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이자겸의난과 묘청의 천도운동
8세 충정공 휘 의원
이자겸의 난
인주이씨 이자겸의 딸은 에종의 왕비다.
그의 소생인 인종으로 왕위를 계승시켰다.
인종에게 두 딸을 바쳐 왕비로 삼으니
인종의 외 조부이자
장인이 되어 문벌 귀족의 으뜸이 되어 그 횡포가 지나쳤다.
과거에 합격한 신진 관료를 포섭하고,
여진정벌에 공을 세운 척준경도 부하로 만들었다.
십팔자가(十八子: 李이씨) 왕이 되라는
도참설을 및고 척준경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궁궐에 침입하였다.
궁궐을 불태우고 인조를 자신의 집에 감금하는
동시에 신진 관료 세력을 무참히 제거했다,
위협을 느낀 인종이 척준경에게 교서를 내려
이자겸과 그일파를 제거하였다
. 이어 척준경도 제거하여 난이 평정되었다.
그 뒤 문벌 주체는 인주이씨에서
경주김씨로(김부식) 넘어 갔을 뿐 귀족의 지배는 여전하였다.
묘청의 천도운동.
이자겸의 난으로
개경의 궁궐이 불타 어수선한 틈을 타 금나라가 압력을 가해왔다.
인조 13년(1135)에 국내정세를 이용하여 묘청 등
서경(평양)세력이 대두하여, 개경은 지력이 쇄약하고,
서경은 지력이 왕성하니 서경 천도를 주장을 한다.
개경의 귀족 세력과, 서경 중심의 세력간의 권력 대립이었다.
서경 천도운동은 김부식을 중심으로 한 개경 귀족의 반대로 실페하였다.
이 시기에 선조는 문원공 김양감의 아들로
8세 충정공 휘 의원
1066년(문종21)-1148년(의종3) 고려전기 문신. 시호 충정공.
아버지는 문안공 양감이시며 어머니는 증 서해군 대부인 최씨이다.
문종 37년(1082) 성균시에 급제하여
아버지 문안공의 음덕으로 장사랑과 군기시 주부동정이 되다.
예종 6년(1088) 수어도감판관을 지내고
여러 번 승진하여 감찰어사가 되다.
예종 4년(1109) 병마판관이 되어
허재와 같이 길주 관외에서 여진족을 정벌하였다.
적 30인을 죽이고 다량의 철갑과 궁마를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예종 8년(1113) 형부시랑으로(정4품) 요나라에 가서 우리나라에
조문제사 한 일에 대한 사례를 하고 돌아왔다.
인종 2년(1123) 예부시랑 지어사 대사에 제수되었고,
인종11년 호부상서로서 삼사사를 겸하였으며
금자 광록 대부 태자태사를(정2품) 증보하고 특진으로 가자 되어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 받았다. 시호는 충정공.
광산김씨 사, 광산김씨 약사.
2023년 5월 편집 善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