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으니 농사는 의식의 근원이다"고 했던 세종
대왕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이자리에 조성하였다고 함.
관천대에 설치된 기구는 "소간의(小簡儀)"로써 간의를 보다 작고 간략하게 만든 독창적인 관측기기임.
*성주사고(史庫)
조선 세종21년(1439)에 설치되어 중종33년(1538)에 화재로 불타 폐지되었는데 조선의 주요한 역사기록물을 보관 관리하던 창고의 하나로써 실제로 실록이 보관된 시기는 1445년으로 당시 실록각은 관아에 인접해 있었던 것으로 봄. 그후 1540년에 실록을 다시 편찬하여 2층누각식으로 재건된 실록각에 보관하였으나 임진
왜란으로 다시 소실된 후 성주사고는 더이상 재건되지 못하고 현재 흔적조차 찾을수 없다고 함.
*충헌각(忠獻閣)
인조26년(1648)에서 경종2년(1722)까지의 조선조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여성, 호는 몽와, 시호는 충헌인 김창집 선생이 세제 연잉군(후일 영조)의 대리청정을 둘러싼 신임사화(1721~22)때 역모로 누명을 쓰고
거제도에 유배되어 위리안치되었다가 성주 요도에 이배되어 사사되신 것을 1750년 성주고을의 뜻있는 선비
들이 관아에 주청하여 선생의 충의를 불망하고 원혼을 위로 추모하기 위하여 수명된 자리에 수명 유허비각을
관리 보존해 오다가 6.25전쟁으로 소실된 것을 2006년 이자리에 복원함.
*봉산재(鳳山齋)
성주의 옛관아뒤에 수려하게 솟은 봉두산 자락의 봉산재는 성주이씨 중흥시조 농서군공 휘 장경 선조께서
터를 잡으시고 다섯아들을 모두 과거에 급제시켜 자자손손 가문을 번성하게 한 자랑스런 유허지임.
1922년에 건립된 봉산재는 해마다 단오절에 지역유림들이 향사를 봉행해 왔으며 그후 쇠락한 봉산재를
새롭게 중건하여 오늘에 이름.
*성주이씨 시비공원
2. 성밖숲(경북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446-1 : 천연기념물 제403호)
숲은 성주읍의 서쪽으로 흐르는 하천인 이천변에 조성된 마을숲으로 나이가 300~500년정도로 추정되는
왕버들 52그루가 자라고 있으며 노거수 왕버들로만 구성된 단순림(면적 약 1.5ha)으로 최근 조사에 따르면
가슴높이둘레가 1.84~5.97m(평균 3.11m), 나무높이는 6.3~16.7m(평균 12.7m)에 달함.
조선시대 성주읍성의 서문밖에 만들어진 인공림으로 풍수지리설에 의한 비보림수(裨補林籔)인 동시에 하천의
범람으로 인한 수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조성된 수해방비림이기도 함.
성밖숲에 대한 기록은 성주의 옛읍지인 "경산지"와 "성산지"등에 수록되어 있고, 구전에 의하면 조선중기 성밖
마을에서 아이들이 이유없이 죽는 일이 빈번하여 한 지관이 말하길 "마을에 있는 족두리바위와 탕건바위가 서로 마주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재앙이 발생하니 재앙을 막기 위해 두 바위의 중간지점인 이곳에 밤나무숲을
조성해야 한다"고 하여 숲을 조성했더니 우환이 사라졌다고 전해짐.
그러나 임진왜란후 마을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밤나무를 베어내고 왕버들로 다시 조성하였다고 하는데 비보림수란 풍수지리설에 따라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조성된 숲을 말함.
1)성밖숲 정보센터
2)성밖숲 넓은 광장(매년 성주생명문화축제가 열리는 장소)
3)왕버들숲 전경
첫댓글 멋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