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내한 언장(汪內翰 彦章)에게 보낸 답장 1-3
了達時에는 安排不得이며 計較不得하며 引證不得이니 何以故요 了達處에는 不容安排며 不容計較며 不容引證이라 縱然引證得計較得安排得이라도 與了達底로는 了沒交涉이니 但放敎蕩蕩地하야 善惡을 都莫思量하며 亦莫着意하며 亦莫忘懷어다 着意則流蕩하고 忘懷則昏沈하리라 不着意不忘懷하면 善不是善이요 惡不是惡이라 若如此了達하면 生死魔何處摸索이리요
깨달을 때에는 안배(安排)할 수도 없으며, 계교할 수도 없으며, 인증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깨닫는 곳에는 안배를 용납하지 아니하며, 계교를 용납하지 아니하며, 인증을 용납하지 아니합니다. 비록 인증하고 계교하고 안배한다 하더라도 깨달음과는 마침내 교섭할 수 없습니다. 다만 턱 놓아서 탕탕하게 해서 선악을 모두 사량하지 말며 또한 생각에 집착하지도 말며, 또한 생각을 잊어버리지도 마십시오. 생각에 집착하면 생각을 따라 흘러가버리고, 생각을 잊으면 혼침에 빠집니다. 생각에 집착하지도 말고 생각을 잊어버리지도 아니하면 선(善)이 선이 아니요 악(惡)이 악이 아닙니다. 만약 이와 같이 깨달으면 생사의 마군이가 어느 곳에 찾아오겠습니까?
강설 :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공적함을 깨달을 때에는 공간성까지 모두 공적함을 깨닫게 되기 때문에 이리저리 이치에 따라 배정하는 안배와 자기나름대로 생각하여 알아맞히는 계교와 경전이나 고인들의 가르침을 이끌어 인증하는 것이 이미 존재할 수 없는 자리다. 그러므로 선이나 악을 생각하는 자리도 아니다. 간화선은 마음을 가라앉히거나 대상을 때라 예의주시하는 지관법(止觀法)도 아니다. 그 모든 것을 화두로 초월하여 생사를 넘어서는 공부법이다. 그래서 생사를 찾을 곳이 없다.
첫댓글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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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나무 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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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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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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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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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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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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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_()()()_
나무 아미타불
書狀 - 無比스님 講說 225 - 汪內翰 彦章에게 보낸 答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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