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의 말 외 1편
김규화
숨가쁘지 않을 때는
입을 닫은 채로 말을 한다
말이 코로 빠져나가면 코소리가 되고
입천장을 닫고 입으로 나가면 입소리가 된다
"모든 것은 항상 시작이 좋다"는 파스칼의 말
파스칼은 숨이 가빠 입을 열고 산다
말은 배고파서 문을 발로 찬다
밥그릇을 물어뜯고 머리를 끄덕거린다
목마르면 머리를 흔들고 입술을 핥아서
말은 몸으로 말을 한다
천관녀는 김유신으 말을 붙잡으며
원망의 노래를 부른다
말은 늘상 원사(怨詞)를
읊으며 산다
말이 칼에 버히고
말은 다시 김유신의 묘에 오석(午石)으로 꽂힌다
나폴레옹의 말
말을 부리려면 그 입에 재갈을 물려야 합니다
나는 그 말의 온몸을 끌고 다닙니다
제나(Jena)의 승자 워터루(Water-loo0의 패자,
엘바(Elba)의 유배자, 나는 말을 많이 부렸습니다
말들은 많이 모여 있습니다 수말이 암말 20두를 거느리며
기마병을 태우고 알프스산을 넘었습니다
전장에서 말들은 대포를 끌고 갑니다
말을 타고 달릴 때는 하늘을 나는 듯했습니다
용기를 북돋으려고 나는 코만치족처럼
소리를 지르며 등자(鐙子)에 발을 꿰고 버티었습니다
친애하는 다비드, 전쟁은 창으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열정적인 말 위에 있지만 차분한 인물로 그려줬으면
나는 내 한쪽을 굼벵이의 거처로 삼았습니다
오른쪽 겨드랑이에는 수시로 날아오르는 박쥐가 삽니다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없다. 1%의 가능성,그것이 나의 길이다"는 말은 나의 명언입니다
시인 김규화
1966년 현대문학 천료 등단
시집: [이상한 기도], [놀이내기], [관념여행], [멀어가는 가을], [망량이 그림자에게], [햇빛과 연애하네],
[사막의 말], [바람하늘지기], [어머니 그날], [바다를 밀어 올린다], [말, 말, 말].
시선집: [초록징검다리], [서정시편].
영시집: [Our Encounter](Home& Sekey Books]
불어시집: [Notre Rencomtre](Sombres)
수상:한국문학상, 펜문학상, 현대시인상, 동국문학상, 순천문학상, 매계문학상, 도천문학상.
현재:한국문인협회자문위원, 국제펜한국본부고문, 한국여성문학인회 자문위원, 한국현대시인협회 명예이사장,
월간 [시문학]발행인
첫댓글 시작노트
나는 동물인 말을 좋아한다. 윤기나는 대춧빛 조홍마는 말 중에서 그 수가 가장 많은 말이다. 나는 말의 역동성과 사람에 순종하는 그 품성을 좋아한다.
그런데, 왜 동물인 말(馬)이라는 기호가 우리가 날마다 사용하는 말(언어)와 같을까. 지금은 역사 속으로 거의 사라지고 있지만 '말'은 인간에게 말만큼 많이 그리고 가장 긴요하게 쓰여져 왔는데, 처음에 말(언어)이라는 명사가 생기고 한참 후에 말이라는 사물이 이 나라에 들어오게 되고 말과도 하는 역할이 매우 닮아서 동음으로 지어버리지나 않았을까?
말은 한 사람이 하루에 2만개씩 쓰고(듣고, 보고, 글쓰고, 생각하고)산다고 한다. 말은 그만큼 우리에게서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떨어지면 죽는 것이나 다름없는 우리의 피부와 같이, 입고 있는옷과 같이 우리와 한몸으로 살고 있다. 마치 말이 수 세기 전까지만 해도 지금의 자동차처럼 우리의 몸에서 뗄 수 없는 교통수단이나 그 외의 요소에서 많이 사용했던 것처럼. 이 시집의 작품 한 편 한 편에 삽인한 명사들의 명언 한 구절씩도 말이라는 기호 안에 포함시켰다. 그런 명언을 할 수 있었으니 명사일 것이며, 명사가 아니면 그런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내 시에서 식물 뿌리의 리좀 같은 이 세 '말'을 한 작품 안에서 콜라주했다. 이미지와 이미지, 그리고 연과 연이 혹은 연관성이 없더라도 '말'이라는 기표 하나로서의 동일성은 있지 않은가. 아니면 연관성을 찾기 이전에 한 기표 안에서 중의로 해석하는 것도 하이퍼시적 방법이 아니겠는가.
내 난삽하고 꺾꺽한 '언어'를 읽고 해설을 써 주신 김예태 시인과 '말' 시 55면을 쓰게끔 동기부여를 해주신 이 시인과, 기꺼이 '말'의 자료를 제공해 주신 조 시인에게 깊이 감사한다.
2022년 봄
김규화
시의 출발은 모두 말에서 시작되지만 이 말에서 출발한 말이 형상화시킴 말(詩)이 있고 말에서 추출되는 말(시론)이 숨어 있다. 모든 시가 이런 형식을 갖춘 그릇이어서 시 '한 편에 시론 하나'라는 구조가 매 시마다 살아 있다. 시는 말에서 태어나지만 건강한 말을 먹고 자라나면 우람한 말이 된다. 우람한 말은 전통으로 계승되어 광활한 역사의 광장에서 뛰어놀 수 있다. 건강한 말을 생산하여 전통의 강으로 들여보낸 힘 있는 말(詩)은 광장을 지배하는 맹주들이 된다. 말(言)은 끊임없이 세계를 확장해가는 말(詩)을키워내고, 말 역시 스스로를 광활한 영역으로 몰라간다. 시집 [말, 말, 말]은 이러한 문학예술의 기호적, 창조적, 에술적, 전통적 계보를 경이롭게 보여준다.
김예태(시인, 문학박사)