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작은 씨앗”(마르코 4:26-34)
오재광 디모테오 신부 / 유성교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오늘 복음은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와 관련이 있습니다. 씨앗이 어디에 떨어지느냐에 따라 그 씨앗은 새의 먹이가 되기도 하고 뿌리가 얕아 작렬하는 태양에 타서 없어지기도 하고 가시덤불에 덮혀 죽기도하고 많은 열매를 맺기도 합니다. 씨앗이 떨어지는 길가, 돌밭, 가시덤불, 좋은 땅은 예수의 설명에 의하면 결국 인간의 마음밭입니다. 마음밭이 어떤 상태에 처해 있느냐에 따라 하느님 나라의 말씀의 씨앗은 우리 안에 뿌리를 내려 잘 자라나 열매를 맺기도 하고 많은 말씀을 읽고 기도생활을 하였지만 시련이 찾아와 어떤 열매도 맺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비유는 내가 그와 같은 영적인 상태에 있을 때가 언제인지 알 수 있는 기도를 제공합니다. 인간의 마음밭은 결국 우리에게 달려 있고 그곳에 말씀의 씨앗을 뿌리고 가꾸는 것 또한 오롯이 우리의 몫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신장이나 외모를 보지 않고 마음의 중심을 본다고 하셨듯이 사람의 마음에 무엇을 두고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그것은 결국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희망과 그 희망을 현실로 만들려는 우리의 실천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와 다르게 말씀이 열매를 맺는 것은 인간의 수고에만 달려 있지 않고 그 수고를 헛되이 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에게 속한 일이라고 전합니다. 바울로는 말했습니다.“나는 씨를 심었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심은 씨앗이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 알 듯이 싹이 트고, 이삭이 패고 낟알이 맺어져 수확하는 시기가 오는 것처럼 하느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은 그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결국 추수하는 시기가 오리라는 것을 말씀해주십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루어지라는 신뢰이자 인내이고 끈기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씨앗을 뿌리고 추수는 어떤 형태로든 하겠지만 하느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 온전히 분별하지 못합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많은 일들이 일어난 후에야 하느님께서 함께 계셨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때에는 전혀 모르고 추수하지 못하는 때도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께서 지금 어떻게 일하고 계신지 우리가 있는 일상을 기도하는 마음 가운데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일상생활을 비유로 하느님 나라를 보여주셨듯 우리 또한 우리가 머무는 지역사회와 교회공동체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어떻게 하느님께서 활동하시고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활동을 스스로 발견하고 꿈꾸는 하느님 나라, 신앙공동체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어떤 씨앗보다도 가장 작은 겨자씨를 우리 모두의 마음밭에 뿌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고 싶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려놓아야 하며, 함께 하기 위해 서로 배려하고 기다려 줘야하는 것이기에 우리가 뿌리는 씨앗은 가장 작을 수 밖에 없고 결실을 맺기까지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씨를 심고 어떻게 자라는지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과정을 거쳐 결국은 추수하게 될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신뢰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과정 가운데 가장 작은 겨자씨를 하나하나 심고 가꾸어 나간다면 우리가 있는 곳은 서로 다른 이가 함께 할 수 있는 하느님의 집이 될 수 있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많다고 하신 것처럼 서로 다른 모양과 아픔, 희망을 가진 이들이 함께 하느님 나라를 꿈꾸고 만들어나갈 수 있는 신앙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